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셀럽파이브
Yes! We’re Celebrities!
“자력으로 셀럽이 된 분들을 <보그>에 모시는 건 처음이네요. 방송 경력 100년! 평균연령 38.6세! 셀프 셀럽 시대를 연 프로젝트 그룹 ‘셀럽파이브’를 소개합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읽을 이야기는 여성 코미디언 다섯 명의 성공 스토리다. 꼭 ‘성공’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 주어지거나 편승하지 않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들의 힘으로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덕질 DNA를 타고난 김신영이 오사카 도미오카고교 댄스부(약칭 TDC)의 동영상을 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DC는 일본 고교 댄스부 선수권 대회 2년 연속 우승에 빛나는 댄스부로, 독창적 컨셉 아래 한 치의 오차 없는 군무를 선보이기로 유명하다. 김신영은 이들 춤을 보고 충격을 받은 한편 감동을 받는다. TDC 인원은 90명. 매년 오디션을 통해 선수권 대회에 나갈 멤버 40명을 선발한다. 오디션에 뽑힌 학생들의 연습량은 엄청나다. 연습 도중 탈진하는 학생도 속출한다. 김신영이 받은 감정의 정체는 열정에 대한 탄복이었다. “너무 열심히 하더라고요. 나는 그만큼 노력한 적이 언제였나 싶었죠. 나의 도전 의식을 일깨워줬어요.” 김신영은 이 춤과 노래로 뮤직비디오가 찍고 싶어졌고 무작정 도미오카고교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틀 만에 영상의 주인공들을 만나 묻는다. 나는 한국의 코미디언(김신영은 자신을 코미디언으로 소개하곤 한다. 코미디언은 희극배우이고, 개그우먼은 한 갈래다)인데 너희 춤을 패러디해도 되겠느냐고. 흔쾌히 오케이를 받은 김신영은 송은이에게 전화를 건다.
10년 만에 하고 싶은 일이 처음 생겼다고. 이렇게 해보고 싶은 일은 ‘행님아’ 이후 처음인 것 같다고. 좋아하는 후배들과 같이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두 팔 걷고 나서는 송은이는 영상을 보고 “안 될 것 같은데?”라고 말했지만 어느새 연습실에서 김신영과 동작을 맞추고 있었다. 이어서 신봉선, 안영미, 김영희가 투입되었고 방송 경력 100년, 평균연령 38.6세 5인조 그룹 멤버가 확정되었다. 동네 친구들의 작당 모의. 안영미로부터 당시 얘길 들어보자. “춤추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댄스 학원에 다닐까도 생각하던 차에 신영이가 하자고 하니까 사실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연습하면서 자꾸 몸이랑 머리가 따로 노니까 짜증이 났어요. 처음엔 행복했다가 오기가 생겼고 그다음엔 연습을 너무 ‘가열차게’ 시키니까 짜증이 몰려왔죠. 나는 안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주장의 눈에는 아닌 거죠. 계속 ‘다시’ 하라고 하니까 신영이가 꼴도 보기 싫어졌어요.(웃음) 중간중간 대화도 많이 나눴거든요. <무한걸스> 때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눠서 사실 힐링도 됐어요. 그래서 일부러 대화를 길게 유도하기도 했고요. 하하.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신영이는 ‘짤’ 없었습니다. 덕분에 늘 YG 연습생들보다도 더 늦게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하루 8시간씩 3개월이었다. 송은이는 연습하는 날마다 카메라를 직접 설치했고 과정을 촬영했다. 고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연습실이 없어 이곳저곳 옮겨 다녔다. 새벽 1~2시까지 연습하고 5시에 개인 스케줄을 소화하러 갔다. “저도 체력 하면 안 빠지거든요. 운동도 꾸준히 하는 스타일이고 등산, 걷기 다 좋아해요. 그런데 이 춤은… 아니, 춤보다 격한 표현이 맞아요. 치어리딩이나 비보이에 가까워요. 숨 안 쉬고 전력 질주해서 뛰는 느낌이니까. 세 번 연달아 추면 정말 토 나와요. 그리고 이마를 보면 핏줄이 서 있어요. 핏줄은 거짓말을 안 해요. 살이 빠졌냐고요? 아니요. 등산 갔다 오면 막걸리 마시잖아요. 연습 끝나고 집에 가서 마시는 술 한잔이 꿀맛이었어요.”(신봉선) “완전 몸치거든요. 생전 커버댄스에 대해 하나도 모르다가 춤을 추려니까 몸이 난리가 났어요. 나는 내 능력의 200%를 쏟고 있는데 안 하고 있다는 소릴 들으니 너무 억울하고… 나는 너무 멋있게 뻗었는데 왜 대충 하냐는 말 들었을 때, 와… 정말 울기 직전까지 연습했어요. 저도 연습 끝나고 너무 먹었어요. 당이 너무 떨어져서 사람이 죽을 것 같았으니까. 이상하게 회가 엄청 당기더라고요?”(김영희) 재미있고 좋은데 힘들어 미칠 것 같은 시간이었다. 3개월 동안 코미디언들 사이에서는 ‘송은이 선배가 녹음하다가 졸았대’ 같은 소문이 구전설화처럼 돌았다.
