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9 시즌2>의 아홉 명의 댄서들
춤이라는 또 하나의 세상을 보여준 최고의 춤꾼들 이 한자리에 모였다.
숱한 화제를 몰고 온 Mnet <댄싱9 시즌2>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한 블루아이!
아홉 명의 댄서들이 <보그> 카메라를 향해 뛰어오르는 순간, 꿈 같은 시간들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저게 가능해?” Mnet <댄싱9 시즌2>을 볼 때마다 놀라웠던 건 곡예에 가까운 동작이나 유연한 움직임보다 인간의 몸이 이토록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무대에 있는 동안 댄서들은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인간과 동물, 상상 속 피조물은 물론 날아가는 총알이나 산들거리는 바람이 될 수도 있었다. 그 춤은 때로는 상처 입은 마음이었고, 두근대는 심장이었으며, 휘몰아치는 열정이었다. 인간의 팔과 다리가 입보다 진실된 말을 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TV 속 댄서들의 그 자유로운 몸의 언어에 연신 감탄하다 문득 소파에 늘어진 자신을 보노라면 괜한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주인을 잘못 만난 죄로 간신히 거동의 임무만 수행하다 굳어져가는 제 몸뚱이가 안쓰러울 수밖에. 그렇게 꿈 같은 여름밤이 흘러갔다. 춤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 <댄싱9>의 두 번째 시즌은 지난 8월 15일, 뜨거운 환호 속에서 막을 내렸다. 현대무용부터, 발레, 댄스 스포츠, 스트리트 댄스까지 전 장르의 내로라하는 춤꾼들이 실력을 겨룬 댄스 배틀의 최종 우승은 블루아이에게 돌아갔다. 최종회와 동시에 오픈된 갈라쇼의 얼리버드 티켓 999장은 10분 만에 전석 매진되어버렸다. 일반 티켓 역시 7회 공연 모두 오픈 당일 완판되었다. 9월 9일부터 14일까지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열린 갈라쇼는 춤에 매료된 관객들로 연일 7,000여 좌석이 가득했다. 춤 공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모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KIM SEOL JIN
블루아이의 아홉 댄서들을 다시 만난 건 마지막 방송이 끝나고 갈라쇼 연습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제일 먼저 스튜디오에 나타난 건 이번 시즌의 MVP 김설진이었다. 요즘 그는 밀려드는 스케줄과 지인들의 축하 전화에 태어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신이 없어요. 방송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휴대폰 배터리를 자주 갈아야 한다는 거? 얼마 전엔 지하철에서 잠을 자는데 찰칵찰칵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조심스러워진 부분은 있어요.”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단잠을 깨우는 낯선 이에게조차 예의를 갖춰 “네”라고 답하는 김설진은 여러 댄서들과 춤을 출 때처럼 배려가 몸에 밴 남자다. 벨기에 피핑 톰 무용단 소속으로 무용계에서는 이미 알아주는 춤꾼인 그는 방송을 통해 ‘갓설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인간계에서는 보기 힘든 독창적인 안무와 춤 실력은 물론, 경쟁자의 낡은 운동화까지 신경 쓰는 따뜻한 마음씨 때문이다. 드래프트 미션에서 부드러운 몸짓으로 한대수의 ‘하루 아침’을 보여줬을 때부터 그는 가장 유력한 MVP 후보였다. ‘최고의 1분’으로 꼽힌 김설진과 김경민의 커플 미션, 거미의 ‘기억상실’ 직후엔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거의 모든 미션마다 새로운 전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MVP 수상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다.
“팬 미팅 때 남근이랑 인수가 인기가 정말 많아서 둘 중에 한 사람이 MVP가 될 줄 알았어요. 사실 전 방송에서 이슈가 될 만한 요소가 전혀 없잖아요. 결혼해서 가정도 있고, 뛰어난 외모도 아닌 데다 특별한 사연도 없고. 좀 의외였어요.” 팀 상금과는 별도로 소원 성취금 1억원을 받게 된 김설진은 한국에 작업실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흥미로운 댄서들이 다 한국에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댄서들이 보다 춤추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대중과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서다. <댄싱9>에 참가한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지난해 한국에 공연하러 왔을 때 이 방송 때문에 현대무용에 관심이 생겨 공연을 보러 다닌다는 한 관객분을 만났어요. 그래서 찾아봤죠. 요즘 핫한 친구들을 만나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고 싶기도 했고요.”
