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명 여성의 이야기 <2>
〈보그 코리아〉가 200호를 맞아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동시대를 대표하는 여성 120인을 선정했다. 장미희부터 김연아까지, 장한나부터 심수봉까지. 그것은 세대를 초월하고, 업적을 초월하고, 장르를 초월한 〈보그〉안에서의 여성들의 우아한 앙상블이라고 할 수 있다. 17년간 〈보그 코리아〉에 등장했던 수많은 여성 가운데, 용기와 인내와 설렘으로 자기 삶을 살아낸 이 매혹적인 여성들은 오로지 〈보그〉만의 감식안과 편애를 기준으로 선정되었다. 이들 중엔 이미 머나먼 미래로 떠난 사람도 있고, 현재 더 눈부시게 꽃을 피운 사람도 있다. 정치인부터 무용수까지, 배우부터 저널리스트까지… 120명 여성의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이 부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자부심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41 영적인, 너무나 영적인 디자이너, 진태옥
70대 진태옥이야말로 ‘트렌드’라는 위대한 카리스마와 ‘나이’라는 자연미를 진정으로 조화시킬 수 있는 ‘영적인’ 디자이너다. 화이트 셔츠의 아이콘, 그 심플한 구조물로 평생 예술과 보디를 여행했던 구도자. 반면 그녀는 항상 옷에는 로맨틱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어떤 형태이든 간에 로맨스는 ‘당당한’ 옷을 입은 여자에게만 찾아온다고 주장하며. “나는 내가 아주 괜찮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비 오는 날의 안개, 하늘, 꽃을 보고 감동할 줄 알고, 디자이너로서도 비굴하지 않게 당당하게 살았으니까요.” 어쩌면 자기 세계가 갖추어질수록 옷은 내면의 빛을 투영시키는 부드러운 무명천과 같은 것이다. 잘 살아온 노인의 맑은 얼굴처럼, 마침내 주름의 기품과 인격의 숨길 수 없는 스타일링이 시작되는 나이인 것이다.
42 파리의 여인, 문영희
문영희는 자신을 선전하려고 기를 쓴 적이 드물다. 2002년 대통령 표창에다 2008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은 ‘패션 위인’인데도 말이다. ‘문 부틱’으로 유명했던 1999년, 서울을 떠나 파리 패션계에 정착한 후 자신을 닮은 크림, 화이트, 블랙 등 담백한 컬러들로 채색된 서정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 세계로 파리에 이름을 알렸다. 17년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34번의 파리 컬렉션을 치러낸 의지의 한국인이기도 하다. 마침내, 2012년 5월 국립 현대미술관이 문영희의 옷을 작품으로 대접해서 전시를 열었다. <한국의 단색화>전에서 영감을 얻은 문영희의 ‘아카이브 패션쇼’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린 패션쇼 못지않은 감흥을 안겼다.
43 한국 패션 70’ s의 시작, 최경자
대한민국 패션 1세대 개척자인 최경자. 패션 교육인 최경자로부터 한국의 패션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0년대 함흥에 최초의 양재 학원을 설립한 이후 70년 동안 진태옥, 앙드레 김, 설윤형, 루비나, 손정완 등 한국의 1세대 디자이너들이 최경자에게서 디자인의 기본과 기초 재단, 희망의 가위질을 배웠다. 9년 전 93세 나이로 <보그> 촬영을 할 때 몸매를 보정하기 위해 스커트 안에 코르셋을 입었던 그녀. 유산처럼 한국의 패션을 정리한 <패션 70년>을 낸 후, 3년 전 99세의 나이에 영면에 드셨다.
