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의 덫
노시인과 제자, 그리고 17세 소녀의 사랑과 파멸을 그린〈 은교〉. 원작 소설가 박범신과 감독 정지우가〈 은교〉의 비밀의 문을 열었다. 싱그러운 여름 화초 같은 ‘은교’ 김고은이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노시인 이적요와 17세 소녀 은교의 서사는 일흔 넷의 괴테와 열아홉 소녀 울리케의 사랑을 연상케한다”라고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쓰고 있다. 소설 <은교>는 노년의 욕망에 대한 현미경적인 보고서이며, 한 소녀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스승과 제자의 집착의 드라마다. 정이 넘치던 사제지간이었던 이적요와 서지우의 관계는 은교를 둘러싸고 조금씩 긴장이 흐르기 시작하고, 열등감과 질투, 모욕이 뒤섞인 채 지옥으로 달려간다. 박범신 원작 소설을 정지우 감독이 영화로 옮긴 <은교>. 스크린에서는 박해일이 노시인 이적요를, 김무열이 그의 소설을 훔친 제자 서지우 역을 맡았다. 그리고 화제의 중심에 선 관능의 소녀 ‘은교’ 김고은이 있다.
<보그>는 ‘은교’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탐험하기 위해 박해일과 김무열이 아니라 박범신과 정지우라는 두 명의 예술가를 초대했다. 소설 속 노시인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둘 사이를 비집고 싱그러운 여름 화초 같은 김고은이 고개를 디밀었다. <보그> 안에 <은교>를 둘러싼 리얼리티 세상이 열렸다. 깊은 밤 원고지 속에서 고독하고 황홀하게 ‘은교’의 세계를 열었던 박범신과 카메라로 세 사람의 슬픈 갈망을 담아낸 정지우는 서로 결이 다른 예술가였다. 박범신에게 은교가 판타지였다면, 정지우에게 은교는 실체였다. 우리의 꽃 같은 ‘은교’ 김고은은 노작가와 젊은 감독 사이에서 배시시 웃기만 했다.
그 해 가을, 내 집에 하나의 움직이는 등롱이 들어왔다. 애드거 앨런포의 허물어 가는 ‘어셔가’의 저택처럼, 그 애가 들어오고, 비로소 내 집에 초롱이 켜졌다. 가을이 깊을 때까진 말 그대로 그애는 다만 꽃초롱, 혹은 등롱이었다. 그래서 나의 욕망은 비교적 양지 바른 곳에 은거해 있었고, 특별히 포악스럽지도 않았다… 그애를 처음 만난 처음부터 발화되기 시작한 내 본능이 음험하게 잠복되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잠복은 평화다….-‘이적요의 노트’ 중에서 박범신의 노트, 내 안에 짐승이 산다 내 안에는 늙지 않는 짐승이 산다. 그놈은 많이 달리고 예민한 짐승이다. 나는 그 짐승이 말하는 걸 받아쓰는 중이다. 그 짐승은 나이가 없고 세상의 고정관념에도 순응하지 않고, 늘 반역을 꿈꾼다. 그 짐승이 나의 창조적 자아다. 1993년 절필하고, 다시 1996년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15년 동안 나는 갈망을 그렸다. <은교>는 이룰 수 없는 갈망의 결정판이다.
이 이야기는 허구지만, 나이 들면서 내 마음을 강력히 반영했다. 자판을 치는 손가락을 멈추지 못했다. 안 쓰기가 어려웠다. 쉴 수가 없는 폭풍의 질주였다. 장편 소설을 한 달 반 만에 쓴 게 처음이었다. <은교>는 내 자신의 감정을 가장 강력하게 반영한 소설이었다. 내 주변의 여성 친구들 말을 빌면, 이적요의 디테일은 모두 나에게서 왔다. 소설가 박범신의 감정을 죽이고 개입을 자제하려 했지만,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은교>는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이야기다. 존재론적인 슬픔과 갈망이다. 내 맘에 불타는 화염병이 있다. 젊은 그들은 내가 나이 든 줄 알지만, 여전히 내 심장은 불타고 있다. 이걸 현실에서 풀면 나는 미친놈이 된다. 나는 문학이라는 숲에서 작가라는 나의 본능을 따라 살 수 있다. <은교>를 쓰는 동안 매우 행복했고 매우 슬펐다.
