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리틀 애플 워치
새로운 시간제가 한국에 시행됐다. 서머타임? No! 애플 워치 타임. 스마트워치
기능 외에 패션 액세서리로도 각광받는 애플 워치를 좀더 근사하게 연출하려면?
때는 1350년쯤. 이탈리아 베네토 주의 도시 파도바에 해, 달, 다섯 개 행성의 천체 운동을 묘사하는 발명품이 공개됐다. 그건 조반니 데 돈디에 의한 만세력인 동시에 일종의 시계였다. 이 천문시계는 조금 변형돼 궁전에서 광장으로 옮겨졌고, 1차 대전 후 인간의 손목을 감싸게 됐다. 그 후 2015년. 인류 시간 관리에 혁신을 일으킬지 모를 애플 워치가 “경이롭다”는 평판 가운데 발명됐다. 시계로서의 기능은 물론, 인간의 심박 측정에다 때에 따라 사적인 매니저 역할까지 겸하는 바로 그 애플 워치의 시간이 비로소 한반도에도 시행됐다.
이브 생 로랑 CEO였고 현재 애플 스페셜 프로젝트 담당 부사장 폴 드네브가 지켜보는 가운데 애플 워치 한국 첫 발매가 6월 26일에 있었다. 이에 맞춰 <보그>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한 컷은 삽시간에 1,500여 명이 하트를 누르며 반향을 일으켰다. 분더숍 청담에서 열린 애플 워치 공개 현장에서 <보그> 스타일 디렉터가 뚝딱 연출한 사진으로, 주인공이 화제의 애플 워치인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애플 워치 스타일링을 제안한 덕분이다. “아, 이렇게 차면 되는군” 혹은 “애플 워치가 패션 액세서리로도 손색없겠네” 등의 반응이 담긴 ‘좋아요’가 많았던것. 그녀는 평소 차고 다니는 샤넬 프리미에르 손목시계와 자신의 J 이니셜을 단 폴리폴리 진주 팔찌에 42mm 스테인리스 스틸 페이스에 밀레니즈 루프를 곁들였다. 그러자 금사와 은사가 운화 문양으로 직조된 드리스 반 노튼 재킷 소맷단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voguekorea’에서 확인하시길!).
사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시계를 손목에 차는 행위가 어딘지 모르게 시대착오적으로 보였다. 그러나 손목과 시계로 다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적으로 애플 워치 덕분이다. 아시다시피 애플 워치는 18K 골드를 포함, 세 가지 재질인 데다 두 가지 크기로 총 20가지 모델이다. 조나단 아이브 아래 천체물리학자, 최고 권위의 의학자, 수학자, 영화제작자, 사진가, 뮤지션 등이 애플 기술자들과 함께 개발한 시계의 기능은 말할 것도 없겠다. 이제 패션 군중에게 관건은 패션 액세서리로서 어떤 존재감을 보여주느냐다. 조약돌처럼 둥그스름한 모서리와 전면의 부드러운 사파이어 크리스털 직사각형 케이스는 매끈하게 세공한 모던한 주얼리처럼 보일 정도다. 착 달라붙으며 잠기는 밀레니즈 루프의 자석 기능만큼 라운드형 모던 버클(델보 브리앙 백의 우아한 잠금장치를 연상시킨다) 역시 패션 피플들이 칭찬했던 대목이다.
애플사는 <보그>는 물론 아제딘 알라이아 파티, 꼴레트, 분더숍처럼 패션 중심부에서도 핵심을 건드려 그곳에서 이 시계를 짠 하고 공개했다. 바꿔 말해 패션 산업이 또 하나의 액세서리로 지목하게 만들었다는 뜻. 전략이 제대로 먹혔는지 “아주 모던하기에 현대 여성들에겐 완벽한 액세서리가 될 것이다”라고 패션 전문가들은 첫눈에 감탄했다(조나단은 패피들이 스테인리스 스틸의 메시 밴드 버전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또 아제딘 알라이아가 주최한 애플 워치 파티에서 안나 델로 루쏘는 흰색 가죽 밴드가 들어간 로즈 골드 에디션을 탐냈고, 발렌티노 디자이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는 흰색 케이스가 특징인 흰색 플라스틱 스포츠 버전을 욕심냈다는 후문). 그렇다면 이 애플 워치를 일상에선 어떻게 연출해야 더 폼이 날까? “나오자마자 바로 살 예정”이라고 말했던 패션 피플들이 애플 워치에 대처하는 자세를 들어봤다.
