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공포영화
처녀 귀신도, 드라큘라도 죄다 시시한 것뿐이다. 공포영화의 계절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심심해진 근래 수년의 여름 극장가. 차라리 오랜 벽장을 열고 호러 명작을 골라봤다. 열대야가 아닌 공포 탓에 잠을 설치게 될 무시무시한 영화들.
<영혼의 카니발> 허크 하비, 1962
<영혼의 카니발>은 참으로 조촐한 영화다. 캔자스 주의 로렌스라는 작은 소도시에서 중·고등학교용 교육영화를 만들던 사람들이 할리우드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당연히 극저예산이고 주연배우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동네 아마추어 극단 배우들이다. 하지만 극저예산이라고 예술적 야심까지 부족했던 건 아니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오르가니스트가 시골 마을 교회에 취직한 뒤 주변에서 좀비 같은 귀신들을 본다는 이야기는 지금 보면 평범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건 수많은 호러 영화 작가들이 심야방송이나 드라이브인 시어터에서 틀어주는 이 영화를 보고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좀비 같다는 표현을 썼는데, 당시는 조지 로메로가 현대적인 좀비를 만들어내기 전이니, 오히려 이 영화가 로메로의 좀비에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영혼의 카니발>은 지금 봐도 무서운가? 솔직히 자극적으로 무섭지는 않다. 반전을 눈치채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촌스럽고 서툰 가운데 독특한 귀기가 서려 있으며, 묵직하게 오싹하고 무엇보다 이상하게 아름답다.
<더 헌팅> 로버트 와이즈, 1963
로버트 와이즈가 만든 셜리 잭슨의 <힐 하우스의 유령>의 첫 번째 각색 영화다. 리메이크가 나온다고 들었을 때 난 60년대엔 살리기가 어렵던 원작의 퀴어 요소를 보다 잘 살려주길 바랐다. 하지만 정작 나온 영화에선 오히려 그게 반으로 팍 깎였고(레즈비언 예술가를 양다리 걸친 바이로 바꿔서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아직도 모르겠다), 대신 요란한 특수 효과가 들어갔다. 특수 효과가 들어간 귀신 들린 집 영화도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이미 <폴터가이스트>에서 했잖아! 리메이크와 달리 오리지널 <더 헌팅>은 특수 효과를 최대한으로 줄이면서 심리적 공포를 유발하는 영화다. 귀신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솔직히 과연 있긴 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와이즈는 귀신없이도 초자연현상 연구자들에 섞여 귀신 들린 집에 들어온 여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기가 막히게 살려낸다. 이 심리가 절묘한 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에다,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주인공의 갈망을 교묘하게 섞어냈다는 데 있다. 그냥 무서운 건 피하면 된다. 하지만 <더 헌팅>은 그렇게 단순한 건 취급하지 않는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 자크 투르뇌, 1943
사람들은 이 영화를 형편없는 제목을 단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븐 킹은 멋진 제목을 단 평범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멋진 제목을 단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조용히 읊어보라. 으슬으슬하지 않나. 영화는 현대판 <제인 에어>다. 단지 이 영화의 현대가 영화가 만들어진 1940년대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캐나다인 간호사인 주인공은 카리브 해의 저택에 취직하는데, 고용주의 아내인 환자는 이상한 종류의 강직증에 걸려 있다. 물론 강직증은 현대 의학의 해석이고, 이 곳 섬사람들은 모두 그 환자가 부두교의 저주를 받아 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여기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의 장점은 이 영화가 지독하게 아름답다는 것이다. 간호사 주인공이 한밤중에 환자와 함께 부두교 제사장을 찾아가는 장면을 보라. 이 장면이 무서운가는 각자의 취향에 달려 있겠지만 순전히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이 회색 여정이 정말로 섹시하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쉽지 않다.