내 안에 맺혔던 응어리들이 풀려나갔다. 내 자신에 대한 살풀이였다. 그걸 풀어내서 행복했다. 그러나 그만큼 슬펐다. 이적요의 갈망은 살아 생전 이룰 수 없다. 모든 작가는 이적요와 서지우를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은교>를 쓸 때는 나는 천재 시인 이적요에 깊이 몰입 했지만, 다른 작품을 쓸 때는 ‘내가 이렇게 글을 못 썼던가’하고 자책하는 서지우가 된다. 그래서 이적요와 서지우의 사랑이 깊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두 사람이다. ‘은교’만이 내 머릿속 상상의 세계에서 나왔다. 관능…, 나에겐 모든 예술이 관능이다. 섬세한 관능이 없으면 예술은 불가능하다. 예민한 것 그 자체가 관능이다. 예술하는 사람은 온몸이 성감대여야 한다. 온영혼이 다 성감대여야 한다. 바람만 지나가도 흔들리고 그림자만 깃들어도 숨을 죽인다. 그러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한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뭐랄까, 그 눈빛은 맑으면서도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먼 곳을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리움이 많은 여자애 같았다…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 건 은교가 아니라 선생님 쪽이었다. 은교를 바라보는 선생님의 시선에 자주 불씨 같은 게 타올랐기 때문이었다…. 은교에 대한 나의 혼란도 나날이 더 깊어지고 있다…내 마음속 불길이라는 게, 선생님의 은교에 대한 상식을 넘어서는 욕망을 발견하고부터 더욱 뜨겁게 번지니, 참 묘한 일이다….- ‘서지우의 노트’ 중에서 정지우의 노트, 나만의 ‘은교’를 찾아서 300명을 만났다. 내가 원한 건 여자 어른이 아니었다. 아이였다. 그런데 여자는 ‘어떤’ 나이를 넘으면 어린 ‘여자’가 된다. 나는 아이를 원했다. ‘은교’의 첫 등장이 ‘여자’면, 그 여자는 성적 대상이 된다. 나는 그 성적 대상을 조절할 수 없다. 성적으로 매력적인 어린 ‘여자’들과 야심이 명료한 아이들은 이 이야기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그건 원조교제와 다름없어질 테니. 김고은은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이 영화로 무엇이 되려기 보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천진한 호기심. 이적요와 서지우라는 두 남자 사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원초적 호기심. 김고은의 반대편엔 아이돌 연습생들이 있다. 나보다 더 명료한 목표를 가진 그런 아이들. 그들이 ‘한 남자는 죽고, 한 남자는 시체가 되어 나가는’ 이 이야기에 들어온다면 그건 뻔한 팜므 파탈… 나는 본질이 ‘은교’인 여배우를 찾았다. 그리고 고은이를 만났다. 고은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아이는 아이였다. 지금은, 여자가 됐다. 아이가 영화라는 뜨거운 이야기를 겪고 여자가 됐다. 이것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자연인 ‘김고은’이 겪고 깨달은 이야기가 된 것이다.
그 아이 고은이가 이런 경험을 꼭 해야 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제가 이렇게 예쁜 아이인 줄 저는 몰랐어요. 고마워요” 말하곤 아이는 떠난다. 고은이는 롤리타가 아니다.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이라는 영화에서 먼로가 얘기한다. “사랑받고 자라야한다.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줄 알아야 한다.” 나의 ‘은교’에게는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표면적으로 이 영화는 노인이 실연 당하고 ‘반전’의 기회 없이 떠나는 이야기다. <은교>를 만들면서 ‘늙는다’라는 게 진짜 끔찍한 일이라는 걸 느꼈다. 처절하게. 박해일과 나는 영화를 찍으면서 점점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건 미리 가본 미래였다. 박해일은 분장하고 나면 점점 위태로워졌다. 20대에게 시련(혹은 실연)은 딛고 일어설수록 아름답지만, 노인에겐 돌이킬 시간이 없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서지우에게 매력을 느낀다. 나에게 없는 걸 갖고 싶고, 그걸 뺐었을 때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순도 높은 쾌감. 그렇게 이적요와 서지우와 은교는 대상화되지 않고 자기만의 입장을 갖는다. <해피엔드>나 <사랑니>에서도 나는 삼각관계를 만들었다. <은교>를 끝내고 나니, <클로저>처럼 관계의 각을 더 비틀어 보고 싶다.
