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ually, Finally, Seriously
불세출의 흥행작 〈도깨비〉가 증명한 건 한국 판타지 드라마의 가능성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투철한 직업 정신을 가진 이동욱, 이 ‘보통 이상의 존재’를 다시 얻게 되었다. 농담과 진담을 오가며 발견한 배우의 조건과 남자의 자격 그리고 두 가지 미덕이 만나 일군 이동욱식의 현재. 그러므로 이 인터뷰는 무용담이 아니라 오히려 모험담에 가깝다.
오늘 촬영 컷 중 무엇이 가장 맘에 드나?
동그란 안경 쓴 컷. 예민해 보이고 싶었다.(웃음)
<도깨비> 증후군에 시달리진 않나?
<도깨비>는 도깨비의 것이다.(웃음) 그리고 결과가 좋을수록 오히려 빨리 빠져나오는 게 맞다. 취해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니까. 작가님 덕, 감독님 덕, 좋은 동료 배우 덕을 본 데다 운도 좀 따랐고, 내 노력은 한 요만큼?(웃음) 누구랄 것 없이 함께 만든 성공이다.
‘김은숙표 대사’의 말맛이야 정평이 나 있지만 입체적으로 살리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저승사자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
<달콤한 인생> 이후부터인가, 대본을 처음에 딱 읽을 때 ‘이 캐릭터는 이렇게 접근하면 되겠구나’ 하는 나만의 가이드라인이 서는데, 이를 바탕으로 세부적으로 파고든다. 예를 들어 이번엔 저승사자가 일을 할 때와 하지 않을 때, 임무를 수행할 때와 도깨비와 노닥거릴 때, 그 차이의 디테일을 꾸준히 만들어갔고, 그게 쌓여 캐릭터가 풍성해진 것 같다.
이번엔 악몽을 꾸진 않았고?
그러게, 별다른 꿈을 안 꿨다. 주인공이 아니라서.(웃음)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기 때문이라고 얘기는 하지만 부담이 아주 없진 않았다. 주인공이 아닌데 잘 안 보이면 어떡하지? 싶었다. 정말, 세상 쉬운 게 없다.(웃음)
캐스팅 비화가 회자되기도 했다. 이 캐릭터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만큼 고민도 컸겠구나 싶었다.
<도깨비>라는 드라마 안에서 당연히 도깨비가 가장 멋있고, 가장 부각되겠지만 저승사자도 분명히 한 방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막연히 있었다. 어쨌든 시공간적으로 도깨비와 계속 얽힌 인물이니까. 드라마 제작사가 <풍선껌>을 함께 한 데라 미리 얘기를 들었는데, 듣자마자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해야겠다’ 했다. 공유 형이 확답을 내리기도, 완성된 시놉시스가 나오기도 전이다. 항간에는 작가님이 다른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내가 그 마음을 돌렸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이 아니다. 기사가 나간 후 작가님이 전화를 주셨다. 마음 상하지 말라고, 당시 내 마음속에는 누구도 없었다고. 도깨비도 결정 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승사자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그리고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저승사자가 내가 그린 저승사자가 맞다”고.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 있는 배우에게는 주, 조연의 여부가 중요할 수 있다. 거기에 지나치게 얽매여서 좋은 작품 놓치는 배우들도 여럿 보았고.
솔직히 처음엔 그런 생각도 했다. 촬영장이 낯설 것 같다… 항상 가장 먼저 가고, 가장 늦게까지 찍고, 가장 많은 의견을 냈으니까. 그런데 막상 해보니 똑같았다. 그 신을 찍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그러다 보면 주, 조연의 구분이 의미가 없어진다. 제작 발표회에서 내가 먼저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다 말씀드린 건 어떤 선입견이나 시선을 먼저 털고 가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면 “이동욱, 전작 시청률 안 나와서 결국 조연이 됐네” 할 테니까. 그런 얘기, 마음 편하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이번 경험이 내게는 매우 소중하다. 또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과감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에 대해 강한 의지를 밝히고 나면 나머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죽일 놈의 책임감 때문에 결과에 대한 부담이 더 커지기 마련인데, 괜찮던가?
그런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건 사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좀더 파고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대본 리딩이 끝난 후 제작사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무슨 리딩을 이렇게 피 터지게 해? 왜 이렇게 열심히 해? 너답지 않아. 하지만 잘했어.”(웃음) 노력하고 준비한 게 괜찮았구나, 조금 안심이 됐다.
