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디다 회퍼가 포착한 깨달음의 공간
칸디다 회퍼는 인간의 문화 활동이 만들어낸 공간을 통해 ‘영원성’의 의미를 다시 쓴다. 아무것도 연출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우연에 맡기지 않음으로써, 침묵의 공간과 삶의 흔적을 엄정하게 포착한다. 회퍼의 작업과 일상을 지배하는이 견고한 질서를, 쾰른의 세 공간에서 발견했다.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가 설립한 재단 건물의 마당에는 그라츠 출신의 예술가 메를린 바우어의 텍스트 조각 작품 ‘Liebe Deine Stadt(Love Your City)’가 선언문처럼 걸려 있다. 쾰른의 예술적 영광은 수십 년 전 현대음악가 마우리치오 카겔과 존 케이지가 전위적 음악을, 조나스 메커스와 앤디 워홀이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소개한 아방가르드한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현대사진의 세계를 구축해온 예술가, 칸디다 회퍼의 ‘현재’다. ‘그녀의 쾰른’에는 쇼룸, 재단, 집까지 삶을 구축하는 세 공간이 존재한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오가며 우리는 로덴키르헨 지역 명소인 ‘아우라’에서 슈니첼을 먹었고, 쾰른의 봄을 관통하는 라인 강변을 따라 걸었다.
“세 공간을 모두 아껴요. 쇼룸은 100년 정도 된 완벽한 독일식의 역사적 건물이고, 재단은 원형에 가까운 레이아웃으로 아래층 도서관부터 공원이 내다보이는 위층 방까지 각양각색의 느낌을 갖고 있어요. 라인강을 마주한 집에서는 집 앞 나무를 보며 변화하는 계절을 알아차릴 수 있죠. 창가에 서서 늘 생각해요. 언제 또 강이 범람할까?(웃음) 봄에는 호우가 내리고 12월 말에는 강이 요동치곤 하거든요. 난 물을 내다보는 걸 좋아해요. 그저 마음이 정처 없이 표류하도록 내버려둡니다.”
좀처럼 공개된 적 없는 칸디다 회퍼의 집 앞에는 목련 꽃잎이 눈처럼 내린 정원이 있다. 고전 미학과 근대의 소재, 필로티 구조를 접목한 건축에 미닫이문, 반투명 유리 장식, 목재 기둥 등 동양의 젠 스타일이 가미된 거실은 통창 너머 강 풍경과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볕 덕분에 고유성을 획득한다. 흰 벽에 걸린, ‘APR. 1. 2005’라 적힌 온 카와라(On Kawara)의 작품은 회퍼의 사적 세계에 완벽한 방점을 찍는다. 엄격함과 정확함이 편안함을 준다는 그녀 작품의 진리는 공간에도 적용된다. 2층 통로에는 “각각에 추억이 있는 친구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 모든 경험은 각종 소품으로 장식한 잠수함 내부 같은 1층 현관에서 좁은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강이 범람하면 이곳도 잠겨 진짜 ‘잠수함’이 된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칸디다 회퍼의 사적 세계가 공적 세계를 만나는 순간은 역사가 되었다. 2012년에 열린 전은 뒤셀도르프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초기 사진, 작가 스스로 ‘나의 시작’이라 일컬은 작품을 모은 자리였는데, 도록에도 이 거실과 비슷한 공간, 같은 벽난로가 등장한다. 이자 겐츠켄, 바르벨 실러, 마이클 오피츠, 벤자민 부클로 등 지금은 선배가 된 이들이 벽난로 주변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을 담은 1973년 사진은 곧 예술적 동지애의 기록이다. “당시엔 부모님 집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늘 열려 있었어요. 우리는 모든 형태의 예술뿐 아니라 심리학이나 민속지학 같은 다양한 전문 분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죠.”
