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못 생긴 운동화 전성시대

2018.03.28

못 생긴 운동화 전성시대

절정에 다다른 ‘어글리 스니커즈’ 시대. 내 발을 위한 우주선? 아빠가 신던 운동화의 재탄생? 절정에 다다른 ‘어글리 스니커즈’ 시대.

올봄 ‘어글리 스니커즈’ 유행의 정점에 선 루이 비통(Louis Vuitton)의 ‘아치라이트’ 슈즈. 검정 오프 숄더 러플 톱과 실크 베스트, 레몬 컬러 에나멜 가죽 팬츠는 루이 비통, 스트라이프 니트 톱은 미쏘니(Missoni), PVC 핑거리스 장갑은 샤넬(Chanel), 양말은 참스(Charm’s).

“없어서 못 팔아요.” 요즘 브랜드 관계자를 만나면 자주 듣는 이야기다.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은 이렇게 말을 잇는다. “이미 예약이 차 있어서 더 이상 대기를 받지 않아요.”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도 없는 엄청난 인기 아이템은? 전설의 버킨 백? 혹은 클래식 중의 클래식인 2.55 백? 얼어붙은 럭셔리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는 열풍 한가운데 자리한 건 스니커즈다. 그중 아주 괴상하고도 아름다운 일명 ‘어글리 스니커즈’가 대세다.

5년 전만 해도 럭셔리 브랜드에서 만날 수 있는 스니커즈는 미니멀했다. 피비 파일로가 선보인 셀린 슬립온부터 아디다스 스탠스미스, 혹은 커먼프로젝트의 운동화는 ‘놈코어’ 유행과 함께 새 시대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파일로의 멋을 탐하던 여자들은 킬 힐 위에 올라서는 대신 스니커즈에 발을 밀어 넣었다(당시 파리의 패션쇼에 가면 열에 일곱은 스탠스미스를 신은 광경을 쉽게 목격할 정도였다).

변화가 시작된 건 2013년 라프 시몬스가 아디다스와 함께 만든 ‘오즈위고(Ozweego)’의 등장부터였다. 아디다스와 뉴발란스, 스케쳐스 등의 디자인을 믹스한 듯한 운동화는 ‘스니커헤드(Sneakerhead)’ , 즉 스니커즈에 열광하는 이들로부터 즉각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블랙과 핑크, 블루와 레드, 가죽과 메시, 고무와 반짝이는 소재를 혼합한 신발은 <에어리언> 세트장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듯했지만, 라프의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 스트리트웨어가 본격적으로 하이패션과 만나기 시작했고, 오즈위고는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뎀나 바잘리아의 신발은 신호탄에 이어지는 폭격이었다. 그는 베트멍을 통해 리복 ‘퓨리(Fury)’의 새 버전을 공개했다. 필러를 잘못 맞은 듯 곳곳이 부어오른 운동화는 90년대 퓨리를 경험한 세대는 물론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큰 인기를 누렸다. 특히 녹색 창에 ‘베트멍 퓨리’를 검색하면, 스니커즈를 원하는 젊은 친구들의 욕망을 가득 확인할 수 있다. 신발을 손에 넣은 이들은 “실물 갑인 듯” “지려따리 진짜 ㅇㅈ”이라고 자랑하고, 아래 댓글에는 “ㄷㄷㄷ” “도랏맨!” 등의 경탄이 이어진다.

