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Actually, Finally, Seriously

2017.02.24

Actually, Finally, Seriously

불세출의 흥행작 〈도깨비〉가 증명한 건 한국 판타지 드라마의 가능성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진 이동욱, 이 ‘보통 이상의 존재’를 다시 얻게 되었다. 농담과 진담을 오가며 발견한 배우의 조건과 남자의 자격 그리고 두 가지 미덕이 만나 일군 이동욱식의 현재. 그러므로 이 인터뷰는 무용담이 아니라 오히려 모험담에 가깝다.

화이트 턱시도 재킷과 셔츠, 실크 와이드 팬츠는 서리얼벗나이스(Surreal But Nice), 스트랩 샌들은 발렌티노(Valentino).

화이트 턱시도 재킷과 셔츠, 실크 와이드 팬츠는 서리얼벗나이스(Surreal But Nice), 스트랩 샌들은 발렌티노(Valentino).

오늘 촬영 컷 중 무엇이 가장 맘에 드나?
동그란 안경 쓴 컷. 예민해 보이고 싶었다.(웃음)

<도깨비> 증후군에 시달리진 않나?
<도깨비>는 도깨비의 것이다.(웃음) 그리고 결과가 좋을수록 오히려 빨리 빠져나오는 게 맞다. 취해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 작가님 덕, 감독님 덕, 좋은 동료 배우 덕을 본 데다 운도 좀 따랐고, 내 노력은 한 요만큼?(웃음) 누구랄 것 없이 함께 만든 성공이다.

‘김은숙표 대사’의 말맛이야 정평이 나 있지만 입체적으로 살리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저승사자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
<달콤한 인생> 이후부터인가, 대본을 처음에 딱 읽을 때 ‘이 캐릭터는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구나’ 하는 나만의 가이드라인이 서는데, 이를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파고든다. 예를 들어 이번엔 저승사자가 일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임무를 수행할 때와 도깨비와 노닥거릴 때, 그 차이의 디테일을 꾸준히 만들어갔고, 그게 쌓여 캐릭터가 풍성해진 것 같다.

이번엔 악몽을 꾸진 않았고?
그러게, 별다른 꿈을 안 꿨다. 주인공이 아니라서.(웃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기 때문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부담이 아주 없진 않았다. 주인공이 아닌데 잘 안 보이면 어떡하지? 싶었다. 정말, 세상 쉬운 게 없다.(웃음)

랙블 앤 화이트 체크무늬 재킷은 우영미(Wooyoungmi).

랙블 앤 화이트 체크무늬 재킷은 우영미(Wooyoungmi).

캐스팅 비화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 캐릭터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만큼 고민도 컸겠구나 싶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 안에서 당연히 도깨비가 가장 멋있고, 가장 부각되겠지만 저승사자도 분명히 한 방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막연히 있었다. 어쨌든 시공간적으로 도깨비와 계속 얽힌 인물이니까. 드라마 제작사가 <풍선껌>을 함께 한 데라 미리 얘기를 들었는데, 듣자마자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해야겠다’ 했다. 공유 형이 확답을 내리기도, 완성된 시놉시스가 나오기도 전이다. 항간에는 작가님이 다른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내가 그 마음을 돌렸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기사가 나간 후 작가님이 전화를 주셨다. 마음 상하지 말라고, 당시 내 마음속에는 누구도 없었다고. 도깨비도 결정 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승사자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그리고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저승사자가 내가 그린 저승사자가 맞다”고.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 있는 배우에게는 주, 조연의 여부가 중요할 수 있다.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여서 좋은 작품 놓치는 배우들도 여럿 보았고.
솔직히 처음엔 그런 생각도 했다. 촬영장이 낯설 것 같다… 항상 가장 먼저 가고, 가장 늦게까지 찍고, 가장 많은 의견을 냈으니까. 그런데 막상 해보니 똑같았다. 그 신을 찍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그러다 보면 주, 조연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다. 제작 발표회에서 내가 먼저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다 말씀드린 건 어떤 선입견이나 시선을 먼저 털고 가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면 “이동욱, 전작 시청률 안 나와서 결국 조연이 됐네” 할 테니까. 그런 얘기, 마음 편하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경험이 내게는 매우 소중하다. 또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과감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로고를 프린트한 티셔츠는 구찌(Gucci).

