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의 패션 신 ‘비욘드 더 베스트’
자연인 정윤호와 심창민이자 5만 5천명이 빼곡히 들어찬 도쿄돔 무대에 서는 유노윤호와 최강창민. 동방신기는 대중음악 트렌드와 상관없는 길을 가는데도 여전히 톱이다. 그들만의 정제된 무대와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동방신기는 동방신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동방신기, 이름 네 자를 읊는데 숨이 턱 막혔다. 언제 컴백할지 모르는 그들의 상황을 체크하느라 계절이 몇 번 바뀐 건 이내 잊었다. 컴백 시기가 확정되자, 화보 촬영일자를 잡는 데는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되기 위해 견뎌야 했던 시간의 반도 걸리지 않았으니까. 늘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며 움직여야 하는 동방신기의 하루하루 스케줄은 사전에 명확하게 채워진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욕심이 생긴 우리는 ‘만남의 장소’로 실내 스튜디오 대신 야외를 불렀다. 은밀히 몸을 감춰야 할 스타에게 사방이 트인 곳에서 접선하자고 한 것이다.
으슥한 풍경 속에서 터프한 느낌 그대로 서 있는 두 남자를 떠올리며, 인적이 드문 노들섬 한 구역을 낙점했다. 주인공은 동방신기다. 어떤 작전을 감수해도 좋을 그 이름을 생각하면, 일체의 잡음이 일어선 안 될 일이었다. 관리사무소와 파출소에 촬영 허가를 받았다. 드럼통에 불씨를 피웠다가 한강대교 위를 지나가던 시민이 신고라도 하면 어쩌나? 소방서에 오늘의 촬영을 신고했다. 한강대교 일대에서 노들섬 텃밭을 지나 문제의 장소에 이르는 길마저 간단치 않았다. 요란한 약도를 동방신기의 보호자인 SM 엔터테인먼트 직원에게 건넸을 때, ‘007 작전’을 간파한 직원이 소리쳤다. “우리, 영화 찍나요!”
동방신기는 뮤직비디오 촬영 때문에 3일 밤을 설친 상태였다. 9월 말 새 앨범 출시를 앞두고 조금씩 모든 준비를 마무리해 가는 즈음이었다. 거뭇한 수염 자국을 미처 다듬지 못한 두 명이 밴에서 내렸다. 사춘기 소년일 때 만난 두 사람이 비슷한 속도와 조건으로 성장하기도 힘들텐데,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은 ‘키 180cm 이상 9등신 모집’ 조건에 맞춰 모인 것처럼 체격이 비슷하다. 처음 그들 앞에서 터져 나온 말들은 격식있는 수사 따윈 잊어버린 단순하고 명료한 형용사뿐이었다. ‘길다’와 ‘잘생겼다’. 한 명이 “기네!” 하면, 옆 사람이 “참 잘생겼네!” 맞장구 치는 식이었다(스타일링을 맡은 임신 5개월의 패션 기자는 윤호와 창민이 서 있는 모습 자체가 태교에도 좋은 풍경이라고 흐뭇해했다).
지난 정규 앨범이 나온 때가 2011년 1월이었으니, 요즘 가요계 패턴을 생각하면 결코 짧지 않은 공백이었다. 공백 같은 건 물론 한국만 생각했을 때 일이다. 우리 눈에 안 보일 때면 그들은 일본이나 아시아 어딘가에 있었다. 동방신기 일본 소속사인 AVEX가 주최하는 ‘A-NATION’, SM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SM타운’, 그리고 동방신기 단독 투어 등 대형 공연 스케줄이 달력 위에서 어지럽게 교차한다. 그걸 대강 외워보겠다고 덤볐다가 금방 포기했다. SM 홍보 담당자도 포기한 일이다. 방송사들이 ‘코리안 뮤직 웨이브’ 같은 콘서트를 만들어 저마다 지구촌을 돌 수 있는 이유는 ‘SM타운 월드투어 인 파리’가 뭔가를 검증한 덕분이다.
