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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얼굴과 얼굴

2020.04.13

얼굴과 얼굴과 얼굴

얼굴은 그 사람의 추천서다. 배우 장기용이 17개 추천서를 보내왔다.

배우 장기용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급격한 표정 변화를 요구하는 화보의 컨셉이 부담되지 않았나요? 배우 일을 하다 보니 화보 찍을 기회가 많이 없어 아쉬워요. 그래서 촬영 전에는 빨리 찍고 싶어 설레죠. 다양한 포트레이트를 보여주는 화보는 치아 교정기 끼던 모델 시절에도 했는데, 8년이 흘러 스물아홉 살에 다시 시도한다니 재미있을 것 같았죠.
교정기 낀 모델 장기용은 꽤 귀여웠죠. 20대 초반이었는데 교정기 때문인지 잡지 에디터들이 개구쟁이 컨셉의 화보에 자주 섭외했어요.
2012년 서울 패션 위크로 데뷔했어요. 생생해요. 2012년 10월 18일, 제너럴 아이디어 쇼였죠.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군요. 학여울역에 있는 세텍(SETEC)에서 패션 위크를 했어요. 런웨이가 40m나 되었다고요!
첫 쇼라서 40m가 4km처럼 느껴졌겠군요. 40km 같았죠. 끝이 안 보였어요. 다 걸을 수 있으려나 걱정했죠. 당시 엄마 아빠도 쇼를 보려고 고향에서 올라오셨어요. 아들이 큰 쇼에 선다니 궁금하셨나 봐요.
모델로 일하다 드라마 데뷔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드라마에서 처음 얼굴을 알린 건 <괜찮아, 사랑이야>(2014)예요. 이성경 누나의 남자 친구 역할로 잠깐 나왔죠. 세 장면이었는데 통틀어 25초 정도 등장했어요. 단역이 아닌 특정 역할을 맡은 건 <최고의 결혼>(2014)이죠.

베이지 스웨이드 셋업 셔츠는 제이백쿠튀르(Jaybaek Couture).

배우라고 하면 잘생김을 떠나 얼굴이 중요하잖아요. 배우로 일하며 새로 발견한 얼굴이 있나요?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겠어요. 연기하다 보면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나 자주 놀라요. 나도 모르던 표정이나 행동이 나오니까요. <나의 아저씨>(2018)나 <이리와 안아줘>(2018)의 역할은 인간 장기용이 아니에요. 작품이기에 연기했는데, 나에게 이런 눈빛이 있었네 싶어서 즐거웠어요. 그래서 전작과 다른 성격의 작품을 하고 싶다는 주의예요. 예를 들어 <고백부부>(2017)에서 훈남 대학생을 맡았다면 다음엔 완전히 다른 인물을 찾죠. 그래야 저도 재미있고, 관객도 장기용이란 배우의 다음을 기대할 테니까요.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차기작의 기준인 거죠? 키 크고 잘생긴 역할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그보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연기하며 저를 발견하고 싶어요. 나조차 짐작 못한 연기가 나올 때 배우로서 희열을 느껴요. 그렇다고 제가 배역을 가린다는 건 아니에요. 20대인 지금은 다양한 역할을 하며 성장할 때니까요. 30~40대가 되면 더 심도 있게 빠져들기 바라죠.
해보지 않은 연기를 하기가 두렵진 않나요? 걱정이 많죠. 소속사 직원들에게 자주 물어봐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저 괜찮겠어요? 저를 믿지만, 누구나 시작할 때는 겁나잖아요. 막상 하고 나면 뭔가를 깨고 나온 듯 편해져요. 저라는 인물이 그래요. 일단 해보자, 시도하고 그 안에서 안정을 찾죠.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체크 언밸런스 재킷은 준지(Juun.J), 블랙 팬츠는 벨루티(Berluti), 블랙 벨벳 슈즈는 지미 추(Jimmy Choo).