로고를 프린트한 티셔츠는 구찌(Gucci).

어떤 일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밝히고 나면 나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죽일 놈의 책임감 때문에 결과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지기 마련인데, 괜찮던가?
그런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건 사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좀더 파고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본 리딩이 끝난 후 제작사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무슨 리딩을 이렇게 피 터지게 해? 왜 이렇게 열심히 해? 너답지 않아. 하지만 잘했어.”(웃음) 노력하고 준비한 게 괜찮았구나, 조금 안심이 됐다.

부담감을 덜어낸 채 신나게 놀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은 언제부터 들었나?
처음부터. 현장에서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어차피 결과는 (공유) 형이랑 감독님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야?(웃음)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촬영을 끝내고 작가님께 문자를 드렸다. ”작가님이 창조주이니, 창조주가 만든 세계관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즐거웠습니다.”

턱시도 재킷은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검정 로브는 로브로브 서울(Lovlov Seoul), 팬츠는 로켓런치(Rocket×Lunch).

턱시도 재킷은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검정 로브는 로브로브 서울(Lovlov Seoul), 팬츠는 로켓런치(Rocket×Lunch).

개인적으로는 생과 사, 전생과 환생, 운명과 필연 같은 드라마의 주제를 설명하기에 저승사자가 오히려 도깨비보다 더 명확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
애초에 도깨비는 모든 걸 기억하는 자이고, 저승사자는 모든 걸 잊은 자다. 도깨비는 불멸을 살고 있고, 저승사자는 삶을 끝낸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고. 전생에서부터 인연과 악연의 고리를 이어온 두 캐릭터가 대치를 이룬 덕분에 긴장감이 더 팽팽해진 것 같다. 더욱이 저승사자는 전생인 왕여부터 현생인 저승사자, 환생인 형사 이혁까지 다양한 모습을 거듭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1인 3역, 냉정한 저승이와 어리바리한 저승이까지 치면 1인 4역을 한 셈이니, 이 정도면 되지 않나 했다.(웃음)

아무리 좋은 시절에도 나름 힘든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데뷔 이후 내가 가장 많이 운 드라마다. 세어보니 16회 동안 22번인가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계속 울고 있었던 거다. 감정이나 심리를 끄집어내고 유지하는 데 계속 에너지를 써야 하니 힘들었다. 오죽하면 작가님께 여쭤봤을까. 이렇게 많이 우는 게 맞느냐고.(웃음) 그랬더니, 그러셨다. “나는 쓰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렇게 눈물 나는 게 맞는 것 같아 썼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으니 감독님과 상의해서 찍으면 될 것 같아.” 그런데 정말 그게 맞았다.

짙은 버건디 컬러의 터틀넥 니트는 J.W. 앤더슨(J.W. Anderson at Mue).

짙은 버건디 컬러의 터틀넥 니트는 J.W. 앤더슨(J.W. Anderson at Mue).

어떤 부분이 특히 슬프던가?
특히 모두의 기억이 다 지워진 상태에서 써니를 카페에서 1~2분 만나는 장면. “만나서 반가웠어요”라는 대사를 하느라 네다섯 번 NG가 났다. 말이 안 나왔다. 내가 죽은 은탁이에게 “지은탁, 본인 맞으시죠?” 묻는 장면에서는 리허설 때부터 울었다. “마지막 출근이야” 하면서 도깨비랑 대사 나누는 장면에서도 울컥했고.