MODERN TIMES
강남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현대적인 빌딩의 39층 한 회의실. 그곳에 혼자 앉은 나는 탁자에 놓인 탄산수를 홀짝 삼키며 떨리는 마음을 달랬다. 곧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리고, 자연스럽게 보안을 위해 잠겨 있는 유리 문을 지나 애플 본사에만 자리한 ‘시연을 위한 특별한 미디어 룸’으로 안내됐다. ㄷ자로 둘러싼 소파 중앙의 내 앞에 놓인 건 세상이 열광하는 새하얀 정사각형 박스다. 비로소 마주하게 된 새하얀 박스 안에 모두를 흥분시킨 애플 워치가 담겨 있었다. “한번 열어보시죠.” 애플 직원의 말에 최대한 자연스럽게 박스를 둘러싼 비닐을 뜯고서야(비닐을 뜯는 방향까지 알려주는 스티커 속 화살표의 존재를 눈치챈 사람이 있을까?) 그 영롱한 실물을 영접할 수 있었다.
곧 이어진 건 내 목소리로 아이메시지 답장을 보내고,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고, 하루 동안 내 활동량을 체크하고, 친구에게 내 심장박동을 보내는 등 애플 워치의 모든 기능에 관한 완벽한 ‘교육’. 놀라운 기능에 정신이 뺏길 만했지만, 사실 그 시간 내내 마음속으로 디자인의 아름다움에 감탄의 감탄을 거듭했다. 내가 선택한 건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와 가는 스틸 코일을 직조해 완성한 밀레니즈 루프. 사각 프레임만 빼면 IWC 포르토피노를 닮기도 했고, 케이스는 까르띠에 산토스의 금빛보다 더 반짝이는 듯했다.
마침 입고 갔던 하늘색 옥스퍼드 셔츠 소매 끝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그날의 착장을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 팔목에 애플 워치를 장착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달라진 건 많다. 운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카카오톡 답장을 보내고, 하루 목표 활동량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이 움직이게 됐다. 스타일링이 변했다면, 예전보다 셔츠를 더 자주 입게 됐다는 것. 메탈 스트랩에는 셔츠가 더 잘 어울린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께 매치할 아이템도 고민했다. 보헤미안적인 구찌 체인 팔찌를 겹쳐봤지만, 탈락. 아무래도 메탈 스트랩에는 좀더 모던하고 깔끔한 디자인이 잘 어울렸다. 5년 전 구입한 아크네 스튜디오의 메탈 팔찌가 제격. 좀더 여름 느낌을 내고 싶을 땐, 유즈드 퓨처의 네온 컬러 실 팔찌도 잘 어울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볼까? 이 놀라운 시계는 홀로 있을 때 가장 빛나는 것 같다. 무심하게 말려 올린 스트라이프 셔츠 소매 아래로 살짝 보이는 그때 말이다. ─ 손기호(〈보그〉 패션 에디터)
FIFTY SHADES OF GREY
연예인도 새벽부터 줄을 서던 6월 26일. 애플 워치를 구입하기 위해 분더숍 청담에 들렀다. 프라이빗 룸에서 제일 먼저 내 손목에 올린 건 로즈 골드 케이스의 리미티드 에디션! 이건 마치 버킨 백을 처음 들어보게 하고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라는 식이었다. 매장에서 버킨 백을 들어봤는데 스카프라도 하나 사야 되지 않을까라는 심정으로 구입한 나의 애플 워치는 ‘스페이스 그레이 알루미늄 케이스의 애플 스포츠’. 매트 블랙에 가까운 그레이 컬러 케이스는 주변 사람들이 “혹시 그거 애플 워치?”라고 반응할 때면 잠자고 있던 디스플레이에 미키 마우스가 발을 까딱거렸다.(후훗) 그렇다 해도, 애플 워치는 그냥 내가 갖고 있는 시계 중 하나라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케이스에 스크래치가 날까 두려워 다이얼에 필름을 붙이고 액세서리를 생략한다면 순간 스마트 밴드로 전락한다.
