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음악을 무기로 설득하는 인피니트 <1>
지금 가장 눈에 띄는 아이돌그룹은 의심의 여지없이 인피니트다. 그 무엇보다 좋은 음악을 무기로, 팬덤과 팬덤 밖 사람들까지 설득하고 있는 인피니트를 <보그>가 만났다.
이들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확실히 할 것이 있다. ‘인피니티’가 아니고 ‘인피니트’다. 인피니트 화보를 준비 중이라고 했을 때 격렬한 반응을 보인 20~30대 여자들은 당당하게 “나 ‘인피니티’ 좋아해!”라고 말했다. 사실 적잖은 기자들도 기사 속에서 인피니트를 자동차 브랜드로 둔갑시켜버리고 말았다. 다른 가수들 역시 방송에서 이 그룹의 이름을 틀리게 언급하곤 한다. 인피니트를 인피니트라 부르지 못하는 숱한 비극 속에서 이들은 정직하고 완만한 성공의 그래프를 그려왔다. <보그>가 이 좋은 봄날과 어울리는 화사하고 건강한 아이돌을 떠올렸을 때 마침 인피니트가 컴백했으니, 신보의 어느 노래 제목대로 타이밍 한번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인피니트 멤버들은 <보그> 화보 촬영을 하는 날 새벽 4시 30분부터 차례로 일어나, 오전 동안 한 음악방송의 사전 녹화에 참여했다. 1위 후보라 다시 생방송 무대로 가야 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은 단 몇 시간뿐(그날 저녁 인피니트가 1위를 했으니 더 붙잡지 않고 놓아준 보람이 있었다). 사진가를 비롯해 멤버들의 이모나 삼촌 뻘이었던 스태프들은 오늘의 선수가 하나씩 등장할 때마다 바짝 긴장해서 마음속으로 얼굴과 이름을 매치해보곤 했다. 말수 없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밤에 녹음할 일본어 랩을 연습하는 친구는 호야, 소파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가장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저기 저 친구는 리더 성규, 오늘 촬영 컨셉상 터프한 동작이 많을 거라고 알려주자 “제가 목에 담이 걸려서…”라고 머쓱해 하는 친구는 우현(막상 촬영을 할 땐 ‘플라잉 니킥’까지 구사하며 가장 점프를 열심히 했다), 가장 키가 큰 데다 머리 색도 밝아 복잡한 스튜디오 안에서도 눈에 잘 띄는 인물은 성열(맨 몸에 수트를 입은지라 테니스 채를 휘두를 때마다 ‘젖꼭지’가 보인다고 어필했다). 강아지처럼 머리를 곱슬거리게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순간 걱정하는 기색이 스쳐가는 인물은 막내 성종이다. 방송에선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엘은 만담가인 우현과 더불어 가장 말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웃음이 지나치게 많다던 동우는 정말로, 졸다가도 누군가의 큰 소리에 얼굴이 밝아지는 경이로운 모드 전환을 보여준다.
3년 전, 인피니트가 데뷔했을 때부터 여느 아이돌그룹과 느낌이 조금 달랐던 이유는 있다. 멤버들은 복숭아뼈가 드러나는 기장의 바지를 입고, 하이톱 운동화 대신 옥스퍼드화를 신고 있었다. 많은 아이돌 가수의 스타일링이 ‘블링블링’과 ‘덕지덕지’로 요약되는 가운데 최대한 빼낸 차림이었던 인피니트는 그 모습으로 자로 잰 듯 단정한 군무를 췄다. 데뷔하기도 전부터 신선했던 점은 인피니트가 당시 에픽 하이와 넬의 소속사에서 준비한 그룹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돌 시장과는 뚜렷하게 영역이 달랐던 회사가 어떤 선언을 한 셈이다. 그렇게 등장한 인피니트의 데뷔곡은 ‘아브라카다브라’로 대중음악시장의 패러다임을 장악했던 히치하이커의 곡이었고, 유희열은 그 노래가 ‘2010년 최고의 곡 중 하나’라고 추켜세웠다. 그 평가에 동의한다. 기대만큼 히트를 치진 못했어도 말이다.
아이돌그룹이 팬덤 밖의 사람들까지 끌어당기려면 무언가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인피니트는 그 무엇보다 좋은 음악을 무기로 요즘 ‘대세’에 이르렀다. 소수의 작곡가가 다수의 아이돌그룹을 떠안고 있는 현재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신사동 호랭이와 비스트, 용감한 형제와 씨스타처럼 궁합의 밀도가 더 높은 경우들이 있다. 히치하이커에 이어 인피니트의 성장과 함께한 작곡가는 스윗튠이다. “요즘 아이돌그룹의 노래에 후렴구에서 모두 합창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대개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는 노래들이죠. 그런데 저희 곡은 전주부터 시작해서 노래 중간에 숨 돌리는 브릿지 형식이 들어가고, 댄스 브레이크 타임도 넣어줘요. 요즘에 찾기 힘든 노래 스타일이에요.” 리더 성규에게 인피니트의 노래를 성인들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냐고 묻자 “성인, 대체 누구요?”라고 반문하던 성규가 이내 의젓해져서 말했다.
확실히 인피니트는 많은 아이돌그룹 중에서 조금 독특한 성격을 지녔다. 20대 중반만 넘어가면, 팬이 아닌 이상 난립하는 아이돌표 댄스 음악을 그저 전체적인 인상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일렉트로니카가 가요계를 접수한 이후, 화려한 사운드 외에 구체적인 멜로디로 아이돌의 노래를 소화하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인피니트의 노래엔 기억에 박힐 만한 멜로디가 살아 있고, 그 곡은 기승전결을 지킨다. 작곡팀 스윗튠은 단정하고 예쁘게, 하지만 촌스럽지 않게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좋은 곡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2011년 한 해 동안 인피니트가 도약했다. 그 후엔 다소 센 무대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활동도 할 수 있었다. 남자 아이돌그룹이 노래와 퍼포먼스를 통해 잘 취하는 컨셉 두 가지가 ‘강한 남자’와 ‘달콤한(사랑에 빠진) 남자’임을 생각할 때, 인피니트는 두 가지 모습을 적절히 보여줬다(‘놀 줄 아는 남자’를 택한 그룹은 여느 아이돌그룹과 다른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빅뱅처럼). 신보인 미니 앨범 <New Challenge>의 타이틀 곡 ‘Man in Love’는 사랑스러운 노래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HYEA W. KANG
- 스탭
- 스타일리스트/한연구, 헤어 / 권영은, 김환, 메이크업 / 현윤수, 세트 스타일리스트 / 문유리(율자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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