44 백지처럼 우아한 포즈 아티스트, 송경아
1997년 진태옥 쇼로 데뷔한 이후 지금까지 <보그>를 비롯한 하이패션 매거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베테랑 모델이다. 아름다운 여성들이 느린 동작으로 움직이는 고상하고, 세련되고, 꿈 같은 세계를 다뤘던 <보그 코리아> 초창기 시절, 그녀는 장윤주와 함께 개성 강한 마스크와 포즈를 보여주며 주목 받았다. 어린 시절을 소아병동에서 보냈던 기억 때문인지, 그녀는 몸에 대해 약간의 초연함 같은 게 있다. 장윤주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패션 엔터테이너라면, 송경아는 백지 같은 우아함을 갖춘 패션 아티스트다. 혜박과 한혜진 이전에 뉴욕 패션 무대에서 코리안 모델로 활약하며 캣워크 한류를 개척했으며, 이젠 국내에서 KBS <명작 스캔들>의 진행자로, 아트 페어에 그림을 출품하는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45 모델계의 절대지존, 장윤주
머리에 100개의 실핀을 꽂고 무아지경에 빠진 열여섯 살 장윤주의 첫 사진은 아직도 <보그>와 그녀를 얘기할 때 전설적으로 회자된다. 이 단순한 사진은 사자 머리에 백조 같은 룩을 한 <보그>의 여타 화려한 페이지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었고, 닥종이 같은 얼굴에 서구적 육체를 이어 붙인 돌연변이 소녀 모델의 등장은 서구의 케이트 모스만큼이나 한국 패션계에 하나의 사건이었다. <보그>200호와 함께 이제 소녀에서 여인이 된 모델 장윤주는 패션계뿐만 아니라 방송계에서도 인정받는 톱엔터테이너로 대한민국의 유명 인사가 됐다. <도전! 슈퍼모델>이나 <무한도전>에서 유머와 위트를 갖춘 패션 멘토 역할은 물론, ‘특별한 감성을 지닌 뮤지션’으로서 매 순간 찬란하게 빛나는 장윤주.
46 본투비 모델, 한혜진
패션은 몸이 지배하는 세계다. 더 독창적이고 더 마르고 더 섹시하고 더 예쁜 몸! 좌중을 압도하는 매력으로 뉴욕 캣워크를 사로잡은 암코양이 같은 매력의 한혜진은 모델의 모델에 의한, 모델을 위한 몸을 가졌다. 몸은 옷을 닮는다. 한혜진의 몸은 가늘면서 힘이 있다. 마른 상체와 날렵한 하체가 만들어내는 불균형한 균형, 그녀의 몸을 보면 헬무트 랭이 생각난다. 뾰로통하고 직선적인 성격이지만, 그 누구보다 정이 많고 프로페셔널한 모델로 13년째 하이패션계의 정상을 고수하고 있다.
47·48 패션 시스터 액트, 변정수와 변정민
모델 시절, 변정수는 패션 화보는 물론 캣워크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미소년처럼 잘 웃고 건들거리는 변정수의 에너지는 항상 런웨이 바깥까지 들썩이게 만들었으니까. 그녀는 고답적인 TV 드라마 의상에 복고와 유머를 곁들인 패션을 처음 끌어들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동생인 변정민도 타고난 몸매로 모델에서 연기자로 전업한 언니의 길을 따랐다. 커트 머리로 유명했던 언니에 비해 긴 머리로 좀 더 페미닌하고, 목소리도 여성스러운 변정민. 자매는 패션 모델이 어떻게 대중 속으로 스며드는가를 보여준 훌륭한 롤모델이다.
49 아메리칸 시크, 혜박
2005년 F/W 패션 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코리안 슈퍼모델 혜박. 그 해 랑방, 지방시, 돌체앤가바나, 장 폴고티에, 셀린, 프라다, 마크 제이콥스, 루이비통, 미우미우 등의 캣워크엔 카리스마 넘치는 동양인 모델 혜박의 자취가 가득했다. 겸손하고 로맨틱한 정서에 아메리칸 시크의 포즈가 특기인 혜박은 글로벌 무대에서 시작해서 고국인 <보그 코리아>의 톱모델이 됐다. 특히 2009년 11월 아서 엘고트 앞에서 조시 하트넷과 찍은 커플 화보는 <보그 코리아> 역사에 남을 로맨틱한 표지로 기억된다.