<얼굴 없는 눈> 조르주 프랑주, 1960
메스를 들고 젊은 여자의 얼굴 가죽을 벗기려고 달려드는 남자가 그려진 영화 포스터를 보고 기겁하던 기억이 난다. 그 영화는 제스 프랑코의 <페이스레스>였고 조르주 프랑주가 만든 <얼굴 없는 눈>의 리메이크였다. 교통사고로 얼굴이 망가진 딸을 위해 젊은 여자를 납치해 얼굴 가죽을 벗겨 딸에게 이식하는 미치광이 의사 이야기. 이 정도면 선혈이 낭자하는 그림의 연속이어야 정상이다. <얼굴 없는눈>이 나왔던 1959년엔 이 설정이 주는 충격이 정말로 대단해서, 에든버러 국제 영화제 때 영화를 보고 기절해 실려 나간 관객들이 일곱 명이나 됐다고 하다. 그걸 보고 프랑주는 “스코틀랜드 남자들이 왜 치마를 입는지 알겠다”며 이죽거렸다나. 그런데 조르주 프랑주의 <얼굴 없는 눈>은 의외로 아름다운 영화다. 여자 얼굴 가죽을 벗기는 미치광이가 나오는 영화인데 이 흑백영화는 마치 장 콕토가 만들지 않은 장 콕토의 최고 걸작처럼 아름답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건 망가진 얼굴을 하얀 가면으로 덮고 눈빛 연기를 하고 있는 에디트 스코브인데, 스코브가 숲 속 동물들과 함께 어둠 속으로 퇴장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런 내용으로 이렇게 예쁜 장면이 나오는 건 그냥 반칙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셔가의 몰락> 장 엡스탱, 1928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을 각색한 최고 걸작 영화가 프랑스에서 나온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보들레르와 말라르메라는 걸출한 번역가 덕택에 포는 반쯤 프랑스 작가가 아니던가. 내가 여기서 말하는 최고 걸작 영화는 장 엡스탱이 만든 <어셔가의 몰락>이다. 28년 작. 다가올 유성영화의 시대를 기다리는 동안 테크닉과 예술혼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걸작 무성영화가 와르르 쏟아져 나오던 시대다. 영화광이 아닌 사람들은 무성영화라면 보통 채플린 영화의 밋밋함을 떠올리는데, 채플린 영화가 위대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건 좀 아쉽다. 20년대 말이라면 CG를 제외한 거의 모든 영화적 테크닉이 다 개발됐고 그것들이 작정하고 펑펑 쓰이던 때다. <어셔가의 몰락>은 나른하고 몽환적인 영화지만 그러면서도 2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 작가가 상상하고 재현할 수 있는 온갖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다 등장하는 영화이다. 포의 원작에 그렇게까지 충실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게 그리 중요할까.
글 / 듀나(영화 평론가)
<오디션> 미이케 다카시, 1999
아오야마 시게하루는 7년 전 아내를 사별하고, 16세 아들을 키우는 마흔두 살 남자다. 그는 선보기는 쑥스러워 오디션을 빙자해 여성을 만나다가 아사미를 선택한다. 청순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성이었다. 시게하루와 아사미는 진지한 만남을 시작한다. 여기까지 <오디션>은 온화하고 다정한 분위기의 멜로드라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돌변한다. 아사미는 사라지고 끔찍한 악몽이 전개된다. 당신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 미이케 다카시는 시게하루에게 닥친 재앙이, 길을 가다가 위에서 떨어진 벽돌에 머리를 맞는 것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시게하루는 천재지변과도 같은 일을 겪게 된다. 천사가 순간 악마로 변하는 경험이다. <오디션>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친한 친구를 만났는데 갑자기 칼로 옆구리를 푹 찌르는 것 같은 영화라고나 할까. 이유가 없기에, 이해할 수 없기에 가장 섬뜩한 공포를 안겨준다. ‘끼릭끼릭’ <오디션>을 보고 나면 이 단어가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 토브 후퍼, 1974
1974년에 만들어진 토브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학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과거에 없던 잔혹한 장면이 연속으로 등장하지만 고어 장면의 충격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캠핑을 떠난 대학생들을 아무 이유 없이 죽이고, 그들의 얼굴 가죽을 벗겨 자신의 얼굴에 뒤집어쓴 살인마는 과거의 공포영화만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한 어떤 악마와도 달랐다. 정말로 현존하는 악의 실체였고 심연이었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의 끈적끈적하고 뒤틀린 느낌은 결코 잊을 수가 없다. <텍사스 전기톱 학살>은 실제 연쇄 살인마였던 에드 게인의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영화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때에 벌어진 연쇄 살인극은 단지 한 살인마의 광란이 아니었다. 도시의 중산층, 인텔리에 대한 분노와 열등감에서 비롯된 연쇄 살인은 사회적 광기의 표현이었다. 반대로 도시인이 바라보는 시골은 비합리적이고 광기가 지배하는 야만의 땅이다. 그 것은 이해의 단절인 동시에 세상의 부조리였다. 토브 후퍼의 원작은 혼란 그 자체였던 시대의 광기를 악마적으로 그려낸 영화다.
