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검의 선한 영향력
일주일 전부터 폭우가 예고된 날. 우리는 창덕궁 후원 한가운데 있었다. 조선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왕이 거처했던 창덕궁. 그중 비원으로도 불리는 후원은 왕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겼던 곳이다. 때로 연회를 열고 활쏘기를 즐기기도 했던 곳. 여름 한복판에 들어선 수풀은 짙은 초색을 띠고 있었다. 쏙독새와 검은등뻐꾸기가 울었고, 바람이 불 때마다 400년 된 은행나무에서는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졌다.
사실 창덕궁에서 화보 촬영은 박보검이 원했던 것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어요.” 2016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세자 이영은 아버지와 함께 이곳을 걸었다. “당시 시청률 공약으로 경복궁에서 팬 사인회를 여는 감사한 기회를 가진 적이 있어요. 극 중에서 아름다운 한복 여러 벌을 입으면서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더욱 많아졌고요. 세계적으로 많은 분이 보는 잡지 <보그>를 통해 한국에 이런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평소 실제로도 궁에서 산책을 즐긴다고 가만가만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중에 알려줘서 알았지만 그는 수어로 ‘감사합니다’를 연습해와서 사진 촬영 중 손동작으로 표현했다. 그동안 받았던 사랑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혼자만의 암호를 심은 셈이다. 그런데 말이다.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예보와 달리 화보 촬영이 진행될수록 먹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급기야 햇살이 쏟아지더니, 새하얀 구름이 흐르기 시작했다! 연꽃잎으로 가득 덮인 연못에 거울처럼 선명하게 정자가 비쳤다. 진흙 속에서 자라는 연꽃의 꽃말이 “당신은 참 아름답습니다”였나. 나는 박보검의 갸륵한 마음에 하늘이 감동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다. 이어서 웃지는 않았다. 실제로 조금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보검은 8월 말 입대를 앞두고 있다. 불가항력적 공백기에 ‘나를 잊지 말아요’ 편지를 남기듯 세 작품을 내리 촬영 중이다. 현실의 벽에 절망하지 않고 꿈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들의 드라마 <청춘기록>, 인류 최초의 복제 인간과 전직 정보국 요원의 동행이 펼쳐지는 영화 <서복>, 세상을 떠난 소중한 사람들과 영상통화로 다시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원더랜드>다. 술 장식이 흔들리는 가마가 아닌, 매끈한 흰색 승합차에서 내린 박보검은 푸른색 스트라이프 셔츠에 짙은 네이비 쇼츠 차림이었다. 드라마 <청춘기록>의 패션모델 사혜준 역을 위해 짧게 잘랐다는 헤어스타일은 한여름 파도 소리처럼 경쾌했고, 지금이 7월임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피부는 보기 좋게 그을려 있었다. “세 작품의 캐릭터가 다 달라요. 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공백 기간에 ‘어, 박보검이 이런 역할도 하네?’, ‘이런 모습도 있었네?’, ‘또 다른 모습을 보고 싶네?’ 생각하실 수 있는 작품이에요.” 새로운 물결 앞에서 박보검은 다소 들뜬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감은 생긴 상태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채워지고 있어요. 예전보다 색다르거나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 남들이 기대하는 나의 모습이 있잖아요. 그 부분을 충족시키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세 작품 모두 이 기준에 부합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의 부재 사이, 우리는 의외의 박보검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너무나 과거가 되어버렸지만, <응답하라 1988>,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전 국민이 박보검을 알기 전, 될성부른 배우를 발견하는 밝은 눈을 가진 주변 기자들이 가장 자주 입에 올렸던 배우가 박보검이다. 팟캐스트 ‘JJ 팝콘토크’를 진행하는 영화 칼럼니스트 홍수경은 <차이나타운>에서 남녀 역할을 전복한 누아르 실험은 허세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박보검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 선배는 같은 영화에서 추레한 체크무늬 셔츠를 걸친 채 구부정한 어깨로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엉엉 울었다는 얘기를 두고두고 들려줬다. 또 다른 동료 기자는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서 사이코패스 변호사로 등장한 박보검의 이율배반적 얼굴에 대해 일주일에 두 번씩 찬양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 <명량>에서 박보검의 얼굴을 기억한다. 잿빛 얼룩 범벅으로 누가 누군지 구분이 가지 않는 어두운 거북선에서 박보검만 보였다. 처연했고 아름다웠고 마음이 쓰였다. 당시 우리는 모이기만 하면 과연 이 배우가 언제 우리의 날카로운 촉을 증명해줄 것인가 기꺼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모두의 박보검이 되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셰프 면접을 보러 온 박보검을 본 권나라(오수아 역)는 벚꽃이 흩날리는 교정에서 첫눈에 사랑에 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대박!” 특별한 행동을 했던 건 아니다. 박보검은 그저 고개를 돌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건넸다. 특별 출연이었고 분량은 몇 분이 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드라마 <남자친구> 종영 후 1년여 만에 브라운관에 등장한 그를 보며 다시 한번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박보검은 여전히 존재가 이유가 되는 배우라고. 존재만으로 타당하지 않은 상황도 모두 설득해버린다고.