50 미국 패션계가 주목하는 백 디자이너, 임상아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한국의 연예인이었다가 돌연 미국으로 떠난 임상아. 이젠 미국 <보그>에서도 인정하는 근성 있는 백 디자이너로 뉴욕 패션연예계의 유명인사다. 그녀가 2006년 론칭한 이그조틱한 가방 브랜드 ‘SANG-A’는 비욘세, 패리스 힐튼 자매, 앤 헤서웨이, 제시카 심슨, 블레이크 라이블리 등이 들면서 잇 백이 됐고, 1000~1만 달러의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상류사회 패션 피플들에게도 인기 있다. 자신의 삶을 완전히 낯선 곳에 던져놓고 새롭게 개척한 그녀야말로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51 1세대 영화 의상 장인, 이혜윤
패션보다 한없이 ‘누추한 그 옷’을 짓느라 50년을 보낸, 1세대 의상 장인 이해윤 할머니. 이해윤 할머니의 옷은 시대에 맞게 삶에 밀착된 ‘의복’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영화 의상은 <어우동> <서편제> 같은 한복의 시대, <돌아오지 않는 해병> <하얀 전쟁> 같은 군복의 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친구> 같은 교복의 시대를 거쳐왔다. 그녀는 임권택이나 신상옥, 이만희, 유현목 감독들과 함께 영화사 안에 의복사의 나이테를 그려 왔다. 1996년 <금홍아 금홍아>로 대종상 의상상을 받고 한 말은 “후배들이 받을 상을 내가 받았다”였다. 밤새도록 지은 옷이 ‘빠꾸’당하면 그만 딱 죽고만 싶다던 이해윤 할머니는 영화를 사랑하고 배우를 사랑하고, 그리고 그 어떤 것보다 ‘옷이 만들어낸 영상’을 유별나게 사랑한 의상 장인이었다. “이제, 나 영정사진 한 장 찍어줘.” 기록에 남겨진 사진 속에서 이해윤 할머니는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배우에게 입혔던 바로 그 옷을 입고 들꽃처럼 웃었다.
52 한국적인 기품을 담은 발레리나, 김주원
지름 1cm의 토슈즈 위에 온전히 하나의 육체를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휴식도 충분히 향유할 수 없는 천성을 지닌 김주원은 발레의 정의를 ‘리허설’이라고 했다. 무대를 제외한 모든 삶을 무대를 위한 리허설로 살아내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그 자체로 완벽한 무용수라고. 작년 말, 최연소 주역으로 입단했던 국립 발레단을 나와 더 넓은 춤의 세계로 뛰어든 김주원. 자꾸만 위로 올라가려는 발레의 세련된 허구 안에, 그 부력의 에너지를 땅으로 응축시키는 한국 춤의 에너지를 조금씩 수혈하고 있다. 그녀의 발레 연기에 점점 더 한국적인 기품이 배어들고 있다는 게 고맙다. “마흔이 되면 더 이상 발레 무대에 설 수 없죠. 길지 않은 생명이지만, 완전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도태와 안주가 가장 견디기 힘들어요.” 가끔은 스톱워치를 들고 달리는 것 같은 김주원이 안쓰러워지기도 하지만.
53 영원한 신데렐라, 김지영
발레리나들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부족한 점만 보게 된다. 김지영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녀가 거울 속에서 보는 것-작은 얼굴과 기다란 목, X자로 뻗은 환상적인 다리 라인-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지영의 몸은 사람만한 조각도 없음을 일깨워준다. 지금까지 그녀에게 천형처럼 따라붙는 ‘테크니션’이라는 닉네임은 가장 이상적인 몸이 가장 이상적인 발레 동작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주역으로 활동하다 지난 2008년 이후 국립 발레단에 정착한 그녀는 당대 모든 클래식 무용수들의 꿈이다. 10대 시절, 그녀는 러시아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바가노바 발레 스쿨 졸업 작품으로 <해적>의 파드되를 추는 동안, 갑자기 어머니가 객석에서 쓰러졌고, 조용히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래선지 김지영의 발레 연기는 사랑스럽고 꿋꿋하며 동화적이다. <지젤>의 지젤을 연기할 때보다 <신데렐라>에서 신데렐라를 연기할 때 더 아름다운 그녀다.
