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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레지스탕스, 채식주의자

2020.03.09

산불, 레지스탕스, 채식주의자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화재로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SNS에 분노하는 것 말고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새카맣게 불타버린 아마존의 모습. 자연적으로 발생한 화재가 아니다. 상업적 이익을 위해 수십 년간 삼림 파괴가 진행되고 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어느 월요일 오후. 한낮인데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느 유아원을 방문하던 차였다. 13개월 된 딸을 보내도 괜찮은 곳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그날 비 예보가 없었지만 갑자기 짙고 두툼한 구름이 낮게 깔리며 하늘을 가렸다. 두 살배기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교실에서 나오더니 눈을 비비며 원장 선생을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원장 선생이 말했다. “놀랍게도 아직 밤이 아니야. 아빠가 아직 데리러 오지 않았잖니.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기상학자들이 진땀을 빼며 한낮의 어둠에 대한 분석을 쏟아냈다. 그들은 수천 마일 떨어진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한 연기와 한랭전선이 만나 생성된 구름이 낮게 깔렸다고 말했다. 브라질 사람들이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일상생활을 하는 사이, 우리의 열대우림이 고통스럽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우리는 이 신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 걸까? 소셜 미디어에 분노의 글을 게재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지난해 8월 브라질 국립우주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Space Research)는 2018년 같은 기간 대비 2019년 브라질 화재 발생률이 84%나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아마존 지역에서 발생했다. 미국 나사(NASA)와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위성사진 덕분에 화재로 파괴된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원래는 짙은 녹색이었을 땅 수십 곳에 얼룩덜룩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화재로 발생한 연기가 이미 상파울루를 비롯한 여러 주를 휩쓸고 말았다.

화재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최근 발생한 캘리포니아 대형 산불처럼 날씨나 기타 요인 때문이 아니었다. 소를 방목하는 목축업자, 농부, 상업적 이익을 위해 토지를 개간하는 벌목꾼이 불을 놓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정말 문제다. 그들이 사용하는 이 방법은 익히 알려져 있다. 우선 체인 달린 트랙터로 나무를 뿌리째 뽑고, 건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 나뭇더미가 마르면 사방에 불을 놓는 것이다.

수십 년간 그런 식의 삼림 파괴가 진행되어왔다. 그나마 2004년부터 2014년까지는 환경법을 강력하게 집행해 삼림 파괴 속도를 효과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토지 소유주, 대두 생산업체, 기업식 농업 단체 같은 기타 농촌 지역 활동 단체가 연합함으로써 브라질 정계에서 점차 힘을 키웠고,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열대우림을 더 공략했다. 그러다 극우인 자이르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런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토착민의 권리를 경시하는 악명 높은 반환경주의자이다. 토지 소유주들은 새 대통령의 자세에 힘입어 대담해졌다. 그래서 일부 소유주들은 심지어 자기 땅에 불 지를 권리를 선포하고자 브라질 북부 파라(Pará)주에서 최근 ‘파이어 데이(Fire Day)’를 열기도 했다. 더 심각하게도, 일부 기사로 알려진 바와 같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선출된 이후 토착민 구역에서 살인, 방화 같은 습격 사건이 늘고 말았다. 지난해 1월에는 대형 칼, 사슬톱, 화기 등으로 무장한 남성 수십 명이 우루 이우 와우 와우(Uru-Eu-Wau-Wau)족의 보호구역을 습격해 그곳이 상업적인 용도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나무와 토지에 판매용이라는 표시를 했다. 토착민들은 몇 달간 맞서 싸웠고, 지금 그곳 일부가 화마에 휩싸여 있다.

이런 이유로 세계 최대 도시 중 하나인 이곳 거리에 대낮부터 어둠이 내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남편이 그 고급 유아원에 관심을 둔 가장 큰 이유가 바깥 활동이 가능한 널찍한 전원이 있는 동네에 자리했다는 점이었다. 창문도 없는 우중충한 콘크리트 교실에 갇혀 지내지 않아도 되니까. 이곳처럼 인구 과밀로 나무가 굉장한 사치품처럼 여겨지는 도시에서, 아마존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브라질 사람이 되는 것은 무력함을 끊임없이 연습하는 것이다. 브라질 정부가 자국민을 무시하는 그 전설적인 능력을 보면,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 파업을 조직화하는 것, 국제적인 관심을 촉구하도록 UN에 요구하는 것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압박에 시달려 때때로 정책이 임시로 바뀌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결국 뉴스 사이클이 바뀌고 나면 상황은 오히려 점점 더 악화될 뿐이다.

