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쟈딕앤볼테르의 세실리아 본스트롬

2016.03.17

쟈딕앤볼테르의 세실리아 본스트롬

헝클어진 머리와 편안한 옷차림, 꾸미지 않은 듯하지만 끝내주게 멋진 여성! ‘프렌치 시크’의 또 다른 상징, 쟈딕앤볼테르의 디자이너 세실리아 본스트롬을 만났다.

케이트 모스, 바네사 파라디, 에바 롱고리아, 에린 왓슨 등의 공통점은? 패션 셀러브리티라는 것.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다들 쟈딕앤볼테르의 팬이라는 것! 사실, 쟈딕앤볼테르는 단 하나뿐인 파리 매장에서 소수 정예 고객들과 교감을 나누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지금은 뉴욕, 밀라노, 모스코바, 홍콩, 그리고 서울까지 전 세계 200여 개 매장을 거느린 대형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은 바로 디자이너 세실리아 본스트롬이다. 스웨덴 출신의 잘나가는 모델이던 그녀는 2003년 쟈딕앤볼테르 창립자 티에리 질리에의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한 뒤 3년 만에 총괄 디자이너로 임명되면서 브랜드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공식적으로 패션을 공부한 적이 없는 그녀는 주변의 우려를 보란 듯 뒤엎으며 임무를 훌륭히 완수, ‘차세대 이자벨 마랑’으로 불린다.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보그>와 만난 그녀는 “한번 모델은 영원한 모델이죠!”라며 여전히 모델 뺨치는 미모를 과시했다.

Vogue Korea(이하 VK) 서울 패션의 중심가에서 당신을 만나니 더욱 반갑다.
Cecilia Bonstrom(이하 CB) 서울은 처음이다. 인천행 비행기에서부터 든 생각인데, 한국인들은 예절 교육을 철저히 받은 것 같다. 다들 친절해서 놀랐다.

VK 이곳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는 파리 스토어와 비슷하다.
CB 전 세계 쟈딕앤볼테르 플래그십 스토어는 같은 컨셉이다. 대리석과 거울을 이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냈다. 브랜드 창립자 티에리 질리에는 고객들이 직접 옷을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셀프서비스’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모든 아이템을 열린 공간에 진열하는 방식을 택했다.

VK 브랜드 창립자가 티에리 질리에가 아닌, 쟈딕앤볼테르라고 착각하기 쉽다. 어떤 의미인가?
CB 아주 친한 친구들조차 쟈딕과 볼테르가 만든 브랜드로 안다. 하하. 사실은티에리 질리에가 좋아하는 볼테르의 소설 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설 주인공 쟈딕은 자기 인생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지만 예상치 못한 운명의 장난으로 여러 시련을 겪는다. 브랜드 철학이 담긴 의미 있는 이름인 셈이다.

VK 지난 시즌 처음으로 런웨이 쇼를 선보인 것도 운명이었나?
CB 꼭 필요한 선택이었다. 쟈딕앤볼테르에서 디자이너 커리어를 시작했고, 런웨이 쇼는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200여 개 매장이 있는 만큼, 이번 쇼를 통해 보다 글로벌한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피날레 인사 후 온몸이 텅 빈 기분이었다. 거의 모든 리뷰를 읽었는데, 다행히 평가는 좋은 편이었다. 다음 시즌에는 더 잘할 것 같다.

VK 나 역시 당신의 첫 런웨이 쇼를 지켜봤다. 올가을 컬렉션엔 유난히 남성적인 아이템이 많았다.
CB 이번 컬렉션의 출발점은 데이비드 보위였다. 그가 새 앨범을 내고, 그의 패션 전시가 열린다는 사실이 공개되기 전부터 준비했는데, 신기하게도 타이밍이 잘 맞았다. 날렵한 수트, 프린트, 메탈릭한 소재 등등. 보위가 연상되는 다양한 요소를 활용했다. 특히 패브릭에 신경을 많이 썼다. 리옹에서 오랜 역사의 원단 공방을 발견했는데, 그곳의 아카이브 북에 실린 1950~60년대 옷감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꾸미지 않았지만 여전히 멋진 여성들을 위한 옷이 탄생했다. 이번 시즌 광고 모델인 프레야 베하처럼! 그녀는 롤링스톤스의 키스 리처즈를 연상시킨다.