54·55 프리마 돈나 명예의 전당에 선, 최태지와 문훈숙
외모의 선만큼이나 강하고 활달하며 뚜렷한 리더십을 갖춘 국립 발레단의 ‘카리스마 최’ 최태지 단장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호랑이를 그리는 미묘한 디테일의 소유자 유니버설 발레단의 ‘프린세스 문’ 문훈숙 단장은 상반된 아우라를 지녔다. 미국에서 태어나 유럽에서 발레 교육을 받고 돌아온 문훈숙은 <백조의 호수>나 <지젤>로 이름을 떨친 ‘시적이고 초현실적인 난초 같은 무용수’였고, 일본에서 교육 받은 재일교포 최태지는 <해적>이나 <동키호테>로 갈채를 모은 ‘여성미와 생동감이 넘치는 관능적인 무용수’였다. 발레 무용수들은 그녀들의 무대를 ‘한국 발레의 찬란한 서막’으로 기억한다. 예술감독으로 최태지는 볼쇼이 스타일의 힘과 스케일을 국립에 수혈했고, 문훈숙은 키로프 스타일의 유려한 양식미를 유니버설에 안착시켰다. 그건 지도자로서 밖으로 발레 영토를 확장하려는 최태지의 발레 경영과 안으로 발레 예술을 승화시키려는 문훈숙의 발레 트레이닝의 차이이기도 하다. 30년간 프리마 돈나로 살아온 그녀들은 둘이 있을 때만큼은 의도적으로 서로의 어깨에 진 ‘정상의’ 짐을 내려놓고 싶어 한다. 그녀들은 프리마 돈나를 이렇게 정의한다. “첫째, 철과 같은 강한 의지, 둘째 음악성과 연기력. 셋째, 겸손함. 겸손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걸 잃고 최고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용수는 내리막길이죠. 자신감과 교만함을 구분할 수 있어야 프리마 돈나예요.” 요즘도 꿈속에서 머리 하고 토슈즈를 신는다는 그녀들이다.
56 세계 최고령의 현역 프리마 돈나, 강수진
“보통의 삶을 특별한 열정으로 살면 그게 특별한 삶이 된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깃털이 단 하나만 남아 있어도 날 수 있다. 강수진은 자신의 인생을 통해 그 사실을 증명했다”고 이어령 선생은 말했다. 강수진은 1986년 세계 5대 발레단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최연소 단원으로 입단했다. 그녀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서 7년간 군무로 뛴 후 97년부터 지금까지 수석 무용수로 무대에 오른다. 사람들이 그녀의 발의 안부를 물을 때, 강수진은 ‘점점 더 피카소적으로 되어가고 있다’며 웃는다. 그녀는 현재 47세의 세계 최고령 주역 무용수다. 그녀는 매일 혼자 빈 무대에서 연습을 했고, 그게 쌓여 20만 시간이 되었다. 지금도 아침에 눈을 떠 어딘가가 아프지 않으면, 어제 연습을 게을리한 건 아닌가 걱정하는 발레리나, 그녀가 강수진이다.
57 코스모폴리탄적인 발레 예술가, 강예나
몽마르트 언덕의 아멜리에 같은 강예나의 동화적인 얼굴은 100m 전방에서도 쉽게 눈에 띄고, 그녀의 긴 팔다리는 어떤 발레리나보다 발랄하고 건강해 보인다. 발레 인생은 토끼보다 거북이의 것이라고 말하는 강예나는 모든 면에서 아주 많이 열려 있다. 예술 비즈니스도 사교로 이뤄지는 미국 사회가 내성적인 그녀를 많이 바꿔놓았다. 6년간 아메리칸 발레씨어터에서 활동했고, 현재 유니버설 발레단의 최고령 수석 무용수로 많은 발레 애호가들의 열정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하나님이 발레에 대한 재능을 주신 대가로 감내해야 하는 고통까지 주셨다. 재능과 고통을 동시에 축복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카멜레온처럼 빠르고 유연하게 변신할 수 있는 코스모폴리탄적인 발레 예술가다.
58·59·60 ‘눈뜨면 없어라’ , 김수악, 강선영, 장금도
전무후무한 한국무용의 명장이 여기 있다. 육체에 나이테가 쌓일수록 더 강하고 맑은 동작을 만들어내는 김수악 선생의 교방 굿거리는 몸속에서 거친 북방 민족의 말발굽 소리를 일으킨다. 140cm도 안 되는 몸짓은 끝없이 넘쳐온다. 한번 일어서기가 어렵지 장단이 돌아가면 신명은 멈추지 않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 진주검무 예능 보유자, 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 굿거리춤 예능 보유자인 선생은 2009년 영면에 드셨다. ‘태평무’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이자, 무용계의 대모이기도 한 강선영 선생. 가채를 쓰고 활옷을 입은 그녀의 몸은 만조로 부풀어 오른 바다 같다. 사물놀이패가 장단을 띄우면, 그녀는 치마춤, 허리춤에 탱고의 리듬을 싣고 온몸으로 새살거린다. 살풀이 장단에 명주 수건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추는 민살풀이의 대가 장금도 선생. 흰 한복 저고리에 파란색 옷고름만 툭 하고 떨어진 미니멀한 복식으로 오로지 두 팔과 버선 발로 고요하게 추는 춤. 맹렬히 타오르는 육체가 아닌 고요히 집중하는 장금도 선생의 육체는 거대한 회화 작품 같다.
