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빈이 떠나보낸 것, 받아들인 것
Gone and Come.
4년 만의 복귀입니다. 화보 촬영을 거의 하지 않는데, 이번엔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나요? 쉬면서 돌아보니 20대 제 모습이 거의 없더라고요. 출연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사진으로도 지금의 나를 남기고 싶었어요.
모델 출신인데, 화보 촬영장에는 어떤 마음으로 오나요? 고향에 가는 기분이에요. 편안하죠. 화보는 컨셉을 인지하고 옷도 살피고 사진가의 스타일도 파악해야 하는데, 오늘은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요.
영화 촬영장에선 어떤 모드로 전환되나요? 최동훈 감독의 차기작 <외계인> 촬영 중인데, 첫 장면이 궁금합니다. 낯을 가려서 첫 촬영에 많이 긴장해요. <외계인>의 첫 장면은 4~5년 만이라 더 그랬고요. 감독님께서 그나마 편하게 할 수 있는 장면을 골라주셨지만, 전날 밤에 잠을 거의 못 잤어요. 다행히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부분이 있더군요. 이전에 맡았던 촬영장의 냄새, 공기, 분위기가 살아났어요.
<외계인>의 내용은 비밀에 부친 상태라 영화 관련 질문은 하지 않을게요. 지난해 11월 청룡영화상 시상자로 공식 복귀했어요. 그해 12월 팬 미팅을 가졌고. 그 겨울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좋은 겨울이었어요.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감사하고 행복하고 설렜죠. 색으로 표현하면 분홍이에요. 그래서 팬 미팅 포스터나 조명에도 분홍을 많이 썼어요. 분홍도 어떤 농도인지에 따라 달라 신중히 골랐고요.
최종 선택한 색은 어떤 분홍인가요? 컴퓨터에서 색깔 농도 팔레트를 켜고 골랐는데, 이름은 모르겠어요. 마음에 가까운 색을 골랐을 뿐이죠.
평소에 기분이나 상태를 색과 연결해 생각하나요? 그럴 때가 많아요. 추억도 색으로 기억하고, 사람을 만나도 특정 색의 인물로 받아들이죠. 말로 묘사하면 잘못 전달될 우려가 있지만 특정 색을 말하면 받는 느낌이 다들 비슷할 것 같아요. 그래서 언어보다 색으로 표현하는 것 같아요.
요즘 기분은 어떤 색인가요? 하늘색. 아이보리 같기도 하고. 맑고 편안하고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 같죠.
저는 인터뷰할 때 인터뷰이의 위키백과, 나무위키, 팬들의 정리 블로그 등을 읽어보고 와요. 이 사람이 어떤 경력을 쌓아왔는지 한눈에 보기 쉽거든요. 물론 틀린 내용도 많아요. 본인의 일대기를 정리한 자료를 읽어본 적 있나요? 읽어봤는데 틀린 내용이 많더라고요. 주로 기사나 인터뷰에서 발췌했으니 모두 맞을 순 없죠. 읽으면서 특정한 감정이 들진 않아요.
지난여름 어느 인터뷰에서 “20대 때보다 차분해졌다. 요새는 집 앞에 있는 나무가 뭔지 찾아본다”고 말했어요. 일상의 속도가 늦춰졌나요? 건강에 좋다고 해서 밥 먹는 속도가 느려졌어요(웃음). 그것 말고 속도의 변화는 모르겠군요. 그저 자연에 아름다움을 느껴요. 의식적으로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봐요. 갓난아기를 볼 때처럼 마음이 좋아지거든요. 미세먼지 많은 날은 안타깝지만 요즘엔 대체적으로 맑잖아요. 오늘도 한참 올려다봤어요. 20대 때는 둔했는데 이젠 날씨의 영향을 받아요. 단순하게 얘기하면 해가 쨍하면 컨디션이 좋고 비가 내리면 조금 가라앉죠.
자연과 관련한 취미가 생겼나요? 집에 작은 마당이 있어서 자주 관찰해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떤 식물인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어요.
마당의 수종은 뭔가요? 많아서 다 언급하기 힘들군요. 최근에는 옥잠화에 매료됐어요. 라일락 향을 좋아하는데 옥잠화가 풍기는 향이 비슷해요. 비비추와 비슷하지만 잎 모양이 조금 다르고 8월쯤 꽃 피우죠. 내년 여름이 기다려져요. 잠깐 피고 금방 지지만 기다림이 소중하고 즐겁죠.
“20대는 미래를 살았고, 목표를 위해 나를 채찍질했다. 현재를 생각해야 더 행복한 것 같다”고 했어요. 미래의 목표가 수정되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10대 때는 연기하기 전이니까 모델이 되어 모델학과 교수가 되고 싶었어요. 20대는 더 많은 작품을 하고 싶었죠. 이제는 주어진 것, 눈앞에 놓인 것에 마음을 주고 싶어요. 그동안 감사하게도 즐거울 일이 많았는데, 그것에 충실하기보다 먼 목표에 집중했거든요. 쉬면서 생각해보니 그랬던 태도가 아쉽더라고요.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행복하고 싶어요.
복귀 후 훨씬 얼굴이 편해 보입니다. 아주 편합니다.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요. 이전엔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그때마다 흔들렸지만 더는 그러지 않아요.