주장 김신영의 추진력은 엄청났다. 독재자였다. 추진력 하면 빠지지 않던 사람들이 김신영 앞에서는 모두 게으른 사람이 됐다. “김신영 선배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약간 회의감도 왔어요. 정말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는데 이 선배 옆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구나.”(김영희) 사실 누구나 송은이가 리더를 맡았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저는 무조건 더 열정 있는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장 많이 알고, 가장 절실한 사람으로 김신영이 적합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좀 후회했죠. 너무 큰 권력을 준 게 아닌가. 절대 반지를 끼워줬구나, 빼앗아와야 하는데.(웃음)”(송은이) 주장 김신영의 변을 들어보자. “한번 배웠는데 끝을 봐야 하잖아요. 사실 우리 모두 근성이 있어요. 그동안 코미디언들의 패러디가 우스꽝스러웠다면, 우리는 정말 제대로 해서 감동을 주자 싶었죠. 하나부터 열까지 안무 수정을 엄청 많이 했어요. 악에 받쳐서 끝까지 한 것 같아요.” 이들의 무대가 공개된 후 일본 고교생들의 춤 카피 그 이상은 아니지 않느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처음부터 목표는 탄복할 정도로 싱크로율 높은 커버댄스였으니 애당초 논란거리도 아니었던 셈이다. 20초 까지 가는 데 2주가 걸렸을 정도로 진도는 더뎠다. 크리스마스에도 모였고 심심할때도 모였고 스케줄을 쪼개서도 모였다. 신봉선 어머니는 “넌 ‘만날’ 어딜 가냐”고 물었다.
그 사이 김신영은 직캠으로 찍은 영상을 바탕으로 의상 원단, 단추까지 꼼꼼하게 골랐고, 음악 방송 PD에게 출연시켜달라고 영업을 했으며, 신동에게 뮤직비디오 제작을 의뢰했다. 부탁이라는 걸 해본 적 없는 김신영이었기에 지인들은 흔쾌히 작업을 도왔다. 행동대장 김신영이 던지면, 기획 제작 전문가 송은이가 받아서 현실화했다. 가사 번안 작업 역시 멤버들의 몫이었다. 세상에 하고 싶은 얘기를 담아 배틀을 벌였지만 다들 지친 틈을 타서 김신영의 가사가 채택되었다. 많은 천재 작곡가들처럼 김신영은 새벽 4시, 5분 만에 가사를 써 내려갔다. 뉴욕 셀럽의 삶이 눈앞에 펼쳐짐과 동시에 멤버들의 현재의 삶이 디테일하게 녹아 있는 수작. 입에 착착 감기는 단어들. 셀럽 같긴 한데 셀럽을 꿈꾸는 자들의 노래는 그렇게 세상에 나오게 됐다.