2012년
PARK IN SOO, KIM KI SOO
만약 비보잉을 하는 백발노인이 있다면 굉장히 멋질 것이다. 그게 만약 먼 훗날의 이들이면 더욱더! 비보이 로켓 김기수와 비보이 킬 박인수는 카메라 앞에서 프리즈 동작을 취하면서도 얼굴에 여유가 넘친다. 거꾸로 선 채 모닝커피라도 즐길 태세다. 만약 이 모습을 사진으로만 본다면 포토샵으로 얼굴만 따로 합성한 줄 알 것이다. “저기, 힘든 표정 좀 지어주면 안 될까요?” 급기야 사진가가 따로 설정을 요구했을 정도다. 두 사람은 ‘겜블러크루’에 속한 비보이들이다. 지난 7월 한국에서 열린 비보이 축제 ‘R16’에서도 우승을 차지한 겜블러크루는 10년 이상 세계 최고 수준의 비보잉을 선보여왔다. 대체 한국인들이 유독 비보잉에 강한 이유가 뭘까? 김기수는 태권도를 꼽았다.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비보이들이 학교 다닐 적에 태권도 도장을 다니는 게 유행이었거든요. 파워무브라는 건 고관절이 잘 버텨주거나 당기는 힘이 좋아야 하는데, 어릴 때부터 골반의 유연성을 훈련한 셈이죠. 브라질도 잘해요. 거긴 태권도와 비슷한 ‘카포에이라’라는 무술이 있잖아요. 물론 이건 제 생각이고, 누군가는 군대 때문이라고도 하죠. 그 압박감이 뭔가 하고자 하는 의지를 만들어낸다고. 흐흐.” 일리가 있는 얘기다. 두 사람 역시 태권도를 배웠다.
김기수와 박인수는 서로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2008년 창동에서 열린 청소년 비보잉 대회였어요. 제가 심사위원이었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울산에서 올라온 인수는 아직 고등학생이었죠. 그때도 실력은 이미 뛰어난 친구였어요.” 이후, 둘은 천안에서 열린 한 대회에서 각각 다른 팀 소속으로 맞붙었다. 연장전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결과는 김기수의 승리였다. 박인수는 그날 엉엉 울며 스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 게 너무 분해서 울었어요. 그래도 잘하는 형에게 진 거라 괜찮았죠.” 지금 다시 두 사람이 댄스 배틀을 펼친다면? “아마 이젠 제가 질 거예요. 흐흐.” 김기수는 슬쩍 동생의 손을 들어줬지만, 사실 두 사람의 춤은 우열을 가리기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 고난이도의 파워무브를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어낸 박인수가 남다른 파워와 기술을 자랑한다면, 김기수는 현대무용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춤을 스트리트 댄스에 접목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다재다능한 춤꾼이다. 에너지 넘치는 인수와 조화를 만들어내는 기수는 그래서 더욱 춤 궁합이 잘 맞는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크루에 합류하기도 했다. “2009년 7월 1일!” 합창이라도 하듯 둘은 동시에 외쳤다.
먼저 <댄싱9> 참가를 제안한 건 인수였다. “같은 크루의 비보이 누들 형이 시즌1 때 블루아이 팀이었어요. 응원하러 왔는데 최종 믹스매치 공연에서 지난해 MVP 휘동이 형과 붙어 근소한 차이로 진 거죠. 그걸 보고 끓어올랐어요.” 1년 전 농담 삼아 다짐했던 레드윙즈를 향한 복수(?)가 실제로 이뤄진 것이다. 파이널리그 2차전에서 박인수가 김설진과 함께 보여준 늑대인간과 뱀파이어의 한판 대결은 지금까지도 유튜브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할 만큼 큰 인기를 얻었다. 우연이지만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 역시 늑대인간과 뱀파이어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은 늑대인간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제가 원래는 되게 마른 편이었어요. 뼈대 자체도 가는 편인데, 춤을 추다 보니까 굵어지더라고요.” 강아지 같은 살가움과 꽃미소로 일찌감치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박인수는 멋진 동작을 해낼 때마다 카메라를 향해 손키스를 날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김설진과 MVP 경합을 벌이기도 했다. “전 당연히 설진이 형이 될 줄 알았는데, 부모님은 제가 사전 인기 투표 1위라는 얘길 듣고 내심 기대하셨나 봐요. 되게 아쉬워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까 너무 귀여웠어요. 돈이야 제가 잘돼서 그만큼 벌어드리면 되죠.”