부담감을 덜어낸 채 신나게 놀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은 언제부터 들었나?
처음부터. 현장에서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어차피 결과는 (공유) 형이랑 감독님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야?(웃음) 나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촬영을 끝내고 작가님께 문자를 드렸다. ”작가님이 창조주이니, 창조주가 만든 세계관 안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생과 사, 전생과 환생, 운명과 필연 같은 드라마의 주제를 설명하기에 저승사자가 오히려 도깨비보다 더 명확한 캐릭터였던 것 같다.
애초에 도깨비는 모든 걸 기억하는 자이고, 저승사자는 모든 걸 잊은 자다. 도깨비는 불멸을 살고 있고, 저승사자는 삶을 끝낸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고. 전생에서부터 인연과 악연의 고리를 이어온 두 캐릭터가 대치를 이룬 덕분에 긴장감이 더 팽팽해진 것 같다. 더욱이 저승사자는 전생인 왕여부터 현생인 저승사자, 환생인 형사 이혁까지 다양한 모습을 거듭한다.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을 1인 3역, 냉정한 저승이와 어리바리한 저승이까지 치면 1인 4역을 한 셈이니, 이 정도면 되지 않나 했다.(웃음)
아무리 좋은 시절에도 나름 힘든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데뷔 이후 내가 가장 많이 운 드라마다. 세어보니 16회 동안 22번인가 그랬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계속 울고 있었던 거다. 감정이나 심리를 끄집어내고 유지하는 데 계속 에너지를 써야 하니 힘들었다. 오죽하면 작가님께 여쭤봤을까. 이렇게 많이 우는 게 맞느냐고.(웃음) 그랬더니, 그러셨다. “나는 쓰면서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렇게 눈물 나는 게 맞는 것 같아 썼는데,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아닐 수 있으니 감독님과 상의해서 찍으면 될 것 같아.” 그런데 정말 그게 맞았다.
어떤 부분이 특히 슬프던가?
특히 모두의 기억이 다 지워진 상태에서 써니를 카페에서 1~2분 만나는 장면. “만나서 반가웠어요”라는 대사를 하느라 네다섯 번 NG가 났다. 말이 안 나왔다. 내가 죽은 은탁이에게 “지은탁, 본인 맞으시죠?” 묻는 장면에서는 리허설 때부터 울었다. “마지막 출근이야” 하면서 도깨비랑 대사 나누는 장면에서도 울컥했고.
난 기억을 찾은 저승사자가 “내가 그 반지를 그렇게 못되게 끼웠어” 하면서 울 때가 가장 슬펐다. 어쨌든 참 신기하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이렇게 천연덕스럽게 나누고 있다는 게. 그런 점에서 <도깨비>의 성공은 안방극장에서 판타지 장르가 성공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로 남을 거다. 시대를 ‘두 발짝’ 앞선 판타지 드라마 <아이언맨>까지 찍은 배우의 입장에서 판타지, 할 만한가?(웃음)
물론 세상엔 없는 얘기지만, 세상엔 없는 인물들이 현실에 접목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접점을 기막히게 찾으신 것 같다, 작가님이. 저승사자인데 전셋집에 살고, 드라이클리닝도 맡기고, 안 먹으면 배고프고, 먹고 나면 영수증 달라 하고, 사내 메일 안 본다고 혼나고.(웃음) 사실 도깨비와 순간 이동하고, 이런 거 찍을 땐 정말 웃기다. 그런데 그것도 하다 보면 적응이 된다. 어떻게 편집되고 어떻게 CG가 입혀지는지 알게 되면 더욱 능청스러워질 수 있다.
배우 입장에서는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
사실 광고도 좋고, 오늘처럼 화보를 찍는 것도 좋지만 가장 근본적인 건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는다는 기분이다. 내가 지금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차기작에 대한 거다. 다음 작품을 해야 하는데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 가장 좋다. 행복한 일이다. 이번 설 연휴 때도 벌써 시나리오와 시놉시스를 이만큼 받았다. 아직 다 보지도 못했지만… 영화든 드라마든 어떤 장르의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면, 대중들은 나를 또 어떻게 봐줄지 궁금하다. 또 맨땅에 헤딩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웃음)
저승사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무엇이었나?