난 기억을 찾은 저승사자가 “내가 그 반지를 그렇게 못되게 끼웠어” 하면서 울 때가 가장 슬펐다. 어쨌든 참 신기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나누고 있다는 게. 그런 점에서 <도깨비>의 성공은 안방극장에서 판타지 장르가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남을 거다. 시대를 ‘두 발짝’ 앞선 판타지 드라마 <아이언맨>까지 찍은 배우의 입장에서 판타지, 할 만한가?(웃음)
물론 세상엔 없는 얘기지만, 세상엔 없는 인물들이 현실에 접목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접점을 기막히게 찾으신 것 같다, 작가님이. 저승사자인데 전셋집에 살고, 드라이클리닝도 맡기고, 안 먹으면 배고프고, 먹고 나면 영수증 달라 하고, 사내 메일 안 본다고 혼나고.(웃음) 사실 도깨비와 순간 이동하고, 이런 거 찍을 땐 정말 웃기다. 그런데 그것도 하다 보면 적응이 된다. 어떻게 편집되고 어떻게 CG가 입혀지는지 알게 되면 더욱 능청스러워질 수 있다.

끝단에 올이 풀린 데님 후디와 팬츠는 마르케스 알메이다(Marques’Almeida at 10 Corso Como), 흰색 스니커즈는 버버리(Burberry).

끝단에 올이 풀린 데님 후디와 팬츠는 마르케스 알메이다(Marques’Almeida at 10 Corso Como), 흰색 스니커즈는 버버리(Burberry).

배우 입장에서는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사실 광고도 좋고, 오늘처럼 화보를 찍는 것도 좋지만 가장 근본적인 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기분이다. 내가 지금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차기작에 대한 거다. 다음 작품을 해야 하는데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 가장 좋다. 행복한 일이다. 이번 설 연휴 때도 벌써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이만큼 받았다. 아직 다 보지도 못했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어떤 장르의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면, 대중들은 나를 또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또 맨땅에 헤딩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웃음)

저승사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무엇이었나?
왕여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옷을 들고 헤매는 신을 칭찬해주셨을 때. 촬영 초반에 찍어둔 장면이다. 저승사자에 대한 감정이나 캐릭터가 구축되기 전이라 과연 내가 납득시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좋아해주시니, 그래도 나쁘지는 않게 했나 보다, 짜릿했다. 아주 기분 좋았다.

얇은 블랙 니트 톱은 랑방(Lanvin), 허리 부분을 접어 내릴 수 있는 와이드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얇은 블랙 니트 톱은 랑방(Lanvin), 허리 부분을 접어 내릴 수 있는 와이드 팬츠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어떤 성격이 오늘의 운명 같은 성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글쎄… 남들 앞에 서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성격?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는 직업으로 살면서 조금 의연할 수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겠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 직업은 평가받아야 하고, 선택받아야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는 딱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난 결과에 얽매이는 게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자연스레 깨달았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이동욱의 인생작’ 이런 기사를 봤다. 정작 본인은 어떤 작품이 인생작이라 생각하나?
<도깨비>를 제외하면 <달콤한 인생>. 물론 <마이걸>을 통해 처음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으면서 큰 사랑을 받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지만, 그땐 뭘 잘몰랐고 철이 없었다. <달콤한 인생> 때도 모르긴 매한가지였지만, 치가 떨릴 정도로 힘들고 치열하게 연기했다. 그 작품을 하고 나서 뭔가에 눈을 뜬 느낌이랄까?

긴 벨트가 달린 체크 프린트 와이드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스니커즈는 반스(Vans).

긴 벨트가 달린 체크 프린트 와이드 팬츠는 우영미(Wooyoungmi), 스니커즈는 반스(Vans).