뎀나는 멈추지 않았다. 발렌시아가를 통해 어글리 스니커즈의 대표 선수인 ‘트리플 S’를 선보였다. 트리플 S가 등장한 가을 남성복 컬렉션 쇼 직후인 지난해 1월, 나는 곧장 파리 쇼룸으로 향했다. 논란이 될 만한 아이템의 실물을 빨리 ‘영접’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17세기 병원이었던 케어링 그룹 본사 건물 안의 액세서리 섹션은 구경꾼들로 웅성거렸다. 실제로 맞닥뜨린 트리플 S의 첫인상은? 뉴발란스 러닝화가 스테로이드 주사를 잘못 맞았나 싶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외모였다. 그런데 묘한 외모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함께한 발렌시아가 직원은 쇼가 끝나자마자 매장에 문의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그 인기는 실로 엄청났다. 발렌시아가 매장에서 이 슈퍼스타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인플루언서들은 경쟁하듯 다양한 컬러의 트리플 S를 신은 모습을 포스팅했고, 힙합 스타들이 두 배에 가까운 ‘리셀’ 가격을 지불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어느 개그우먼의 집에는 트리플 S가 여러 켤레 눈에 띄었고, 인스타그램 둘러보기에 뜬 누군가는 열세 번째 트리플 S를 샀다며 자신의 컬렉션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니 국내 히트 상품의 기준이 되는 ‘짝퉁’ 트리플 S 역시 동대문 곳곳에서 눈에 띌 수밖에.

“최근 출시한 트리플 S 트레이너는 우리 사이트에서 출시 5분 만에 품절됐습니다. 구매자 중 한국인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죠.” 온라인 쇼핑 사이트 매치스패션은 이 놀라운 인기를 실감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은 매치스패션닷컴의 스니커즈 부문에서 아주 높은 비율을 차지합니다.” 비록 순위나 판매량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한국 고객의 ‘어글리 슈즈’에 대한 인기는 놀라울 정도라고 덧붙였다. 올봄 이에 대항할 맞수가 나타났다.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지난해 10월 초 루브르에서 열린 패션쇼의 모든 옷에 단 한 켤레의 신발을 매치했다. 발바닥이 굽이치는 곡선미를 자랑하는 ‘아치라이트(Archlight)’. 18세기 궁중 의상과 미래적 스포츠웨어를 믹스한 컬렉션은 모두 이 스니커즈를 위한 조연처럼 느껴졌다(슈프림과의 콜라보레이션을 성공시킨 남성복 디자이너, 킴 존스의 콧대를 납작하게 하고 싶은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반응도 빨랐다. 쇼가 열린 10월 3일 쇼 직후부터 루이 비통 매장엔 예약 문의가 쇄도했다. “올해 1월 5일부터 정식 ‘프리오더’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루이 비통 팀은 아치라이트를 둘러싼 풍경을 담담하게 전했다.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많은 ‘프리오더’를 받은 국가였죠. 남자 고객들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많아 최초로 여성 스니커즈지만 남성 사이즈인 42(약 265mm)까지 생산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2월 초부터 인스타그램에는 ‘인증샷’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예쁨 터짐” “편해용” 등의 해시태그가 스크롤을 따라 이어졌다. 당분간은 이 미래적인 운동화를 쉽게 손에 넣기 힘들 듯하다. “현재 거의 모든 수량이 예약 완료되었으며, 추가 예약은 받지 않을 예정입니다.” 곧이어 프라다, 스텔라 맥카트니, 구찌, 디올 옴므, 샤넬, 피에르 아르디 등의 디자이너도 자신만의 ‘어글리 슈즈’를 선보였다. “샤넬, 에르메스의 핸드백을 든 여성 고객, 포르쉐를 몰고 온 남성 고객 등 모두 스니커즈 차림입니다.” 분더샵의 바이어 성명수는 뜨거운 스니커즈의 인기를 이렇게 관찰했다. 분더샵 내에 ‘케이스스터디’라는 스니커즈 편집매장을 따로 선보인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 이슈가 되는 스니커즈를 론칭할 때마다 매장 주변에 긴 줄이 서고, 문의 전화가 폭주한다. “얼마 전 케이스스터디에서 단독 발매한 아식스와 키코 코스타디노프(Kiko Kostadinov) 협업 스니커즈의 경우 발매 당일 영하 15도의 한파가 몰아쳤지만, 이틀 전부터 매장 앞에 줄을 섰습니다. 안전 문제로 해산시키려 했지만, 불가능했죠.”