박보검이 선사하는 주목의 순간은 그저 외모가 출중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박보검에게는 진실한 에너지가 있다. 몸은 지축보다 곧고 자세는 올바르다. 심장을 재료 삼아 빚은 듯한 솔직한 눈과 수많은 감정을 일부러 덮어버린 듯한 무표정이 있다. 그리고 얼굴에는 종종 따뜻함과 차가움,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같은 상반된 두 가지 감정이 부지불식간에 오고 간다. 그러니까 주목의 순간은 외양 아래 무엇이 있을지 품게 되는 궁금증일 수 있고, 완전무결하고 반듯한 외양에 대한 끌림일 수 있다. 혹은 성선설을 믿게 하는 순수함으로의 회귀 본능일 수도 있다. 신기한 건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들게 한다는 사실이다(싱글곡 ‘별 보러 가자’에서 말 그대로 별 보러 가겠느냐고 묻거나, 음료 광고에서 ‘나랑 여행 갈래?’ 물으면 나도 모르게 ‘그래!’ 하고 대답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박보검은 작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배우다. <효리네 민박 2>, <꽃보다 청춘 아프리카>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배려심 깊은 모습과 주변에서 목격한 미담이 쌓이며 착하고 바른 박보검 ‘상’이 만들어졌다. (8년 반 동안 박보검과 함께 일해온 매니지먼트 담당자는 미담을 추가로 들려줬다. “보검이는 빨대를 씹지도, 운동화를 꺾어 신지도 않아요. 정리 정돈도 완벽해요. 해외 투어를 가면 마지막에 두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스태프들 방까지 점검합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흐트러지지 않아서 몰래카메라를 찍는 재미가 없어 이제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다.) <구르미 그린 달빛>과 <남자친구>는 박보검 ‘상’이 조선 시대에 왕이 되었을 때, 2019년 여행지에서 한 여인을 만났을 때 벌어지는 드라마처럼 보였다. 그리고 누구도 그에게 왜 연기 변신을 하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이미지를 다양하게 확장해 독자적 캐릭터로 발전시켰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아서’ 로맨스물이나 성장 드라마로 향했던 선택은 순간의 진심으로 모여 박보검의 청춘을 다양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영화 칼럼니스트 홍수경은 박보검이 선사하는 판타지가 과거 배우들과 다르다고 말한다. “박보검이 연기한 캐릭터 대부분은 거짓과 위선의 그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인물이에요. 잘생기고 온화하고 사려 깊은 고전적 캐릭터지만 원빈, 현빈, 조인성 등의 미남계 선배들과 달리 남성적 허세와 자의식에 기대지 않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상대에게 충실하고 우정과 사랑의 가치를 믿는 그의 선량한 캐릭터는 상처를 받을 때마다 비극적 분위기를 고조시켜왔어요. 이때도 ‘멋있다’거나 ‘슬퍼 보인다’는 외적 평가를 하게 만들지 않아요. 그저 눈물을 흘리는 마음에 공감하게 만들죠. 슬픔 이상의 아픈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 분노나 원한이 섞이지 않은 순수하게 아픈 연기. 하지만 전혀 나약해 보이지 않습니다. 박보검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천편일률적인 남자 캐릭터 다양화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박보검 스스로는 “스스로 공감하고 이해해야만 연기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해왔다. 선한 영향력이라는 궁극적 목표 아래 크고 작은 선택을 해왔다고도 했다. “제 작품을 보며 감동과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살면서 내 옆의 소중한 사람에 대해 무관심할 때가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잊지 말고 살자는 메시지가 모든 작품에 조금씩 있었던 것 같아요. 큰 카테고리가 가족이라고 생각했고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혹은 그냥 웃기 위해서 지나가는 작품이 아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작품이면 좋겠어요. 전 악역도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데 무차별적으로 죽이는 역할을 맡고 싶지 않아요. 관객이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나서 찝찝하거나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면 저 역시 그럴 것 같거든요.”