김기수가 괴짜 박사 김설진과 호흡을 맞춘 ‘Love Never Felt So Good’ 무대도 끝내줬다. 그는 박사가 만들어낸 귀여운 댄싱 로봇이었다. “그 공연을 계기로 많은 걸 느꼈어요. 그런 느낌의 춤을 춰본 적이 없었죠. 춤출 때의 표정이나 시선 처리까지 그렇게 섬세하게 연출해본 것도 처음이었어요.” 특히 현대무용을 하는 김설진과 안남근은 앞으로도 계속 따라다니며 배우고 싶은 형들이다. 기술의 수행이 중요한 비보잉과 반대로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현대무용은 또 새로운 세계였다. “형들은 그걸 ‘되어지다’라고 표현하더라고요. 혼자 몇 년간 춤을 춘 것보다 더 크게 마음에 와 닿았어요.” 춤을 더 공부하고 싶다는 김기수는 이번에 받은 상금도 학비와 춤을 배우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박인수는 청각 장애인인 부모님을 모시고 떠나는 가족 여행을 생각 중이라고 했다. 참고로 우승 상금 1억원은 공평하게 ‘9분의 1’로 나눌 예정이다. 물론 상금보다 더 좋은 건 짜릿한 우승의 쾌감이다. “상상만 하면서 춤을 췄는데, 현실로 이뤄졌잖아요. 진짜 기분 최고였어요. 지는 것보단 이기는 게 좋잖아요? 그날 방송 끝나고 고깃집에서 바로 회식했어요.”
CHOI NAM MI, KIM TAE HYUN
막내 최남미는 술을 마시는 대신 기분 좋게 취한 언니 오빠들을 구경했다. “전 별로 술을 안 좋아해서요.”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를 보여준 남미는 춤을 추지 않을 땐 얌전한 스물 두 살 아가씨다. 걸 그룹 못지않은 예쁘장한 얼굴에 목소리도 작고 여리다. “유치원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어요. 가수요? 노래는 너무 못해요. 전 무대 위에서만큼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그런 댄서이고 싶어요.” 최남미는 왁킹 댄서다. 70년대 LA 게이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왁킹은 팔을 뻗거나 돌리는 동작 위주로 빠르게 움직이는 여성스러운 춤이다. 개성 강한 게이들의 춤으로 알려진 만큼 댄서 고유의 스타일도 많이 반영되는 스트리트 댄스의 한 장르다. 중학교 때까지 걸스 힙합을 했던 남미는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왁킹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나의 장르에 딱 속하기도 하고, 깊이 들어갈수록 새로운 매력이 있더라고요. 제가 처음 배울 때만 해도 국내엔 왁킹하는 분들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배틀 때 참가 인원만 봐도 세 배 정도는 늘어난 것 같아요.”
애티튜드가 중요한 왁킹에선 패션도 춤의 일부다. 방송 내내 최남미의 패션 센스는 돋보였다. 긴 술이 달린 블랙 시스루 올인원, 허리까지 올라오는 그물 스타킹과 짧은 반바지, 가터벨트 같은 파격적이고 섹시한 아이템들을 스트리트 패션으로 세련되게 소화해냈다. 본인이 직접 만들고 스타일링한 의상들도 꽤 있다. “드래프트 때랑 3차 전 유닛 때 입은 건 제 옷이에요. 재봉틀질까지 하는 수준은 아니고요. 부자재 시장 가서 비즈나 술 같은 장식들을 구입해 덧붙이는 정도예요. 제가 생각할 땐 춤을 아무리 잘 춰도 옷이 이상하면 느낌이 덜한 것 같거든요. 연습할 때도 옷이 이상하면 춤이 잘 안 되고. 화장도 마찬가지예요. 왁킹이라는 장르가 의상부터 남달라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지난 시즌, 자신이 속한 왁킹팀 펑키파이어의 여은지와 함께 도전했다가 한 차례 탈락의 고배를 마신 그녀는 이번엔 처음부터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다. “이번에도 성과가 없을까봐 그게 제일 걱정됐어요. 지난번 드래프트 때 퍼포먼스가 난해하다는 소리를 들어 이번엔 컨셉보다 제 감정에 집중하기로 했죠.” 우승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건 전지훈련이 시작된 이후부터였다. “사실, 좀 기가 죽는 부분도 없진 않았어요.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물론 얻은 것도 많다. 현대무용의 무대 구성은 왁킹을 할 때도 좀더 새로운 동선을 생각하게 했다. 특히 브루노 마스의 신나는 댄스곡 ‘Treasure’를 배경으로 김태현과 함께 한 커플 미션은 이 자그마한 체구의 어린 왁킹 댄서가 왁킹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스트리트 댄스를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무대였다. 남자 친구 역할을 맡은 크럼퍼 김태현 역시 뜻밖의 귀여운 모습으로 새롭게 다가왔다.
