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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에겐 있고 홍선영에겐 없는 것

2020.06.27

김민경에겐 있고 홍선영에겐 없는 것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운동 강박을 갖고 있다. 예쁜 몸매를 위해, 건강을 위해, 체력을 위해, 자신을 위한 취미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것은 곧 생산성에 대한 강박이기도 하다. 쉴 때도 마음이 편치 못한 현대인이여. 그런데 여기 ‘더 많이 먹기 위해’ 운동을 한다는 여자가 있다. 웹예능 <오늘부터 운동뚱>으로 요즘 가장 ‘핫한’ 스타가 된 코미디언 김민경이다. ‘더 많이 먹기 위해서’라는 목표는 애초에 이 프로그램이 코미디 TV <맛있는 녀석들>의 스핀오프기에 가능한 일이다. 뚱뚱하고 많이 먹는 걸로 유명한 코미디언 4인에게 복불복 게임을 시켜서 출연자를 정했는데 하필 그중 여자인 김민경이 당첨됐고, 미대를 나와서 마흔 살이 되기까지 운동이라곤 안 해본 그가 이렇게까지 ‘근수저’일지 제작진도 몰랐다는 게 프로그램의 설정이다. 그리하여 체육관에 끌려가듯 도착한 김민경은 지금껏 세상에 없던 성장 드라마를 쓴다. 트레이너는 그의 목표에 따라 다이어트를 생략하고 체력 훈련에 집중한다. 그 과정에서 김민경이 뛰어난 운동 지능, 압도적 근력, 유연한 관절, 체육인에 적합한 승리욕과 성실함을 모두 갖췄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김민경 자신도 운동에 보람을 느낀다. 그가 건장한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무게를 들어 올리는 걸 보고 헬스 마니아나 다이어터를 숱하게 상대했을 트레이너조차 희열에 차서 환호하는 모습은 중요한 흥행 요소였다. 유튜브의 온갖 헬스 채널이 그의 운동을 리뷰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보디 셰이밍 없이 몸의 기능에 집중하여 김민경을 해설하는 전문 운동인들의 시각 역시 신선한 충격이었다. 여성 시청자들은 “나도 날씬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강해지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싶어졌다”, “어떤 몸매 좋은 사람들의 운동 영상보다 의욕을 준다” 등 긍정적 반응을 보였고, 당초 10회로 예정된 프로그램은 셀러브리티급 트레이너들을 연달아 섭외하여 판을 더 키우는 형식으로 연장되었다.

<오늘부터 운동뚱>과 김민경이 일으킨 돌풍은 ‘뚱뚱한 몸=건강하지 않은 몸’이라는 상식을 파괴하는 데서 시작됐다. 저 상식은 오랫동안 비만 혐오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타인의 외모를 비하하는 건 뭔가 나쁜 짓 같고 자신이 공격당할 소지도 있지만 ‘네 건강을 위해서’라고 덧붙이면 왠지 욕을 덜 먹을 것 같은 얍삽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평범한 비만 여성인 줄 알았던 김민경이 어지간한 근육 맨보다 근력이 좋고, 이종격투기 선수들과 7라운드 스파링을 할 만큼 체력이 강하고, 필라테스를 하면서 척추 미인 소리를 듣는 거다. 그러니 적어도 김민경에게는 ‘건강을 위해 살을 빼라’는 잔소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그게 이 여성의 몸을 기능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셈이다. 그를 대하는 프로그램 안팎 체육인들의 모습은 항상 몸매 품평을 당하고 운동조차 ‘몸매 관리’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도록 세뇌당해온 여성들에게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여성지나 페미니스트 대중 사이에서 “몸매가 아닌 체력에 집중하자, 다이어트가 아니라 운동 자체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펫 셰이밍에서 벗어나자”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강력한 파급력이 있고, 그만큼 세태를 보수적으로 반영하는 올드 미디어에서는 요원한 얘기였다. 여자의 몸은 매스미디어의 주력 상품 중 하나다. 대중의 미의식에 들어맞는 마른 몸만 그런 게 아니다. 뚱뚱하면 뚱뚱한 대로 희화화와 자기 학대의 아이콘으로 가공된다. 사람들은 흔히 뚱뚱함을 여성성과 상극으로 여기고, 오버사이즈 여성들을 ‘쉽게 상처받거나 예민하지 않기에 아무 말이나 던져도 될 대상’으로 간주한다. 하여, 오버사이즈 여성 코미디언은 자주 인격 비하 개그의 주인공이 된다. 살집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를 통해 사회의 규격 사이즈로 진입하는 모습도 잘 팔리는 콘텐츠다. ‘뚱뚱한 사람=다이어트에 실패한 사람’이란 인식이 사회에 기본으로 깔려 있다 보니 그들을 루저 취급하고 사방에서 잔소리를 하는 게 당연하게 그려진다. 긁지 않은 복권이란 격려, 살만 빼면 예뻐질 텐데라는 애정 어린 걱정은 그들의 현재 신체가 불완전하다는 판단을 전제한다. 당사자의 자존감에는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매스미디어에서는 이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예컨대 <미운 우리 새끼>에서 홍선영이 처한 상황이 그렇다.

