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용기 타고 명의 찾는 상위 1%의 웰니스
전용기를 타고 명의를 찾아 전 세계로 메디컬 쇼핑을 다니는 삶. 세계 상위 1%의 웰니스 케어에 관한 이야기다.

깔끔하게 정돈된 손톱, 손목 위의 청키한 다이아몬드 시계와 팔찌, 슈퍼카. 코로나19 이후 이런 물질은 슈퍼리치의 증빙으로서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또 다른 의미로 ‘물질(젊고 매끈한 육체의 회복, 이를 향한 욕망의 끝을 보여주는 데미 무어와 마가렛 퀄리의 최신작 <서브스턴스>를 떠올려보라!)’의 자리를 대체한 슈퍼리치의 최근 관심사는? 최고 권위의 의사에게 프라이빗하게 접근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들은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 어느 명의에게나 패스트 트랙으로 접근 가능하다. 이것이 2025년 새로운 지위의 상징인 셈. ‘건강=부’라는 개념은 이제 ‘부=건강’이라는 역명제로도 성립될까?
100세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장수는 전 세계적으로 여전한 ‘이슈’다. 그러나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오래, 풍요롭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 ‘건강 수명’이 진짜 이슈. 전 세계의 부호들은 30~40대부터 이 건강 수명을 위해 차곡차곡 보험 들듯 은밀하게 관리하고 있다. 런던의 비아비 클리닉(Viavi Clinic)은 장수 관점의 웰니스 케어를 제공하는 프라이빗 의원이다. 선제적 건강관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사빈 도나이(Sabine Donnai) 박사에게 일회성 진단과 컨설팅을 받는 데 지불할 돈은 최소 2,500만원대부터. “우리는 포뮬러 원 자동차처럼 정밀하고 빠른 속도의 건강검진을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수를 위한 전략까지 제공합니다. 암, 심장 질환, 알츠하이머를 예방하기 위한 초개인화 전략이죠.” 이를 위해 혈액부터 대변, 침, 피부와 머리카락, 수면부터 호르몬 검사, 영상 및 뇌 지도 등을 모두 융합해 현재, 중기, 장기 플랜을 도출한다. “증상이 나타나기 15~20년 전에 알츠하이머 바이오마커(질병을 모니터링하고 예측할 수 있는 생물학적 지표)를 발견할 수 있어요. 알츠하이머의 90%는 생활 방식의 결과이고 10%만 유전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춰 구체적으로 대비하는 거죠.” 누군가는 정보력과 자본으로 알츠하이머를 선제적으로 예방할 때 누군가는 병의 그림자가 엄습하는지도 모르고 있다니 씁쓸해진다.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노화 연구 교수 마이클 사그너(Michael Sagner) 박사는 스포츠 의학 분야의 권위자로 24시간 맞춤형 서비스와 일반의, 심장 전문의가 상주하는 노화 관리 병원 사레나 클리닉(Sarena Clinic)을 운영한다. “작은 동네 의원은 우리 몸의 시스템에 작은 이상이 생겨도 심각한 증상으로 발현되지 않는다면 정밀하게 살펴보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건 일반의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동네 의원엔 그럴 만한 충분한 시간과 자원이 없기 때문이죠. 그들은 당장 환자가 찾아온 목적인 질환을 치료하는 게 더 급하니까요.” 그의 병원 멤버십 리스트엔 고액 자산가와 유명 인사가 포진해 있다. “그들은 연간 계약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슈퍼리치들은 고액을 지불해야 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다고 여겨요. 합리적인 가격이라면 오히려 그들은 그 병원이 ‘가짜’라고 의심하죠. 아이러니하지만 말입니다.” 마이클 사그너 박사는 농담 섞인 어조로 덧붙인다.
더 특별한 메디컬 경험을 하고 싶은 슈퍼리치들은 몰디브의 소네바 푸시(Soneva Fushi)에서 열리는 연례행사인 소울 페스티벌(Soul Festival)에 참여하기 위해 해마다 전용기에 몸을 싣는다. 이 행사엔 혈액학자이자 줄기세포 전문가 카타리나 르 블랑(Katarina Le Blanc) 박사, 내분비학자이자 마이크로바이옴 전문가 잭 부시(Zach Bush) 박사, 퓰리처상 후보에 오른 작가이자 플로우 게놈 프로젝트 창립자 제이미 휠(Jamie Wheal) 등 저명한 의학 전문가들이 주최 측으로 참여한다. 2인 기준 1박에 470만원 정도. 게스트는 관심 있는 분야의 최고 명의와 가까이 교류하고 건강 로드맵에 대한 코칭을 받을 기회를 얻는다.
이비자 식스 센스 리조트에서 열리는 알마 페스티벌(Alma Festival)도 부유한 웰니스 신봉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다. 상위 1%는 아니지만 나도 사흘 동안 흥미진진한 그 세상을 잠시 가까이에서 경험해볼 기회가 생겼다. 탄탄하게 정리된 보디라인 위로 매끈하게 흐르는 애슬레저 룩, 하나같이 남다른 피부 광채와 아우라를 발산하는 이들 사이에서 자본의 향기가 진동한다. 호르몬 전문가 제시카 셰퍼드(Jessica Shepherd) 박사의 컨설팅에 이어 호흡법 세션을 통해 몸의 정렬을 깨달으며 어떤 위시 백을 손에 넣은 것보다 더 부자가 된 듯한 황홀함을 느꼈다. 전문가들은 이런 여행과 메디컬 경험을 접목한 선구적인 방식은 20~30년 안에 일반화될 거라고 예견한다.