왕여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옷을 들고 헤매는 신을 칭찬해주셨을 때. 촬영 초반에 찍어둔 장면이다. 저승사자에 대한 감정이나 캐릭터가 구축되기 전이라 과연 내가 납득시킬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좋아해주시니, 그래도 나쁘지는 않게 했나 보다, 짜릿했다. 아주 기분 좋았다.
어떤 성격이 오늘의 운명 같은 성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나?
글쎄… 남들 앞에 서는 걸 부담스러워하지 않는 성격?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는 직업으로 살면서 조금 의연할 수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겠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이 직업은 평가받아야 하고, 선택받아야 무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는 딱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난 결과에 얽매이는 게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는 것도 자연스레 깨달았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이동욱의 인생작’ 이런 기사를 봤다. 정작 본인은 어떤 작품이 인생작이라 생각하나?
<도깨비>를 제외하면 <달콤한 인생>. 물론 <마이걸>을 통해 처음 미니시리즈 주인공을 맡으면서 큰 사랑을 받았고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었지만, 그땐 뭘 잘몰랐고 철이 없었다. <달콤한 인생> 때도 모르긴 매한가지였지만, 치가 떨릴 정도로 힘들고 치열하게 연기했다. 그 작품을 하고 나서 뭔가에 눈을 뜬 느낌이랄까?
2008년작이니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법을 몰랐던 건 아닌가?
이대로 더 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 자신이 바싹 마른 나뭇잎 같았다. 톡 치면 부스러지거나 불꽃이 살짝만 튀어도 다 타버릴 것 같은. <달콤한 인생>은 내가 죽는걸로 시작해서 죽는 걸로 마무리되는데, 그걸 알면서도 미칠 것 같은 거다. 극 후반, 혜진이(오연수 분)와 이런저런 대사를 하는데, 정말 진심으로 죽기 싫었다. 안 죽으면 안 되나, 이렇게 이 여자를 놓아야 하나…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다. 그걸 본 팬들도 많이 힘들어했다. 내게는 애증의 캐릭터다.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말에는 동의하나?
그렇게 봐주시면 그런 거지. 어쨌든 전성기라니까 좋은 거고, 재발견이라니까 좋게 봐주신다는 거고. 다만 <도깨비> 전까지 했던 작품이나 캐릭터들을 부정하는 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사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 늘 마찬가지고, 오히려 시청률이 덜 나오면 더 열심히 하니까. 나의 전작이 시청률이 안 나왔다는 이유로 좋지 않게 보시거나, 우습게 보시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평가든 다 좋다.
이런 열화와 같은 반응이 고맙고 행복한 한편 서글프다던 배우도 있었다. 꾸준히 내 일을 해왔을 뿐인데, 세상이 나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 거니까.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어찌할 수는 없다. 제2의 전성기와 지금 주시는 많은 사랑을 즐기면 될 것 같다. 언젠가는 또 부침의 시간이 오겠지. 잘 안 되는 작품이 있을 수도 있고. 그땐 또 제3의 전성기를 위해 열심히 달리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전성기라 부르지 않던 시절에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는 건 뭔가?
심하게 똑같다. 내가 5년째 같은 헬스장을 다니고 있는데, 아무도 거들떠도 안 보다가 요즘 들어 운동할 때 자꾸만 몰래 사진을 찍으신다.(웃음) 새삼스럽게 말이다. 그런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 거다.
열아홉 살에 데뷔해 20대를 온전히 여기에서 보냈고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보낸 셈이다. 그동안 ‘변화’가 아니라 ‘진화’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좀 동떨어지려 한다. 직업이 배우인 거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일찍부터 알았다. 적어도 난 이 세상의 상식에 맞춰 사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들이 싫은 건 나도 싫고, 좋은 건 나도 좋고, 분노할 때 같이 분노하고. 그렇게 상식적으로, 일상적으로 살려고 한다. 그게 편하기도 하고, 덕분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지 않나 싶다.
직업의식과 소명 의식 중 직업의식 쪽이라는 얘기인가?
