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초팽 포레스트

2023.02.20

초팽 포레스트

조성진이 연주를 시작하면 그곳이 ‘숲세권’. 왜 이토록 그에게 열광할까.

조성진 리사이틀 예매에 실패했다. 슈퍼컴퓨터도 없고, 아이돌 콘서트 티케팅도 안 해본 하수가 꿈이 컸다. 늘 몇 초 만에 매진이며, 팬들은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나 도쿄의 산토리홀에 가려고 몇 달 전에 연차를 낸다.

조성진은 국내 클래식계 최초의 사건이다. 전통의 클래식 스타인 백건우, 정경화, 조수미의 계보를 벗어난다. 팬층은 기존 클래식 팬이 아니라 새롭게 유입됐다. 멜론 톱 100을 틀던 이가 조성진의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슈베르트 연주 음반, 공연 실황 레퍼토리를 찾아 듣는다. 그중 대부분이 20~30대 여자다. 롯데콘서트홀의 통계에서 조성진의 공연은 여성 관객이 83%(20~30대 60~65%)였다. 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의 주인공 안나는 조성진의 팬이다. 안나의 맥북에는 초팽(조성진의 Cho+쇼팽) 폴더가 있다. “jpg, gif, avi로 된 수천 개의 조성진이 모니터 위에 좌르륵 펼쳐졌다. 그중 하나를 더블 클릭했다. 입을 오리처럼 오므리고 앞머리를 찰랑거리며 연주하고 있는 gif 파일이 떠올랐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연주하고 있는 곡이 드뷔시의 <달빛>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완벽하게 잘생겼다. 사람이 어쩜 이렇게 우아하게 생겼을까.” 그 사진을 ‘고독한 조성진’ 방에 공유하자 댓글이 달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

나는 조성진의 팬 카페 두 곳에 가입했다. 가입 질문은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 날짜. 이거야 기본이지. 2015년 10월 20일. 콩쿠르가 끝나고 보름 뒤, 압구정동 클래식 음반 전문점 풍월당에는 조성진의 실황 음반을 사려는 긴 줄이 섰다. ‘1호 음반 구매자’ 최재혁 씨는 신문에 이렇게 묘사됐다. “그는 아이폰 1호 구매자처럼 기뻐했다.” 유니버설뮤직 관계자는 이렇게 인터뷰했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반은 5,000장이 팔리면 ‘골드(Gold)’로 표기하는데, 두 달 안에 5만 장을 초과할걸요. 물량 확보로 초비상 상태예요.”

나는 때때로 조성진의 인터뷰를 거절당했다. 드디어 2020년 3월, 유니버설뮤직 측이 조성진의 서면 인터뷰를 제안했다. 조성진의 앨범 <The Wanderer(방랑자)> 발매 기념이었다. 얼씨구나. 하지만 독점 인터뷰는 아니고 질문마저 일곱 개로 제한했다. 이런 상황은 보통 거절하지만… 조성진이다. 질문을 보낸 뒤 한 달 지나 답변을 받았다. 워드 파일을 여니 “40여 개 매체의 기자님이 보내주신 질문 중 가장 많이 나온 것을 추렸다”는 공지가 뜬다. 모든 매체에 같은 인터뷰가 나갈 판이었다. 이런 인터뷰는 <보그>에 실을 수 없었다. 궁금하다면 이미 다른 신문,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으니 확인하길. 인상적인 몇 개만 꼽았다.

Q 전 세계를 누비는 피아니스트로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성진 씨가 느끼는 ‘방랑’의 개념이 궁금합니다. A 한국에 살다 2012년에 파리로 유학을 갔는데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더라고요. 이사 온 베를린도 1년에 넉 달만 머물러요. 나머지는 연주하러 돌아다니죠. 베를린이 집 같기도 하고, 때론 호텔이 집 같아요.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이 집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어요. 외동아들이고 어릴 때부터 혼자 시간을 보내서 많이 외롭거나 힘들지 않아요. 연주하러 다니며 사람들(오케스트라, 지휘자, 다른 뮤지션)을 많이 만나니까 오히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요.

Q 쇼팽 콩쿠르가 9월로 연기됐습니다. 콩쿠르 출전자에게 선배이자 우승자로서 조언한다면요? A 바르샤바의 10월은 정말 추웠어요. 따뜻하게 입고 가세요. 제가 참가했을 때는 모든 참가자와 콩쿠르를 보러 온 관객이 한 호텔에 묵었어요. 다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아침 먹기가 힘들었어요. 2·3차 때는 커피숍에서 아침을 먹는 게 좋을 거예요.시간 절약을 위해서요(웃음).