멤버들은 처음으로 안무가 완벽하게 다 맞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와, 다 맞았다. 집에 가자!!”그 짜릿하던 순간 김신영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아, 그런데 기억해야 하니까 다시 한번 해보자.”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갈 시간이었다. 물론 모든 과정은 송은이의 웹 예능 <판벌려>를 통해 공개되고 있었다. <쇼! 챔피언> 무대에 올랐고, <엠카운트다운> 무대에 올랐으며, 뮤직비디오는 100만 뷰를 기록했다. ‘셀럽’이 되어 홍대 거리를 거닐었으며, 사인 공세도 받았다. 구멍이었던 김영희가 음악 프로그램에서 받은 감동은 남달랐다. “음악 프로그램은 심장이 좀 다르게 뛰더라고요. 너무 신선하고 짜릿했어요. 짧고 굵게 무대를 보여주고 딱 내려오며 잔상을 남기는 느낌. 스스로 뒤태가 멋있는 느낌.” 셀럽파이브는 (살기 위해) 라이브는커녕 립싱크도 거부했다. ‘노 마이크, 노 슈즈!’ 어떤 댓글도 반발하지 않았다.
대중의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음악 방송에 출연했던 날 ‘셀럽파이브’는 종일 실검 순위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에어로빅 학원은 셀럽파이브 댄스 클래스를 추가했고, ‘셀럽이 되고 싶어’는 홈쇼핑 단골송이 됐다. 수많은 학생들이 오리엔테이션, 수학여행 등 장기 자랑 무대를 위해 본격 연습에 들어갔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아기부터 치어리더까지 SNS에는 셀럽파이브 춤을 다시 커버한 영상으로 넘쳐났다. 현직 아이돌 입에서 셀럽파이브 활동 시기를 피하겠다는 농담까지 나올 무렵, 셀럽파이브는 <무한도전>에 출연했다. 입담 좋은 코미디언들의 유머가 팽팽하게 오고 갈 때만 해도 익숙한 웃음이 터져나왔으나, 셀럽파이브가 무대를 선보이고, ‘2배속 댄스’ ‘안대 하고 춤추기‘ 미션 등을 해내자 웃음의 농도가 달라졌다. 저렇게 파워 있고 절제 있는 군무를 선보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너무 웃긴데, 감동적이었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던 감정의 결합. 마침 H.O.T. 춤을 선보인 <무한도전> 멤버들의 춤이 형편없었다. 메인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듯하던 여자 코미디언들이 직접 만든 콘텐츠로 온라인상에서 호응을 얻어 공중파 메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진출한 사건.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로 기록될 일이었다.
여성 코미디언 다섯 명에게 셀럽파이브는 어떤 기회였을까. 김신영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전, 안영미는 마음이 허했고, 신봉선은 무료했고, 김영희는 침체기에 빠져 있었다. 안영미는 말했다. “고파 있었어요. 너무 설 곳이 없었어요. ‘코빅’과 ‘개콘’ 외에는 나갈 곳이 없는 거예요. 그나마 ‘SNL’도 내렸으니까요. 이제 갈 곳이 없는건가?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까지 왔나? 그래서 유튜브에 미미채널도 만들었어요.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안 찾아주지? 생각했어요. 부르는 곳이 있기도 했지만 제가 싫었어요. 이제 나의 사생활과 지인과 가족을 팔지 않으면 봐주지 않는구나 싶어서 가슴이 아팠어요. 전 콩트를 너무 사랑하는데 그런 판은 만들어지지 않으니까요. 채널은 너무 많지만 포맷이 다 똑같고 그 한계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추진력 있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생각만 많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추진력 있는 사람들이 으샤으샤하니까 저는 땡큐였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민폐 안 되게 열심히 연습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김영희를 제외하면 네 명 모두 <무한걸스> 멤버였다. 한 시절을 함께 풍미한 동료였다. 신봉선의 말을 들어보자. “적지 않은 나이지만, 많지도 않은 나이잖아요. 모든 걸 다 가지진 못했어도 특별하게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잖아요. 옛날만큼 열정은 없어도 또 다른 모양의 중년의 열정을 맛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사실 저희 모두 서서히 여자 예능인들이 빠지는 걸 피부로 느꼈어요. 왜 안 무서웠겠어요. 그런데 어쩔 수가 없잖아요. 물건으로 비유하자면, 물건도 유행이 있는데 사람이라고 유행이 없을까요. 고정 출연은커녕 게스트로 나갈 데도 없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반가운 기회였죠.” 공개방송 개그를 누구보다 사랑하던 김영희도 마찬가지였다. “침체기 아닌 침체기였어요. 이제 공중파 개그 자체가 너무 힘들고 저조차도 다른 캐릭터를 하기에 벅찬 상황인데, 새로운 도전으로 수면 위에 오른다는 게 되게 짜릿하고 고마웠죠. 물에 빠진 애 구해주고, 그늘에 있는 애 당겨주는 느낌이었어요. 모든 과정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 같지만 김신영 선배님의 제안이 있어서 한 일이고 되게 고맙죠.” 다섯 명의 공통점을 ‘근성 있는 애’로 꼽듯, ‘여자라서 이런 건 좀 어렵지?’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통념 같은 걸 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남들이 ‘되겠어?’ 하고 그만두는 것에 도전해보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근성이었다.
