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의 택시
구구절절 설명보다 정확한 터치, 번호판 촬영보다 안심되는 문자가 있다. 카카오택시로 택시 타는 습관을 바꿨다.
비 오는 금요일 12시, 강남역에서 택시를 잡느니 술 한잔 더 하는 길을 선택하게 되지만 서울은 분명 택시 타기 좋은도시다. 서울의 택시 기사들은 팔을 들어 올리기도 전 엉거주춤한 포즈만으로도 택시 손님인지 아닌지 파악하는 초능력을 가졌고, 요금을 얹어주면 예상 도착 시간을 2분의 1로 줄여주는 총알도 장착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어느도시보다 감당할 수 있는 요금을 받는다. 하지만 서비스 질은 기사에게 달려 있고 어떤 기사의 차를 타는가는 철저히 복불복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3월 말 서비스를 시작한 카카오택시를 혁명으로 부르는 건 옳다. 처음 카카오택시가 등장했을 때 IT업계 종사자들은 콜 전화가 앱으로 옮겨졌을 뿐 딱히 새로운 서비스는 아니라고 잘난 척했지만, 그것이야말로 뭘 모르는 소리였다. 카카오택시는 사람들이 택시를 탈 때 가장 싫어하는, 그리고 불편해하는 지점을 현존하는 기술을 재조합해 놀랍도록 간단하게 풀어냈다. 스티브 잡스가 어린이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든 마음 못지않게 카카오택시 역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앱을 실행하면 현재 위치가 뜨고 도착지를 검색한 뒤 호출하기를 누르면 콜 완료. 콜은 주변 택시 기사들에게 전해지고 몇 명의 기사에게 도달했는지 숫자로 보여준다. 운명의 기사가 콜을 수락하면 연결 완료. 지도상에 기사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나의 위치와 합쳐질 즈음 짜잔! 택시가 내 앞에 나타난다. 내 위치가 기사에게 전달된다는 것, 기사의 움직임이 내 휴대폰에 뜬다는 것. 이 두 가지 서비스는 사용자 입장에서 길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의미한다. 광고 회사 국장 Y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주일에 3회 이상 카카오택시를 이용한다. “길을 잘 모르는데 끈질기게 물어보는 기사님들 때문에 피곤했거든요. 내비 찍고 가자고 하면 싫어하는 기사님도 너무 많고요. 카카오택시를 이용한 뒤로는 눈을 감고 쉬며 졸기도 해요. 처음엔 야간 귀가에만 불렀는데 요즘은 낮에도 호출해요. 회사 차보다 택시 이용이 늘었어요.”
카카오택시는 야근하는 사무실 풍경도 바꾸었다. 마감 기간 중 잡지사 사무실에서 12시가 넘어가면 하나둘씩 콜택시에 길을 설명하는 통화가 침묵을 깨곤 했으나 이제는 추억이 됐다. 카카오톡처럼 카카오택시 역시 음성 대화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영화감독 C는 외출할 때 스케줄 관리가 정확해졌다고 말한다. “택시 도착 시간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 시간에 맞춰 나가죠.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줄었어요.” 그는 서비스 초반에 얼리어답터 특유의 센스를 느끼기도 했다고 전한다. “처음에 카카오택시에 가입한 기사님들은 그만큼 기계를 잘 다루는 분들이잖아요. 아무 질문 없이 실시간 교통 상황이 반영된 ‘김기사’ 내비를 활용해 막히지 않는 길로 가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 카카오택시 신봉자가 되었어요.” 후배 기자 A는 처음부터 목적지를 찍고 가니, 늦은 밤 최대한 안전하게 데려다주려고 “아파트 안쪽으로 더 들어가서 내려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주는 멋진 기사님들도 여럿 만났다며 좋아했다. 얼마 전 만난 택시 기사는 카카오택시 이용 후 달라진 점으로 만취 손님을 태울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덜 취한 친구가 도착지를 입력해 택시를 부르고 만취한 친구를 태워 보낸다는 것. 카카오택시는 취객의 안전도, 길바닥에 버리고 싶은 우정도 지켜내고 있다.