2008년작이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법을 몰랐던 건 아닌가?
이대로 더 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 자신이 바싹 마른 나뭇잎 같았다. 톡 치면 부스러지거나 불꽃이 살짝만 튀어도 다 타버릴 것 같은. <달콤한 인생>은 내가 죽는걸로 시작해서 죽는 걸로 마무리되는데, 그걸 알면서도 미칠 것 같은 거다. 극 후반, 혜진이(오연수 분)와 이런저런 대사를 하는데, 정말 진심으로 죽기 싫었다. 안 죽으면 안 되나, 이렇게 이 여자를 놓아야 하나…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그걸 본 팬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내게는 애증의 캐릭터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말에는 동의하나?
그렇게 봐주시면 그런 거지. 어쨌든 전성기라니까 좋은 거고, 재발견이라니까 좋게 봐주신다는 거고. 다만 <도깨비> 전까지 했던 작품이나 캐릭터들을 부정하는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 늘 마찬가지고, 오히려 시청률이 덜 나오면 더 열심히 하니까. 나의 전작이 시청률이 안 나왔다는 이유로 좋지 않게 보시거나, 우습게 보시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평가든 다 좋다.

이런 열화와 같은 반응이 고맙고 행복한 한편 서글프다던 배우도 있었다. 꾸준히 내 일을 해왔을 뿐인데, 세상이 나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거니까.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찌할 수는 없다. 제2의 전성기와 지금 주시는 많은 사랑을 즐기면 될 것 같다. 언젠가는 또 부침의 시간이 오겠지. 잘 안 되는 작품이 있을 수도 있고. 그땐 또 제3의 전성기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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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라 부르지 않던 시절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건 뭔가?
심하게 똑같다. 내가 5년째 같은 헬스장을 다니고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다가 요즘 들어 운동할 때 자꾸만 몰래 사진을 찍으신다.(웃음) 새삼스럽게 말이다. 그런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 거다.

열아홉 살에 데뷔해 20대를 온전히 여기에서 보냈고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보낸 셈이다. 그동안 ‘변화’가 아니라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좀 동떨어지려 한다. 직업이 배우인 거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일찍부터 알았다. 적어도 난 이 세상의 상식에 맞춰 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싫은 건 나도 싫고, 좋은 건 나도 좋고, 분노할 때 같이 분노하고. 그렇게 상식적으로, 일상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게 편하기도 하고, 덕분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지 않나 싶다.

아이보리 수술 니트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흰색 반바지는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안경은 톰 브라운(Thom Browne at Nas World), 스니커즈는 반스(Vans).

아이보리 수술 니트는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 흰색 반바지는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안경은 톰 브라운(Thom Browne at Nas World), 스니커즈는 반스(Vans).

직업의식과 소명 의식 중 직업의식 쪽이라는 얘기인가?
난 여전히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과 협업을 잘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 생각한다. 직업의식이 있으면 서로 ‘이 신 너한테 중요하지? 내가 조금 낮춰줄게’ 이런 게 된다. 한 작품을 함께 한 배우들은 경쟁자라기보다는 동료이고, 나에겐 그게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태생적으로 얼굴 붉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쁘게 굴 건 뭐야, 잘 지내면 되지, 그렇게 된다. 현장에서 미묘하게 경쟁이 있을 때도 있다. ‘알게 모르게’라고 하지만 서로 알거든. 엄청 피곤하다. 사람 할 짓이 못 된다.

나만의 연기를 하고 싶다는 언젠가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나?
진행 중이다. 같은 캐릭터를 연속적으로 맡는 걸 무척 싫어하는데, 적어도 그것만큼은 피한 것 같다. <마이걸>을 찍고 나서 공포영화 <아랑>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다들 반대하며 말렸다. 현대물을 하면 훨씬 좋은 위치에 빠른 길로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이동욱이라는 우물 안의 물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다. 그래서 이 캐릭터로 이만큼 파서 쓰면 다른 캐릭터로 다시 채우길 반복하는 거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나?
예전에는. 푹 꺼진 눈도 그렇고, 턱이랑 광대도 좀 ‘얄쌍했으면’ 좋겠다 그랬다. 지금은 내가 게을렀던 거구나, 하면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퀭한 눈이 아니었다면, 저승사자의 눈물이 그렇게 돋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건 이번이라 특히 도움이 된 거다. 하지만 콤플렉스라는 거, 다 의미 없다. 지금 내가 수술을 할 것도 아니고 어쩌겠나. 아직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표정이 많다. 최대한 그걸 끌어내고 개발하는 데 내 얼굴을 쓰고 싶다.