그 애가 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내 집에서 감히 그 애를 건드렸다. 감히 나의 왕국인, 나의 고유한 ‘내 집’에서. 이는 나를 모욕하고 내 돈을 훔치는 것과 비교해 결코 하찮다 할 수 없는 중대한 도전이다. 손님으로 온 사람이 내 집의 아내를 건드렸다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어떻게 이런 놈을 품에 안고 십 년이나 지내왔단 말인가….-‘이적요의 노트’ 중에서
박범신의 노트-관능과 질투는 한 숙주에서 나왔다 <은교>의 관능은 음란이 아니다. 예술가가 지닌 숙명이다. 아!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관능이다. 우리는 합리적 세계 속에 살기 때문에, 관능은 감수성이 된다. 관능과 질투는 한 숙주에서 나온 알이다. 관능을 뒤집으면 질투요, 질투를 뒤집으면 관능이다. 쌀에서 비타민 A와 B를 분리할 수 없듯이,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떼놓을 수 없듯이, 관능과 질투는 한 덩어리의 생명으로 존재한다. 여자, 여자란 무엇인가? <은교>에서 ‘은교’는 꼭 17세 소녀일 필요는 없었다. 관능은 억압이 강할 때 폭발한다. 나이의 배타성이 강할 때 에로티시즘은 폭발한다. ‘은교’의 나이가 마흔이 아닌 열일곱인 것은 극적 긴장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다. 이적요는 은교가 어려서 사랑에 빠진 게 아니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영원히 늙지 않는 처녀다. 은교는 이적요의 관념에서 나온 인물이다. 그래서 이적요의 노트와 서지우의 노트는 있지만 은교의 노트는 불가능하다. 은교는 실체가 아니라 관념이니까. 은교가 사실적이었다면 이건 실패했다. 노인이 17세 소녀에게 빠진다면 그건 스캔들일 뿐, 누가 이 소설의 슬픔에 동의 하겠는가. 은교는 그냥 그리운 어떤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은교가 꼭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평생 갈망하는 어떤 것, 그것을 은교에게 얹었다. 평생 내가 그리워하는 게 뭔지 나도 모른다. 굳이 꺼내서 말하자면 불멸이겠지. 영원히 사는 것. 이적요 안에는 불멸의갈망이 있었다.
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진실로 말하건대, 나는 여전히, 아직도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 …자신의 시간을 뛰어넘으려는 미친 역주행까지도. 그러므로 용기 없는 나이지만, 어느 때 마침내 당신을 정말로 죽이려 할지도 모른다… 은교 말은 백번 지당하다. 지금은 물론 과거에서조차 단 한 번도 선생님보다 젊었던 적이 없었다….-‘서지우의 노트’ 중에서.
정지우의 노트-늙는다는 것의 냄새 박범신 선생님은 나를 서지우로 대하고 싶어 하신다. 한 방송사 여행 프로그램에서 박 선생님과 나, 재즈 피아니스트 진보라가 셋이 ‘청산도’로 여행을 갔다. 나는 조용히 박 선생님과 진보라를 관찰했다. 이적요에게 있는 로맨틱한 멋은 그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의 귀여운 본질을 훔쳐봤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은교>를 만들었을까? 어느 순간 남자가 늙는 것에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내 나이 45세. 두려움이 완전히 몸을 휘감진 않았지만, 늙음 쪽으로 문이 열렸다. 여자가 늙는 건 어떤 기분일까도 궁금했다. 아니 에르노의 <탐닉>을 읽었다. 전도연이 할머니 분장해서 어린 남자와 연애하는 영화를 찍어볼까 생각했지만, 10시간의 노역 분장은 그녀를 미치게 할 것이다. 박해일 같은 괴물이니까 가능했지. 노인의 손이 소녀의 가슴을 덮치는 ‘상상의’ 그림을 관객은 못 견뎌 할 것이다. 그건 관객에게 고통을 준다. 카메라는 다른 소설과 다른 매체고 나는 나만의 문법이 필요했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는 아니지만, 1/3쯤은 게이 성향이 있다. ‘은교’가 아이여야 한다는 것도 그래서다. 여자가 되기 전의 아이는 금기의 끝이다. 현실에서는 범죄지만, 예술에서는 표현의 욕구가 약동한다. 그 경계를 조심스럽게 넘나들고 싶다.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가 섞여 있는 그 모습을 좋아한다. 보통의 한국 남자가 갖고 있는 남성성이 내게는 없다. 나는 권력 관계로 다투는 남자 이야기에 흥미가 없다. <해피엔드>는 남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영화지만, 최민식, 전도연, 주진모 각자가 주인공이었다. 나는 그 균형감을 지켜주고 싶었다. <은교>에서는 서지우를 맡은 김무열도 지켜주고 싶다.