그는 겸손하고 신중하다. 화사하게 생동하지만 젊은 배우들에게 흔히 보이는 호기로움은 전무하다. 다만 그는 변화하는 중이다. 지금 그의 화두는 솔직한 소통이다. “모든 게 다 괜찮다, 싫어도 괜찮다고 하는 예스맨이었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해하고 싶지 않아서 제가 배려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좋고 싫음을 확실히 말해야 상대방이 정확히 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배려가 당연시될 때 스트레스가 생기더라고요. 확실하게 제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 중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청춘기록> 사혜준은 박보검에게 소통 방식을 알려주는 캐릭터다.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로부터 배우는 점이 많았어요. 사혜준은 굉장히 솔직하고 이성적이고 독립적이에요. 주관이 뚜렷해서 하고 싶은 말은 정확하게 전달하죠. 이 인물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는 태도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착한 것과 솔직한 것은 다르다. “모델 역할이다 보니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해요. 런웨이를 걷는 기술도 배웠는데 예전만큼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고 들었어요. 프리하게, 캐주얼하게 혹은 심플하게 걷는다고요. 런웨이 영상이나 잡지 화보를 찾아보고 함께 출연하는 모델분들 보면서 노력하고 있어요.”
미지의 영역은 역시 박보검의 양면성이다. 캐릭터로서 양면성이 전면에 드러날 영화는 <서복>이 될 것 같다. 이용주 감독은 말한다. “한없이 맑고 순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 날카롭게 베일 듯한 날 선 눈빛이 양면성을 가진 서복 역에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처음부터 보검 씨 캐스팅에 노력했고, 다행히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평소 상상해온 복제 인간의 외모는 아닌 듯했다. 박보검은 의자를 끌어당기며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으로 서복에 대해 전해주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고 인간의 욕망이 과하면 좋지 않다는 메시지도 담겨 있어요. 생명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서복의 외모는 반듯하고 건강해요(웃음). 평온할 서에, 복 복. 서복은 평온하고 조용히 오래오래 살라는 뜻이에요. 인물의 감정 기복이 크지 않다 보니 세심하게 연기하기가 어려웠어요. 감독님, 공유 형님과 함께하던 순간이 공부가 되던 현장이었어요.” 배우려는 태도는 한결같다. “공유 형님은 순간에 몰입하는 힘이 크시더라고요. 화내는 연기는 어떻게 하냐고 조언을 구한 적이 있어요. 그냥 자신감 있게 소리를 확 지르면 그 감정이 쭉 이어진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사실 앞서 쌓아놓은 감정이 있어야 하는데 순서대로 촬영할 수 없다 보니 감정을 표출할 때 부끄러운 경우가 생겨요. 그때도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죠.”
이용주 감독은 박보검이 서복 캐릭터에 더한 색깔을 <보그>에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한편으로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로 보이길 바랐습니다. 어떨 땐 소년 같고, 어떨 땐 너무 어른스러운. 맑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가도, 그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제압하는. 상대방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는 배우라고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자체적으로 가진 설득력이랄까요? 또 한편으로 예민한 감성이 만들어내는 번득이는 순간이 섬뜩할 때도 있었죠. 저렇게 착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런 서늘함이 뿜어 나올까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본능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는 배우였어요. 테이크가 거듭될 때 어느 순간 전혀 생각지 못한 표정 혹은 어투로 ‘억’ 하게 만들었어요. 감독인 저도 ‘이 장면이 이런 거였구나’ 싶었죠. 절대 늦는 법 없고, 철저히 준비하고, 진지하게 에너지를 쏟는 사람. 항상 웃는 모습으로 모든 스태프와 어울리는 배우. 한마디로 예의 바른 청년. 정말 모두가 좋아하는 배우였습니다.”
이런 성격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박보검은 정말 모두가 사랑하는 배우다.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태도도 가지고 있다. (군대 가기 전까지 해야 할 일로 감사한 분들을 찾아뵙고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보그〉 촬영 현장에서 일어난 미담을 추가한다면 매 컷마다 스태프들이 모여 단체 사진을 찍길 바랐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고,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 혹시라도 스태프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세심히 살폈다. 덕분에 지금 내 손에는 시시덕거리는 얼굴과 눈을 감고 있는 한심한 얼굴과 굳이 V자를 그리며 즐거워하는 얼굴 사진 여러 장이 쥐어져 있다. MBTI 유형을 묻자 박보검은 휴대전화를 뒤져서 자신의 유형이 ESFJ-A임을 알려주었다. ‘사교적인 외교관’ ESFJ-A의 특징 중 배우에 도움이 되는 성격은 자신감이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피아노 치고 찬양가도 불렀어요. 무엇보다 진짜 꼬맹이였을 때부터 아버지가 캠코더로 모든 순간을 기록해주셔서 카메라가 어색하지 않았어요. 춤추고 재롱 부리길 좋아하는 자신감은 잘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리고 누군가를 만났을 때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가서 손을 건네는 조그만 여유가 도움이 되었어요.”
