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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명과 김민정 1

2016.03.17

천정명과 김민정 1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그들. 현모양처의 이면에 수상한 과거를 숨기고 있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의심하며 한바탕 소동을 치르는 남자. 천정명 과 김민정이 로맨틱 코미디 영화 <밤의 여왕>에서 흥미로운 커플 스토리를 펼친다.

천정명이 입은 벨벳 재킷은 에트로(Etro), 흰색 셔츠는 H&M, 타이는 권오수 클래식(Kwonohsoo Classic), 김민정이 입은 송치 코트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드레스는 미스지 콜렉션(Miss Gee Collection), 목걸이는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 반지는 엠주(Mzuu), 스테인리스 냄비들은 휘슬러(Fissler), 철제 프레임 바스켓은알레시(Alessi at The Place).

천정명이라는 남자
천정명의 얼굴엔 여전히 천진함이 감돈다. 그가 40대가 되면, 여자들은 분명히 ‘저 나이에도 저렇게 웃을 수 있는 남자가 있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그런 ‘개구진’ 미소를 짓는 성인 남자가 몇 년 전 빨간 팔각모를 쓰고 신병교육대 조교로 훈련병들을 지휘했을 때, 연예인이면서도 모범적인 군 생활로 조기 진급을 하고 상위 1% 병사만이 될 수 있다는 특급전사가 됐을 때, 비로소 어떤 캐릭터인지 좀더 다가왔다. 그는 체육 시간이면 열과 성의를 다해 자기 존재를 증명하고, 다른 건 몰라도 의리와 도리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과거 남자 동창생을 떠오르게 한다. 누나가 두 명 있는 집안의 귀한 막내아들로 집안에서는 ‘귀남이’와 같은 보살핌을 받았을지언정, 유약하게 자라지 않은 남자 말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밤의 여왕>은 ‘내 아내의 흑역사 탐방 프로젝트’라는 소개말을 달고 있다. 남자는 참한 현모양처라 믿었던 아내의 과거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때부터 좀‘ 노는 여자’였던 아내의 과거를 추적한다. ‘의심의 시작은 미약했으나 집착의 끝은 창대하리라.’ 천정명은 영화에서 ‘울트라 소심남’으로 설정돼 티도 못 내고 혼자 끙끙대며 아내의 뒤를 캔다. 그러나 오늘 <보그> 화보 촬영에선, 화려하게 차려입고 외출한 후 돌아온 아내 김민정을 향해 “이 여자는 살림을 하는 거야, 마는 거야?” 라고 캐묻는 심정으로 임할 것을 권했다. 야구공 다루듯이 식탁 위의 양배추를 매만지기도 하고, 출출한 배를 우유로 때우는 남자. 그는 아이 같은 인상과 수트가 아주 잘 어울리는 듬직한 남자의 인상이 동시에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순간의 표정을 잘 포착해야 한다. 한편으로 천진함이 묻어 있는 그 얼굴 덕분에 영화에서처럼 ‘소심남’으로 전환하는 것도 꽤 어울린다. 그러나 언급했다시피, 그는 군 생활을 훌륭히 치러낸 전력과 운동을 즐기는 남자다움을 갖춘 천정명이다. “영화 속 남자는 너무 ‘허당’이죠. 그래서 제가 봤을 땐 남자로서 매력이 많지 않아요.”

이 ‘허당’인 남자가 극 중에서 쾌거를 이룬 바가 있다면, 예쁘고 괜찮기로 유명한 여자를 아내로 쟁취했다는 것. 요즘 세상에선 명예의 전당에 기록될 만한 끈질긴 구애 공세는 바로 그 우직한 바보스러움 때문에 가능했다. 마음먹고 대시하는 건 현실 세계의 천정명에게도 가능한 일이다. 성격이 급한 게 단점이지만, 추진력 강한 게 장점인 천정명은 후회를 하더라도 질러보고 후회하는 스타일이다. “여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는 것 같아요. 꼬리를 흔드는 여자, 꼬리를 감추는 여자. 내내 꼬리를 흔드는 게 드러나는 여자를 대할 때면 신기합니다. 그건 오해의 소지가 너무 많은 행동이죠. 세상에 별의별 사람 다 있구나 싶을 때도 있어요. 어쨌든 저는 남녀가 ‘밀당’하는 걸 참 싫어해요. 좋으면 좋은 거지, 왜 재고 따지는 거죠?” 남자나 여자나 로맨스를 시작하기 전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생각이 많은 세상에서 천정명은 운명적인 만남을 꿈꾼다. 그는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마지막, 센 강 다리 위에서 오웬 윌슨과 레아 세이두가 우연히 만나 함께 걷는 장면을 언급했다(오웬 윌슨이 약혼녀를 내팽개치고 파리에 취해버렸다는 사실은 여자들 눈에만 보이나 보다).