연기 외에 일상에서도 시도를 겁내지 않는 편인가요? 그러려고 노력해요.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보고 후회하려고요. 쉽진 않지만.
그런 태도로 도전한 것에는 뭐가 있나요? 실패했더라도. 지금까지 시도한 건 다 괜찮았어요. 어릴 때 부모님께선 뭔가를 많이 시키지 않으셨어요. 또래들이 합기도나 태권도쯤은 다 할 때도. 스키도 스무 살에 처음 타봤어요. 커서 안 해본 스포츠를 해보니까 진짜 재밌더라고요. 경험하지 못한 걸 접하니까요. 요즘엔 UFC를 즐겨 보며 복싱을 배우고 있어요.
배우는 어떤 역할을 맡을지 모르니 뭐든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복싱 챔피언 역할도 맡을 수 있겠죠.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내가 즐겨 보는 스포츠를 배우니까, 경기를 보는 관점이 깊이 있어져서 좋아요. 장점이자 단점은 도전은 다 하는데,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아니면 그 열정이 쉽게 식어요. 하지만 복싱은 꾸준히 해보려고요.
랩도 잘하더군요! 기억나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웃음). <힙합의 민족>은 전문 래퍼가 아닌 모델, 연기자, 개그맨들이 나와서 랩 경연을 한다는 취지가 좋아서 참여했어요. 인생에서 지금 아니면 언제 래퍼들 앞에서 랩을 해볼까 싶어 도전했죠. 울산에서 갈고닦은 끼를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고. ‘나 이만큼 잘해요’가 아니라 ‘저 이만큼 하는데 어떠세요?’ 정도였어요.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군요. 잘하는 건 아니고 좋아하죠. 일상에서 음악과 노는 습관이 있어요. 스케줄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음악을 틀고, 샤워할 때도, 아침에 눈을 뜰 때도 들어요. 랩, 발라드, 팝송 뭐든 듣죠. 누가 ‘대체 기용이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잡’이라고 답해요. 여러 곡을 듣다가 하나에 꽂히거나, 목소리에 맞는 노래를 찾으면 계속 흥얼거려요. 친구들끼리 노래방 가면 부르려고요(웃음). 팬 미팅에서 하게 될 수도 있고.

스스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라고 하는데, 랩은 의외였어요.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2019)의 박모건에서 로맨틱을 빼면 나와 비슷하다”라고도 했죠. 경상도 출신이라서 표현에 인색한 편이에요. 모건은 사랑에 직진하는 스타일이잖아요. 저에겐 낯선 스타일이죠. 그 점이 재미있었고, 수정 누나와 호흡도 좋았죠. ‘검블유’는 배우로서 또 다른 성장을 이끌어준 작품이에요.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20대에 그런 캐릭터를 만났다니 고맙죠.
얼굴에 표정이 드러나는 편인가요, 잘 숨기는 편인가요? 바로 티가 나요. 그래서 마피아 게임을 못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땐 더 드러나고요. 예를 들어 <나의 아저씨>의 광일이는 아픔이 상당하잖아요. 그의 상황에 맞는 음악을 선별하는 것부터 시작이죠. 새벽이면 그 음악을 틀고 광일이가 되는 상상을 했어요. 이렇듯 상상을 많이 해야 현장에서 끄집어내기가 쉽더라고요. 연기 자체를 연습하고 가면 기계적인 모습이 나오는 듯해요.
상상한다는 것은 그 캐릭터가 되어본다는 말이죠? 비슷해요. 연습하고 가면 그 연기만 하게 돼요. 상상을 하면 현장에서 배우 간의 호흡, 감독님의 디렉팅으로 그 이상의 것이 나오기도 하죠.

사람이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감정은 뭘까요? 거짓말. 눈을 보면 알죠.
거짓말하면 성공하는 편인가요? 늘 탄로 나요. 나뿐 아니라 거짓말에 능숙한 사람일지라도 99%는 감춰도 숨길 수 없는 1%가 있죠.
장기용의 거짓말을 알아내는 방법은 뭔가요?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눈 옆의 주름이 떨려요. 내가 그러고 있으면, 거짓말한다고 보면 돼요(웃음).
일상에서 주로 어떤 감정이 엄습하나요? 일하면서 혼자 지내다 보니 외로움에 지배당하기 쉬워요. 그에 빠지지 않으려고 나만의 방법을 쓰죠. 스스로를 편안한 상태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빨래하면서 기분 좋은 상상을 하거나, 노래를 들으며 한강을 걷죠. 어릴 때부터 좋아한 영화를 찾아보고요. 추억이 깃든 작품을 보면 그때의 순순한 나로 돌아가는 것 같아 편안해져요.
외로움을 이겨내는 자기만의 방법이군요. 다른 분들도, 특히 배우 선배님들도 외로움은 늘 곁에 두실 거예요. 저는 나름대로 이겨내는 규칙과 방법을 찾는 중이죠.
외로울 때 어떤 영화를 찾아보나요? <토이 스토리>, <뮬란>, <미이라> 등 10대에 보던 작품들이죠. 왜인지 모르게 요즘은 자주 보게 되네요. 정자세로 앉아 보지 않아도 작품을 틀어놓고 소리만 듣는 채로 집안일을 하기도 해요. 그 작품이 나오면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에요.
여러 음악을 듣는다고 했지만, 시기마다 듣는 음악이 달라지잖아요. 요즘 플레이리스트는 뭔가요? H.O.T., 브라운아이즈, 김광석, SG워너비. KCM의 음악을 들어요. 이글스 시절의 팝도 듣고. 요즘 아이돌도 좋은 음악을 내지만, 나의 최고 아이돌은 여전히 H.O.T.예요. 그러고 보니 영화처럼 음악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 접한 것들이군요. 음악을 들으면서 회상에 잠기곤 해요. KCM 노래를 들으면 한 소녀를 좋아하던 중학교 1학년 장기용이 떠올라요. 손만 잡아도 땀 흘리던 그때의 공기가 느껴지죠.