VK 록 스타 보위가 쟈딕앤볼테르 레이디로 재탄생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나?
CB고백하자면, 나는 스케치를 전혀 할 줄 모른다. 대신 평소 카메라와 스케치북을 갖고 다니며 거리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나 풍경을 찍은 뒤 단상들을 적는다. 또 현대미술품을 수집하는 티에리 질리에 덕분에 수많은 아트 페어를 관람한다.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모두 늘어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디자인 팀에서 내 아이디어를 스케치로 표현한다. 내 머릿속 이미지와 다를 경우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디자인을 완성시킨다. 가장 낮은 가격대지만 브랜드의 모태가 되는 쟈딕, 캐시미어 니트 위주의 쟈딕앤볼테르, 그리고 런웨이 쇼를 통해 선보이는 쟈딕앤볼테르 딜럭스까지. 매 시즌 300여 개 아이템을 만든다. 디자인 팀원들이 모두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기에 가능하다.

VK 세 라인의 공통점은 뭔가?
CB 스포츠웨어 시크! 가령 올가을 컬렉션의 수트는 스니커즈를 신고 조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VK 가이아 레포시, 스마트 자동차, 파멜라 러브 등과 협업도 진행했다. 또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가?
CB 이번 시즌에는 샤넬의 비밀 병기인 슈즈 디자이너 로렌스 디케이드와의 캡슐 라인을 준비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상상력이 만나 새로운 아이템을 탄생시키는 과정이 멋지지 않나? 확정된 건 아니지만, 다음에는 타투이스트 스콧 캠벨과 함께하고 싶다. 가죽 재킷에 타투를 넣으면 얼마나 근사할까!

VK 정말 근사하겠다. 벌써부터 사고 싶을 정도다. 하하. 다시 과거로 돌아가보자. 모델로 일하다 디자이너로 경력을 바꾼 계기는 무엇인가?
CB 모든 게 운명처럼 시작되었다. 모델 일이 딱히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다른 일을 야 한다고 느꼈다. 우연히 파리에 딱 하나 있는 쟈딕앤볼테르 매장을 발견했는데, 평소 즐겨 입는 프라다 옷보다 훨씬 낮은 가격대에 이토록 모던한 브랜드가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무작정 전화를 걸어 일하고 싶다고 하자, 티에리 질리에는 다음 컬렉션을 위한 아이디어 보드를 준비해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패션에 대한 전문 지식은 전혀 없었지만 공들여 준비했다. 그때가 2003년이었다. 그렇게 어시스턴트로 일을 시작해, 3년 만에 총괄 디자이너가 됐다.

VK 당신에게 기회를 준 티에리 질리에로부터는 무엇을 배웠나?
CB 그는 늘 “내가 세실리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지!”라고 말하길 좋아한다. 그럼 나는 아무것도 배운 게 없다고 농담하곤 한다. 하하! 나는 많은 것을 그에게 배웠다.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무작정 투자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가장 큰 가르침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 그는 모든 일이 완벽하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오히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VK 2006년부터 당신이 쟈딕앤볼테르를 이끌고 있다. 그 후 브랜드에 일어난 변화는 무엇인가?
CB 좀더 구조적으로 변했다. 원래 쟈딕앤볼테르는 부드럽고 헐렁한 실루엣이 대부분이었으니까. 개인적으로 블레이저를 좋아하기에 매 시즌 테일러드 재킷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캐시미어와 프린트 같은 브랜드 DNA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VK 7년이 지났다. 다음에 자서전을 쓴다면 가장 의미 있는 사건으로 기록될 사건은?
CB당신이 짐작한 대로다. 2006년 쟈딕앤볼테르 디자이너가 된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그렇게 엄청난 도전을 감행했다는 것 자체가 스스로 자랑스럽다. 지난 7년간 더 멀리, 더 완벽하게, 더 강하게,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VK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쟈딕앤볼테르 스모킹 재킷과 진 팬츠가 무척 잘 어울린다. 혹시 좋아하는 브랜드나 디자이너가 있나?
CB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그는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유니크한 디자인을 선보인다. 늘 한발씩 앞서 있다. 하지만 브랜드와 상관없이 잘빠진 블랙 스모킹 재킷을 가장 좋아한다. 어딜 가든 꼭 챙긴다.

VK 곧 열릴 내년 봄 컬렉션에도 멋진 스모킹 재킷이 등장할까?
CB 매년 여름 뉴욕에서 시장조사를 하고 갤러리를 방문하며 휴가를 보낸다. 이번에는 펑크에 빠졌다. 파리로 돌아가자마자 스타일리스트와 미팅이 기다리고 있다. 스모킹 재킷은 물론 등장할 것이다. 쟈딕앤볼테르의 펑크 룩을 기대하시길!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임승은
    포토그래퍼
    강태훈
    모델
    소니아
    스탭
    헤어 / 권영은, 메이크업 / 김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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