요즘 코미디언들 사이에서 송은이는 ‘자력갱생의 아이콘’이자 ‘대세’이자 ‘잠을 자지않을 것 같은 존재’이다. 시절을 탓하기보다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간 사람. 콘텐츠 회사를 설립하고 기획자, 제작자로 나서서 그녀가 세상에 내놓은 <비밀보장> <쇼핑왕 누이> <영수증> <판벌려> 같은 콘텐츠는 지난 3년 동안 5,000만 국민의 배꼽을 빼놨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재미있는 콘텐츠는 어떻게 해서든 통한다는 사실의 증명. 과거 ‘말 잘하던 여자 MC’는 ‘이제 말 잘하고 동료의 장점을 끌어내며 시대를 콘텐츠로 만들 줄 아는 전방위 플레이어’가 됐다. 송은이로부터 과거를 들어보자. “데뷔하고 유재석 씨랑 이휘재 씨랑 셋이 프로그램 진행을 많이 했어요. 재석이가 국민 MC 되기 훨씬 전이죠. 그때는 주말 프로 섭외 오는 게 당연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잘난 맛에 프로그램을 골라내기 시작하더라고요. 프로그램의 재미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유명해질까?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타율도 떨어지고 저 스스로도 방송이 일로만 느껴졌어요. 슬럼프가 좀 일찍 왔죠. 그러다가 <진실게임>에 들어갔는데 일반인들이 잘 할 수 있게 토스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하면서 보람도 알았고요. <무한걸스> 하며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뭐지?’ ‘몇 살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원초적인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어요.
데뷔 초에는 저도 혼자서 일등하고 싶었죠. 그런 과거는 다 지나갔고, 어떤 위치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가를 생각해봤을 때 골을 넣기보다 어시스트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안 맞는 옷을 입으려니까 힘들었는데 놓고 나니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내가 돋보이고 주목받는 프로가 아니어도 그 안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을 오래 하자로 목표가 바뀌었어요.”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실업자처럼 백수가 됐다. 남성 버라이어티 바람이 불었고 <무한걸스>가 폐지됐고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은 성격상 맞지 않았다. 몇 번 거절했더니 더 이상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8개월 정도 의도치않게 쉬었어요. 타의에 의해 자숙하게 된 거예요. 타숙.(웃음) 그즈음에 엑셀과 편집을 배웠어요. 무대에 대한 갈증이 생겨 직접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당시 팟캐스트를 많이 들었는데 본격적으로 예능인들이 나와서 하는 게 없더라고요. 숙이도 프로그램에서 잘리고 그러면서 약간 화가 났죠. 그만두기 전에 우리끼리 뭘 해보자! 그렇게 자연스럽게 오버랩된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송은이의 첫 작업은 양희은 선생님 환갑 영상이었다. “환갑 되시던 해에 여행 다녀오신 영상을 40분짜리 아침 방송처럼 만들어서 선물로 드렸거든요. 원래 친한 PD한테 맡길 생각이었는데 제 손으로 편집을 배워서 음악 넣고 자막 넣고 하다가 1인 미디어를 시작한 거죠.”