친구들과 교류하며 예술과 인문의 경계를 허무는 ‘무브먼트’를 만들어낸 당시 칸디다 회퍼조차 이후 평생 현대 예술사진의 새 영역이자 지표인 ‘베허학파 1세대’로 불리게 될 거라 상상하지 못했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3년간 영화를 공부한 회퍼는 베른트 베허가 교수로 임명된 1976년부터 사진을 본격 전공한다.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는 20세기 초 산업구조의 상징인 건축물을 객관적으로 응시한 흑백사진으로 건축학적 형태를 통한 일종의 ‘유형학’을 만들어낸 주인공. 회퍼는 안드레아 거스키, 악셀 휘테, 토마스 스트루스, 토마스 루프 등 다른 제자들과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베허의 이론을 실천에 옮겼다.
큐레이터 군다 뤼켄이 쓴 글 ‘칸디다 회퍼: 사진적인 것 그리고 일상’을 읽다가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1979년 <독일에서: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측면들>전에 베허학파 사진가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큐레이터가 같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이다. “사진작가로서 향후 작업에 바라는 게 있다면? 당신의 작업은 어떤 옛날 사진가에게 영향을 받았나?” 의미 있는 답을 내놓으려 구구절절 애쓴 이들과 달리 회퍼의 답은 장소와 연도로만 명시하는 작품 제목만큼 간결했다. “사진적인 것 그리고 일상.” 회퍼가 평생 포착해온 도서관, 미술관, 사무실, 서점, 공연장 등의 공적 공간은 태생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내포하기에, ‘사진적인 것’이 예술적 태도를 의미한다면 ‘일상’은 뷰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다음 인터뷰 답변이 시사하는 명료함은 삶 전체를 관통하며 엄정함으로 진화했고, 이는 지금도 작업과 일상을 지배하는 그녀의 철칙으로 작동한다.
우리가 방문한 세 공간은 당신의 작업 세계가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점에서 2012년에 열린 뒤셀도르프 전시가 떠오릅니다.
그 전시는 과거에 대한 일종의 회귀였을 뿐 아니라 나의 이미지 작업 방식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요. 내가 다시금 덜 형식적인 방식으로 사진을 찍도록 격려했죠. 핸드헬드 카메라는 날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고, 나의 시각적 세계의 디테일, 구조, 형태, 색등에 더 직접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하죠. 체계적인 접근을 필요로 하는 공간에서는 대형 카메라로 작업하지만, 이런 작업을 하면서 다시 자유를 만끽합니다. 하지만 이 자유는 사진이 찍히는 방식에만 적용됩니다. 이미지로 만드는 일은 대형 작업과 마찬가지의 노력과 인내를 요구하죠. 하지만 난 이 단계를 짐으로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1970년대 후반, 쾰른의 터키 이민자들을 촬영한 이유가 이들이 새 문화에 적응해가며 자신들의 공간(집, 식당, 가게, 만남의 장소)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탐구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도 당신의 공간에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공간은 역사와 철학, 일상과 일이 어우러진 결정체 같은 존재니까요. 당신의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나요?
맞아요. 연관성이 있다는 데 동의해요. ‘Turks in Germany’ 프로젝트도 독일에 사는 터키 사람들의 생활이 가져온 변화와 환경의 중요성을 지켜보며 충동적으로 시작했어요. 궁금했거든요. 또한 제가 사람들의 공간을 방해하는 걸 편하게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감하면서, 내 방식대로 공간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개인 공간도 친구들에게 받은 작은 기념품과 최소한의 방해로 드문드문 꾸며진 게 좋습니다.
특히 집에 걸려 있던 개념미술가 온 카와라 작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스로 정한 규칙과 규율에 충실하다는 것, 침묵의 힘을 믿는다는 것 등은 당신과 그가 닮은 점이기도 하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그의 날짜 기록 회화를 소장한 이들을 방문, 작품이 위치한 사적인 공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책으로 냈어요. 어떤 계기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까?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창설자인 카스퍼 쾨니히와 온 카와라의 제안으로 시작했어요. 온 카와라는 자신의 이미지가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인상을 받기를 원했어요. 그가 그 작업을 내게 요청했다는 게 정말 영광이었죠. 한 인간으로서 그를 좋아해왔고, 그의 가족을 만나는 영광과 기쁨을 누렸어요. 2015년 구겐하임 전시는 늘 내 마음에 남을 거예요.