내 안에 노인성은 별로 없다. 그냥 청년성이 부패해 간다고 느낀다. 조금씩. 박해일이 고목나무 같은 인간이 되어가는 걸 보면 보면서 알았다. 여전히 우리의 정서는 10대고, 습관은 20대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산다. 상황과 시선이 나를 노인으로 볼 뿐. 박해일의 분장이 우리에게 그걸 알려준다. 영화 후반부에 눈 오는 날 이적요와 은교가 마지막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찍고, 박해일과 나는 모니터를 보고 통곡을 했다. 서러웠다. 억울했다.
손잡고 보고 얘기하고 싶은데… 돌이킬 수 없다는 노화의 통증을 느꼈다. 김고은은 요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가 누군가를 유혹하면 그 사람은 사경을 헤매게 될 것이다. 전도연이 <은교> 촬영장에 온 적이 있었다. 전도연과 김고은은 본질이 너무 비슷하다. 아이처럼 따르다가 누나처럼 포근해질 때, 나는 김고은이 무섭다.
내 마음속 영원한 젊은 신부, 은교… 너로 인해, 내가 일찍이 알지 못했던 것을 나는 짧은 기간에 너무나 많이 알게 되었다…내 몸 안에도 얼마나 생생한 더운 피가 흐르고 있었는지를 알았고, 네가 일깨워준 감각의 예민한 촉수들이야말로 내가 썼던 수많은 시편들보다 훨씬 더 신성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고….-‘이적요의 노트’ 중에서
박범신의 노트, 밤에만 읽어야 할 이야기 정지우 감독은 본능의 최저층에 있는 미묘한 인간 심리를 그리는 데 재능이 있다. 정지우 감독이 <은교>를 원했을 때 허락한 이유다. 그가 김고은을 찾아냈다. 보는 순간 그 아이는 딱 은교였다. 하지만 너무 어리다. 정지우가 찾아낸 ‘은교’는 너무 어려 연애나 한번 해봤을까… 그 아이 속에 마흔 중년도 예순 노인도 다 들어 있어야 한다. 나의 ‘은교’는 나이 누이고 애인이며 어머니다. 여자는 본디 나이가 없어 모든 여자에게 모든 세대가 다 깃들어 다. ‘은교’는 나의 판타지인데, 김고은이 환상의 유리를 깨고 튀어나온 셈이다.
박범신과 정지우와 김고은은 어떤 관계인가 하면 삼각관계다. 김고은이를 둔 삼각관계. 그런데 정지우가 그 아이를 찾아냈으니 게임이 되겠나? 세상엔 은교가 많으니 나는 또 찾아야겠지. 젊은이들은 얼마나 빛나는 존재인가. 난 그걸 몰랐다. 젊은이는 광채가 있다. 은교는 빛이다.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빛과 같은 존재.
<은교>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건 기쁘다. 하지만 영화는 책을 다 찍을 수 없다. 은교가 등장하는 첫 장면을 위해 나는 은교를 수백 군데 이미 앉혀 보았다. 내 머릿속 스크린에서 수도 없이 로케이션을 한 후에, 은교는 이적요의 집 데크에서 잠이 든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이 영화 <은교>를 본 후에 <은교>를 읽었다고 착각한다면 오산이다. 1980년대는 원작자의 힘이 관객을 극장으로 모았는데, 이제는 영화의 힘이 독자들을 서점으로 모은다. 그렇게 시절이 변했다. 좋으면서 씁쓸하다. 나는 이 이야기를 밤에만 썼다. 그래서 밤에만 활동하는 본능의 힘으로 들키기 싫은 밑바닥 심리까지 드러냈다. 점잖은 사람은 자기 성감대를 감추고 산다. 나는 그걸 건드리고자 밤에 깨어 폭풍처럼 질주했다. 우리가 스스로 억압해서 감옥에 가둔 것들을 여기 풀어놓았다. 이 이야기를 밤에만 읽기 바란다.
