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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도시 4’, 답습을 미덕으로 승화시킨 마석도

2024.04.30

by 강병진

    ‘범죄도시 4’, 답습을 미덕으로 승화시킨 마석도

    영화 ‘범죄도시 4’ 스틸 컷
    영화 ‘범죄도시 4’ 스틸 컷

    2017년의 <범죄도시>는 ‘비루한’ 영화였다. 영화가 비루했다는 게 아니라, 영화 속 세계가 비루했다는 얘기다. 돈을 빼앗는 악당들은 있지만, 떵떵거리며 사는 악당은 없다. 악당을 원펀치로 날리는 경찰은 있지만, 그들은 비좁은 컨테이너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다. 악당의 욕망이라는 것도 비루하기 짝이 없다. 빌린 돈을 갚지 않고 싶다거나, 다른 이가 돈을 벌고 있는 영업장을 가로채서 돈을 벌고 싶다거나. 말하자면 <범죄도시>는 비루한 세계에 사는 비루한 악당들의 비루한 범죄를 역시 비루한 방식으로 처단하는 영웅의 이야기다. 이 영화가 지닌 매력의 7할이 마동석이었다면, 나머지 3할은 영화가 그리는 세계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3, 4편에 걸쳐 이 균형이 무너졌다. 전편과는 다른 색깔의 범죄와 빌런을 구성하는 노력을 했지만, 동시에 마동석의 마석도에게 더 크게, 더 많이 기대는 방향으로도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범죄도시 4>는 2편과 3편에 이어서 세 번째로 1,0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듯 보인다.

    사실 <범죄도시 4> 첫 시사회 후 언론 매체와 평론가들은 의심했다. 대체적인 평가는 액션의 쾌감은 큰데, 구성은 전편과 다르지 않다는 거였다. 마석도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빌런들은 카리스마가 약해졌다는 것. 게다가 그 빌런들의 행태는 작위적이고, 웃음을 위한 개그는 너무 단편적이라는 것. 그러니 전편의 공식을 답습하는 이 영화가 이번에는 1,000만 명 관객 동원이라는 고지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런데 사실 3편이 개봉할 때도 비슷한 예상이 있었다. 2편이 1,000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나타난 ‘보복 소비’ 현상이 있었다. 게다가 1편이 개봉한 지 5년 만에 나온 속편이라 관객들의 반가움도 컸다. 그래서 2편이 나온 지 1년 만에 개봉한 데다, 역시 전편에 비해서 약해진 빌런과 공식을 답습하는 안일함 때문에 3편은 1,000만 명을 동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그런데 3편도 그 어려운 걸 해냈다. 게다가 흥행세를 보니 4편도 해낼 것으로 보인다. <범죄도시 4>는 개봉 6일 차에 약 46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두 번의 주말이면 충분할 것이다.

    영화 ‘범죄도시 4’ 스틸 컷
    영화 ‘범죄도시 4’ 스틸 컷

    언론과 비평가들이 흥행을 의심한 이유 중 하나는 ‘관객’에 대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원하는 관객들은 반복적인 것을 싫어할 것이란 믿음이다. 그렇다면 <범죄도시 4>의 흥행은 관객 성향이 변화된 결과로 봐야 하는 걸까? 그렇다기보다는 관객의 속성이 다층적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관객들은 언제나 더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동시에 지금 즐길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이때 관객의 선택을 받는 ‘무언가’는 대략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 경험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재미있는 것. 지금 주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중 가장 화제가 되는 것. 무엇보다 지금 내가 원하는 타이밍에 경험할 수 있는 것. 2024년 4월 24일에 개봉한 <범죄도시 4>는 그 조건에 더없이 완벽하게 부합하는 콘텐츠다. 흥행 불패의 시리즈에서 파생된 속편이니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작품이 개봉을 하는 시점이니, 다른 작품들이 함부로 경쟁 레이스를 펼칠 수 없다. 또 그런 상황이니 멀티플렉스에서도 <범죄도시> 4편에 예전보다 더 많은 상영관을 배정한다. 덕분에 <범죄도시 4>를 보려는 관객들은 기다릴 필요 없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여러모로 지금은 <범죄도시 4>가 관객을 빨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화 ‘범죄도시 4’ 스틸 컷
    영화 ‘범죄도시 4’ 스틸 컷

    <범죄도시>는 앞으로 8편까지 제작될 예정이다. 관객들은 그때도 지금만큼 이 시리즈를 사랑해줄까? 그럴 것 같다. 이미 <범죄도시>는 새로울 필요 없는 시리즈가 되어버려서 그렇다. <범죄도시>는 주인공 마석도가 악당들을 종잇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순간의 쾌감으로 밀고 가는 시리즈다. 이 쾌감은 그때도 중독적일 것이다. 물론 언론과 비평가들은 그때도 전편의 공식을 답습하는 건 신선하지 않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선택하는 관객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런 ‘답습’이라면 어떨까. 4편까지 보고 나니 <범죄도시> 시리즈는 이제 영화보다는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월드 레슬링 엔터테인먼트) 같은 엔터테인먼트 브랜드에 가까운 듯하다. 주인공은 정해져 있고, 그 주인공의 성격도 행동 양식도 모두 알고 있으며 그가 어떤 방식으로 위기를 겪다가 극복할 것인지도 안다. 그런데도 WWE 팬들은 이러한 주인공의 공식에 열광한다. 가끔 공식을 비틀면 더 크게 열광한다. 그렇게 볼 때, 앞으로는 <범죄도시> 시리즈를 평가하는 각도도 조금은 달라질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기본값’의 답습이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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