Q “클래식의 대중화보다 대중의 클래식화를 꿈꾼다”고 말했죠. 성진 씨가 말한 ‘대중의 클래식화’는 어떤 모습인
가요? A 클래식을 팝이나 K-팝처럼 많은 이가 즐기기 어렵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연주회를 찾고 클래식 음반을 듣고, 말러, 스트라빈스키, 모차르트, 베토벤을 얘기하고 의견을 나눈다면 클래식 음악가로서 더없이 기쁠 거예요. 허전한 마음에 그날도 팬 카페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그의 말은 어록이고, 사생활은 뉴스다. 그곳에서 ‘TMI’를 수집한다. 조성진은 와인과 파스타를 즐긴다. BTS라는 그룹을 들어본 적은 있으며, 가끔 김광석과 이광조 노래를 튼다. 친한 친구 중 가장 어린 사람은 20세 연상 프랑스인이다. 코로나19로 공연이 취소되면서 <SKY 캐슬>과 <브레이킹 배드>를 몰아 봤다. 이 정도로 좋아하는 거 그는 알까? 아이돌급 인기라는 말에 조성진은 이렇게 답한다. “아이돌, 슈퍼스타… 그런 거 원하지 않아요. 제가 유명한지 실감도 나지 않고요.” 왜 당신을 좋아할까요? “잘 모르겠어요. 쇼팽 콩쿠르 덕분인 것도 같고…”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이렇게 얘기한다. “콩쿠르의 우승 프레임은 길어야 3년이에요. 톱 아티스트로서 지구를 순회하는데 자기 캐릭터는 유지하면서 하나도 같은 연주 패턴은 없어요. 계속 예술을 흡수하고 성장하는 성진이가 감동이에요.” 클래식 칼럼니스트 이채훈은 조성진을 이렇게 얘기한다. “그는 고귀하고 시적이고 그리움 가득한 쇼팽을 들려줘요. 쇼팽뿐 아니라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라흐마니노프, 알반 베르크까지 레퍼토리가 확장돼 있죠. 그가 연주한 모차르트 환상곡 D단조, 소나타 3번 Bb장조, 협주곡 20번 D단조를 들어보세요. 다듬어진 보석처럼 반짝이는 음색, 고결한 감정 표현이 일품이죠. 거침없는 자유분방함을 더한다면 모차르트에 관해서도 거장이 될 거예요.”

팟캐스트 ‘이지 클래식’의 류인하는 다른 해석을 덧붙였다. “연주자 조성진은 두말없이 훌륭하죠. 하지만 유례없는 인기는 그에게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에요. 평범한 직장에 다니시는 부모님에게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나왔어요.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이유도 있죠. 팬덤은 주로 여성 중심이거든요. 게다가 (본인은 쑥스럽겠지만) 외모가 수려해요. 피아노 치는 남자의 전형적 이미지인 백면서생 같은 얼굴, 긴 손가락, 정제된 움직임을 지녔죠. 환상이 현실로 강림했으니 당연히 팬덤이 생기죠.”

나는 왜 조성진을 좋아할까. 왜 새벽에 팬 카페에서 조성진 퀴즈를 풀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조성진에게 빠진 때는 그의 영상 인터뷰를 본 후였다. ‘파워 내향형’이 있다면 그가 아닐까 싶은 표정과 답변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귀한 연주를 하고 싶어요. 200석 홀이든 카네기홀이든 늘 같은 자세로 연주했어요. 제 연주를 마지막으로 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태어나서 소리를 지르며 화내본 적 없어요. 감정은 말보단 음악으로 표현해요.” 평소 인터뷰를 꺼리는 조성진이지만 피아노 조율사인 이종열 선생이 <조율의 시간>을 출판했을 때는 바로 나섰다. “저는 음악이나 음색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조율해주시면 피아노 음에서 빛이 나는 느낌이에요.” 진짜 톱클래스가 그러하듯 담백한 유머까지 있다. 열두 살의 조성진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으냐고 묻자 “페이스북이 엄청 유명해질 거라고요”라고 말했다. 열심히 하라든가, 적어도 봉준호 감독처럼 “건강을 생각해서 잠을 자라”도 아니었다.

조성진의 멋진 면면은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었다. 팬덤은 SNS와 미디어가 그를 세세하게 다루면서 더 공고해졌다. ‘깡’도 심폐 소생한 요즘 아닌가. 그의 아름다운 공연 실황을 언제든 찾아볼 수 있고, 팬들의 지속 가능한 덕질을 위해 유튜브에는 꾸준히 콘텐츠가 올라온다. 최근 <방랑자> 관련 뮤직비디오까지 찍었다. 조성진이 자꾸만 타임 워프 하는 난해한 구성으로 ‘백남준 헌정 비디오’란 댓글이 달렸지만 ‘조성진이어서 고맙다’는 반응이다. 조성진이란 귀인이 온라인 덕질로 드러날수록 팬덤은 더 커지고, 이런 환경에서 새로운 클래식 스타도 나올 거다. 공연 예매는 여전히 힘들겠지만.

    피처 에디터
    김나랑
    일러스트
    박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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