61 최승희의 재래, 백향주 최승희
춤의 완벽한 전수자로 불리는 백향주. 그녀는 일본에서 태어나 두 살 때부터 발레를 했고,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떠돌며 춤의 세계를 확장했다. 평양 만수대 예술단의 공연, 북경에서 대학, 서울예술종합학교에서 대학원을 졸업했다. 동아시아라는 공동의 지붕 아래 무용가 백향주는 ‘춤으로 대동아 건설을 이룩하려고 했던 최승희의 열정’을 불러들인다.
62 동양의 피나 바우쉬, 안은미
한국 현대무용단의 양대 산맥인 안애순 무용단과 안은미 무용단. 하지만 두 사람의 색깔은 너무 다르다. 안애순이 문학적인 캐릭터인 데 반해, 안은미는 빡빡머리에 하이힐을 신고 돌산을 뛰어오르는 에너제틱한 캐릭터다. 안은미는 붓다조차 매력적인 사내로 해석한다. ‘아방가르드’를 운위했던 안은미는 이제 가장 ‘한국적인’ 춤을 추는 세계인이다. 스스로를 DNA 발광체라고 정의하는 그녀의 몸이 이루지 못한 유일한 작업은 출산일 것이다.
63 직관적 안무가, 안애순
화성의 대위법에 반대한 미니멀 음악이 세련된 현대음악으로 출두하듯, 계산된 테크닉이 포화 상태에 이를 때, 몸의 압력을 해체할 만한 새로운 움직임이 출현한다. 바로 현대무용가 안애순이다. 사진작가가 모델을 창조하듯, 감독이 배우를 창조하듯, 안애순은 댄서를 창조한다. <옥스퍼드 무용 사전>과 <세계 현대 춤 사전>이 기록한 한국의 대표적 무용가, 안애순.
64 현대무용의 전설, 홍신자
‘최고의 미니마이저이면서, 최고의 맥시마이저’라는 찬사를 받으며, 미국에서 27세의 늦깎이 무용수로 시작했던 홍신자를 세계적인 무용가로 만든 사람은 존 케이지다. 홍신자는 2012년 존 케이지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음악으로 만든 <네 개의 벽>을 다시 공연했다. 미국에서 막 돌아온 그녀가 옆구리에 해골 하나를 딱 끼고 나와 충격적인 공연을 했던 것이 지금도눈에 선한데, 72세의 육체는 여전히 싱그럽고 영묘하다. 70세에 독일인 한국학자 베르너 사세와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 삶 자체가 전위적인 홍신자.
65 죄짓지 않는 건축을 꿈꾸는, 김진애
<타임>에서 ‘21세기 글로벌 리더 100인’ 중 한명으로 선정한 그녀는 건축가이자 정치가다. 서울대 공대를 나왔고, MIT에서 건축학 석사와 도시 계획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사동, 산본신도시 등 그녀의 손길이 닿은 도시는 ‘사람 냄새 나는 도시’ ‘공공성이 살아 있는 도시’라고 평가 받는다. 국회의원으로는 고작 2년 남짓 활동했지만, 4대강 사업이나 뉴타운을 비판하는 저격수로 에너제틱하게 활약했다. 하루 12~16시간을 일하는 그녀의 별명은 ‘김진애너지’다.
66 청담동 화랑의 대모, 박여숙
<공간> 기자,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앞 상가에 작은 화랑을 열었다. 그 후로 서세옥, 박서보, 전광영 등이 그녀의 화랑에서 유명해졌다. 자신을 ‘훌륭한 작가가 탄생하기 위해 돕는 연출가’라고 정의하는 30년경력의 청담동 화랑가의 대모. 그녀는 변화에 적응할 줄 아는 전문가 그룹이 청담 미술계의 승자라고 증언한다. “과거엔 북촌과 삼청동이 미술품 거래의 축이었지만, 현재는 바로 여기에서 모든 일이 벌어집니다. 아시다시피 그림도 쇼핑하는 시대니까요.”
