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도 퓨처리즘?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가 더 이상 미래의 일은 아닙니다. 1960년대 우주 시대를 열어젖힌 이후 인류는 신나는 퓨처리즘 축제를 벌였습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21세기에 접어들면 20세기와는 다른 멋진 신세계를 건설할 것이라는 낙관이었죠. 그 희망은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 소설을 낳았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영화만 해도 1980년대 <백 투 더 퓨쳐>, <스타 트렉> 시리즈가 있고,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소설과 영화가 있었죠. 미래를 배경으로 원시인 가족이 등장하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조차 그런 미래의 세계관을 공유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올해 벽두에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만 보면 20세기 인류가 상상한 정도의 미래는 이미 도래했습니다. LG전자는 로봇이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는 ‘클로이(CLOi)’ 무인 레스토랑을 선보였습니다. 이미 CJ 계열의 식당에 시범 도입된 기술이죠. 현실이란 말입니다. 배달의민족도 ‘로봇 배달 계획’을 이미 몇 해 전부터 준비해 서빙 로봇 렌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서빙밖에 할 줄 모르는 원시적인 로봇이지만 대여료가 월 90만원에 불과하니 나름 합리적인 가격이죠.
CES에서 삼성전자는 조금 모호하지만,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세계관을 선보였습니다. ‘볼리(Ballie)’는 동그란 공 모양의 인공지능 로봇입니다. 음식을 서빙하거나 집 구조를 기억해 바닥의 먼지를 먹고 다니는 물리적인 단순 업무는 불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주변 상황을 인식해 가전제품부터 전동 커튼까지 제어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죠. 쇼케이스에서 보인 기술은 아직 미약했지만 향후 채끝 등심도 좀 구워 올린 짜파구리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차려낼 수 있는 로봇 집사 겸 가사 도우미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단 한국의 두 전자업체뿐 아니라 전 세계의 기술이 앞다투어 푸드 퓨처리즘을 현재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임파서블 푸드와 비욘드 미트는 대체육 시장을 새로 창조하는 중이며, 식물을 터널 안이나 밀폐된 공장에서 생산하는 스마트팜도 더 이상 새로운 얘기가 아니죠. 스마트팜 기술은 조그맣게 축소되어 가정용 식물 재배기까지 이미 등장했습니다.
‘2020 원더키디’의 해가 되고 보니 20세기 인류의 상상이 이미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이미 가능한 범위로 들어온 기술이니까요. 우주선의 버튼을 누르면 밀크셰이크나 햄버거가 뚝딱 출력되는 3D 푸드 프린터도 마찬가지로 가능한 범위의 기술입니다. 1970년대에 세상에 나온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 등장한 상상력이죠. 식상하게도 말이죠.
현재의 인류는 좀 다른 상상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작 셰이크를 출력하는 정도로 시시한 것이 미래의 끝이 되어선 곤란하니까요. 21세기 인류에겐 더 발전한 지식과 기술이 있으니, 우리가 설계하는 미래는 좀더 창의적이어도 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이렇게 말입니다.
3D 푸드 프린터는 지금까지 요리사의 손과 도구를 이용한 그 어떤 음식과도 다른 접근이 가능하게 합니다. ‘밥을 짓는다. 양념을 한다. 생선 포를 뜬다. 다시 얇게 잘라 밥 위에 올린다’ 식의 작업을 로봇에게 시키거나, 3D 푸드 프린터로 똑같이 출력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일본의 한 푸드 벤처가 3D 푸드 프린터라서 할 수 있는 복잡한 구조로 새로운 텍스처를 만들어냈습니다. 컨셉 영상엔 식상한 로봇 팔도 있고 식상한 3D 푸드 프린터도 있지만 결과물은 식상함으로부터 몇 광년은 떨어져 있습니다. 올 안에 도쿄에 오픈한다는 계획이 지켜질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인간과 도구가 이제까지 하지 못한 창의적 상상력을 가까운 미래의 현실로 보여줍니다. 이런 게 진정으로 21세기다운 ‘멋진 신세계’ 아닐까요?
- 프리랜스 에디터
- 이해림(푸드 칼럼니스트)
- 포토그래퍼
- 삼성전자, 배달의민족, Open Me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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