작년 여름, <보그> 독점 리포트를 싣기 위해 파리 발 사진과 영상을 보다가 눈이 휘둥그래진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야 투어를 많이 했지만, 파리는 전혀 생소한 곳이었어요. 게다가 한창 활동 중인 후배들에 비하면 우리를 낯설어하지 않을까 했는데… ‘미로틱’을 시작하자마자 관객들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거예요. 대박이었어요! 정말 깜짝 놀랐다니까요.” 윤호가 그때를 떠올렸다. “누가 됐든 간에, 어느 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면 그가 속한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잖아요. 그런 식으로 더 많은 가수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듯해요. 해외에서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가 이슈인 시점이 있었어요. 그 덕분에 동방신기와 SM 가수들을 알게 된 유럽인이 있겠죠?” 미지의 시장에 뛰어들기 전엔 설렘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 것이다. 윤호는 두려움이 좀더 컸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국가대표 같은 느낌이 들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즐기고 있더라고요. 그순간 한 단계 레벨 업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SM 엔터테인먼트가 놀라운 점 하나는 그들의 발상이 결국엔 다수와 통한다는 것이다. 그 발상들은 대개 처음엔 당황스럽다. 여러 명으로 구성돼 한국과 중국에서 멤버를 다르게 운영하는 슈퍼주니어의 방식도 그랬고, 20대만 돼도 이해하기 힘든 정서의 노랫말을 들고 나온 f(x)도 그랬다. 동방신기는 이름부터 당황스러웠다.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지은 이름. 이들은 지금 해외에서 ‘TVXQ’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토호신기’다. 그리고 어느 대륙에서 ‘K-POP’ 콘서트가 열리든 가장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그것이 한국에서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저력 덕분이라면, 소속 가수는 그에 어울리는 수준으로 질을 높여야 살아남는다.
동방신기가 지난 앨범을 들고 나왔을 때, 그들은 2인으로 꾸린 팀이 허전하거나 생소할 것이라는 걱정을 첫 무대에서 바로 날려줬다. 음악과 퍼포먼스와 노래와 랩에서 어느 한 군데 기우는 것 없이 매끈한 모습이었다. 누구도 의심할 여지없이 톱인 가수에게 각종 차트 1위는 어쩌면 큰 의미가 없는 기록이다. 물론 동방신기가 올해 벌인 일본 투어에서 한국 가수로서는 최다 관객을 동원했다거나, 오리콘 주간 차트에서 해외 아티스트로는 처음으로 싱글 앨범 10장을 1위에 올렸다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동방신기라면, 어떤 바람을 안고 활동해야 하는 걸까?
이젠 ‘학교종이 땡땡땡’을 댄스 버전으로 들고 나와도 웬만큼 수익을 거둘 텐데 말이다. 윤호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제 생각은 달라요. 그 때부터 가는 거예요. 그때부터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우리 기록을 깨야 의미가 있어요.” 지금이 동방신기의 ‘그때’다. 창민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학창시절로 비유하면, 공부만 1등 하는 것 말고 여러 활동을 우수하게 했을 때 그 기억이 더 소중하게 남을 거예요. 공부 1등보다 뭔가를 더 쌓아가고 싶어요. 사실 우리 음악이 여기저기서 다 1등 할 만한 성격도 아니에요. 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즐겨 들을 수 있는 노래가 1등 하잖아요.”
화두는 음악으로 흘렀다. 그저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일이 중요할 것만 같은 아이돌 가수들도 때로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배우가 캐릭터 하나를 잘 만나야 상승하듯, 가수에겐 잘 만난 노래 하나가 브랜드니까. 하물며 동방신기는 솜털이 보송보송하던 시절을 지나 9년 차 그룹이다.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을 헷갈려 하는 사람도 동방신기가 그저 그런 달콤한 음악을 하는 팀은 아니라는 점을 알 것이다. 동방신기와 그 음악은 격렬한 댄스를 동반해도 수트 같은 유니폼이 어울린다. 정형화된 면이 있고, 때로 비장하며, 밝음보단 어둠에 가깝다. 노래방에서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도 아니다(부르다간 내가 지쳐 쓰러질 노래다). 대화 중, 우리는 이것을 쉽게 ‘헤비한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요즘 가요 트렌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잘 노는 아이들’ 빅뱅이 어떤 판도를 바꿔버린 이래, 퍼포먼스를 하는 가수는 두 가지 길 중에서 어느 한 가지를 해내지 못하면 시시하게만 보였다. 무대 위에서 제대로 놀거나, 완벽히 정제된 모습이거나.
동방신기가 트렌드와 상관없는 길을 가는데도 여전히 톱인 이유는 그들만의 정제된 무대와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다이내믹하게 짜인무대는 외모와 체격과 안무가 주는 느낌과 맞물려 그들의 육체성을 드러낸다. 윤호는 노래 실력이 갈수록 늘었고, 창민은 SM 소속 가수 중에서 샤우팅에 강한 유영진의 DNA를 가장 탁월하게 물려받은 인물이다. 동방신기는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동방신기가 된 이후에도 피나게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단둘이서 모든 것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헬스클럽에서 지나가던 아저씨 한 분이 갑자기 ‘니가 유노윤호지?’ 하더니 이러는 거예요. ‘너흰 한 방이 있어, 그래서 달라 보여’. 우리가 피를 토해내는 느낌이 있다는 얘길 가끔 들어요. 좀더 트렌디한 음악을 하고 싶을 때도 있죠. 하지만 우리 뿌리가 따로 있어요. ‘라이징 선’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부터 시작된 일이에요.”