<매드니스> 존 카펜터, 1995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화화한 <매드니스>는 현실과 허구를 섞어버린다. 스티븐 킹을 연상시키는 작가 서터 케인이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In the Mouth of Madness>의 원고만 남겨놓고 사라진다. 출판사에서는 사립 탐정 트렌트를 고용해 케인의 행방을 찾는다. 트렌트는 케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마을인 ‘홉스의 끝’으로 향하고, 케인의 소설이 출간된 날부터 끔찍한 사건이 벌어진다. 소설의 사건이 그대로 현실에서 발생하고, 현실의 완강한 틀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꿈과 현실, 혹은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와 침범을 다루는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다. 하지만 <매드니스>를 보는 일은 여전히 설렌다. <매드니스>에서 안개가 자욱한 길을 차로 달리고 있으면,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는 남자가 보인다. 멀리 자전거가 뒤처지고 다시 한참을 달리면 또 자전거가 보인다. 이건 현실일까, 꿈일까? 아니면 꿈과 현실이 서로 침투하고 있는 것일까? 그 남자가 도착하는 곳은 스티븐 킹의 소설에 늘 등장하는 ‘캐슬 록’ 일 것이다. 유년의 공포와 소도시의 악몽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디에나 출몰하는 악령이나 괴물의 발원지. <매드니스>는 원형의 악몽을 그려낸다.
<큐어> 구로사와 기요시, 1997
도쿄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가해자들은 교사, 의사, 경찰 등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다가베 형사는 가해자들을 조사하다가, 그들 모두 의과 대학생인 마미야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신분열증 환자이며 최면술에 심취한 마미야는 만나는 사람에게 최면을 걸어 살인을 명령한다. 그런데 방식이 묘하다. 마미야는 그냥 물어본다. “넌 누구야, 네 이야기를 해줘, 그가 밉지”라는 말을 늘어놓으며, 그들의 마음 깊숙이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헤집어놓는다. <큐어>에서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마음은 우리의 그것이다. 경찰은 3년 전부터 싫어하던 동료를 죽인다. 여의사는 여자라고 업신여기는 남자를 죽인다. 보이지 않게 우리 마음속에 감춰두었던 사소한 적개심이 마미야의 최면으로 순식간에 현실이 돼버린다. 어느 날 갑자기 고지라가 등장해 평화로운 도쿄를 박살내듯, <큐어>는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의 악마가 출현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평화와 안전이라는 신화를 깨버리는 영화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즈, 1996
쿠엔틴 타란티노 각본에 로버트 로드리게즈 연출. B급 영화의 제왕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두 남자가 만든 <황혼에서 새벽까지>는 액션 호러 영화의 걸작이다. 멕시코로 도망치던 은행 강도 세스와 리치는 캠핑카를 몰고 가던 목사 가족을 위협해 동행한다. 국경을 넘어 도착한 곳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클럽. 문제는 밤이 되면 뱀파이어들이 나타나는 본거지라는 것이다. 전반은 화끈한 도망자 이야기다. 보안관을 만나 총격전을 벌이고 가게를 폭파한다. 밤의 클럽 장면이 되면 순식간에 돌변한다. 뱀파이어들이 폭주족과 트럭 운전사를 공격하고, 물린 친구들이 뱀파이어가 돼 덤벼든다. 무섭다기보다는 만화 같은 질감의 현란한 액션영화다. 조지 로메로의 암울한 좀비 영화가 <새벽의 저주>처럼 좀비 액션영화로 바뀐 뱀파이어 영화 정도?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는 멋대로 세상 모든 것을 인용하고, 조롱하고도 결코 제자리에 돌려놓지는 않는다. 무조건 돌진한다. 그 좌충우돌이 <황혼에서 새벽까지>의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싸구려’ 즐거움이다.
글 / 김봉석(영화 평론가)
<드라큐라> 테런스 피셔, 1958
영국 호러 전문 제작사 해머 스튜디오에서 만든 드라큘라 영화의 고전. 해머 스튜디오는 1950~70년대에 걸쳐 많은 흥행 영화를 제작하며 강력한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몬스터 영화를 재창조하면서 재미를 보았는데 <드라큐라>도 그중 한 편이다. 브램 스토커의 원작 소설을 충실히 따라 가는 영화는 조나단 하커가 드라큘라 백작의 성을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드라큘라 성의 세트와 미술이 만들어내는 음침한 분위기 속에서, 금세기 최고의 호러 명배우였던 피터쿠싱과 크리스토퍼 리가 대결을 벌인다. 각각 반 헬싱 교수와 드라큘라를 연기한 두 배우의 결전은 화면을 녹일 것 같은 박력이 압도적이다. 유니버설 시대의 드라큘라 대표 배우였던 벨라 루고시와 달리, 리는 야생적이며 섹슈얼한 매력으로 크게 어필했다. 또한 과거와 달리 폭력과 에로티시즘을 강조해 자극적인 비주얼을 요구하던 당시 관객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드라큐라>는 영화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드라큘라 영화다. 영원히 사랑받을 매혹적인 이야기와 우아한 영상과 색채의 미학, 무엇보다 전설의 명배우를 알현하는 것만으로도 걸작의 자격을 가진다.