천정명이 입은 와인색 턱시도는 휴고 보스(Hugo Boss), 셔츠는 H&M, 신발은 구찌(Gucci), 김민정이 입은 검정 레이스 드레스와 녹색 보디수트는 페이 우(Faye Woo), 레이스 힐은 지미 추(Jimmy Choo), 실버 컬러 스탠드는 막시(Maxxi), 스테인리스 주전자는 SID.

요즘 천정명은 배우로서의 태도에 관해 마음속에서 큰 울림을 겪는 중이다. “그동안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좀 있었어요.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태도에 관해 잊고 있다가 이제야 다시 깨달았다고 할까요?” 그는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 한석규 등의 인터뷰 기사를 다 뒤져보고 나서 중요한 얘기들을 종합해봤다며 자기 스마트폰을 꺼냈다. “저만의 자료가 있답니다.” 열심히 메모장을 뒤지던 천정명이 쓱 스마트폰을 건넸다. 인터넷 기사에서 복‘ 사하기+붙이기’로 모은 자료가 아닌, 한 마디 한 마디 새기기 위해 자신이 직접 타이핑한 자료! 훑어본 긴 글들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는 ‘툭’이었다. 현장에선 너무 분석하려 들지 말고 그냥 ‘툭’ 연기하라는 선배들의 말이 그에겐 인상적인 조언 중 하나였다. 천정명은 이현승 감독의 컴백작 <푸른 소금>에서 송강호의 ‘오른팔’로 출연했다. 워낙 작은 역할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저 송강호 선배님과 한번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분을 내내 유심히 관찰했죠. 사실 자유분방하게 연기하는 스타일일 거라 짐작했어요. 하지만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모습 뒤엔 철저하게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자기 안에 입히는 과정이 있었어요.” 이어서 그는 <다크 나이트>에 임한 히스 레저의 태도에 대해 오랫동안 얘기했다. 천정명은 한창 에너지가 넘칠 때의 젊은 배우가 연기를 조금 쉽게 생각했다는, 스스로 느끼는 창피함을 빨리 던져버리고 싶어한다. “저는 동적이고 활력 있는 캐릭터를 좋아해요. 하지만 지금까지 주로 키다리 아저씨처럼 지긋하거나 가만히 서 있어야하는 남자 역할을 많이 했죠. 사실은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게 더 어려워요. 그저 멋지게 그 자리에 서 있는 연기를 만만하게 본 겁니다.”

이번 영화는 그가 과거 ‘연기를 쉽게 봐서’ 만만하게 임한 그 태도와 다른 차원으로 아주 편안하게 찍은 작품이다. 여자를 의심하며 진땀 흘리거나, 본모습이 드러난 여자 앞에서 작아지는 남자가 자아낼 코믹함은 천정명에게서 처음 보는 모습이다. 어쨌든 그가 그저 멋진 남자로 가만히 서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은 환영한다. 소심해서, 허둥지둥해서 귀여운 남자의 모습을 한번 내비치고 나면, 그가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다는 사이코패스나 살인마 연기에 다가가는 길도 한 걸음 내딛는 셈이다. 이중성을 띤 역을 맡을 때는 천진함을 띤 그 얼굴이 유용하게 쓰일지도 모른다. “저와 친한 진영이 형(박진영)은 제 영혼이 깨끗해서 좋다고 해요.(웃음) 저는 잔머리를 안 굴린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현장에서 제가 손해를 보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연기란 호흡이고, 서로 맞춰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이제 손해 보고 후회하는 짓은 안 하려고요.” 어쩌면 배우로서 사춘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가 자기 신념을 지키며 연기의 쾌감도 맛보기를 먼저 응원해야겠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권은경
    포토그래퍼
    주용균
    스탭
    스타일리스트 / 남주희, 헤어 / 박선호, 메이크업 / 박이화, 네일 / 김미선(마끼에), 세트스타일리스트 / 최훈화
    기타
    장소 / 넵스(Ne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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