타인과 대립하거나 갈등을 겪으면 어떻게 행동하나요? 일부러 나를 불편하게 하려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원한을 갖지 않는 한(웃음). 특히 일하다 부딪치는 부분은 각자 최선을 다하려다 생각이 달라 발생하는 불편이에요. 잘하려다 보니 생긴 문제라고 생각하니 편해졌어요.
지속적으로 지켜지나요?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 계속 노력하죠.
코로나19로 보통의 삶이 깨지기 쉬워요. 어떻게든 지키려 노력하는 일상이 있나요? 삼시 세끼는 꼭 챙겨 먹어요. 쉬워 보여도 부지런해야 가능하죠. 특히 밤샘 촬영하고 아침에 귀가하면 잠들기 바쁘죠. 이젠 꼭 식사하고 소화시킨 뒤 자려고 해요. 말씀드렸듯이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보고, 일주일에 4~5일은 운동을 해요. 모두 저를 위한 약속이죠.
운동은 웨이트 위주로 하나요? 그렇긴 한데, 산책도 해요. 거창하게는 아닐지라도 잠깐이라도 집 주위를 걷고 근처 나무를 살피죠.
시기가 시기니만큼 사람들이 본론적인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끝까지 잃고 싶지 않은 것은 뭔가요? 품위? 목표? 사람들? 제 자신을 사랑하는 거요. 쉽지 않기에 매일 복기해요. 그간은 저를 많이 못 챙겼어요. 남은 잘 챙기면서 자신에겐 가혹하고 쌀쌀맞았죠. ‘이것도 못해?’라면서 벽으로 몰아붙였어요. 이젠 저를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목표를 먼 미래에 두면 자신을 채근하게 되죠. 가끔 남을 위해 사는 거 같았어요. 지금이라도 저를 안 챙겼다는 자각이 들어 다행이에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게 내 행복이 우선이에요.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역시 집이죠.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있잖아요. 내가 직접 고른 가구가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오가는 풍경이 있죠.
인스타그램에 갓난아기 때 사진을 올린 적 있어요. 저는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이 없어요. 아마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일 거예요.
SNS 계정을 만들 생각은 없나요? 그런 거 잘 못해서 안 만들려고요.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유년의 기억이 있죠. 행복했건, 두려웠건, 성인이 된 지금도 떠오르는 유년의 인상적인 장면은 뭔가요? 대여섯 살 때 여동생과 놀이터의 큰 나무 아래서 놀았어요. 나무에서 송충이 여러 마리가 어깨에 툭 하고 떨어졌던 감각이 기억나요. 왜 그 기억인진 모르겠군요.
대여섯 살이면 아마 최초의 기억이겠군요. 아, 그때쯤 집에 있는 플라스틱 테니스 채로 어항을 깼어요. 신발장 옆에 어항이었는데 물이 한꺼번에 쏟아졌어요. 팔딱거리는 금붕어의 장면도 생생하고.
어머니께 많이 혼났겠군요. 이상하게 혼난 기억은 안 나요. 물이 끝도 없이 쏟아졌던 장면만 생각나는군요.
소년일 때 어떤 어른을 꿈꿨나요?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죠? 모든 면에서 강한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힘도 세고 덩치도 크고 일도 엄청 잘하는 남자. 중학교 때까지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요? 그 기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여러 면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구체적인 것은 저도 찾아가는 중이에요.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는 뭔가요? 나와의 공감, 타인과의 공감. 공감은 사랑으로 바뀌는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자꾸 잊어버려 되뇌어야 해요.
나와의 공감은 어떤 의미죠? 나를 이해하고 공감한 뒤에야 남을 돌볼 수 있어요. 쉽진 않아요.
각자의 발언만 하는 요즘에 필요한 자세군요. 자신에게 가장 확신을 갖는 부분은 뭐죠?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오늘보다 더 잘 살 자신이 없어요.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산다는 점은 확실해요.
어떤 식으로 최선을 다하죠? 우선 일을 즐겁게 하죠. 오늘도 꽤 많은 옷을 갈아입었지만 전혀 힘들지 않고 재미있기만 해요.
이전에는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닌 것 혹은 반대는 뭔가요? 몸에 좋지 않은 것들을 멀리해요.
아까 <보그> 유튜브 인터뷰에서 바라는 점을 물어보니 “없는 것 같다”며 곤란해했죠. 그럼에도 욕심내는 부분은 없나요? 욕심을 버리려 하는 게 욕심 같아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야 하는데 말이죠.
최근 인상적인 뉴스나 사건이 있나요? 인상적인 인물은 있어요. <외계인> 영화 촬영에서 조명 팀의 막내가 저와 띠동갑이에요. 어딜 가나 늘 제가 막내였는데 어느새 띠동갑 연하가 현장에서 일하더군요. 그제야 주변을 살피니 거의 저보다 동생들이라 놀랐어요.
세월이 빠르죠? 맞아요(웃음).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겨요.
서른둘입니다. 배우로서 30대를 어떻게 이끌고 싶나요? 재작년, 작년과 달라요. 먼 훗날의 계획보다 지금의 저를 있는 그대로 충실히 보여드리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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