박보검은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배종옥과 드라마 <원더풀 마마>에서 함께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엄마와 아들로 나왔어요. 선배님의 눈을 보고 연기했는데 어느 순간 진짜 엄마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았던 적이 있어요. 그때 이래서 연기가 진짜 재미있구나 느꼈어요. 그런 순간이 작품마다 한 번씩 있었어요. 굉장히 찌릿찌릿하다고 해야 하나. 눈을 보고 있을 때 감정이 막 올라오고, 상대 배우가 웃고 있을 때 웃음이 같이 나는 그런 순간이요.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고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낄 때도요.”
알려져 있다시피 박보검은 원래 가수 지망생이었다. 소속사의 권유로 배우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OST나 싱글 음원도 발표하고 팬 미팅에서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같은 엄청난 무대를 선보이곤 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K-팝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을 주고자 4년째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 MC를 맡고 있기도 하다. 수준급 피아노 실력이라고 표현했더니 “코드 정도 잡을 수 있는 정도”로 정정한다. 얼마 전 우리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해 ‘내가 많이 사랑해요’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그를 보았다. 노래하는 이승철과 세심하게 호흡을 맞추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가사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달이 가슴을 가득 채우는 듯 위로가 찾아온다. 정말이지 신비한 능력이다!
그의 공간, 방 한구석에는 야마하 전자 키보드가 있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싶을 때 피아노를 연주해요. 새로운 곡을 끄적끄적 녹음하기도 하고요. 떠오르는 멜로디는 많아요. 코드 진행하고 피아노로 연주하면 하나의 곡이 완성돼요. 그럴 때 음악 하는 순수한 기쁨이 찾아와요. 그런데 만들어놓고 자꾸 ‘어디서 들어본 멜로디인가?’ 하죠(웃음).” 최근 관심사는 재즈 피아노다. “재즈 피아노 연주할 때 사용하는 스킬이 있어요. 그 기술을 다른 장르에 적용하고 ‘오, 연습하길 잘했네. 잘 어울리네’라며 또 한 번 배움의 기쁨을 느낍니다(웃음). 어릴 적부터 피아노를 쳐서 그런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면 피아노는 꼭 가르치고 싶어요. 피아노를 칠 줄 알면 다른 악기 배울 때 수월하더라고요.” 8월 10일 데뷔일에 맞춰 박보검은 싱글 ‘All My Love’를 발표한다. “샘 김 씨와 작업했어요. 좋아하는 아티스트라 먼저 의뢰를 드렸는데 흔쾌히 받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올해로 데뷔한 지 9년이에요. 입대하기 전에 팬분들께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완벽주의자 박보검의 귀여운 집착을 공개하자면 라임 맞추기다. “센스 있게 위트 있게 맞추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보그> 8월호는 며칠에 나오나요? (7월 20일이라 답하자) 그러면 이 기사도 7월 20일 7시 20분에 공개됐으면 좋겠네요(웃음).”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며 피아노까지 연주하는 박보검은 대체 못하는 게 뭔가. 유튜브 게시물 아래 늘 달리는 댓글이다. ‘귀하고 보배로운 검(보검의 뜻)’의 단점은 도저히 없단 말인가. 우리의 난제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연기”라고 대답했다. “연기는 정말 할수록 어려워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많이 부족하죠. 제가 모든 걸 다 잘하지는 않아요. 늘 아버지께서 연기도, 노래도, 피아노도 특출하게 잘하지 않으니 겸손하라고 말씀하세요.” 가족과 대중이 느끼는 온도 차가 박보검을 더 나은 자리로 이끌어주리라 믿는다. “작품마다 제가 다 다른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온전히 제 노력으로 걸음걸이, 사소한 행동 하나 신경 쓰면서 다르게 접근하고 있어요. 20대 마지막으로 세 작품을 찍었는데, 30대에는 제 연기가 어떨지 궁금해져요.” 마지막으로 그로부터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한 단어에 대해 물었다. 야망이 있는가에 대해. “있어요! 할리우드에서 저를 알아봐줬으면 좋겠어요. 저라고 왜 안 되겠어요. 그만큼 열심히 준비하고 내실을 닦아놓고자 합니다. 세계 평화라는 야망도 품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모든 사람이 평화로웠으면 했어요.”
드라마 <청춘기록>을 앞두고, 박보검은 다시 ‘청춘’이라는 큰 단어 앞에 섰다. 가장 깊숙한 후원에서 시작한 우리의 촬영은 낙선재로 이어졌다. 황실의 마지막 역사가 담긴 그곳에서 그는 마치 과거로부터 현재로 빠져나오듯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가장 오래된 과거의 한가운데에 선 박보검에게서는 오히려 미래의 기운이 흘렀다. 수년 전 ‘파릇한 녹음이 뿌리 내린 듯한 느낌이 드는 지금’이라고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니 후회 없는 순간을 사는 것’이 청춘이라고도 말했다. 곧 원하던 표현을 찾은 박보검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는 청춘이 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요. 모든 순간순간이 청춘 같아요. 돌아오지 않을 걸 아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해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되게 슬프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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