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CLOUT PATTERNS

2019.09.01

CLOUT PATTERNS

디자이너들은 옷을 캔버스 삼아 창의성을 발휘한다. 2019 F/W 시즌의 볼만한 패턴 세 가지.

DARK ROMANTICISM

상품이 일렬로 깔끔하게 진열된 마트. 플로럴 프린트 원피스와 카무플라주 모피 머플러는 미우미우(Miu Miu), 카무플라주 패턴 싸이하이 레이스업 부츠는 옐로(Yello).

‘꽃무늬’ 옷은 기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동서양을 막론하고 꽃무늬는 수백 년 전부터 쓰였다. 우리가 이름을 댈 수 있는 꽃무늬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영국 전원을 연상시키는 리버티 패턴, 스윙잉 런던을 상징하는 60년대 메리 퀀트의 만화 같은 동그란 꽃무늬는 물론, 가까이는 수묵화처럼 섬세하게 연꽃을 그린 한복까지. 이번 시즌 역시 꽃은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다. 다만 꽃의 위상은 로맨스를 위해 ‘꺾어야 하는’ 연약한 아름다움이 아닌, ‘꺾이지 않는’ 강인한 태도를 대변하는 것으로 승격되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는 사라 버튼이 이끄는 알렉산더 맥퀸이다. 날렵한 테일러링, 과감한 액세서리, 군화. 여기에 화룡점정은 강렬한 블루 장미 프린트. 이름하여 ‘다크 로맨티시즘’의 탁월한 예다. 다음은 프라다. 미우치아가 정한 가을 주제는 ‘로맨스의 해부학(Anatomy of Romance)’이다. MA-1과 피코트를 결합한 유틸리티 재킷에 밀리터리 부츠를 신은 여자들은 얇은 꽃무늬 레이스, 커다랗게 프린트된 장미, 새틴으로 만든 꽃 코르사주를 곁들였다. 어두침침한 폰다치오네 프라다 쇼장에 전구가 하나둘 켜지고, 바이올린으로 변주한 사운드트랙이 울려 퍼졌는데, 노래는 레이디 가가의 ‘배드 로맨스(Bad Romance)’와 만화 <백설공주>의 주제가 ‘언젠가 왕자님이 오실 거야(Someday My Prince Will Come)’였다. 21세기 동화 속 공주들은 이제 왕자가 나타나주길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을 찾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여전사가 되는 쪽이다. 시대상을 반영하듯 이번 시즌 컬렉션에서 꽃은 더 이상 가녀린 감성을 대변하는 모티브가 아니다. ‘꽃(Flower)’에 담긴 두 번째 의미는 ‘가장 뛰어난’. 그 두 번째 의미는 런웨이에서 빛을 발했다.

CHECK MATE

기하학무늬 타일 바닥에 긴장을 풀고 기대어 누웠다. 하운즈투스 체크무늬 코트와 트위드 와이드 팬츠, 로퍼와 주얼리는 샤넬(Chanel).

샤넬 쇼가 열리기 며칠 전, 칼 라거펠트의 사망 소식이 패션 수도를 강타했다. 알프스 설산 세트를 뒤로하고 카라 델레빈을 중심으로 체크 코트를 입은 모델들이 눈물을 훔치며 행진한 피날레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쇼에 등장한 넉넉한 실루엣의 트위드 수트와 코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비르지니 비아르가 구상한 룩이다. 여러 브랜드에서도 블랙 & 화이트 체크 패턴 룩이 등장했다. 클래식 패턴을 요리하는 솜씨는 역시 제각각. 디올의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버팔로 체크’ 패턴 셔츠와 니트, 시어 드레스를 레이어링하는가 하면 클래식 투피스와 글렌 체크 코트까지 디자인했다. 또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하운즈투스 점프수트에 빨간색 마스크를 씌워 모델을 내보냈다. 기괴한 마스크에 눈이 가는 동시에 옷이 돋보이는 극적 효과까지 있었다.
글램 룩의 일인자 발맹의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흑백 하운즈투스 체크에 클래식 노치트 라펠 코트 디자인을 적용했다. “오늘날 발맹의 여성은 저항적이면서 역설적입니다.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죠. 특정 카테고리에 넣을 수 없어요.” 올리비에는 클래식 패턴을 컬렉션에 아우르면서도 밑단이 해진 데님 디테일을 첨가해 트위스트했다. 돌체앤가바나의 고전적 투피스 체크 앙상블 세트도 체크 패턴을 논할 때 뺄 수 없다. 쇼 시작 전 돌체앤가바나는 브랜드 장인 정신과 ‘핸드메이드’를 강조하는 흑백영화를 상영했다. 이에 상응하는 127벌의 옷 중 상당수가 체크 패턴이었고 무성영화 캐릭터를 연상시켰다.

PRAISE PAISLEY

페이즐리 패턴 셔츠와 스트랩 장식 치마, 이너로 입은 노란색 터틀넥과 장갑은 록(Rokh), 체인 목걸이와 팔찌는 앰부시(Ambush®).

페이즐리 패턴을 볼 때 여러 의문이 든다. 페이즐리는 자연무늬인지, 기하학무늬인지. 그것도 아니면 대관절 뭘 형상화한 건지. 페이즐리는 인도 북부 카슈미르 지방에서 손으로 직조한 캐시미어 숄의 원단 모티브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름은 이 원단이 수입되고 많이 생산되던 18세기 스코틀랜드 서쪽 페이즐리 마을에서 따왔다. 페이즐리의 물방울 모양은 3세기 페르시아와 사산 왕조 시절 조로아스터교의 모티브 중 하나로 탄생했다. 사이프러스 나무를 나타내는 것으로 삶과 영원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수 세기를 지나며 종교적 의미보다 그래픽 요소의 하나로 쓰이게 된 페이즐리는 이번 시즌 젊은 디자이너들의 손을 통해 부활했다. 런던 패션계의 총애를 받는 패턴의 마술사 리차드 퀸이 대표적 인물이다.
런던 페캄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직접 프린트한 결과, 온몸을 화려하게 감싸는 오렌지색 페이즐리 모티브에 정교하게 비즈로 수를 놓은 작품이 탄생했다. 조나단 앤더슨 역시 페이즐리에 체크를 섞어 정교한 니트를 제작했다. 이번 시즌을 통해 파리 패션 위크에 공식 데뷔한 한국인 디자이너 황록의 브랜드 록(Rokh) 역시 페이즐리 셔츠에 형광 노랑 악센트, 벨티드 치마를 레이어링했다. “록의 아이덴티티는 아주 클래식해 보이지만, 걸으면 옷이 분리됩니다.” 단일 패턴의 원피스로 보이지만, 패턴 곳곳에 숨어든 해체주의적 요소는 페이즐리를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LESS
    모델
    이혜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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