김태현 역시 최남미와 커플 미션을 할 때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남미는 제게 까부는 동생이죠. 흐흐. 농담이고요, 처음엔 낯가림이 좀 있는데 친해지면 애교 많은 귀여운 친구예요. 왁킹이나 크럼프 둘 다 팔을 많이 쓰는 댄스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크럼핑은 9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남자답고 힘이 넘치는 춤이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쿵쿵 지축이 울리는 것만 같은 이 육중한 춤은 ‘Kingdom Radically Uplifted Mighty Praise’의 약자로 ‘신을 찬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스트리트 댄스 중에서 가장 파워풀한 댄스예요. 서서 하기 때문에 스탠딩 댄스라고 하죠.” 크러쉬나 다이나믹 듀오 같은 힙합 뮤직비디오에 종종 등장하는 어둠 속 거친 댄서들이 바로 이 크럼퍼들이다. 큼직한 동작 때문에 분노에 찬 괴물이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춤이 국내에 들어온 건 2004년이었다. 김태현이 속한 ‘몬스터우팸’이 바로 이 크럼프 댄스 1세대다. 그는 이 세계에선 트릭스로 통한다. “전 춤을 늦게 시작했어요. 인문계 학교를 다니며 잠시 방황하다 고 3 때부터 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춤을 접했어요. 몸치이긴 한데 자신감이 넘치는 편이라 표정만큼은 느낌이 있었죠. 그때 우연히 크럼프 영상을 봤어요.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너무 빠르게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동작이 파워풀하고 절제되어 있는 게 신기했어요.”
인터넷을 뒤져가며 힘들게 크럼프를 배웠다는 이 뚝심 있는 크럼퍼가 방송 출연을 결심한 건 순전히 아픈 어머니 때문이었다. 방송에서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의 어머니는 현재 유방암 4기다.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다. “처음엔 어머니가 제가 춤추는 걸 무척 반대했어요. 그러다 제가 상도 타오고 백업댄서로 조금씩 방송 활동도 하니까 제가 하는 일을 자랑스러워하시더라고요. 특히 방송에서 잠깐씩 제 모습이 비칠 때 가장 좋아하셨어요.”
<댄싱9>은 댄서를 주인공으로 하는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최대한 오랫동안 방송에 나오기 위해선 반드시 우승을 해야만 했다.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크럼프를 알리고, 자신의 춤을 보여주는 건 그다음 문제였다. 어머니는 매번 아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방송국을 찾아왔다. “파이널리그 전날 밤엔 설레서 잠이 안 왔대요. 그런데 2차전 땐 감기 몸살 때문에 못 오셨죠. 엄청 걱정했어요. 합숙소에 있는 동안엔 외부와 연락도 못하니까. 공연 내내 불안했죠.” 춤은 그가 어머니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김태현은 어머니에 대한 걱정과 사랑이 넘쳤다. “예전에 춤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이었다면, 지금은 어머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에요. 어머니 기분이 좋아져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억지로라도 춤을 춰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갈라쇼에서 깜짝 공개된 영상에서 라틴 댄스의 여왕 이지은은 스냅백을 푹 눌러쓰고는 자신을 ‘몬스터스팸’의 ‘트릭’이라고 소개했다. 아찔한 하이힐을 신고 유혹적인 스텝을 밟아오던 그녀가 남자다움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는 김태현의 크럼핑을 흉내 내며 거침없이 망가졌을 때 객석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이지은이 누구인가. “몸매라면 지은 언니죠”라고 최남미도 인정했을 만큼 글래머러스한 몸매에 금발 머리, 그을린 피부, 여기에 서구적인 외모. 정열적인 라틴 댄스 중에서도 가장 끈적하고 섹시하다는 룸바를 제일 좋아한다는 이 농염한 여인이 이토록 털털하고 웃길 줄 누가 알았을까? “댄스 스포츠는 양성성을 가져야 해요. 여성스럽지만 와일드하게 춤을 춰야 하거든요. 원래 소심한 성격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이런 자유분방한 춤을 선택했겠죠.” 