<엑소시스트> 윌리엄 프리드킨, 1973
40년이 지났지만 파워는 지금도 유효하다. <엑소시스트>는 윌리엄 피터 블래티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하며, 악령 들린 소녀에게 엑소시즘을 행하는 두 신부의 대립, 인물 내면과 갈등에 접근하면서 다른 호러 영화와 수준을 달리했다. 영화의 백미는 악령 들린 소녀 레건의 끔찍한 행동으로, 린다 블레어의 압도적인 연기와 딕 스미스의 소름 끼치는 특수 분장에 힘입어 개봉 당시 관객을 쇼크로 몰아넣었다. 특히 레건의 헤드스핀 장면은 많은 영화가 패러디와 오마주를 바친 명장면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엑소시스트>가 불멸의 호러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건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드라마와 주어진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들의 명연기, 분장과 조명, 음향 등의 기술적 성취까지 최고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할로윈> 존 카펜터, 1978
<할로윈>은 난도질 영화의 클리셰를 집대성하며, 70년대 후반을 장식한 걸작이다. 이후 <13일의 금요일>과 같은 영화가 큰 영향을 받아 80년대 대표적인 난도질 시리즈로 발전했다. 존 카펜터 감독의 <할로윈>이 다른 난도질 영화와 차별되는 점은 살인 행위의 절제된 묘사다. 호러 영화는 수위 높은 폭력이라는 등식을 깨뜨리며, 흰 마스크를 쓴 캐릭터와 분위기로 끊어지지 않는 긴장과 공포를 만들었다. <할로윈>은 피범벅 묘사가 없는 영화다. 존 카펜터는 가족과 이웃이 공포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오프닝 신에 담아냈고, 역사상 최고의 호러 캐릭터인 마이클 마이어스를 탄생시켰다. 공간을 묘사하면서 조명 효과를 극대화해 빛과 어둠의 세계를 절묘하게 담아내며 시종일관 불길한 기운을 유지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여섯 발의 총성과 어디론가 사라진 마이클 마이어스, 존 카펜터가 작곡한 메인 테마곡이 흐르는 가운데, 집 안 곳곳에 드리운 어둠의 공간을 담은 편집은 예술적이다.
<링> 나카타 히데오, 1998
스즈키 코지 원작 소설의 장점을 취하면서 영화만의 비주얼을 위한 각색이 일궈낸 희대의 걸작 호러. <링>은 비디오를 보고 일주일 후에 죽는다는 저주에 얽힌 비밀을 밝혀가는 과정에서 많은 허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교과서적인 음향 효과 사용과 절제된 연출로 끈적하게 들러붙는 공포의 세계를 이루어냈다. <링>의 뛰어난 점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적극적인 상상력을 끌어낸다는 점이며, 미처 영상에 담지 못한 비어 있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웠을 때 궁극의 공포가 완성된다는 것을 확인케 한다는 점이다. 90년대를 대표하는 호러 영화 히트작답게 <링>은 시리즈로 발전했고, 동서양 모두 리메이크 작업에 착수했다. <링>의 신화는 21세기 들어 우려먹기의 희생양이 돼,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비웃음을 자아내는 비극적인 주인공이 됐다.
<괴물> 존 카펜터, 1982
존 W. 캠벨의 소설 <거기 누구냐?>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두 번째 영화. 1951년 하워드 혹스의 <괴물(The Thing From Another World)>이 오리지널이지만, 존 카펜터의 리메이크가 원작에서 묘사된 괴물에 더 근접했다. <괴물>은 남극 기지를 배경으로 신체 강탈 외계인에게 점령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흥미로운 것은 신체를 강탈당한 인간도 자신의 정체를 모른다는 점이다. 탈출구 없는 기지에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긴장과 공포로 몰아가는 박진감 넘치는 연출이 일품이다. 존 카펜터의 <괴물>이 SF 호러 걸작으로 칭송받는 또 다른 이유로는 특수 분장을 담당한 롭 보틴의 공이 크다. 그는 외계 괴물이 인간의 신체를 점령했을 때의 그로테스크한 외형을 모두 수작업으로 완성했다. 제멋대로 뒤틀리고 변형된 흉측한 괴물의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가 전달하는 차원 높은 공포를 자아냈고, 3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롭 보틴의 특수 분장은 굉장하다.
글 / 김종철(<익스트림 무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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