카카오택시의 미덕은 안전에도 있다. 택시에 탑승하는 순간, 메시지를 보내겠느냐는 안내 문구가 뜨고 안심 메시지를 보내면 언제 어디서 어떤 택시를 탔고, 예상 소요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날아간다. 이전에도 타고 내릴 때 지정 폰으로 문자가 가는 ‘택시 안심귀가 서비스’가 있었다. 타자마자 단말기에 카드 선승인을 해야 했기에 기사를 의심하는 것 같은 왠지 모를 미안함이 생겨 하차 안내 문자로만 이용하던 서비스다. 카카오 택시는 안심 문자를 필수 선택 사항으로 넣었고, 이 문자 하나가 참 사람을 안심시킨다. ‘택시를 타며 불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이니 우리가 지켜줄게!’ 같은 배려가 느껴진다. 카카오택시를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기사의 얼굴과 이름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여전히 복불복 탑승이지만 기사와 통성명은 안전망 하나를 설치한 느낌을 준다. 카카오택시팀에서 기사의 적격성을 검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하차 후 별점 평가 서비스로 안전 필터가 더 촘촘해질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택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귀갓길 안전을 위해 정부가 내놓은 숱한 방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60억원을 투입해 만들고 있다는 콜택시 통합 관리 사업은 또 어쩌나. 카카오택시의 실명제는 적어도 현실적이다.
“카카오택시가 엄청나게 훌륭하다기보다 이를 이용하면서 기존의 택시 서비스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깨닫게 된 거 같아요. 기사와 손님이 서로를 평가하는 기능만으로도 서비스는 훨씬 좋아졌어요. 요금이 8,600원 나와서 1만원을 냈는데 1,000원만 돌려주는 기사는 사라지겠죠. 분실물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거고요.” 영화감독 C의 말처럼 지금까지 택시 서비스는 상호 계약이 아니었고 다시 만날 확률이 없어서 그토록 서비스 질이 낮았다. 항의의 길은 멀었고 혹시 모를 보복도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후배 A는 드물게 점잖은 기사님들에게 받은 친절, 거친 운전에 혼이 빠져나간 억울함을 어디든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꼭 별점을 매긴다. 적립금도 없는 후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심인 건 그동안 택시를 이용하며 하고 싶은 말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다. 나 역시 10여 년간 택시를 이용하며 새벽 4시 바깥 공기를 마셔보라며 창문을 열었던 기사(그는 갓 출근해서 상쾌하겠지만 나는 퇴근 중), 요즘 그쪽 업계 불황이지 않느냐고 능글맞게 묻던 기사(저 아무 데도 안 나가요), 노래방을 설치해놓고 노래를 시키던 기사(못한다고 어찌나 구박하던지), 목적지와 도보 10분 거리에 세워준 기사(바로 여기라며 내리랬다)까지… 할 말 참 많았다.
택시 기사 입장에서도 지금까진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다. 기사 대부분이 기존 콜 업체를 이용하면서 카카오택시도 추가로 이용한다. 기존 콜택시보다 먼 거리에 있는 호출도 뜨다 보니 비효율적일때도 있지만 일단 콜비가 없고, ‘빈차’로 다니는 시간이 줄었고, 장비가 줄었다. 물론 카카오택시 역시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승차 거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고, 일방적인 콜 취소도 빈번히 이루어지며, 항의 전화할 곳도 따로 안내되어 있지 않다. 갑작스럽게 콜비를 부과할 가능성도 안고 있다. 하지만 카카오택시는 콜택시를 이용하지 않던 사람도 콜을 부르게 만들었다. 마음을 건드리는 서비스는 일상의 풍경을 바꿔놓고 사는 방식에 변화를 가져온다. 뽑기 게임 같은 택시 탑승이지만 앞으로도 한동안 카카오택시 앱을 누를 것 같다. 카카오택시는 광고 문구에서도 정확히 사용자의 마음을 꿰뚫고 있다. 막차 끊겼을 때, 지각이 걱정 될 때, 믿고 부르는 택시다.
- 에디터
- 조소현
- Illustration
- IMCOMMA (C.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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