창민은 이번 앨범을 준비하며 동방신기의 색깔에 대해 프로듀서인 유영진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쉽게 말해 ‘헤비한 음악’을 다시 들고나오면, 듣고 보는 사람들이 이젠 동방신기의 틀이 어떻다는 걸 규정할 거라고 판단했다. 창민은 동방신기가 하는 것들이 ‘그들만의 음악’으로만 여겨질까 봐 꽤 고민한 것처럼 보였다. 새 앨범에선 조금은 방향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게 동방신기의 결론이었다. 좀더 쉽고, 밝고, 다양한 장르로. “늘 우리의 숙제예요. 지금 분명히 있는 스타일을 잃으면 안 되고, 한 편으로 폭 넓은 사람들과의 접점도 찾아야 하고. 이건 뭔가를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가진 딜레마겠죠? 대중문화는 유행하는 것이 금방 바뀌고 소진돼요. 그때마다 구미에 맞춰 따라가면 결국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창민의 말에 이어 윤호가 다시 말했다. “자신 있어요.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너무너무, 아주아주 많은 걸 느꼈어요. 작업뿐만 아니라 제 개인적인 일 때문에요. 뭔진 말 못해요, 하하. 생각이 많았던 만큼 앨범에 생명감이 부여됐다고 믿고 싶어요.”
윤호와 창민은 같은 자리에 발 딛고 서 있지만, 둘의 스타일은 좀 다르다. 윤호는 날 때부터 사나이가 아니었을까? 마초 기운 없는 사나이라니, 얼마나 소중한 남자인가! 그는 과거와 뿌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동방신기 데뷔곡이었던 ‘허그’나 예전 무대도 곧잘 챙겨본다. ‘하루만 니 방에 침대가 되고’ 싶었던, 다 큰 남자가 보면 아무리 자기 모습이라도 쑥스러울 법한 그 소년 시절 말이다. 윤호는 ‘오글’거리는 게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때가 있으니까 지금이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잊고 싶지가 않아요. 제가 유노윤호가 아닌 정윤호로 살았을 때, 연습생이었을 때, 그 시간들을 안 잊으려고 해요. 어릴 때부터 알던 친구들과도 자주 만나요. 저도 열심히 살지만 다들 정말 열심히 살아요. 저는 그 친구들이 겪을 수 없는 사회 경험을 더 많이 하고 산 편이죠. 하지만 제가 다른 사람들에 둘러싸여 쉽게 얻는 것들을 몸소 부딪혀 얻는 친구들을 보면, 난 아직 어리구나 싶어요.” 이런 타입은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아도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SM 청소년 베스트 선발대회’에 참가해선 심사위원들에게 ‘떨어뜨려도 좋으니 내가 짠 춤은 끝까지 봐달라’라고 했다는 일화, 광주에서 홀연히 서울로 올라와 제설 작업, 고기뷔페 서빙 등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며 연습생 시절을 보낸 사연, 윤호는 그 시절부터 철없는 남학생들과 구성 성분이 달랐을지 모른다. 그래도 지난해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서울역과 공원에서 노숙하던 얘길 아무렇지 않게 해주던 모습엔 깜짝 놀랐다. 그는 노숙할 때의 노하우도 들려줬다. 벤치에 누울 땐 팔짱 낀 자세로 양손을 겨드랑이 쪽에 넣어야 열이 보존되고, 다리는 꼭 꼬아줘야 된다고. 그런 경험들이 굳은살 박힌 남자 윤호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윤호 형은 파이팅이 넘쳐요.” 창민이 말했다. “다들 힘들고 지칠 때 어떻게든 끌어나가는 사람이 하나는 있어야 되는데, 형이 그런 역할을 해줘요.” 화보 촬영을 할 때나 인터뷰를 할 때, 먼저 말을 걸고 ‘파이팅’ 넘치는 억양으로 추임새를 넣어준 것도 윤호였다.
창민은 지금껏 여러 자리를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봤다고 말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배드민턴을 치다가 그 모습을 수상쩍게 지켜보고 있던 SM 직원에게 픽업된 사연(보석을 찾기 위해 중고교 일대를 배회하던 캐스팅 매니저들은 90년대에도 있었다), 춤 한번 춰보라는 주문에 ‘군대박수’ 정도의 동작을 했다는 일화는 윤호와 너무 대조적이어서 웃음이 나온다. 쉬는 날이 생기면 윤호는 그냥 걷더라도 무조건 밖으로 나가고, 창민은 먹고 자고 뒹굴며 무방비 상태에 자신을 풀어둔다. 그는 이젠 동방신기 이전의 심창민으로 계속 자랐을 경우를 가정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변하려고 한 게 아니라 저절로 변한 거예요. 창피한 얘기지만, 이 일도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저도어느 순간 즐길 줄 알게 됐어요.”
