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 펑크
더 이상의 핑크는 필요 없다. 인간 핑크가 된 블랙핑크.
블랙핑크로 팀 이름을 결정하기 전, ‘핑크 펑크’도 후보였다. <보그>가 화보 컨셉을 ‘핑크로 죽여버리는 핑크 펑크’로 잡으면서 관계자에게 들은 얘기다. 블랙과 핑크, 펑크와 핑크, 상반된 단어의 조합을 팀명으로 고심한 것만 봐도 그룹의 지향점이 보인다. 핑크만 존재하는 수동적 여성상을 탈피하고 블랙과 펑크의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그룹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다. ‘히스토리’가 있을 것, 능력은 완벽할 것, 자기 목소리를 낼 것. 점점 더 대중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스타를 사랑할 것이다. 음악 평론가 차우진은 이렇게 말한다. “블랙핑크를 보고 있으면 한국이 아닌 세계라는 국적을 가진 거 같아요. YG의 음악 프로듀싱과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멤버)의 매력을 합친 그룹이죠. 지금도 충분히 쿨한 그룹이지만 앞으로 ‘자기 것’을 더 보여준다면 K-팝의 미래가 될 거라 생각해요.” 블랙핑크는 2016년 8월 8일 ‘휘파람’과 ‘붐바야’가 수록된 으로 데뷔해 이제 3년 차 그룹이지만, 벌써 자기 색이 확고하며 앞으로 더 진해질 것이다.
블랙핑크 역시 활동하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새로운 도전” “나의 생각을 구현”하는 것이라 답한다. “첫 미니 앨범 은 이전에는 해보지 않은 강렬한 컨셉이에요. 블랙핑크는 계속 다른 걸 시도하는 그룹이에요.”(리사) “이번 앨범에선 특히 의견을 많이 냈어요. 우리 색깔을 더 넣고 싶었거든요. 표지 색깔만 해도 얼마나 고민했나 몰라요. 멤버 모두 원하는바가 확실하고 신념이 뚜렷해요. 흔들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향해 돌진할 자신이 있죠.”(지수) “‘뚜두뚜두’ 뮤직비디오에서 제가 무지갯빛 드레스에 왕관을 쓰고 등장해요.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헤드피스를 골랐죠.”(제니) 이 뮤직비디오는 체스판의 왕좌에 오른 제니, 쏟아지는 불꽃을 우산 하나로 막아내는 지수처럼 독립적이고 강한 여성을 상징하는 장치로 채워졌다.
블랙핑크는 자신들의 취향과 바람을 앨범에 담아낸다. “컴백하면 걱정보다 설렘이 앞서요. 우리의 시도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고 두근거리죠.”(지수) “가수는 여러 경험을 하잖아요. 노래 녹음을 하고, 무대에 서고, 오늘처럼 화보 촬영을 하죠. 모두 결국은 우리를 드러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의 ‘크리에이티브’가 구현되는 순간이 즐거워요. 그래서 이런 직업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 정도죠.”(로제) 아티스트로서 가진 꿈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것, 보여주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최대로 표현하고 싶어요. 물론 어렵지만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리라 믿어요. 그래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요. 스케줄이 워낙 바빠서 가끔 제가 뭘 좋아했는지 까먹거든요. 또 연습생 때 그랬듯 꾸준히 차트를 확인하고, 국내외 뮤지션의 멋진 퍼포먼스를 찾아봐요. 영감을 얻는 것도 중요해요.”(로제) “내가 뭘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찾는 중이에요. 특정한 것을 꼽기에는 아직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아요.”(제니)
블랙핑크는 먼 미래보다 자신과 현재에 집중한다. “목표를 세우는 편이 아니에요. 주변에서도 막상 목표를 이루면 허무하다고 해요. 미래를 염두에 두기 전에 현재 최선을 다하죠. 제가 어릴 적부터 잘 휘둘리지 않고 강하게 살아온 편이어서 그런가 봐요. 멤버들 역시 7년 정도 같이 살아서인지 비슷하게 생각해요.”(지수)
블랙핑크는 7년째 합숙을 하고 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1년에 며칠뿐인 휴가를 함께 보냈다. “연습생 때 가끔 쉬는 날이 생기면 넷이 놀이공원이나 수족관에 갔어요. 가족을 보러 갈 시간도 부족한데 말이죠.”(리사)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변하지 않았어요. 주변 환경이 많이 달라졌죠. 여전히 서로를 믿고 좋아하죠. 요즘 제 ‘소확행’이 음식이라 멤버들이 맛집을 찾아 데려다줘요.”(로제)
요즘엔 각자 취미 생활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제니는 촬영일에도 카메라를 들고 왔다. 거의 매일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고, 현상하거나 스캔 받아 휴대폰에 저장한다. “리사는 프로페셔널하게 찍는 편이고, 저는 똑딱이 카메라로 순간을 잡아요. 피사체가 다양하지만 주로 하늘을 담아요. 매일 바뀌는 구름이 예뻐서요. 언젠가 이렇게 찍은 사진을 하나로 모으고 싶어요.”(제니) 제니에게 또 빼놓을 수 없는 분야는 패션이다. 어떤 패션이든 고급스럽게 소화해 ‘인간 명품(보통 그날 입은 특정 브랜드명이 붙는다)’이라 불린다. 제니는 잡지와 SNS, 영화를 통해 패션에 대한 정보를 계속 수집한다.