이런 무력감이 자신의 조국을 지속적으로 찬찬히 살피는 작가이자 언론인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서 극렬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나는 예전에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UN 특별 조사위원들을 굉장히 칭송했다. 그들은 국제기구를 대표해 각 나라를 감시하는 독립 전문가들이다. 나는 일을 통해 그들을 알았고, 환경이나 토착민의 권리 등과 같은 브라질의 심각한 문제를 조사할 때마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규탄하는 특별 조사관의 단호하고 정확한 발언을 찾아내곤 했다. 하지만 그런 지적은 늘 무시당했다. 나는 그 칼럼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그렇게 등한시되지 않도록 다 함께 꾸준히 노력합시다.”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런 무력감이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내가 자녀를 낳기로 결심했겠는가? 사실 세상에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로 한 우리 부부에게 살짝 어리석은 점이 있는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내가 정부를 전적으로 신뢰할 때도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우마 호세프(Dilma Rousseff) 대통령이 연방 정부 예산 비리로 최근 탄핵당하지 않았던가. 정부 지지율이 3%까지 하락했다. 이는 여론 오차 범위보다 낮은 수치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사생결단의 심정으로 노력하기로 결단했다. 더 밝은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브라질 3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시국에 아기를 키우게 될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이 나라의 독재 역사를 찬양하고 여성, 흑인, 동성애자를 폄하하는 그 퇴역 장교가 대통령이라니! 그는 바로 브라질에서 모든 사회운동을 끝내버리겠다고 단언한 사람이다. 실제로 모든 것이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집에서 그 사람들이 재집권하는 것을 지켜보던 나는 펑펑 눈물을 쏟고 말았다. 젖을 빨던 딸아이가 나를 빤히 올려다볼 지경이었다. 그날 그 아이는 무지개색 우주복을 입고 있었다.

새로운 국면의 암울한 현실 탓에, 몇 년 전 내가 취한 또 한번의 전적인 신뢰에 대한 울림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그때 나는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또 한번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서 처음으로 의학 공부, 거북 보호소 개소, 브라질에서 활동하는 주목할 만한 환경 NGO에 가입하기 등과 같은 해결 방안을 고려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맞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진정한 자유 중 하나인 ‘먹거리 선택권’에 안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맨 처음에는 윤리적 이유 때문에 끌렸다.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그들에게도 특정 도덕적인 권리가 있다는 점이 그 이유였던 것이다. 살아 있는 생물체를 살생하는 것은 오로지 극한의 환경에서만 내게 정당화될 뿐이었다. 기쁨, 편의 혹은 습관에 의해 동물을 소비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동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수많은 이유로 육류 섭취 중단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요리를 싫어한다. 이 도시에는 저녁에 문을 여는 채식주의 식당이 거의 없다. 그리고 나는 빈혈을 앓았고, 게다가 만성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나는 비건인 친구를 붙잡고 그 어떤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하소연했다(그때만 해도 우리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고는 아마추어 수준으로 천문학에 빠졌다는 것뿐이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답할 뿐이었다. “네 관점이 완전히 잘못됐어.”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자체가 ‘기본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두개골에 가축용 총을 맞으려고 줄 서서 기다리는 소가 처한 어려움을 생각해보라! 가축 사육 공간 확보를 위해 몰살되는 토착민에게 드리운 어려움을 생각해보라! 무력함으로 체념하고 말겠는가? 내 분노는 얼마나 진지한 것일까? 나는 전열을 가다듬기로 결심했다. 나는 영양사와 상담한 후 바로 그날부터 모든 종류의 고기 섭취를 중단했다.