신발 한 켤레를 둘러싼 이 엄청난 열기는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38만원인 아치라이트를 비롯해, 샤넬 하이톱은 111만7,000원, 맥카트니의 네온 버전은 119만원에 달한다. 하지만 요즘 고객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싼 가격표를 달수록 더 인기가 높은 건 지금 패션계의 아이러니다.

“스탠스미스 스타일의 실루엣이 몇 시즌간 이어지며 고객들이 색다른 걸 원했기 때문일 수 있죠.” 매치스패션은 어글리 스니커즈 열풍의 배경을 이렇게 추측했다. 준야 와타나베와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가을 컬렉션에서 발견된 새로운 어글리 슈즈는 이 인기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힌트와 같다. 발렌시아가 역시 내년 봄을 위해 등산화를 닮은 ‘트랙(Track)’ 모델을 런웨이에 올렸다. 분더샵 바이어 성명수는 다채로운 디자인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그 어떤 패션 아이템보다 다양한 디자인 덕분에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스타 디자이너의 새로운 하우스 입성 소식도 스니커즈의 인기를 이어나가기에 충분하다.

“리카르도 티시가 버버리를 통해 어떤 선물을 줄지 모두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글리 슈즈도 칭찬할 만한 점은 있다. 무엇보다 하이힐에 익숙해진 여성의 발에 편안함을 선사한다(물론 벽돌처럼 무거운 트리플 S를 제외하고). “말을 돌릴 필요도 없어요. 크록스는 못생겼어요.” 크리스토퍼 케인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너무 편해요. 그게 중요하고 매력입니다. 여성적이거나 멋있어 보이라고 디자인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섬세하거나 예쁘장한 구석은 없지만, 지극히 편안한 신발 말이다. 케인은 이번 가을 컬렉션에서 더 진일보했다. 발뒤꿈치 통증, 족저근막염, 아킬레스건 염증 등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위한 신발 브랜드 ‘지코일(Z-Coil)’의 운동화에 보석을 더한 것이다. 이 놀라운 편안함을 경험하기 위해선 구두 굽 대신 플라스틱 스프링이 자리한 신발의 요상함을 이겨내야겠지만.

모두가 어글리 노래를 따라 부르진 않는다. 마놀로 블라닉이 그 신발을 봤다면 기겁했을지 모른다. 그는 최근 어느 인터뷰에서 요즘 신발을 참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거대 기업이 디자이너로 하여금 지금 이 순간에만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라고 압박한 결과예요.” 거장은 스스로 어글리 슈즈 세계에 발을 들이밀지 않을 거라 단언했다. “물론 제가 정의하는 우아함이란 오늘날의 우아함과는 완전히 다른 겁니다. 우아함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의 자극을 추구하는 요즘 디자이너의 생각은 다르다. 그들을 자극하는 건 오늘날 우리를 사로잡는 ‘어글리’를 찾아내는 재미다. 지난해 가을 미국 <보그>와 함께한 패션 컨퍼런스에서 뎀나 바잘리아는 이 ‘어글리’함을 변호했다. “어글리와 프리티 사이를 오가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추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 되고, 아름다운 것이 추한 것이 되는 그 경계를 찾는 것도 재미있는 과정입니다. 오히려 누군가 제 옷이 ‘어글리’하다는 것이 칭찬처럼 느껴집니다.”

“디자이너가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할 때, 처음에는 대부분 못나 보일 수 있습니다.” 패션 사학자 발레리 스틸(Valerie Steele)은 눈을 공격하는 거대한 어글리 트렌드가 새로운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푸아레가 20세기 초반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전부 기겁했죠. ‘대체 저 추한 것은 뭐냐!’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 눈은 곧 그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곧 더 이상 ‘어글리 슈즈’의 등장에 놀라지 않을지 모른다. 게다가 지나치게 아름다운 건 사실 지루하기도 하니까. 패션계의 횃불 같은 존재 미우치아 프라다 역시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추한 것이 매력적입니다. 추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어글리야말로 더 새롭게 느껴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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