67 코리안 르네상스를 이끄는 큐레이터, 김선정
김선정은 언제나 깊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한다. 누구를 만나든 드러나는, 몸에 밴 겸양이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커미셔너, 2010년에는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전시 총감독에 이어 ‘광주비엔날레 2012’의 공동 예술감독이자, 독일 ‘카셀도큐멘타 13’의 기획자로 활약한 김선정은 국제적 미술 감각으로 한국 미술계의 상상력을 증폭시켜왔다. 그녀는 이미 미술계에서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보다 현대 한국 시각문화의 한 축을 책임지는 파워 인물로 더 유명하다.
68 나는 예술품이다, 김점선
어떤 여자가 늙어갈 무렵 암에 걸렸다. 칼 잡을 의사가 밤중에 그 여자의 입원실로 찾아와 내일 어디어디를 잘라낼 거라고 설명했다. 그 여자가 말했다. “이왕 배를 여는데 왕창 잘라내주시오. 나는 늘 내 창자가 쓸데없이 긴 게 불만이었소. 내가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내장은 크로마뇽인과 다름없지 않소. 나는 나의 내장을 디자인하고 싶소.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긴 창자 때문에 쓸데없이 섬유소를 먹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왔소. 이왕 배를 열 거면 나를 도와주시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김점선처럼 살고 싶다. 한 번도 자신이아닌 남의 삶을 살지 않았으며, 최고의 화가임에도 매일 하루 8시간씩 노동으로서 그림을 그려온 김점선. 아이콘이 된 천진난만한 말, 오리 그림과 함께, <점선뎐>이라 명명된 본인의 자서전을 남기고 2009년 세상을 떠났다.
69 우주의 그로테스크한 시인, 이불
미술계에 첫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이불은 센세이션이었다. 자신의 신체와 괴물 형태의 역겹고 우스꽝스러운 천 조형물로 파격을 시도했던 타고난 퍼포머. 1997년 뉴욕 현대 미술관(MoMA)에서는 구슬과 스팽글 비늘을 단 생선들을 매달아 악취조차 ‘설치화’했다. 이 평범하지 않은 작가는 2012년 아시아 여성 작가로는 처음으로 도쿄 모리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무엇인가가 되리라 생각해서 작업을 하는 게 아니라 안 될지도 모르지만 가는 것”이라는 이불의 말이 그녀의 이상주의적 열정을 대변한다. 30대를 거치면서 머릿속의 디스토피아마저 구조화시키는, 이제는 우주의 그로테스크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중년의 이불.
70 정체성의 파란, 니키 리
서도호, 바이런 킴과 함께 뉴욕 미술계를 이끌고 있는 니키 리. 그녀는 신디셔먼이 아니다. 자신의 신체를 재료로 변형시키지만 니키의 목적은 집단 속으로 들어가 그들과 동화되는 것. 그녀는 재벌 상속녀, 쇼걸, 레즈비언, 흑인 힙합 소녀, 히스패닉 등으로 변장한 채 집단의 역할을 수행한 퍼포먼스 사진으로 뉴욕 미술계에 ‘정체성의 파란’을 일으켰다. 동양적인 감수성으로 동시대 미국의 사회학적 지도를 그려낸 니키의 ‘정체성 교란’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참, 그녀의 남편도 배우다. 여배우의 ‘정체성’에 파란을 일으킨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이 데리고 들어온 소속사 신인 역할을 한 이가 바로 니키의 어린 남편이다.
71 세계적인 보따리장수, 김수자
항상 미래를 살았던 백남준이 죽었으니, 과거를 품은 김수자는 현재 해외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 작가다. 1990년대 초반 시작한 ‘보따리’ 연작 때문에 흔히 ‘보따리 작가’로 불리는 김수자. 1990년대부터 김수자는 뉴욕, 파리, 밀라노, 빈, 도쿄, 마드리드 등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 유수의 비엔날레에 초대된 스펙터클한 삶을 살았다. 미술관 천장을 바늘로 뒤덮거나, 허공에 색색깔의 이불을 널어 놓거나, 메트로폴리탄 광장에 홀로 서 군중의 공기를 잇는 인간 바늘이 된 채로. 그런 김수자가 다시 한번 2013년 6월 1일 개막하는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단독 작가로 선정돼 ‘보따리’의 결정판을 보여줄 거란다. 과연 세계적인 보따리장수다.