당신의 작업 세계는 베허학파에서 탄생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변치않은 채 진실로 적용되는 배움이 있습니까?
사실 난 베허학파이기 전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터키인들을 찍은 사진을 프로젝션으로 보여주면서 베허의 사진 수업에 지원한 거죠. 베허의 수업 스타일은 매우 비지시적이었어요. 언제나 조언을 위해 곁에 있었지만, 절대 강요한 적 없었어요. 내게 남은 건 끈기와 (매우 중요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듭 인식하는 과정입니다.
이번 서울 전시가 지난 세 차례에 걸친 개인전 혹은 다른 전시와 어떤 점이 다를 거라 예상합니까?
첫 전시에서 한국 관객의 존재, 내 작업에 대한 관심과 지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넓은 범위에서 이 전시를 바라보고, 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의 사진 외에 관객들에 대한 오마주로 추상적인 근작 몇 점을 포함했습니다. ‘여기’ ‘내가’ ‘있다’는 것. 나는 그저 이미지를 만들려고 합니다. 이미지를 만드는 최상의 매체로 공교롭게 사진을 발견했어요. 그것이 당신을 초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적’인 요소로 끓어넘치는 삼청동과 당신의 사진이 만나는 순간, 전시 환경이 당신의 작품과 만날 때 빚어지는 화학작용에도 관심이 있습니까? 네, 가까운 환경과 먼 환경은 공간을 다루는 이미지에 아주 중요한 이야기니까요. 관객들이 외부의 환경을 마음속에 두고 전시 공간 안으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그 공간은 책의 종이, 바인딩, 표지 같은 존재가 됩니다.
사진 작업을 시작하게 한 근원적인 이미지가 있다면요?
사실 기억나지 않아요. 언론 매체를 위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다게레오타입(은판 사진법)으로 실용 작업을 했으며, 작가의 견습 생활도 했습니다.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영화 수업을 먼저 들은 건 당시 사진 수업이 없었기 때문이었죠. 아니, 내가 계속하고 싶다고 느낀 것으로 거의 미끄러져 들어갔다는 말이 맞겠군요.
쾰른의 고요한 주택가에 위치한 칸디다 회퍼의 쇼룸은 작업의 구상부터 진열까지, 설계부터 보관까지 모든 작업 과정이 진행되는 곳이다. 그러나 건물 안에 있다 보면 늘 머무는 칸디다 회퍼든, 남편이자 동료, 비평가인 헤르베르트 부르케르트(Herbert Burkert)든, 이따금씩 발걸음 하는 우리 같은 이방인이든, 사람의 존재 자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헤르초그 & 드 뫼롱이 함부르크의 코코아 창고를 리모델링한 엘프필하모니의 모형 사진이 공간의 밀도를 높이고, 에인트호번 반 아베 뮤지엄과 오스트리아 아드몬트 수도원 도서관 작품의 존재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이번 개인전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부‘ 재의 건축’ 안 부‘ 재의 건축’을 실감하게 되는 셈이다. 쇼룸의 작품 중 사람이 등장한 작품은 터키 프로젝트가 유일했다. 타인의 영역을 침범, 사적인 모습을 담아내는 것에 근원적인 불편함을 느낀 그녀는 어떤 환경과 구성 요소의 관계, 사회적 교류의 증거인 공적 공간의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쇼룸의 작품들은 그 인과관계의 결과다. “시간에 따라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무엇이 놓이느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런 사실이 어떤 연관인지” 보여주는 과정에서 사람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익명의 인류들이 조용하고, 순간적이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흔적을 각인한다. 그런 면에서 회퍼의 키워드인 ‘부재의 건축’은 인간 대신 빛과 공기, 역사와 정신의 흔적으로 가득 차 있다는 의미의 역설이다. “부재는 가장 강력한 현존의 상태”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명언을 인용하며 존재와 부재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청했더니, 회퍼가 말했다. “조이스까지 끌어들일 필요도 없죠.(웃음) 파티를 생각해보세요. 어느 자리에나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잖아요.”