제작 경험은 재미를 더해줬다. “사실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은 플레이어 같긴 해요. 그런데 제작을 경험하고 나니 시야가 넓어져서 플레이어를 더 잘할 수 있게 되었달까. <무한걸스> 즈음에 편집을 배웠는데 녹화장에 와서 장난처럼 ‘야, 물리지 마, 편집 안 돼’ 했는데 편집을 해보니까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가 갔어요. 제작진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고 다음 단계 일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우리가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배워가는 단계라서 제작이 재미있어요. 플레이어로서 화면에 나올 때는 어느 정도 나오겠다 예상되는데 제작 일은 정말 모르겠어요.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순수하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아주 어린 막내 작가까지 팀원들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티가 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것이 재미있고 만족감이 큰 것 같아요.”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상황에 대한 대처는 ‘빠른 취사선택’이다. 유행어나 캐릭터 없이도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호기심’이다. 다시 한번 송은이의 말을 들어보자. “새로운 시도나 배움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요. 제 스스로 평가하기에는 폭이 넓어졌다는 것. 아주 저급한 것부터 고급스러운 것까지 간이라도 보고 구경이라도 했던 호기심이 결국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송은이는 그야말로 요즘 코미디언들의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고 있다. 입버릇처럼 나이를 걱정하던 후배들은 “송은이 선배 나이까지 몇 년 남았지?” 계산하며 나이는 숫자일 뿐임을 아로새긴다. “불러주면 가고 안 불러주면 쉰다”는 “안 불러줘도 이대로 쉬진 않는다”로 바뀌었다. ‘타숙’ 중이던 코미디언 중 송은이로부터 자극 받아 1인 채널을 만들고, 극장에 공연을 올린 이들도 여럿이다. 신봉선도 그중 한 명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고 멋있었어요. 그동안 실패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릴 때는 가진 게 없으니까 뭐든 다 하잖아요. 어느 정도 후배도 생기면 오히려 넘어질까 두려워서 발조차 떼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려요. 넘어지면 일어나면 되고, 다음엔 더 빨리 일어나겠지 생각하게 됐어요. 전 재산을 올인하지 않는 한, 도전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겼어요. 저도 김대희 선배님한테 연락해서 <대화가 the 필요해>라는 가족극을 만들었어요. ‘개콘’ 복귀하면서 스톱된 상태긴 하지만요. 이제 언제든지 공연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어느 구름에 비 내릴지 모르잖아요. 열심히 즐겁게 살다 보면 내 머리 위에 있는 구름에서 비가 내릴 수도 있겠죠. 즐겁게 사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후배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판벌려’ 요정 송은이가 어떤 판이든 깔아준다면 김영희는 웃음기 뺀 판을 벌여보고도 싶다. “막 웃기려는 판도 좋은데 되게 진지한 판에 서보고 싶어요. 진지하게 눈물을 쏙 뺄 수 있는 상황이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일본 개그맨들은 멜로드라마에도 나오는데 보는 사람들이 펑펑 울거든요.”
제작자로서 송은이는 셀럽파이브 활동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좋아서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 하죠. 저희는 두 가지 다 했어요. 좋아하는 거 열심히 했으니까요. 항상 어떻게 확장될지 모르고 시작하는 것 같아요. 팟캐스트도 그랬어요. 누가 재미있을 것 같다고 얘기해주는 것보다 고집스럽게 하는 사람이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을 하거든요. 그러면 보는 분들이 같은 느낌으로 공감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연습했느냐 하고 과정을 높이 사줄 때 정말 기뻤어요. 옛날엔 결과물만 봤다면 이제는 과정도 봐주시니까. 우리 스스로 자신감을 찾고, 보시는 분들이 과정까지 즐기시게 된 게 의의입니다. ‘재주 많은 동생들이 역시 감을 잃지 않고 있었구나’ 안심도 되었어요.” 안영미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개그우먼들은 외모 비하 정도 해야 웃기는 애들이지, 뭘로 웃기겠어’ 이런 인식이 있었거든요. 그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뿌듯해요. ‘자기들끼리 노는 거 보니까 재밌네’ 그걸 보여준 거예요. 그래서 좀 남다른 것 같아요.”