브라질 사람 대부분이 단 한 순간도 채식주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 브라질이 세계에서 가장 육식을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라는 점이 내 저항감에 박차를 가했다. 그들은 전통에 호소하기도 한다. 교외의 부유한 가정에서 굽는 크리스마스 칠면조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토착민, 흑인, 이민자 등과 더불어 아웃사이더에 해당된다. 이들 모두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청산하겠노라 언젠가 선언한 바로 그 집단이다. 오히려 그런 그룹에 끼어주니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점차적으로 나는 정치, 기후와 관련해 더 민감한 방향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아주 당연했다!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단 한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4대 환경보호 기여 활동 중 하나에 속하니 말이다. 나머지 3대 활동으로는 자녀 한 명 덜 낳기, 자동차 없는 생활하기, 항공기로 여행하는 것 피하기(특히 대서양 횡단 비행)가 있다. 가축 산업 분야도 끔찍할 정도로 효율적이다. 이 가축이 전 세계에서 소비되는 단백질의 1/3, 칼로리의 15%를 생산하는 대신 전 세계에 전체 15%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2010년 UN 보고서에 따르면 단지 ‘전 세계의 실질적 식단 변화, 즉 동물 제품 자제 식단’만으로도 온실가스 배출을 상당히 줄일 수 있다고 한다. 2018년 10월 <네이처>의 보고에 따르면 식물 위주 식단으로 변화하는 것은 온실가스 효과 경감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그 연구에 따르면 미국 같은 선진국 국민이 소고기 소비량의 90%가량을 줄이면 된다고 한다.

물론 브라질은 세계 최대 소고기 수출국이자 세계 2위 대두 생산국이다(전 세계 대두의 약 70%가 인간의 직접적 소비가 아닌 동물 사료로 결국 사용된다).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의 대표적 요인은 단연코 축산업이다. 2004년 세계은행이 발표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대형 규모의 소 방목장이 전체 열대우림 개간 토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최근에 환경문제가 ‘채소만 먹는 비건’에게만 중요한 사안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현 상황을 옹호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딸아이를 그 고급 유아원에 보내지 않기로 했다. 지나치게 비싸서가 아니다. 내 아이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며 특권을 누려온 아이들 틈에서 생활하고, 결국에는 다양성의 관점이 부족하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립 유아원에 대기를 걸어두기로 했다. 몇 달 더 기다리더라도 말이다. 적어도 그곳은 가식 없는 좋은 선생님들이 있는 곳이니까. 아이가 그곳에서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개색 우주복을 입고 남녀를 구분 짓지 않는 페미니스트 장난감을 가지고 놀면서 말이다.

솔직히 고급 유아원에서 다른 학부모와 나눌 대화가 두려웠다. 이미 나는 채식주의자라는 사실을 감추려고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을 피하고 있다! 또한 바비큐 또는 검정콩과 돼지고기로 만든 브라질 전통 요리 페이조아다(Feijoada)를 거르기 위해 핑계 대는 법도 배워두었다. 내가 선택한 식단이 사람들의 삶에 대한 위협으로 비칠 수도 있기에 웬만하면 비판적으로 들리지 않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결국 사람들은 여성이라면 응당 요리하고, 남편에게 순종하고, 주님이 만드는 창조물을 열심히 소비함으로써 주님을 찬미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 뭔가 좋지 않은 느낌을 받았기에 이 규율을 따르지 않겠노라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브라질 육류 산업을 은밀히 보이콧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처벌을 부르는 수많은 체제 전복적인 행위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는 단 한 사람의 노력이 정부의 거창한 계획에 작은 흠집조차 내지 못함을 충분히 안다. 채식주의 엄마 하나가 자녀를 위한 더 푸르고 연민 넘치는 세상을 만들지는 못한다(그리고 내 딸은 고기를 먹고 있다. 아이가 크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겠다). 나는 결과를 저울질하면서 결정을 내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좋든 나쁘든, 내 채식주의가 브라질 사람들이 식용으로 동물을 사육하고 살생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지 상관하지 않고 소신대로 밀고 나갈 것이다. 브라질은 실제로 토착민, 동성애자, 흑인,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채식주의자가 설 자리가 없는 나라가 되어가는 듯하다. 화재가 이어지고 연기는 피어오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암담한 바비큐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바네사 바르바라(Vanessa Barbara)
    포토그래퍼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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