낮게 걸린 칸디다 회퍼의 큰 작품 속 공간은 바로 눈앞에서 제2의 현실로 펼쳐진다. 예컨대 세상에서 가장 큰 바로크 시대의 수도원 도서관의 화려한 풍경, 즉 대칭, 형태, 표면 같은 구성과 배열, 빛의 상태에 압도되어 말문이 막힌다. 시선이 소실점으로 수렴되는 동시에 평면적이기에, 그 간극에서 ‘플랫랜드’의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 발생한다. 그러나 회퍼는 역사적 건축물의 미학을 무조건 예찬하는 건축 사진가가 아니며, 건축적 질서를 고찰하되 그 이상의 존재감에 몰두한다. 그녀는 디테일에 공평한 긴장감을 부여하고, 인공조명을 쓰지 않음으로써 공간의 본질이 과대평가될 여지를 차단한다. 회퍼의 사진에서 관조적인 성향을 발견한다면, 그건 공간의 물리적 특성일뿐만 아니라 작가의 접근 방식이 야기한 것이다. 이로써 존재도 모른 채 무의미하게 지나쳤을 공간을 ‘느린 시선’으로 인지하며 미묘한 삶의 흔적을 찾을 여유는 물론 감상과 비평의 경험을, 그녀의 작품은 모두 허락한다.
존 버거의 저서 <사진의 이해>에서 사실이나 정보를 초월하는 회퍼의 작업을 은유하는 문장을 찾았다. “사진에 담긴 어떤 순간은 보는 이가 확장된 시간의 지속 안에서 그것을 읽어낼 때만 의미를 얻는다. 어떤 사진이 의미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그 사진의 과거와 미래를 덧붙이는 것이다.” 회퍼의 확고한 스타일로 구축된 역사적 건축물 사진이나, 이번 전시에서 선보일 현대적 공간이나 모두 ‘아무것도 연출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우연에 맡긴 적없는’ 역설적 상황이 도출한 결과물이다. 당연하게도 회퍼의 사진은 마음을다해 보는 이에게만 공간의 의미와 비밀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Enlightenment’입니다. 도서관, 극장, 미술관 등은 지식과 진보의 기념물이자 깨달음의 공간이죠. 작업을 관통하는 테마이기도 한데, 애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프라이버시, 사람, 공간에 얽힌 내 경험이 나를 공공장소에 주목하게 했는데 그중 미술관이 가장 접근이 용이한 공공장소였어요. 도서관은 특유의 다양한 구조와 색깔 때문에 시각적으로 매혹적이죠.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간의 목적뿐만 아니라 그 너머에 여러 겹의 역사와 용도, 그리고 어떻게 깨우칠 것인지, 깨우침에 어떻게 자부심을 가질지에 대한 사유가 공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각각의 공간이 지닌 특징이 어떻게 그것의 사회적 역할과 역사적 맥락과 섞이는지에 대한 다채로운 초상이에요.
<Spaces of Enlightenment>라는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Enlightenment’라는 단어와 어울립니다. 그런 점에서 인류 역사의 성장과 발전의 ‘초상화’이기도 합니다.