라이더 재킷은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블랙 코듀로이 슬릿 와이드 팬츠는 던힐(Dunhill).

20대 초 인터뷰에서 서른 살이 궁금하다고 했어요. 많은 청춘이 서른 살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이제 장기용도 스물아홉이군요. 서른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어차피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또 오니까요. 아, 이런 느낌은 있죠. 엊그제가 스무 살 같은데 벌써!
빨리 나이 들고 싶나요? 그런 편이에요. 30대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거든요. 스무 살의 내가 스물아홉을 궁금해했듯이 스물아홉의 나도 10년 후의 모습을 가끔 생각해봐요.
20대를 돌아보면 잘 보낸 것 같나요? 후회는 없어요. 잘 보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딱히 하지 못해 아쉬운 일은 없으니 괜찮은 거겠죠?
지난해 12월 23일, 영화 <럭키>(2015)를 만든 이계벽 감독의 영화 <새콤달콤>의 촬영을 마쳤어요. 배우 채수빈, 정수정과 함께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나쁜 녀석들: 더 무비>(2019)의 차기 영화로 확연히 다른 장르를 선택했군요. 현실 로맨스를 하면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바뀔지 궁금했죠. 일단 해보자 싶었는데, 다행히 ‘검블유’ 때와 다른 느낌을 낸 듯해요. 그동안 선배님들의 힘을 많이 받았다면, 이번 작품은 그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으로 혼자 끌고 가요. 그 점이 걱정됐지만 아까 말씀드렸듯 초반의 두려움을 이기고 하던 대로 하다 보니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어요.
무던하게 어떤 일이든 잘할 성격 같아요. 뭐든 대충 하는 게 없어요. 오늘 촬영도 그렇고, 인터뷰도 그렇고 이왕 하는 거 재미있게 최선을 다해요.
하고 싶은 배역으로 <태극기 휘날리며>(2003) 같은 전쟁 영화, <밀회>(2014)처럼 진한 멜로, 여타 센 장르물을 꼽았어요. 감정의 온도가 센 역할인데, 여전히 소망하나요? 여전하긴 하지만, 어떤 작품이 오더라도 잘해내고 싶어요.
물론 예측 불가할 만큼 감정의 움직임이 크고 색이 짙은 캐릭터를 맡으면 더 재미있겠죠. ‘장기용이란 배우가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다음이 궁금해지네’ 생각이 드는 인물이오. 그동안 고맙게도 좋은 역할을 주로 맡았어요. <나쁜 녀석들: 더 무비> 때 액션 장면도 많고 체력도 필요했지만, 인간 장기용과 먼 역할이라 재미있었어요. <나의 아저씨> 속 이광일의 아버지는 사채업자인데, 우리 아빠는 심신이 정말 건강하신 분이거든요. ‘과연 저런 가족을 뒀다면 나는 어떨까’ 상상하는 과정이 흥미로워요. 영화 <조커>의 캐릭터도 그런 지점에서 굉장히 매력 있게 봤어요.
<조커>의 호아킨 피닉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그는 비건이지만, 가끔 써브웨이 샌드위치 같은 정크 푸드를 먹는다고 고백한 적 있어요. 장기용의 길티 플레저는 뭔가요? 음악처럼 음식도 잡식으로 다 좋아해요. 고향 울산에서 3개월 살면 10kg 금방 찌울 수 있어요. 물론 오늘 촬영처럼 스케줄이 있을 때는 관리하죠. 지금 저녁 6시인데, 어제 점심 한 끼 먹고 굶고 있어요. 사진은 한번 찍히면 영원히 남으니까, 음식에 흔들려 해를 입고 싶지 않아요. 어제부터 유혹이 열두 번 정도 있었는데, 참았어요. 햄버거 시킬까, 밥 시킬까, 장난 아니었다고요. 내가 자랑스러워 이따 끝나면 칭찬해주려고요.
연예계에 온 뒤로 맘껏 먹기가 쉽지 않겠어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몸을 살피려고 해요. 오늘 먹으면 진짜 안 될 것 같은 날이 있잖아요. 일을 잘해내고 싶다면 이런 조율은 해야죠.
호아킨 피닉스는 조커 역을 맡기 위해 23kg을 감량했어요. 작품을 위해서 이 정도 할 수 있나요? 그런 작품이 있다면 해야죠! 저 일 욕심이 있어요.
건강을 해칠 수도 있는데요? 비타민 잘 챙겨 먹고, 한약 지어 먹으면 되잖아요. 죽지 않을 선에서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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