셀럽파이브 활동으로 공중파 방송에 연연하지 않게 된 것도 변화다. “처음에 저는 색깔이 없어서 문제였고 그다음에는 19금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부담스러웠다면 이제는 완전 백지예요. 나에 대해서 더 보여줄 게 많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됐어요. ‘분장실의 강선생’ ‘김꽃두레’ 때는 평상시에도 그래야 할 것 같았고 늘 남의 인생을 살았어요. 이제는 오롯이 저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요. 지금 라디오를 하고 있는데 무슨 얘기든 들어줄 수 있는 편안하게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연 무대도 많이 만들 생각이에요. ‘안영미 쇼’를 만들어서 좀더 가까이에서 다 보여주고 싶어요.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웃음) “
여자 코미디언 다섯 명은 셀럽파이브 활동으로 동지를 얻었다. ‘친한 사이’에서 ‘같은 길을 걸어가며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는 동료’로 관계가 이동했다. 안명미에게 셀럽파이브란, 다시 찾은 친자매다. 다섯이 모이면 <무한걸스> 하면서도 하지 못한 사적인 얘기, 개그우먼으로서 애환 모두 화제에 오른다. “확실히 예전보다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 와중에도 웃긴 말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한 명이 얘기를 시작하면 떨리기 시작해요. 무슨 얘기를 할지 생각하느라고.(웃음) 다른 사람 얘기를 안 들었어요. 어떻게든 서로 웃기려고만 그랬는데 이제는 나이도 먹고 경력도 되고 하니까 그냥 서로서로 들어주게 되더라고요.”
항상 모든 걸 혼자 짊어지려 했던 김영희는 “내가 100을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따라가는 삶도 가능하구나”를 알게 됐다. 김영희에게 송은이는 ‘집 같은 따뜻한 존재’이고, 김신영에게는 하고 싶은 걸 현실로 만들어주는 ‘문방구 아저씨’다. 김신영은 말했다. “혼자 활동할 때보다 얘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서 좋아요. 머릿속에 갇혀 있던 생각을 현실화해주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든든해요. 지난번에 송은이 선배가 ‘니가 하고 싶은 게 뭐니?’ 물어봤을 때 막 던졌어요. 선배가 ‘그거 다 하고 살자’고 얘기했을 때 너무 든든했어요.” 신봉선은 안영미가 변했다고 증언했다. “자기 물건도 안 챙기고 다니던 사람이었어요. 매니저가 데리러 오면 슬리퍼 끌고 나오는 스타일. 그랬던 영미 선배가 멤버들 힘들까 봐 홍삼을 가져오더라니까요. ”
셀럽이라면 <보그> 화보쯤은 찍어줘야 한다. 얼마 전에는 셀럽만 찍는다는 뷰티 제품 광고도 찍었다. 제주도에서, 대구에서 공연 요청이 쇄도한다. 주장 김신영이 다음 목표로 꼽는 ‘엘렌 쇼 출연’은 농담이 아니다. “한국 셀럽 말고 외국 셀럽이 되고 싶어요. 풀장 있는 데서 멋들어지게 살아보고 싶고. 외국 코미디언들처럼요.” 김신영 개인의 꿈도 스케일이 다르다. “제 목표는 우리나라 톱 MC가 아니에요. 세계적으로 가봤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너무 좁아요. 코미디언이 할 수 있는 걸 다 보여줄 수 있는 전용관을 만들고 ‘김신영 쇼’를 할 겁니다. 시카고에는 블루맨 그룹 전용관이 있잖아요. 방송 트렌드 같은 시류에 흔들릴 필요가 없어요. 사실 다 지하철이거든요. 호선은 바뀌어도 목적지는 똑같아요. 갈아타는 구간이 ‘트렌드’라고 생각해요.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잘못 타더라도 갈아타면 되잖아요. 많이들 물어봐요. 불안하지 않냐고. 천천히 가면 되죠. 1~2년 하고 말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셀럽파이브는 제 인생의 아주 첫 단계일 거예요. 티저쯤.” 셀럽파이브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이돌 그룹이라든가, 댄스 팀이라든가, 개그 쇼가 아니다. 좋아서 하는 일로 순수한 몰입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 내놓은 세상에 없던 창작물이다. 배신 당하지 않길 바라는 가치인 노력의 힘을 믿은 대가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니 진정 즐겁고, 보는 사람도 즐겁고, 세상이 즐거워졌다. 거창한 목적은 없었다. 세상에 없던 일은 원래 그렇게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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