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디자이너 박지원의 사진전

2016.03.16

디자이너 박지원의 사진전

2002년 한국을 떠나 유목민 같은 삶을 살던 그녀가 13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디자이너 박지원도, 화려한 소셜라이트도 아닌 사진가의 모습으로. 그리고 두 아들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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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이 지금처럼 며느리들의 동네가 되기 전, 90년대 중·후반의 청담동엔 좀더 내밀한, 패션의 사랑방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대한민국 톱 남자 배우들이 무명 시절 아르바이트했다는 전설의 카페 하루에, 에디터와 사진가, 모델들이 모여드는 살롱 드 플로라가 있던 그 시절, 디자이너 박지원은 꽤 특별한 존재였다. 1세대 디자이너 김행자의 딸, 여배우 같은 외모와 도도한 카리스마, 이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파슨스에서 패션을 공부한 뒤 자신의 레이블 ‘지원 박’을 선보인 그녀는 다 가진 여자처럼 보였다. 또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덕분에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렇듯 당시 세련된 여자들은 그녀를 동경하거나 질투하면서 지원 박을 입었다. 보헤미안적이고 섹시하며 결코 페미니티를 잃지 않은 그녀의 옷을 입는 건 당시 서울 여자로 사는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까. 2002년, 결혼과 함께 지원 박 레이블과 레스토랑 파크 등 자신이 지닌 모든 걸 내려놓고 한국을 떠난 그녀가 오랜만에 서울로 돌아와 공식 일정을 가졌다. 루카와 잔, 두 아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수만 킬로미터를 기차에서 보낸 엄마의 시선이 담긴 사진전 ‘Road to You’를 위해서다.

VOGUE KOREA(이하 VK) 서울에서의 공식 일정은 정말 오랜만이죠?
PARK JI WON(이하 PJW) 레스토랑 파크를 운영할 때 한국에서 결혼했고 첫아이 루카가 태어나 남편을 따라 유럽으로 갔어요. 암스테르담, 파리, 하이델베르크 등 유럽 곳곳을 떠돌며 지내다 독일에 정착했는데, 그땐 이미 결혼 생활이 행복하지 않았죠. 여러 문제가 있었고, 결국 남편과 헤어진 뒤 4년 전부터 혼자 파리에 살게 됐죠.

VK 전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이야기라는 게 의외였어요.
PJW ‘Road to You’라는 전시 제목처럼 아이들에 대한 사랑, 끝없이 달려가는 모정이 이번 테마예요. 아이들은 독일에 살고 있기에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기차를 타죠. 한 번 가는 데 1만2,000km쯤 되는 여정이 4년째 이어지고 있죠. 이 전시는 그 여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구성한 나만의 이야기예요. 기차에서 보는 풍경은 늘 같지만 갈 때는 설렘, 돌아올 때는 슬픔이 담겨서인지 결과가 다르더군요. 찍은 사람의 감정이 고스란히 투영되는 게 사진인 것 같아요.

VK 디자이너 박지원만 아는 사람들에게 엄마 박지원은 조금 낯설기도 해요. 아이들이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준 거죠?
PJW 아주 어릴 때 첫 결혼에서 아들을 얻긴 했어요. 그때는 일을 너무 사랑했고, 나 자신이 중요했기에 느끼지 못한 모성을 이 두 아이를 통해 강하게 깨달았어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 사는 동안, 엄마는 아이와 떨어져 사는 비극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경제적으로든 혹은 다른 이유에서든 아이들과 함께 지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절망적인 엄마들을 도우며 살기로 했어요. 그래서 전시 수익금은 미혼모 단체에 전달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도울 생각이에요.

VK 루카와 잔 둘 다 매력적인 외모예요.
PJW 루카는 내 아들이지만 너무 예쁘게 잘생겼고,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아이예요. 어린데도 벌써 유치한 걸 싫어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예술적 기질이 나를 닮았죠. 둘째 잔은 스스로 엔도르핀이 마구 솟는 행복하고 기쁜 아이예요. 사람을 끌어당기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나누죠. 오늘 아침에 무슨 꿈을 꿨느냐고 물어보니 “I dream about you, mama!”라고 더없이 사랑스럽게 대답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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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K 이번 사진전이 아이들에겐 어떤 의미가 될까요?
PJW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함께 지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끝없는 미안함과 고통스러움이 있어요. 그런데 전시를 통해 나의 달란트로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그 미안함과 고통이 조금 희석되는 듯해요. 나중에 아이들이 내게 묻는다면, 답이 될 것 같아요. 너희를 향해 엄마는 이렇게 쉼 없이 달려갔다.

VK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선택했고, 이제 다시 사진을 찍고 있어요. 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했죠?
PJW 몇 년 전부터 순수예술에 대한 동경이 다시 싹트기 시작했어요. 어릴 때 혼자 조용히 그림 그리던 내성적인 소녀 박지원이 어디선가 튀어나온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풍경, 스틸라이프 등 주변의 무엇이든 촬영했어요. 유럽에선 뭘 찍든 아름다우니까요. 4년 전 사진가 김용호가 내 사진을 보고 굉장히 독특하다며 프린트해준 덕분에 본격적으로 작업하게 됐고,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이 덴스크 가구 숍에서 리빙과 함께 전시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와서 이번 전시가 기획된 거예요.

VK 사진전을 계속할 생각인가요?
PJW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벌거벗은 기분으로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드러내다 보니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렸어요. ‘너까지 사진을 찍어야 해?’라는 시선이 있을까봐 괜히 시작했나 하는 걱정도 있었죠. 그런데 전시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메시지에 공감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어요, 아이들을 향한 엄마의 시선, 내 감정이 이입된 풍경을 그들도 고스란히 느끼며 나와 함께 교감하더군요. 그래서 이 길을 망설임 없이 가야겠구나 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전시를 열 생각이에요.

VK 그동안 보헤미안 같은 삶을 살았는데, 당신의 미래의 모습이죠?
PJW 보헤미안적 삶은 내가 어디론가 떠나는 데 두려움이 없고, 충실히 본능에 따르는 여자라서 그래요. 이젠 아이들이 있는 곳이 고향입니다. 아이들이 유럽에 있으니 당분간 그 곳에서 사진 찍고 그림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볼 거예요. 언젠간 아이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오면 맛있게 팬케이크를 구워줄 거예요.

    에디터
    김지영
    포토그래퍼
    JO HUN 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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