바로 이 넘치는 자신감이 춤추는 그녀를 더욱 섹시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당찬 라틴 댄서에게도 <댄싱9>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에서 송종국과 함께 호흡을 맞출 땐 화려한 쇼 댄스를 보여줬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처음엔 경기 댄스와 쇼 댄스의 중간 지점에 놓인 뭔가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못했죠. 파트너가 없으니까.” 그녀의 파트너였던 이후선은 안타깝게도 최종 9인에 들지 못했다. 남녀가 짝을 이뤄 쌍으로 움직여야 하는 댄스 스포츠에서 파트너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을 놓으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솔로 댄스를 개발해야만 했는데 그게 어려웠죠. 댄스 스포츠를 스트리트화시켜야 하는지 클래식화시켜야 하는지 그 경계에서 참 힘들었어요.” 이지은은 진짜 댄스 스포츠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속이 상해 아직 자신이 나온 영상도 보지 않았다. “그래도 <댄싱9> 자체는 정말 좋았어요. 다양한 장르의 사람들을 만나 같이 춤추는 과정도 즐거웠고, 우리끼리 밥 차려 먹고 수다 떠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설진 오빠가 진짜 요리를 잘하거든요. 먹다 남긴 닭강정을 어디서 가져와 불고기 양념 소스를 섞어 파스타를 만들어줬는데 경이로웠어요. 제가 제일 많이 먹었죠.” 그런데도 살이 빠졌다. 그래서 문제다. “댄스 스포츠는 마르면 안 돼요. 지금보다 더 풍만해야 해요.” 이지은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대회에 참가했다. 합숙소에서 나온 지 이틀 만이었다. “다들 미쳤다고 하더군요. 생각보단 결과가 좋았어요. 연습을 안 해서 엄청 많이 긴장하고 갔는데, 다행히 파이널에는 들었거든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건 임샛별도 마찬가지다. 당장 10월에 개포동 엠극장에서 공연이 열린다. 아크람 칸 무용단에 발탁돼 영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임샛별은 이번 공연에선 처음으로 안무까지 맡게 됐다. 방송 때문에 두 달을 비운 탓에 밀린 티칭 수업도 많다. “그래도 이런 사진 작업은 진짜 재미있어요. 무대에서 표현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것 같아요.” 단아하고 선이 고운 임샛별은 모델처럼 매력적인 얼굴을 갖고 있다. 사진 촬영인 만큼 마스터들조차 감탄하게 만든 일명 ‘포크’ 동작도 빼놓을 수 없다. 한예종 시절 임샛별에게 자신의 공연 의상을 선물했던 우현영 마스터는 그녀가 한쪽 다리를 번쩍 차 올려 날카로운 각도를 만들어내자 “나 저걸로 사과 찍어 먹고 싶다”며 농담 섞인 칭찬을 하기도 했다. “현대무용이라고 하면 대부분 그런 사이드 밸런스 동작 같은 걸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아는데, 사실 그건 현대무용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현대무용은 액티비티하게 움직이는 거거든요. 호불호가 갈리는 무대였지만 그런 점에서 남근이와 함께한 ‘샹들리에’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현대무용수가 얼마나 춤에 대해 유연함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는 임샛별은 다양한 장르의 춤을 빠른 시간 안에 소화하느라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욱 야위었다. “먹는 건 정말 잘 먹었어요. 한밤중에 라면 끓여 먹고 자고.” 오늘도 살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다이어터들의 원성을 살 만한 발언이다. “대신 새벽 5시까지 춤춰야 돼요. 나중에 방송을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오래 고생한 게 저게 끝인가?’ 너무 짧게 느껴져 속상하더라고요. 하지만 <댄싱9>으로 인해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아요. 좋은 사람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쇼잉할 수 있다는 거요.” 물론 임샛별에겐 큰 도전이었다. 방송이 시청률을 위해 예술을 이용한다는 비난은 이런 류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마다 계속되는 논란이다. 어차피 <댄싱9>은 시사 교양이 아니라 예능 오락 프로그램이니까. 예술성을 추구하는 대신 대중성을 좇는다는 식의 곱지 않은 일부 시선은 참가자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현대무용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늘 있었어요. 저희끼리만 매번 밤새 연습하면 뭐하나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저도 아직은 맘속으로 타협을 거듭하는 중이에요. 결국 선택인 것 같아요. 목표는 같아도 가는 방향은 다른 거죠. 전 다른 길을 선택한 거고요.”