맞아요, 그렇지만 상호적인 과정이에요. 공간이 우리를 형성할 뿐 아니라 우리 역시 공간을 변화시키죠. 그리고 이는 겹겹의 시간을 흔적으로 남깁니다. 사진은 관찰해야 하는 매체라 느릿한 시선(Slow Gaze)을 겹겹의 시간과 용도에 불러들여요. 시간과 역사를 거쳐 남은 문화 활동과 충돌하는 변화를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읽기는 늘 읽기였지만, 컴퓨터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공간이 다른 종류의 읽기와 연구를 불러들여요. 제 사진은 보존의 껍데기 속 변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롤랑 바르트는 사진을 “존재의 부재를 증명한다”고 정의했어요. 사람이 부재한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더 드러냅니다.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중재하고자 합니까?
바르트의 말은 사진 혹은 이미지에는 실제 존재하는 것 너머로 현실을 확장시키려는 과잉의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마음의 눈은 머리의 눈보다 더 많이 보죠. 그래서 이미지에 사람이 부재할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그들을(또한 우리를) 상상합니다. 이건 공간의 자주성을 깨닫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공간은 상상으로 채워지기 전에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들을 만나게) 한 게 아니에요. 내 작업에서의 발견이었습니다. 내가 사람들을 피한 건 침범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없을 때 내가 그들을 다시 찾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죠.
역사적인 건축물을 찍은 작품에서는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취함으로써 보편적 감성을 이끌어냅니다. 보통 작품의 크기와 물성 덕분에 대칭과 반복 같은 특성이 더 잘 드러나죠. 반면 현대적 건물은 부분적, 추상적으로 접근한 듯 보이고, 상대적으로 작품 크기도 작습니다. 어떤 차이를 의도하나요?
최소한 의도만큼은 동떨어진 것 같지 않아요. 오페라 하우스 연작에서 예를 찾자면, 유사성에서 차이를, 차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접근은 다소 반복적이에요. 관객석에서 무대, 무대에서 관객석, 관객석에서 발코니와 갤러리, 서로 면밀히 닮은 건축양식. 결국 디테일이 전체를 만듭니다. 추상적으로 보이는 나의 근작은 디테일을 영예롭게 하려는 시도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샹들리에도, 벽 장식도, 바닥 문양도 공평한 긴장감으로 포착하기에 모두를 평등한 주인공으로 만듭니다. 같은 맥락으로, 화려한 공간과 평범한 공간도 모두 가치 있게 하죠. 삶을 관통하는 믿음이 반영된 시선이라 예상해봤습니다.
나를 너무 높이 사는 것 같군요.(웃음) 디테일과 전체를 공히 중요하게 만드는 건 매체예요. 얘기했듯 느릿한 시선을 불러들이는 사진이죠.
인공조명을 사용하지 않는 걸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입니다. 무언가를 컨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스스로를 놓아두는 행위가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건 통제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조명을 사용할지는, 결국 내가 정하기 때문이죠. 공간 속 자연광일지, 천장의 조명같은 인공광일지, 혹은 둘 다일지. 내게 결정적인 것은 조명이 공간의 특징에 속하는 동시에 공간에 강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공간은 매일 공연하고, 책을 읽으러 오고, 작품을 전시한다는 루틴을 가집니다. 이는 현대 공공장소의 운명을 의미하죠. 초기에 찍은 기차역의 대합실처럼, 공간의 규칙성이 일상에서 반복된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고려하나요?
예나 지금이나 공공장소는 루틴으로 기능합니다. ‘의식’을 통해 ‘루틴’을 교환하면, 역사적인 공간에서도 루틴을 실현할 수 있어요. 루틴은 위협적이거나 혼란스러울 수 있는 공간에서 우리를 움직이게 해요. 그러므로 건축에 루틴을 포함시키는 것은 기능하는 혹은 그러는 듯한 사회에 대한 과시적인 믿음입니다.
공간을 뷰파인더에 담을 때(Input)와 촬영한 걸 다시 이미지로 전환할 때(Output)중 어떤 과정이 더욱 당신 작업답다고 생각합니까?