스터드 블루종과 러플 칼라 화이트 셔츠는 버버리(Burberry),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쇼츠는 릭 오웬스(Rick Owens), 슬라이드는 구찌(Gucci).

스터드 블루종과 러플 칼라 화이트 셔츠는 버버리(Burberry),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쇼츠는 릭 오웬스(Rick Owens), 슬라이드는 구찌(Gucci).

감성의 8할을 만든 건 무엇인가?
감성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지점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책임감인 것 같다. 가족을 좀더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책임감. 8할까진 아니어도 한… 6할 4푼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웃음)

많이 고단했겠다.
그러다 지쳐서 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땐 가족들이 미워지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내 것을 많이 찾아가고 있다. 이를테면… 내 집이라든가,(웃음) 나만의 시간 그리고 내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예전엔 부모님 상황을 살피느라 온전히 내 뜻대로 하기가 어려웠는데, 3~4년 전부터는 달라졌다. 새로운 내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 즐겁고 만족스럽다.

현실주의자에 낙관주의자인가?
현실주의자는 맞는데, 낙관과 비관, 중간 어디쯤 있는 것 같다. 지금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게 두세 달 안에 흐릿해질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상황을 겪어도 봤고. 좀 좋게 생각하라고들 하는데, 나는 현실은 현실로 보는 게 맞다 생각한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일 수도 없다. 어디로 가자는 거지, 뭘 하자는거지? 그렇게 되어버리니까.

굵은 실로 짜인 독특한 꼬임의 화이트 니트 스웨터는 준지(Juun.J), 화이트 데님 팬츠는 디스퀘어드2(Dsquared2).

굵은 실로 짜인 독특한 꼬임의 화이트 니트 스웨터는 준지(Juun.J), 화이트 데님 팬츠는 디스퀘어드2(Dsquared2).

19년 째 산을 오르고 있다고 치자. 어느 정도 올라온 것 같나?
산 입구에서 자꾸 계절이 바뀐다. 점퍼를 벗었다 입었다, 아이젠을 뺐다 꼈다 하는 느낌?(웃음) (아직 첫 번째 휴게소까지도 못 갔다고?) 그럼 첫 번째 휴게소에서 사계절을 다섯 번 겪은 느낌이라고 해두자.(웃음) 정상이 어딘지,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타이밍만 좀 맞았으면 좋겠다. 봄 점퍼 입었는데 갑자기 눈보라 치진 않길, 아이젠 꼈는데 잔디 돋아 있진 않길. 그럼 등산이 수월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예전엔 팬카페에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문장을 썼다. 새롭게 추가하고 싶은 문장이 있나?
연예인이 밥 먹여줘?(웃음) 내가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는 걸 오래된 팬들은 다 안다. 중학교 때 팬카페를 만든 친구들이 이젠 엄마로 살고 있다. 그들의 성장을 보면서 나도 저만큼은 컸겠구나 한다. 나를 좋아해주시는 건 좋은데, 그것 때문에 또 다른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다. 어쨌든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 보시고 즐거워해주시면 나는 만족하니까. 그래서 이번에 6년 만에 팬미팅을 하게 됐다. 부담 갖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신나게 놀아볼 작정이다.

이동욱에 대해 세상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면?
나 욕 잘한다. 알아두시길.(웃음)

    에디터
    이지아(패션), 윤혜정(피처)
    포토그래퍼
    KIM YEONG JUN
    필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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