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매력, 이효리의 쇼 타임 <1>
황량한 벌판 위 서커스 천막에서 만난, 화려한 무대 분장과 섹시한 하이힐의 아름다운 쇼걸. 팔색조 같은 매력을 뽐내는 이효리의 쇼 타임!
4월 4일 오전 9시, 인천 공항 근처 어느 벌판. 초록색 블록 중간쯤으로 표시된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주소를 따라온 촬영 스태프들의 차량들이 황량한 벌판 위에 서 있다. 촬영 장소는 아주 멀리 보이는 인천 공항을 제외하곤 사방 몇 킬로 근방에 어떤 구조물도 보이지 않는 곳. 일반 모델도 아니고 감히 이효리에게 이곳까지, 그것도 오전 9시 콜 타임이라니! 어쨌든 오랫동안 준비해온 블록버스터급 화보 촬영에다 패션뮤직 필름까지 촬영해야 하고, 모든 것은 해 지기 전에 이뤄져야 하니 눈 딱 감고 촬영 시간을 일찌감치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현장엔 서커스 천막이 세워지기 시작했고, 영화 조명팀은 거대한 HMI 장비들을 트럭에서 내려 세팅 중이었으며, 촬영팀은 컴퓨터 테이블을 세워 카메라와 장비들을 연결했고, 방금 샤워를 마치고 온 듯 맨 얼굴의 이효리는 메이크업 밴에서 젖은 헤어를 말리고 있었으며, 그녀와 언제나 함께인 강아지 순심이는 모처럼 신이 난 듯 벌판을 잘도 뛰어 다녔다. 햇빛까지 쨍쨍 내리쬐니 할렐루야! 오늘은 왠지 예감이 좋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고, 나머진 준비한 만큼 순풍에 돛 단 듯 잘 흘러갈 것이다. 여왕의 귀환을 맞을 모든 준비는 완벽했다.
이번 촬영은 두 달 전, 이효리의 절친 디자이너, 요니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부터 시작됐다. “효리가 지금 새 앨범을 준비 중인데 <보그>와 멋진 화보와 패션 필름을 찍고 싶어 해요!” 2년 넘게 준비한 5집 앨범의 대대적인 홍보를 패션 바이블 <보그>와 함께 시작하고 싶다는 것. 참고로, 3년 전 <보그>는 창간 기념 특집으로 국내 최초로 패션 뮤직 필름들을 제작한 적 있었는데, <보그> 스타일의 화보들을 흘러간 가요(나미의 ‘빙글빙글’, 신중현의 ‘미인’,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 등등)에 접목함으로써 큰 화제가 됐었다. 이효리와 요니는 그 패션 필름들을 본 후 <보그>와 작업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고 한다. 어쨌든 패션 화보 메이킹 필름에 새 음반의 노래를 담아 그동안 어떤 가수도 시도해 본 적 없는 특별한 패션뮤직 필름을 찍고 싶다는 그녀! 과연 디바다운 패셔너블한 발상이었다.
마침 밀라노 출장 중이었던 나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촬영팀을 세팅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사진가는 <보그>팀은 물론 이효리와도 오랜 작업으로 손발이 척척 맞는 홍장현 실장. 헤어와 메이크업 역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온 한지선과 홍성희 실장이 맡기로 했다. 사진가와 촬영 컨셉에 대해 얘기가 오가던 중, 요니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효리가 직접 〈보그〉 촬영팀을 만나고 싶대요. 다 함께 미팅을 했으면 하는데 괜찮겠죠?” 물론 OK! 홍장현 스튜디오에서 만난 날 저녁, 순심이와 함께 나타난 그녀는 자신이 찍고 싶은 화보에 관해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뭔가 느낌이 강하면서도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은 무드가 넘치지만 위트 있고, 포즈도 좀더 자연스러웠으면 해요. 결론적으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화보를 찍고 싶어요.”
그녀는 이번 화보 촬영에 아주 큰 기대와 열정을 갖고 있었다. 일단 그녀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기로 하고 헤어진 후, 사진가와 나는 몇 번의 미팅을 통해 촬영 컨셉을 다듬어 나갔다. 요즘 트렌드인 60년대? 뮤직 아이콘? 아니면 쇼걸? 맞다! 쇼걸은 글래머러스한 몸매를 지닌 섹시 디바, 이효리만이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 아닌가. 우린 레트로풍의 ‘쇼걸’로 의견 일치를 본 후 장소를 찾았다. 파리의 물랭루즈나 리도쇼의 백스테이지 정도는 아니더라도, 화려한 의상과 소품들이 어울리는 공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 그린 이미지와 흡사한 장소는 없었다. 특히 일반 공연장들의 백스테이지는 전혀 멋지지 않았다. 조명도 설치해야 하는데다 잘못하면 스튜디오 세트보다 나쁜 결과가 나올 게 뻔했다. 화보는 어차피 렌즈 속 좁은 세상이니 어찌어찌 촬영한다 하더라도, 촬영 환경이 그대로 노출되는 패션 필름 촬영이 더 문제였다. 비용이 들더라도 자연광이 들어오는 영화 촬영장이나 창고에 세트를 꾸며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10 꼬르소 꼬모에서 열린 피터 린드버그 사진전의 한컷이 생각났다. 영화 촬영장인 듯한 야외 촬영장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밀라 요보비치의 흑백 사진! 바로 그거였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이지아
- 포토그래퍼
- 홍장현
- 스탭
- 헤어/한지선, 헤어/ 홍성희(정샘물 인스피레이션), 세트 스타일리스트/이현민(슈가홈), 메이크업 / YSL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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