난 여전히 동료 배우들, 스태프들과 협업을 잘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 생각한다. 직업의식이 있으면 서로 ‘이 신 너한테 중요하지? 내가 조금 낮춰줄게’ 이런 게 된다. 한 작품을 함께 한 배우들은 경쟁자라기보다는 동료이고, 나에겐 그게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태생적으로 얼굴 붉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쁘게 굴 건 뭐야, 잘 지내면 되지, 그렇게 된다. 현장에서 미묘하게 경쟁이 있을 때도 있다. ‘알게 모르게’라고 하지만 서로 알거든. 엄청 피곤하다. 사람 할 짓이 못 된다.
나만의 연기를 하고 싶다는 언젠가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뤄진 것 같나?
진행 중이다. 같은 캐릭터를 연속적으로 맡는 걸 무척 싫어하는데, 적어도 그것만큼은 피한 것 같다. <마이걸>을 찍고 나서 공포영화 <아랑>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다들 반대하며 말렸다. 현대물을 하면 훨씬 좋은 위치에 빠른 길로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게 싫었다. 이동욱이라는 우물 안의 물은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다. 그래서 이 캐릭터로 이만큼 파서 쓰면 다른 캐릭터로 다시 채우길 반복하는 거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나?
예전에는. 푹 꺼진 눈도 그렇고, 턱이랑 광대도 좀 ‘얄쌍했으면’ 좋겠다 그랬다. 지금은 내가 게을렀던 거구나, 하면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퀭한 눈이 아니었다면, 저승사자의 눈물이 그렇게 돋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건 이번이라 특히 도움이 된 거다. 하지만 콤플렉스라는 거, 다 의미 없다. 지금 내가 수술을 할 것도 아니고 어쩌겠나. 아직 내가 표현하지 못하는 표정이 많다. 최대한 그걸 끌어내고 개발하는 데 내 얼굴을 쓰고 싶다.
감성의 8할을 만든 건 무엇인가?
감성까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지점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책임감인 것 같다. 가족을 좀더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는 책임감. 8할까진 아니어도 한… 6할 4푼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웃음)
많이 고단했겠다.
그러다 지쳐서 내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땐 가족들이 미워지기도 하고. 그런데 지금은 내 것을 많이 찾아가고 있다. 이를테면… 내 집이라든가,(웃음) 나만의 시간 그리고 내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예전엔 부모님 상황을 살피느라 온전히 내 뜻대로 하기가 어려웠는데, 3~4년 전부터는 달라졌다. 새로운 내 인생이 시작된 것 같아 즐겁고 만족스럽다.
현실주의자에 낙관주의자인가?
현실주의자는 맞는데, 낙관과 비관, 중간 어디쯤 있는 것 같다. 지금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게 두세 달 안에 흐릿해질 거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상황을 겪어도 봤고. 좀 좋게 생각하라고들 하는데, 나는 현실은 현실로 보는 게 맞다 생각한다. 그렇다고 마냥 비관적일 수도 없다. 어디로 가자는 거지, 뭘 하자는거지? 그렇게 되어버리니까.
19년 째 산을 오르고 있다고 치자. 어느 정도 올라온 것 같나?
산 입구에서 자꾸 계절이 바뀐다. 점퍼를 벗었다 입었다, 아이젠을 뺐다 꼈다 하는 느낌?(웃음) (아직 첫 번째 휴게소까지도 못 갔다고?) 그럼 첫 번째 휴게소에서 사계절을 다섯 번 겪은 느낌이라고 해두자.(웃음) 정상이 어딘지,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타이밍만 좀 맞았으면 좋겠다. 봄 점퍼 입었는데 갑자기 눈보라 치진 않길, 아이젠 꼈는데 잔디 돋아 있진 않길. 그럼 등산이 수월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예전엔 팬카페에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라는 문장을 썼다. 새롭게 추가하고 싶은 문장이 있나?
연예인이 밥 먹여줘?(웃음) 내가 그리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는 걸 오래된 팬들은 다 안다. 중학교 때 팬카페를 만든 친구들이 이젠 엄마로 살고 있다. 그들의 성장을 보면서 나도 저만큼은 컸겠구나 한다. 나를 좋아해주시는 건 좋은데, 그것 때문에 또 다른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다. 어쨌든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거니까, 보시고 즐거워해주시면 나는 만족하니까. 그래서 이번에 6년 만에 팬미팅을 하게 됐다. 부담 갖지 않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신나게 놀아볼 작정이다.
이동욱에 대해 세상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면?
나 욕 잘한다. 알아두시길.(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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