우주 미남 안남근도 임샛별과 같은 학교 출신의 현대무용수다. 찰랑거리는 머릿결과 느낌 있는 뒤태, 개성 넘치는 얼굴로 <댄싱9 시즌2>의 공식 미남이 된 그의 춤은 외모만큼이나 독창적이고 묘하게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마성의 댄서라 부른다. 초등학교 때 <갈채>라는 드라마를 보고 난 이후 장발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는 이 엉뚱한 남자는 갈라쇼에선 광선검을 들고 나와 “넥 슬라이~!”를 외치기도 했다.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를 좋아해요. 끝까지 얼굴을 가리고 나오는 <20세기 소년>의 ‘친구’나 <몬스터>의 주인공 같은 오묘한 캐릭터를 전 좋아하고 또 그렇게 되고 싶어 해요. 이미지가 딱 있잖아요.” 맨날 집에서 혼자 만화를 그리다 중학교 때부터 춤을 추기 시작한 그가 처음에 브레이크 댄스를 택했던 것도 감정을 얼굴에 드러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무용을 하는 지금도 그는 관객과 ‘밀당’을 한다. “무대에 등장 할때도 ‘훅’ 들어오는 게 아니라 ‘샥’ 하고 나오는 거죠. 영화를 볼 때도 처음부터 다 설명해주는 캐릭터보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전개되고 난 후, 서서히 드러나는 캐릭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잖아요. “안녕하세요!” 말부터 하는 쪽보다 눈인사부터 하고 다가가는 식의 연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댄싱9>은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그에겐 기회였다. 자신의 춤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간을 찾고자 무작정 외국에 나갔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현대무용을 하면서부터는 모든 게 제가 바란 대로 다 이뤄졌어요. 그러다 바닥을 친 거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치른 국립현대무용단 오디션마저 떨어졌어요.” <댄싱9>에 대한 주위 무용수들의 반응은 은근히 부정적이었지만 어차피 잃을 것도 없었다. “그런데 해보니까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다른 장르이긴 하지만 세계 최고의 춤꾼들이니까 저도 프라이드가 생기는 거예요.” 춤에 대한 흥미와 재미를 되찾은 그는 윤전일에게 틈틈이 발레를 배우고, 겜블러크루를 통해 비보잉 테크닉을 익혔다. 현대무용과 달리 완전히 음악에 집중해 춤을 추는 재즈 댄서와 스트리트 댄서들과의 협연은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자유로움 속에서 제 춤의 가능성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상금과 자신감이 생겼으니 그는 이제 다시 외국으로 나가 볼 생각이라고 했다. 물론 이번엔 확실히 준비도 할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춤을 잘춘다는 친구들이랑 최소 1년은 같은 무대에 서보고 싶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제 꿈이었어요. 전 원하는 건 반드시 꼭 한 번은 해야 해요. 공부도 더 해야죠. 유명한 안무가들의 생각을 보면서 제 춤의 오리지널리티를 찾고 싶어요.”