연기를 즐기는 수준이 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창민의 첫 드라마 <파라다이스 목장>은 편성운이 없었다. 창민은 최근 츠마부키 사토시, 아사노 타다노부와 함께 영화 <황금을 안고 튀어라>를 촬영했다. 유학생으로 가장한 북한 스파이 역할. “외국어로 의사 소통을 하고 캐릭터까지 이해해야 하니까 다른 배우들보다 리액션이 0.5초 느렸어요. 무지 힘들었어요. 감히 얘기하자면, 이병헌 같은 배우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니까요.”
미디어를 통해 파악한 창민은 예민함과 섬세함이 있어 보였고, 스스로에게도 엄격해 보였으며, 포커페이스 같기도 했다. 윤호에게 창민의 장점을 묻자 “워낙 말을 함부로 뱉지 않아요. 생각을 여러 번 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창민은 말을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다뤘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말할 땐 “맘 편하고 즐겁게 살고 싶어요. 매일 즐거우면 나중엔 그것이 즐거운지도 모르게 될 테니까 그저 지금처럼 술 마실 때, 무대에 설 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즐거운 정도로 즐거웠으면 좋겠어요”라고 하고선 “제가 또래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족하기 때문에 ‘즐겁게’라고 쉽게 말하는 걸지도 몰라요. 남들이 보면 신선놀음이라고 할 수도…”라고 부연설명 했다.
‘1등’에 대해 말할 땐 혹시나 1등의 가치를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폄하하는 꼴이 될까 봐 완곡한 표현을 찾았다. 신중하지만 분명하게 자기 입장을 전달하는 모습은 굉장히 의연했다. 물론 익살맞은 표정을 지으면서 “제가 랩 하나는 아주 기가 막히게 합니다”라고 농도 칠 줄 안다. 그가 말을 할 때 눈이 동그랗게 반짝거린 순간이 몇 번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축구 얘길 할 때였다. 축구와 관련된 인터넷 서핑을 파고들다 보면 끝도 없다는 얘기… 우리의 결론은 ‘오타쿠가 세상을 움직인다’로까지 발전했다.
늘 인파에 둘러싸여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처럼 비행기 마일리지를 쌓아가고 있는 동방신기지만, 사소하고 일상적인 얘기들 속에서 땅에 발 붙이고 있는 20대 중반 남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스펙터클한 무대 위와 그 아래를 오가는 삶이 자연스러운 남자들. 이젠 무대 아래에서 감정의 파고를 다스리느라 애먹을 일 없이 바로 ‘모드 전환’이 가능하다. 그렇게 자연인 정윤호와 심창민이자 5만 5천 명이 빼곡히 들어찬 도쿄돔 무대에 서는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인 이들도 미래를 그려야 한다. 어떤 팬덤은 ‘영원한 우리들의 오빠’일 줄 알았던 옛 아이돌 그룹이 어느 순간 흩어져버리고 말았던 경험을 안고 있다. 과거의 아이돌이 ‘인기는 한순간’이라는 사실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면, 지금 활동하는 가수에겐 선배들의 미래와 선택이 어떤 데이터 베이스이기도 하다.
윤호는 나이가 들어서도 동방신기를 계속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마이클 잭슨도 50대까지 갔으니, 몸이 허락하는 한 동방신기 스타일을 버리지 않은 채 갈 수 있다고. “시간이 지난 후 들어도 여전히 좋은 음악을 하고 싶은 욕심은 늘 있어요.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뭔가를 좀더 아는 제가 돼 있을 거고, 제가 어렸을 때와 같은 시기를 보내는 후배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30대 중후반쯤엔 책임질 수 있는 가족이 있었으면 해요.” 창민은 아시아 무대를 한 나라처럼 살았던 금성무를 떠올렸다. “일본과 중화권에서 각각의 언어로 활동했죠. 범위에 국한되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연기와 노래 모두 하는 모습을 꿈꿔 봐요. 물론 지금처럼 동방신기 음악을 하면서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예요.”
30대를 그려보던 윤호와 창민은 어렵게 지켜왔고, 잘 지켜가고 있는 동방신기란 이름을 그 그림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그들의 미래가 지금 품은 그림대로 이뤄지길 바란다. 그 풍경에 다가가기까지, 처음 그들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들어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만큼의 시간이 저 앞에 남아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입으로 말했다. 자신들이 자신들의 기록을 깨야 의미가 있다고. 동방신기는 동방신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패션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김보성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김하늘, 헤어/유다, 메이크업 / 이지영, 세트 스타일링/최서윤, 세트 스타일링/손예희
- 기타
- 바이크 협찬 / 듀카티(Duc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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