홍선영의 화려한 이목구비와 뛰어난 재능, 그와 닮은 동생 홍진영의 존재는 ‘홍선영도 살만 빼면 저렇게 될 텐데’라는 친절하지만 무거운, 대중의 은밀한 기대를 강화시킨다. 김민경이 <맛있는 녀석들> 시절부터 몸집 큰 남자들과 어울려 다닌 것에 비하면 파트너 운이 나빴다. 가족이니까 운이라기보다는 운명이라 해야 하나. 그가 있는 그대로 매력적인 사람이란 사실은 프로그램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자기 몸을 원하는 대로 가꿀 권리가 있다. 홍선영 스스로 살을 빼서 비키니를 입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고, 다이어터 캐릭터로 방송 일을 하고 있으니 시청자로선 그의 감량을 조용히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건강을 위해 살을 빼야 한다는 지적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다이어트 스트레스로 이석증이 생기고 요요가 와서 고생하는 등 그가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로서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의 다이어트를 응원하는 게 ‘어쨌든 여자는 날씬해야 한다’는 제작진과 부모 세대 패널들의 인식을 강화하는 일이 돼버릴까 걱정이 된다. 홍선영이 의지가 약해서 매번 실패하고, 그러기에 구박받아도 되는 존재라고 그려질 때, 여성 시청자들은 그를 압박하는 가해자이자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사회적 압박을 상기하는 피해자로서 양면적 위치에 놓이게 된다. 지난 5월 <미우새>에서 홍선영과 김민경의 만남이 이뤄진 순간은 아이러니였다. 애초에 <미우새>가 결혼을 인생의 통과의례로 여기는 부모와 비혼을 즐기는 자식의 세대 차를 드러내는 컨셉이었듯, 여기선 운동에 관한 신구 패러다임이 충돌했다. 즐겁게 먹고 즐겁게 운동하자는 김민경의 주장에 홍선영은 인식의 전환을 일으킨 듯 감탄한 표정이었지만 패널들의 반응은 “둘이 같이 다니면 더 찌겠네”라는 우려였다.

<오늘부터 운동뚱> 제작진이 이런 세태를 염두에 두고 사회적 의미를 담아내려 의도했는지, 뉴미디어의 특성상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다 보니 그리 된 건지, 기존 캐릭터를 활용하려다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인지, 천운으로 얻어걸린 건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이 여성의 운동과 몸을 대하는 시선에 관해 지상파 같은 올드 미디어가 할 수 없는 실험적인 시도를 했고, 그것이 잘 먹혀들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웹예능이라곤 해도 개인 채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을 지닌 이들의 프로그램이 모쪼록 더 큰물에도 변화의 파도를 가져다주길 바랄 뿐이다. 김민경이 세상의 편견에 어퍼컷을 날리는 모습은 당분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이숙명(칼럼니스트)
에디터
조소현
사진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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