이번 시즌 <댄싱9>의 또 하나 이슈는 만화가 윤태호가 그린 댄서들의 캐리커처였다. 윤태호 작가는 블루아이 팀의 캡틴 윤전일의 작은 삼촌이다. 외모만 봐서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가족 관계다. “태호 삼촌은 작은 할아버지네 쪽이에요. 명절마다 뵙긴 하지만 그런 선물을 해주실 줄은 전혀 몰랐어요. 합숙소에선 휴대폰은커녕 인터넷 사용도 못하니까. 게다가 삼촌이 제작진에 먼저 전화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조카라고 또 저를 맨 앞에 세워주셨고. 방송 끝나고 감사 전화 드렸어요.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사드리겠다고.” 정작 발레 왕자 윤전일은 만화에는 관심 없는 타입이다. 장난감이나 게임도 마찬가지. “어릴 땐 그런 것보단 힙합 바지 하나 더 사고, 멋있는 티셔츠 하나 더 모으는 게 좋았거든요.” H.O.T와 젝스키스의 춤을 따라 추다 스트리트 댄스를 배웠다는 윤전일은 중학생 때 YG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 생활을 하기도 했다. 발레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춤을 추면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본 건 발레가 처음이었어요. 다른 춤을 출 땐 안 좋은 시선이 많았거든요. 칭찬 듣는 게 좋아서 발레를 계속했어요. 나중엔 선생님이 집에 좀 가라고 부탁할 정도로 연습하는 게 정말 재미있었어요.”
2010년 국립 발레단에 입단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카리스마 넘치는 티볼트 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단에서 주역 무용수 생활을 하다 지난해 돌아왔다. 김주원의 <마그리트와 아르망> 공연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현재도 게스트 무용수로 루마니아 국립 오페라단과 계약이 된 상태다.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외롭기도 했고, 여러 가지 일들이 겹쳐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한국에 오니 제가 설 무대가 없더라고요. 그때 <댄싱9>을 알게 됐어요. 무엇보다 춤을 출 수 있다는 사실에 확 참가했죠.” 그때부터 윤전일의 수난 시대가 시작됐다. 첫 번째 드래프트 이후, 매회 탈락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그에겐 ‘불사조’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마음고생도 심했다. “한 번 떨어졌을 땐 그럴 수도 있다고 오히려 더 힘을 냈고, 두 번 떨어졌을 땐 ‘진짜 집에 가야 되나?’ 불안했어요. 세 번째엔 ‘아, 이건 진짜 내 춤이 마음에 안 드는 거구나’ 그래서 좀 마음이 아팠죠.” 더 이상 자신의 춤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건 우여곡절 끝에 전지훈련에 합류하게 된 이후다. 그곳에서 윤전일은 캡틴이라는 견장을 달았다. “팀원들의 실력을 알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유독 힘들었던 지난 과정은 결국 더 큰 자신감을 갖기 위한 시간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캡틴으로서 그는 팀원들을 격려해가며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팀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윤전일은 팀에서 제일 웃기고 농담도 잘한다. 일단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부터 우아할 것만 같은 발레리노에 대한 선입견을 깬다. “저도 원래는 낯을 꽤 가리는데, 다들 피곤한 상태니까 제가 먼저 분위기를 좀 띄우려고 했죠. 그러면 애들도 같이 힘을 내줬고요. 캡틴으로서 제 역할은 중간자였어요. 동생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는 것. 오히려 팀을 이끄는 캡틴은 설진이 형이라고 생각했어요.” 속 깊은 캡틴은 우승 팀이 발표되었을 때 김설진과 함께 펑펑 울었다. 처음 아홉 명이 만났을 때부터 두 달간의 합숙 생활, 함께 연습하던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겨우 2~3시간 쪽잠을 자며 강행군을 이어온 탓에 몇몇은 온몸에 테이프를 붙인 채 마지막 춤을 췄다.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뤄낸 거잖아요. 그래서 괜히 눈물이 났어요.” 다음 날 아침, 다 같이 라면을 먹고 각자 짐을 챙겨 나온 이들은 다시 원래 그들이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곳은 분명 전과 같지만 왠지 그 풍경이 조금은 달라 보였다. 어느새 계절은 바뀌어 있었다. “발레리노는 스물아홉 살부터 피크예요. 딱 제 나이부터 10년이에요. 그 시간 동안은 매일 발레 의상을 입고 타이츠도 매일 신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 춤을 제일 많이 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갈라쇼 후에도 저희 아홉 명이 함께 손을 잡고 공연을 해보려고도 해요. 이번엔 보다 새롭고 훨씬 긴 작품이 될 거예요.” 아홉 명의 댄서들은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춤을 췄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몸이 땀으로 젖을 때까지.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이미혜
- 포토그래퍼
- KIM BO SUNG
- 스탭
- 메이크업 / 류현정, 헤어 / 원종순, 안미연, 세트 스타일리스트 / 이나경(Calla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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