72 현대미술계의 탱크, 양혜규
40대 한국 작가 중 양혜규만큼 국제 무대를 누비는 작가도 흔치 않다.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는 그녀는, 특히 2012년 세계 곳곳에서 전시를 펼쳤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처음’을 장식하는 작가로 인기가 높다는 점. 영국의 테이트 모던은 기름 저장소를 미술 전시장으로 바꾼 전시장 ‘탱크’를 열면서 첫 전시 작가로 양혜규를, 스페인 우르다이바이 비엔날레는 1회 주요 작가로 그녀를 초청했다. 독일의 현대미술 전시장인 뮌헨의 하우스 데어 쿤스트도 거대한 중앙 홀을 개조하면서 첫 작가로 양혜규를 골랐다. 최근의 블라인드 시리즈는 그녀의 ‘디아스포라’ 정신을 잘 구현하고 있다. 독일의 카셀 중앙역 뒤편 화물역사에 설치된 2m의 검정 블라인드나, 데어 쿤스트 중앙의 9m짜리 거대한 블라인드는 모두, 나치 시절의 상징적 장소에 놓여서 그 의미가 깊어졌다.
73 모계 문학의 시작과 완성, 박완서
나이 사십에 등단한 박완서. ‘미군 부대 PX 근무 경험과 화가 박수근’을 소재로 쓴 자전적 소설 <나목>은 1970년 11월 <여성동아> 부록으로 세상에 나왔다. 그렇게 소설을 ‘입심 좋은 어머니의 이야기’처럼 아이들 다 키우고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겪은 후에야, 다락방에 감춰놓은 보자기 풀듯, 저잣거리에서 장바구니 들고 활개치듯 쓸 수 있었다는, 모계 문학의 시작이자 완성이었던 박완서. 6.25 전후의궁핍한 시절과 중산층 여성의 가족사를 현미경처럼 세세하게 복원해낸 박완서는 한글을 아는 모든 여성들에게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로 기억된다. 2011년 1월 저 세상으로 떠났지만, 그녀를 향한 애도는 아직도 끊이지 않는다. 2주기를 맞아 평론가 김윤식이 <내가 읽은 박완서>를 냈고, 연극 <2013, 박완서와 함께 세월을 거슬러>도 공연 중이다.
74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김애란
생의 통증을 맑은 눈으로 빤히 바라보는 깊고 명랑한 김애란의 언어들. ‘내가 씨앗보다 작은 자궁을 가진 태아였을 때, 나는 내 안의 그 작은 어둠이 무서워 자주 울었다’라는 문장을 쓴 건 김애란이 고작 스물다섯 살 때였다. 2005년 <달려라 아비>로 문단의 무서운 신예로 등장한 이후 김애란이 쓰는 소설은 한 번도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두근두근 내 인생>이나 <비행운>은 딜레마에 처한 문학출판계의 4번 타자 같은 존재였고. 스스로 울분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나 위로해달라”고 독자에게 징징대지 않고, 슬프지 않게 독자를 위로하고 싶다는 우리들의 젊은 소설가, 김애란. 그녀가 2013년 <침묵의 미래>로 역대 최연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75 문단의 태풍의 눈, 공지영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에서 정치적인 것을 쓰지 않는 행위도 정치적인 것이라 했다. 한편으론 정치적인 입장이 분명한 소설은 ‘센세이셔널’이 문학의 목적지가 되기도 한다. 작가로서, 그리고 소셜테이너로서 공지영은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늘 폭풍의 핵 속에 있었다. 공지영의 책을 읽는 일이 반드시 삶에서 ‘입장’을 취해야 할 만큼, 저돌적인 속력을 내지 않았을 때조차 그녀는 항상 대중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길 원했으니까. 그녀 자신, ‘뜨겁고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피를 순순히 인정하며, 직설화법이 지닌 이슈메이커로서의 화력과 그 화상의 위험에 끄떡없는 내구성도 갖춘 채. 어쨌든 그녀는 소설 <도가니>로 한 나라의 법을 바꾼 작가다.