“패션에 대해 차곡차곡 쌓아오지 못해서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려는 거예요. 해외 문화도 배우고 싶어요. 문화마다 의상 스타일이 달라지니까요. 최소한 영화라도 많이 보려고 해요. 일주일에 4~5편은 봐요.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는 <제5원소>예요. 디자이너(장 폴 고티에)의 의상 한 벌 한 벌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단순히 감탄에서 끝내지 않고 블랙핑크에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게 일상이에요.”(제니) 제니의 패션에 대한 관심은 어머니의 영향이다. “예쁜 옷을 보시면 제 것도 사다 주세요. 3년 전만 해도 엄마가 옷을 주면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거절했어요. 이젠 나서서 엄마 옷장을 뒤지죠. 얼마 전엔 엄마가 젊은 시절에 입은 샤넬 재킷을 가져왔죠.”(제니)
지수는 아빠의 영향으로 연기와 영화에 관심을 가졌다. 연극부 활동을하고 대학도 연극영화과 진학을 꿈꿨을 정도다. “예를 들어 영화 <클래식>은 아빠가 좋아하는 작품이라 어릴 적부터 자주 보며 손예진님에게 매료됐죠. 그 후에도 손예진님은 맡으시는 역할마다 변신하시더라고요. 비슷한 이유로 나탈리 포트만도 좋아하죠. 멋진 분야라고 생각하지만 현재는 블랙핑크에 집중하고 싶어요.”(지수) 지수는 인물의 드라마를 담은 소설도 좋아한다. “제가 신념이 강한 편이라 누군가의 철학을 강요하는 책보다는 소설을 읽어요. 특히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해요. 그의 작품은 잠자는 감각을 깨우는 거같아요. 보통 여러 차례 반복해서 읽어요. 그때마다 다른 느낌을 받는 게 재미있거든요. 곧 <해변의 카프카>를 다시 펼치려고요. 팬이 그려준 제 얼굴을 보고 그림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색을 쓰는 방법도 궁금해서 기초부터 전문적으로 배우면 어떨까 해요.”(지수)
본래 미술에 관심이 많은 로제는 아트워크에 빠져 LP를 모으기 시작했다. “요새는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는 경우가 많으니까 앨범 화보를 눈여겨 보기 힘들잖아요. LP는 커버 그림부터 음악이 시작되죠. 최근엔 샘 스미스의 LP를 온라인으로 구매했어요. LP는 골라 들을 수 없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곡을 들어야 하잖아요. 아티스트가 의도한 대로 흐름이 이어지죠. 언젠간 저도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지수, 제니, 로제, 리사는 취향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이것이 해를 거듭해 쌓이면서 어떤 결과를 낼지 궁금하다. 더 강한 블랙핑크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요즘 아이돌, 특히 여성 그룹에 부당한 제재가 가해지는 시대다. 예나 지금이나 걸 그룹의 컴백은 프로듀싱 능력이나 음악적 발전보다 ‘다이어트 짤’과 성형 의혹부터 대두된다. 여성의 권리를 언급하는 책을 읽었다고(그것이 메가 베스트셀러임에도), 몰래카메라를 근절하자는 청원에 ‘좋아요’를 눌렀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는 사건도 있었다. 시대는 역행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더 힘들어졌다. 이처럼 왜곡된 평가가 두렵지 않느냐고 묻자 블랙핑크는 담담하게 얘기한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 일을 하기에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저 우리를 기다리고 좋아해주시는 분들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저희가 신경 쓸 부분은 그거죠.”(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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