사진을 찍는 일과 이미지를 만드는 일은 내게 별개의 행위입니다. 스크린에 뜨는 사진은 내 앞에 놓일 테스트 프린트와는 완전히 다르죠. 사진을 찍고 내 앞의 프린트를 보는 일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차가 있어요. 중요한 건 이 테스트 프린트를 어떻게 이미지로 만들 것인지의 문제 뿐입니다. 이미지가 적절한 크기, 빛, 색, 크로핑을 말해주죠. 나는 공간에 대한 기억에 의존해 이미지를 재구성하지 않아요. 내게 사진을 찍는 건 불가피한 행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프린트 자체가 없을 테니까요. 프린트가 모든 걸 결정하죠.
빛의 정도나 대기하는 사람들을 신경 쓴다는 건 시간의 압력을 견디며 작업한다는 겁니다. 공간 자체도 긴 역사를 가진 곳이 많죠. 공간의 개념에 시간의 요소를 어떻게 접목합니까?
나는 인내심이 없는 사람인 반면 내 작업은 인내심을 요합니다. 이 대비가 힘을 주는 발전기처럼 작용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내게 공간의 시간은 그것이 만들어진 시기나 시대에 대한 것이 아니에요. 시간의 레이어가 공간의 특징을 구성하고, 내게 사진은 그걸 가리키기에 이상적입니다.
뒤셀도르프 시립극장의 메이크업 룸을 찍은 ‘Düsseldorfer Schauspielhaus I 1997’을 보면 위트가 느껴집니다. 공간과 신뢰 관계를 쌓았을 거라는 믿음이 들어요. 공간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객관성과 주관성이 어떻게 교류한다고 생각하나요?
만일 언젠가 이런 것이 합쳐진다면, 잠재의식 같은 거라 생각해요. 이런 요소는 기술적 통제 밖에서 그들만의 역할을 합니다. ‘역사적인’ 장소 또한 본래의 목적을 넘어설 때 미소를 자아냅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의 눈이 현대적 공간에 대해 더 비판적이거나 낯선 점을 더 빠르게 감지하는지도 모르죠. 그나저나 내가 정말 자주 가고 좋아하는 그 극장을 당신이 언급했다는 게 묘하군요.
쇼룸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재단 건물은 칸디다 회퍼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재단 공간을 물색하던 중 오래전에 견습 생활을 한 건물을 발견하게 된 거예요. 정말이지, 멋진 우연의 일치였지요.” 20대에 누군가의 작업을 돕던 그녀는 수십 년 후 같은 공간에서 다시 누군가를 돕는다. 하지만 재단을 설립하게 된 데는 ‘이기적인 목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내겐 아이가 없기 때문에, 훗날 재단이 내 작품을 모아둘 거라 믿습니다. 기금은 많지 않지만, 이사회가 ‘더욱’ 주목받아야 하거나, ‘다시’ 주목받아야 하는 작가의 작품도 꾸준히 매입해요. 강의와 발표의 기회도 제공하고요.” 우리가 갔을 땐 테칭 시에(Tehching Hsieh), 양푸동(Yang Fudong), 베르타 피셔(Berta Fischer)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2층에는 예술가들이 몸을 누일 수 있는 아담한 레지던시 공간을, 지하에는 자료와 책을 모아둔 도서관과 온습도를 맞춘 수장고를 마련해두었다.