76 문장의 제국, 오정희
삶을 표현하기를 택한 자는 삶을 누리지 못한다. 비장한 건 포즈지 문학이 아니라고. 소설가 오정희는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조차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도 속으론 문장을 만들었다. 스물 한살에 <완구점 여인>으로 등단한 이래, 이상문학상(1979년), 동인문학상(1982년), 오영수문학상(1996년), 동서문학상(1996년), 마침내 <새>로 독일의 리베라투르 상을(2003년) 수상할 때까지, 한국 여성이 빚어낼 수 있는 가장 슬프고도 아름다운 언어의 비창을 노래했던 작가, 오정희. 신경숙과 은희경 등 많은 여성 작가가 경외해 마지않았던, ‘문장의 완벽주의자’ 오정희가 있어 한글은 그 은유의 독창성을 자랑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유년의 뜰>을 읽고 싶다.
77 따뜻한 식물 같은, 신경숙
농부의 딸로 태어난 신경숙은 열다섯 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로공단 ‘닭장집’에서 큰오빠, 작은오빠, 외사촌 언니와 한 방에서 함께 살았다. 그 모든 체험이 그녀의 소설에 녹아 있다. 박완서 이후에 신경숙만큼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깊고 넓게, 그리고 빈번히 작품 속에 용해시키는 작가는 드물다. “신경숙에게 있어서 작가와 체험 사이의 관계는 ‘보바리 부인은 나 자신이다’라고 강조한 플로베르의 경우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다”라고 문학평론가 김화영 선생은 말했다. 등단 27년, 여섯 권의 소설집, 일곱 권의 장편소설, 그리고 짧은 소설과 산문집. 그사이 <엄마를 부탁해>를 비롯해 전 세계 34개국 독자들과 함께 읽게 된 신경숙의 소설. 예기치 못한 불의의 사고로 가득 차 있는 세상에서 우리가 신경숙 같은 작가를 만나 행운이다.
78 정념의 작가, 전경린
‘귀기의 작가’ ‘정념의 작가’ ‘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 전경린. 최근작 <최소한의 사랑>은 사랑 이야기가 아님에도 전경린표 ‘사랑’을 제목에 달고 나왔다. 그녀의 베스트셀러인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은 변영주 감독에 의해 <밀애>로 영화화되었고, 김윤진이 일탈과 매혹의 가정주부 역을 사실적으로 연기했다. 참 전혜린은 필명이며, 그녀는 작가 전혜린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나혜석, 윤심덕 더 올라가서 황진이까지 소위 강한 자의식 때문에 고통 받고 분열될 수밖에 없었던 선각자적 여성을 흠모한다.
79 타인에게 말 거는, 은희경
소설가 은희경은 사랑이나 인간에 대한 상투적 환상을 깨고 싶어 한다. 그녀에 의하면 “사랑의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다. 최근작 <태연한 인생>에서도 이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벌였다. 은희경은 스스로가 주장하듯 냉소적 ‘농담주의자’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나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자, 산사에 틀어박혀 두 달 만에 <새의 선물>을 썼다. 이 작품이 제1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하면서, 그 이후로 ‘은희경’은 줄곧 출판계의 명품 브랜드였다.
80 순결한 문학주의자, 조경란
책을 팔아서 쌀을 살 수는 있지만, 책을 팔아서 차를 사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고 조경란은 생각한다. “그건 내가 추구하는 문학과 어울리지 않아요.” 그래서 18년 차 마흔넷의 소설가는 아직도 봉천동 옥탑방에서 산다. 나라는 사람보다, 소설이라는 ‘생물’을 더욱 앞에 두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설 속 캐릭터에 몰입해야 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배우다. 그래서 그녀가 첫 소설 <식빵 굽는 시간>을 쓸 때도 가장 먼저 한 일은 커튼을 사서 창을 가리는 일이었다. 폭력적인 세계와 소통의 단절을 주로 그린 초기 작품 세계에서 점차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그녀는 급기야 자본주의의 성전인 <백화점>에 관한 산문집도 펴냈다. 글을 쓴 후 자기에게 주는 선물처럼 맥주 마시는 시간을 좋아하며, 문학이 좋아 결혼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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