내 경우에는 기본 스포츠 밴드와 클래식 버클 두 가지를 구비했다. 주말이나 운동하러 가야 하는 날이면 스포츠 밴드에 손목에 늘 차고 있던 니트 팔찌를 조합한다. 행사나 미팅이 있는 날이면 클래식 버클로 바꾸고 에르메스 클릭 아슈나 다이아몬드를 살짝 두른 가느다란 뱅글을 매치한다. 애플 워치는 기존 시계처럼 손목 에서 살짝 찰랑거리게 차는 것이 아닌 꼭 맞게 차야 한다(왜냐하면 수시로 심박수를 체크해주니까). 아울러 손목에 꼭 맞는 뱅글과 어우러져야 더욱 멋지게 스타일링할 수 있고, 참 장식이 달린 브레이슬릿을 하고 싶다면 애플 워치와 참 브레이슬릿 사이에 다른 뱅글을 겹겹이 해주는 것이 현명하겠다.
애플 워치를 구입한 이후 나는 평소보다 블랙 룩을 더 고집하게 됐다. 블랙 룩과 매치했을 때 애플워치 특유의 스페이스 그레이 컬러의 케이스가 더욱 세련되게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링은 프라다 블랙 나일론 스커트와 블랙 로저 비비에의 떵 칩 샌들, 그리고 애플 워치, 화이트 에르메스 클릭 아슈 하나! ─ 전효진(〈레옹〉 부편집장)
LESS IS MORE
‘그렇게 갖고 싶었니?’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용암처럼 끓어 오른 소유욕은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통장과 새벽 기상 따위에 굴하지 않았다. 푸른 새벽 공기를 마시며 70번째 대기표를 성배처럼 받아 들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앞에 도열한 69명이 죄다 남자였던 것(팔자에도 없는 홍일점이라니!). 이내 취재차 분더숍을 찾은 후배 기자들과 분더숍 홍보 담당자에겐 만두처럼 퉁퉁 부은 얼굴로 여유로운 척 미소를 띠었지만 정작 속내는 상황이 몹시 민망할 뿐. 이 ‘바닥’에 유난스러운 ‘디지털 덕후’임을 커밍아웃한 셈.
결론적으로 직접 대면한 애플 워치는 영겁 같았던 2시간 47분의 고통(?)을 단숨에 보상했다. 상상 속에서만 수십, 수백 번을 찼던 밀레니즈 루프 밴드의 애플 워치가 내 손목을 ‘착’ 감는 순간의 황홀함이란! 찬란한 바게트 컷 다이아몬드를 빼곡히 심은 주얼 워치와 수억 원의 투르비용 워치가 부럽지 않았다. 이내 당연한 수순처럼 패션 기자의 본능에 충실, 이 아이를 어떻게 치장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마침 2015 F/W 프레젠테이션 시즌에 화보 촬영이 이어진 터라 다채로운 손목 스타일링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스타일링하지 않는 것이 가장 완벽한 스타일링! 애플 워치는 덜어낼수록 빛났다. 개인적으론 온갖 액세서리를 잔뜩 동원하거나 애써 특정 아이템에 대입하는 건, 애플 워치의 철학과 미학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조악한 ‘사제’ 밴드는 애플 워치에 대한 경멸이요, 우롱이다.
애플 워치 출시와 동시에 www.casetify.com, 혹은 www.monoweardesign.com 등 기민한 서드 파티 업체 덕분에 악어, 뱀가죽, 심지어 현란한 꽃무늬로 머금은 밴드가 콸콸 쏟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진리는 ‘순정’이다. 고로 무엇을 바꾸고 더할까를 고민하기보단 애초에 선택이 중요한 것. 내가 생각하는 가장 미니멀하면서도 세련된 조합은 애플 워치에 스틸 메시 소재의 밀레니즈 루프 밴드, 또는 클래식한 가죽 소재인 모던 버클의 앙상블. 안타깝게도 둥그스름한 러버 밴드에 알루미늄 케이스로 이뤄진 스포츠 모델은 기존의 스마트워치가 그렇듯 만보기의 기능에 충실한 손목 위의 ‘기계’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송선민(콘텐츠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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