선생님에게 공포감을 느낄수록 은교를 향한 열망이 더 격렬해지는 내 심리가 참 묘하다… 은교는 내 것이에요,라고 저 ‘늙은이’에게 소리쳐 외치고 싶다. 당신은 너무 늙었잖아요,라고도… 아, 어째서 선생은 자신을 보지 못할까….–‘서지우의 노트’ 중에서
정지우의 노트, 이 아이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고은이의 몸을 통해 음심을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와 정정당당하게 대면해야 했다. 다 보여야 하고, 그렇게 찍고 싶다고. 그것에 동의하면 불편함을 없애는 방법을 찾자고. 하지만 최악의 경우 이 영화는 완전히 망하고 너는 참담해질 수도 있다고. 그래도 하고 싶으면 하자고. 나중에 원망이 생기면 인생이 피폐해지니까 그러지는 말자고. <해피엔드>를 하면서 전도연의 노출을 통해 이게 굉장히 소란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김고은은 자기 중심이 단단하다.
<색, 계>를 찍은 탕 웨이나 장선우 감독이 발굴한 이정현과도 다르다. 이 아이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일회성으로 소모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녀는 순식간에 우리가 왜 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고 이야기 속으로 쑥 들어와버렸다. 박해일 같은 훈련된 배우에게나 일어날 기적인데.
감독으로서 나는 내 이야기의 목표와 내 배우의 본질이 갖고 있는 내면이 일치되기를 소망한다. 만약 그게 다르면 자연인으로서의 배우의 틈새로 캐릭터나 이야기가 움직여야한다. <해피엔드>와 <사랑니>와 <은교>를 사랑의 3부작으로 본다면 <사랑니>만 밝게 돌출된다. <해피엔드>와 <은교>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욕망에 대한, 매혹에 대한, 갖고 싶은 것에 대한…. 이런 갈증의 끝까지 가보고 싶다. 나는 본질적으로 사는 게 슬프다. <은교>를 끝내고 나서 알았다.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우나기>를 만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언젠가 죽기 전에 말씀하셨다. 기나긴 인생을 살다 보니, 맛있는 거먹고, 좋은 섹스하는 게 최고더라. 발기가 안 되는 노인 감독이 다루는 소녀는 대상이 아니다. 이성이지만 대상화되지 않는다. <정사>를 만든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도 그랬다. 그게 슬프다. 아마도 그리운 것은 같은데 그리워도 작동이 안 되는 어떤 지점에서, 희안하게도 비어 있는 그 무엇이 진짜 나오게 되는 것 같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은교의 하얀 손등에서 시작되었다. 유리막대를 쥐고 설탕물을 휘젓는 그 작은 손이 사랑의 폭풍을, 죽음의 회오리를 일으켜도 천진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은교. 은교는 알았을까 폭풍의 노래가 사나워지고 있다는 것을….-‘시인 김행숙의 노트’ 중에서
김고은의 노트, 내가 한때 은교였을 때 처음엔 오디션이 아니라고 했다. 그쪽 스태프 중 한명이 내가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올린 연극 한 편을 보고 대수롭지 않게 내 이름을 떠올렸다고 했다. 하층민들의 삶을 다룬 <밑바닥에서>라는 연극에서 나는 여관 주인의 아내 역을 맡았다. 그악스럽고 강한 여자였다. 평소에는 바보처럼 웃기만 하던 내가 드센 연기를 했던 게 기억에 남았던 모양이다. 선배에게 전화를 받고 가던 날은 우연히도 박해일 선배가 노인 분장 첫 테스트를 하는 날이었다. 가는 도중 갑자기 감독님이 날 보고 싶어 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당황스러웠다. 오디션 준비도 전혀 안 돼 있는데… 게다가 ‘은교’ 캐스팅은 이미 끝났다고 하지 않았나.