칸디다 회퍼가 주인공인 영화 는 겨울에 이 건물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 포르투갈의 감독 후이 샤비에르(Rui Xavier)는 2년 동안 회퍼 곁에서 작업과 전시 과정을 고스란히 담았고, 비주얼 에세이로 완성했다. 그러나 영화는 단순히 회퍼가 어떻게 작업하는지의 방법론이 아니라 예술적 접근법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보는 것 중 무엇이 중요한지, 이로써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지, 예술이 세상과 인간의 진실한 관계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자신만의 시각적 언어를 소통의 방식으로 택한 회퍼의 삶과 일을 지배하는 고도의 정제된 고요함을 통해 답을 찾고자한 샤비에르는 매 장면 노장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무성영화에 가까운 이 ‘비주얼 에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사운드 에세이’기도 하다. 감독은 작가의 존재를 앞세우는 대신 ‘공간의 침묵’을 재해석한다. 회퍼를 둘러싼 고요함은 흥미로운 백색소음을 수렴하며, 관객인 나를 둘러싼 세계로 확장된다. 전시장 바닥을 밟는 소리, 못 치는 소리,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문 여닫는 소리, 포장지 뜯는 소리, 필름 갈아 끼우는 소리, 사진인화하는 소리, 관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작가에게 질문하는 혹자의 목소리… 부‘ 재의 건축’이 함의한 역설처럼, 침‘ 묵의 공간’에도 소리 대신 시간과 공간, 철학과 삶의 여운으로 가득하다. “예술은 현실에서 중요한 것을 남기는 일”이라는 회퍼의 ‘예술’과 ‘일상’ 그 자체다.
“규칙과 기술의 발달은 사진 찍는 일을 더 형식적인 과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즉흥성의 상실이죠. 그러나 나는 이를 슬퍼하지 않아요. 작업에는 현재의 조건을 적용합니다. 기대할 만한 건 이미 한 일 너머에 이제 할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언가를 실행할 때 말은 필요 없다. 스스로의 예술 가치를 높이는 데 급급했던 사진 예술의 진입 장벽은 당시 여성 작가에게 더욱 견뢰했을 테지만, 회퍼는 한결같이 침묵의 힘을 믿어왔다. “사진을 다루는 예술가에게 마음의 눈을 연 채 세상에 대한 고유한 의식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사진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그렇지 않나요? 그건 삶에 대한 것입니다.”
<Silent Spaces>를 보면서 빛과 구도, 비율과 패턴으로 가득한 당신의 시각적 작품이 청각까지 자극한다는 사실을 새삼 인지하게 되었어요. 당신은 감각이 이성(인식)과 어떻게 만나 관객에게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길 바라나요?
관객의 감각을 통제하거나 심지어 자극할 수도 없고, 그럴 의도도 없어요. 나의 유일한 의도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보고, 사진 속으로 들어가라는 초대뿐입니다. 그 외 모든 건 관객에게 달려 있죠. 나는 물론 사진이 사유와 감각을 자극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든 이렇게 할 수 있다 의식한다면, 그건 (스스로에 대한) 엄청난 과대평가일 거예요. 사진을 찍을 때 유일하게 활성화되는 감각이 있다면 공간 특유의 냄새일 겁니다.
최근 새롭게 시작한 작업이 있습니까?
꽤 오래전에 모스크바에서 찍은 사진 작업을 최근에 다시 하고 있어요. 관객이 그들만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는 공간의 이미지에 노출되는 건 늘 내게 일종의 도전이에요. 최근엔 이스탄불에서와 같이 보다 추상적이고 즉각적인 사진 작업도 계속하고 있어요. 이번 개인전 기회를 통해 한국의 곳곳도 더 많이 보려고 합니다.
특정 장소를 선택할 때나 작업 혹은 프로젝트의 실행을 결정할 때 어떤 요소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나요?
나를 움직이는 건 언제나 호기심인데, 고맙게도 나를 그다지 멀리 보낸 적은 없어요. 장소는 초대, 상황, 원하는 공간의 머릿속 목록, 우연, 조우 등을 거쳐 선택하죠. 어떤 친구가 내 상상력을 사로잡는 공간을 언급하는 경우에도 귀담아듣습니다.
어떤 공간이라는 피사체의 어떤 부분을 카메라에 담을 것인지 어떻게 결정하나요?