장수에 대한 열망은 미국 부자들도 빠지지 않는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공식적인 집계는 없지만 업계가 추산한 장수 클리닉은 최대 800개에 달한다. 그리고 이런 클리닉의 서비스는 대부분 건강보험 정책의 혜택 범주에 들지 않지만 슈퍼리치들은 연간 10만 달러 이상의 회원비를 기꺼이 지불한다. 고급 피트니스 센터인 이퀴녹스(Equinox)는 혈액검사와 오우라 링, 개인 트레이너, 수면 코치 및 영양사의 컨설팅을 포함한 장수 프로그램을 약 6,000만원에 제공한다. 또 소셜 웰니스 클럽 컨티넘(Continuum)은 약 1,500만원의 월 회비로 다양한 운동 프로그램과 영양 컨설팅, 고압 산소 테라피, 히말라야 소금 사우나 등의 서비스와 함께 고객이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이어간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전용기를 타지 않아도 노르웨이 어느 웰니스 리조트를 찾은 듯한 기분을 낼 수 있는, 그야말로 별천지다.
슈퍼리치의 행선지 리스트에는 한국도 포함되어 있다. 2023년 한국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60만 명 이상. K-메디컬이 떠오르며 명동의 뉴오리엔탈호텔은 일부 층을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 맞춤 케어를 제공하는 외국인과 VIP를 위한 게놈 기반의 건강 증진 클리닉 센터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명동 한복판의 지리적 이점을 누리며 메디컬 서비스와 숙박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도록 말이다. 서울아산병원도 특급 호텔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외국인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숙박은 물론 컨시어지 서비스를 논스톱으로 제공한다. 외국인 환자들은 피부과, 성형외과, 탈모 병원에서도 큰손으로 통한다.
한국관광공사는 1인당 씀씀이가 일반 여행객의 50배를 넘는 중동의 부호에 특별히 공을 들인다. “카타르와 두바이의 왕족과 상류층이 말 그대로 시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습니다. 줄기세포 이식, 안면 리프팅이나 리쥬란 힐러 시술 등을 주로 선호하죠. 홍보, 마케팅을 따로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오는지 신기할 정도예요. 병원에서도 종교적, 문화적 특성을 공부하고 신중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외국 관광객의 성지로 입소문 난 누클리닉 전수현 실장의 말이다. 외국어에 능통한 의사가 상주하는 한남동 어느 피부과엔 한국 의사의 정교하고 세련된 시술 손맛을 잊지 못한 ‘월클’ 레전드 모델이 전용기를 타고 주기적으로 내원한다고 입소문 났을 정도! 국내외 상류층 고객이 비밀스럽게 찾는 웰에이징 센터도 있다. UN빌리지 내 주택가 한쪽에 위치한 ‘웰니스, 더 한남’. 스포츠 의학 전문가가 데이터로 분석한 초개인화된 운동 프로그램, 디톡스 프로그램, 면역 개선 프로그램 등을 통해 건강 수명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의 슬로 에이징 노하우는 30명의 회원과 그 가족만 이용할 수 있도록 소수의 멤버십제로 공유하고 있어요. 액티브 시니어와 그 가족이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하이엔드 커뮤니티 역할을 하죠. 우리의 서비스를 잊지 못하는 고객을 위해 두바이와 하와이 지점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웰니스, 더 한남의 손진홍 대표는 말한다.
누군가는 120초의 의사 접견을 위해 대기 번호 60번이 적힌 번호표를 받을 때 누군가는 개인 제트기를 타고 전 세계 명의를 만나러 의료 쇼핑을 다니며 건강 로드맵을 손에 넣는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의료 시스템과 그들의 접근 방식의 괴리는 점점 극명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를 동경하며 박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내가 만난 많은 전문가는 결국 건강이 우리 손에 닿는 데 있다고 언급했으니까. 심층적인 정보와 고도의 개인화된 프로그램이 체중 조절과 적절한 근력 운동, 프로바이오틱스 섭취, 수면, 명상과 호흡, 마음 챙김 등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차고 넘치는 정보를 손에 쥐고 있다. 그것을 취사선택하고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의 문제일지 모른다.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어르신들의 단골 멘트는 과학을 거스를지언정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신체와 멘탈의 미세한 변화는 자신이 가장 빠르게 캐치할 수 있다. 늘 몸의 소리에 예민하게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의 진단과 피드백을 반영해 균형을 지켜나간다면 건강 장수는 어쩌면 수백만 달러를 지출하지 않아도, 힘들여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지 않아도 차곡차곡 포인트처럼 적립될 것이다. 새해다. 뭔가를 결심하고 실천하기 좋은 타이밍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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