감독이란 직업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났다. 정지우 감독님은 팔을 긁적거리면서 웃었다. 그를 보자마자 마음이 훅 풀어졌다. 은교에 대해 내가 자라온 환경에 대해서 쫑알쫑알 떠들었다. 감독님이 노출에 대해 물었다. 내가 존경하는 전도연, 탕 웨이는 작품을 위해 훌륭한 노출 연기를 해냈다. 배우가 되기 위해선 그런 모험이 필요한 건 당연지사. 그런데 지금 당장? “그건 그건… 모…모르겠어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음날 정오에 나가 보니 감독님과 투자자와 프로듀서… 모든 영화 관계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분들 앞에서 준비해간 독백을 해보였다. 내가 은교라고 가정하고 쓴 첫 독백에 대한 반응은 뜨악했다. 감독님은 당황하셨다. “고은 씨! 그것 말고, 호…혹시 다른 건 없어요?” 다행히도 두 번째 독백에 투자자들은 안심하는 미소를 지었다. 감독님이 이미 나를 ‘은교’로 확정하고 주선한 자리였다. 이젠 내가 대답할 차례였다. 나는 ‘은교’가 될 각오가 돼 있지 않았다. 단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일 뿐. 모든 것이 두려웠다.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아빠는 “안 돼!”하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셨다. 몇 시간이 흐른 뒤, 아빠가 침착한 얼굴로 나왔다. “고은아! 나는 우리 딸이 귀엽고 풋풋하게 데뷔했으면 좋겠어. 그렇게 시작해서 좋은 배우가 될 거라는 확신이 있어. ‘은교’를 하면 그런 방향으로 갈 수는 없어. 하지만 나는 너의 배우로서의 방향성을 알고 그거에 공감해. 그러니까 너 스스로를 믿고 판단해.” “하지만 두려워. 아빠!” “모든 건 너의 결정이야. 해도 되고 안 해도 돼. 그런데 시간이 흘러 다른 기회가 오면 너는 또 다른 두려움이 생길 거야. 그때 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겠니?” “그게 무슨 두려움인데?” “그건, 아빠도 모르지.” 그때 결심이 생겼다. 나는 해낼 수 있겠구나! 내가 두려움 때문에 ‘은교’가 되지 못하는 건 바보다. 배우는 항상 두려움 속에서 새 생명을 출산한다. 감독님은 이 영화가 나에게 ‘도박’이라는 걸 일깨웠다. 최악을 가정하고 해야 한다고. 후회하지 않도록 한계치까지 하자,는 답변이 나왔다. 사흘 만에. 그리고 마침내 ‘은교’에게 들어갔다. 김고은을 지켜내기가 힘들 정도로 격렬하게. 박해일 선배가 분장을 끝내고 느릿느릿 걸어오면 “할아부지~!” 하는 어리광이 절로 나왔다. 추위에 시달리고 감정에 시달리고 살이 쏙 빠진 걸 보고 어느 날 감독님이 그러셨다. “어느새, 여자가 됐구나!”
박범신 선생님은 은교를 실체로 그리지 않았다. 은교는 할아버지가 탐하고 실망하는 대상이다. 이적요는 자기 마음을 전혀 내색하지 않는다. 젊음에 대한, 은교에 대한 사랑이 넘치지만, 그걸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박범신 선생님은 툭툭 귀엽게 농을 던지신다. “나를 사랑해야 은교가 된다”거나 “광고 찍으면 2만원만 투자해서 소주 사들고 오너라”고. 정지우 감독은 은교를 실체로 만들어줬다. 작품이 끝난 후 그가 말했다. “고은 씨! 이젠 본인을 좀 칭찬해도 돼.” 나는 폭풍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온몸이 두려움 속에 요동쳤다. 해냈다,라는 자신감보다는 조금 덜 불안해진 느낌. 모든 게 이 시기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김지수
- 포토그래퍼
- 보리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최유림(Agent de Bettie, 헤어 / 차홍(Ardor), 메이크업/최시노
추천기사
-
여행
풍성하고 경이로운 역사를 품은 스페인 중부 여행 가이드
2024.11.22by VOGUE PROMOTION, 서명희
-
아트
'올해의 작가상 2024', 우리 시대의 단면
2024.11.14by 황혜원
-
셀러브리티 스타일
겨울을 닮은 화려함! 리한나-에이셉 라키의 레드 카펫 룩
2024.12.03by 오기쁨
-
패션 아이템
어깨와 싸울 일 없는 올겨울 유행 가방
2024.12.02by 이소미
-
여행
패션 디자이너들이 진짜 휴식이 필요할 때 가는 곳
2024.11.29by 류가영
-
워치&주얼리
부쉐론의 별이 빛나는 밤
2024.12.03by 신은지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