가능하다면 대략적으로라도 장소를 알 수 있도록 스냅사진을 요청합니다. 인터넷이나 책에서 찾은 이미지는 오래된 것일 수도, 현재 모습을 반영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현장에서는 본능과 경험을 발휘합니다. 어디서부터 촬영할지 아주 빨리 찾아요. 물론 촬영 시간은 빛의 상황에 달렸지만요.
작업할 때 의식처럼 반복하는 행동 혹은 꺼리는 일이 있습니까?
나와 어시스턴트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그 방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필수 조건이죠. 특히 나무 바닥에 서 있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땐 움직임이 진동을 일으켜 사진을 흐트러뜨릴 수 있거든요.
사진 작품의 흰색 테두리는 예술성을 강조하는 시도로 느껴집니다. 관객은 현실과 예술의 경계를 느끼는 동시에 없애는 장치로 이 테두리를 사용하죠. 특별히 고수하는 형식이 있습니까?
흰 테두리는 ‘이미지의 사진 종이’입니다. 다루는 매체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죠. 액자로는 보통 체리나무를 씁니다. 하지만 나는 액자를 외부와 경계라기보다 사진의 일부로 봐요. 나는 예술과 현실을 반대의 개념으로 쓰기를 꺼립니다. 사진은 현실에 대한 것이 아니지만, 예술은 현실입니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Stimming’이라고 답한 적 있습니다. ‘일관된’이라는 뜻이자 이미지가 스스로 균형을 갖춘다는 의미던데, 왜 이 단어를 꼽았나요?
원래는 소리를 가리키는 단어예요. 동시에 정확함을 가리키기도 하죠. 뭔가가 잘됐을 때, 균형이 맞았을 때 느끼는 만족감을 포괄해요. 한 이미지에 만족하기 전에 난 이 모두를 느끼고 싶습니다.
작가로서 무엇을 가장 회의하나요?
나는 나 자신에 회의를 품습니다.
작업이 대체적으로 유럽 혹은 서구에 한정된 것도 사실입니다. 공간의 사회적 기능과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이방인으로서 어렵기 때문인가요?
그런 공간에서 내가 이방인이라는 건 사실이고, 그것이 날 망설이거나 조심스럽게 합니다. 그런데 ‘서구’ 공간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요. ‘이국적인 것’을 착취하는 것 같고,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해요. 내가 이방인인 곳으로 여행하는 건 좋아합니다. 그곳에서 세부적이고 추상적이며 캐주얼하게 접근할 수 있으니까요.
서구 문화권 안팎의 관객들이 각각 당신의 작품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있나요?
특별한 기대는 없지만, 베이징 학생들과 나눈 대화는 기억해요. 그들은 나를 냉담하다고 ‘문책’했어요. 그게 놀랍기는 했죠.
명작은 개인의 통찰과 시대의 흐름이 함께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시대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모든 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시대정신’의 좋은 점은 ‘시대’가 끝나야만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기억해보자면, 예술 안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한 시대였다고 봐요. 예술과 음악이 흥미진진하던 시기에 마침 이곳에 있었죠.
궁극적으로 더 작업해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시칠리아.
스스로도 동시대적이라고 생각합니까?
나는 내 시대에서 살고 작업하며, 나이를 수용하고 현재에 삽니다. 그 이상은 다른 이들의 인식에 달렸어요. 이미지가 만들어진 특정 시간을 감지할 수 있을 때조차, 나는 내 오브제를 시간 밖으로 꺼낸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제목에도 제작 연도를 포함시켜요.
한국의 열 살짜리 소녀(예컨대 제 딸 같은)가 질문한다고 가정해보죠. 어디서 영감을 얻습니까? 또한 무려 50년 동안 흔들림 없이 예술가로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 답은 “내 눈과 마음을 열어두려고 노력해요”. 두 번째 답은 “아쉽게도 다른 걸 배운 적이 없어서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야 했어요”. 아, 언젠가 당신 딸을 만나기를 고대합니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이큰아름
- 글쓴이
- 윤혜정(국제갤러리 에디토리얼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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