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슨 자매의 더 로우
아역 배우에서 10대 스타를 거쳐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한 애슐리와 메리 케이트 올슨 자매. ‘더 로우’를 통해 여성들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스타일을 그려내고 있는 쌍둥이 자매를 <보그 코리아>가 뉴욕에서 만났다.
지난 9월 11일 정오를 넘긴 시간, 뉴욕 첼시 26번가 끝자락에 자리한 빌딩은 맨해튼의 여느 다른 사무실 빌딩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빌딩에 자리한 인터넷 회사 직원들은 1층 카페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기고, 검정 시스 드레스를 입은 여직원들은 그늘을 찾아 담배를 태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옷차림이나 칙칙한 빌딩 외관은 패션과는 전혀 관계없는 풍경.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 중 누구도 불과 10분 전 맨해튼 반대편에서 프로엔자 스쿨러가 환상적인 금빛 플리츠 드레스를 선보였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질자 없을 테고, 심지어 뉴욕 패션 위크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시하고 싶을 듯했다. 하지만 그 빌딩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누가 방금 자기 앞을 스쳐 지나갔는지는 금세 알아차렸다. 영어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태양빛이 키스한 듯’ 빛바랜 금발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검정 재킷과 스키니 진을 입고 로비에 나타난 자그만 체구의 젊은 여자 둘.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을 반쯤 가렸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들은 애슐리(Ashley)와 메리 케이트 올슨(Mary-Kate Olsen), 바로 올슨 쌍둥이였기 때문이다. <보그 코리아>와의 촬영을 위해 빌딩 속 스튜디오를 찾은 그들을 보고 패션에 관심 없는 뉴요커들도 시선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미국인들이 올슨 자매를 단번에 알아보는 건 당연하다. 애슐리와 메리 케이트는 불과 9개월의 나이에 <Full House> 라는 가족 시트콤에 캐스팅된 후, 무려 8년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브라운관 속에서 성장했다. 쌍둥이의 인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두 편의 TV 시리즈를 이끌었고, 그 후엔 실제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50편이 넘는 TV용 영화, 소설, 10장의 음악 앨범을 냈다. 쌍둥이를 닮은 인형들은 미국에서 바비 다음으로 잘 팔리는 인형이었으며, 올슨 자매의 옷차림을 그대로 닮은 패션 라인과 화장품, 향수, 액세서리 등은 월마트를 통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그들 자체가 새로운 10대 소녀들을 가리키는 ‘트윈 세대’의 아이돌이자 브랜드였던 것이다. 열여덟 살이 된 쌍둥이가 자신들과 관련된 사업을 다시 일으켰을 때, 그 회사의 연매출은 무려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어서고 있었다.
한국에서 올슨 자매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그맘때 일이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파라치 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스타 중 가장 인기 있는 피사체는 단연 올슨 자매였다. 자그마한 몸 위로 셀 수 없이 많은 옷을 레이어링하고, 거대한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벤티 사이즈의 스타벅스 커피를 방패처럼 들고 카메라 세례를 피하던 모습. 누군가는 ‘보호 시크’로 불렀고, 삐딱한 사람들은 ‘노숙자 패션’이라 폄하하기도 한 그들의 스타일은 금세 유명해졌다. 당시 배우 생활을 접고, 뉴욕 대학 입학 후 뉴욕으로 건너온 그들에 대한 파파라치 부대의 집착은 대단했다. 그들이 어떤 백을 들고, 어떤 스타일의 구두를 신었는지부터 누구와 데이트하는지, 대학에서는 무슨 수업을 듣는지까지 그들의 모든 것이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렇듯 비정상적 열기가 한창이던 2006년, 겨우 스무 살인 쌍둥이 자매는 ‘더 로우(The Row. ‘새빌 로우’에서 힌트를 얻은 이름)’라는 이름의 패션 라벨을 론칭했다. 당시는 연예인 디자이너의 탄생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 패션계 사람들의 시선은 당연히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시선으로 볼 땐 ‘미달이’가 꾸뛰르에 버금가는 하이패션을 한다고 덤비는 격이었으니 코웃음 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하지만 이 쌍둥이 자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유명하게 한 ‘히피 스타일’을 완전히 포기한 채 ‘완벽한 티셔츠와 가죽 레깅스’를 바탕으로 심플하고 실용적이며 고급스러운 옷들을 선보였다. 폭발적이진 않았지만 서서히 반응이 나타났다. 먼저 뉴욕 바니스 백화점이 데뷔 컬렉션을 몽땅 바잉했고, 미국 <보그>를 비롯한 패션 매체들은 디자이너로서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자매는 티셔츠에서 시작한 더 로우를 완벽한 재단의 셔츠와 재킷, 편안하면서도 멋있는 팬츠, 근사한 코트, 고급스러운 가죽을 마음껏 사용한 백 라인으로 점점 확장해갔으며, 모든 것을 소란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했다. 거대한 패션쇼 대신 칼라일호텔의 살롱을 빌린 조용한 프레젠테이션을 선택했고, 욕심을 부려 매장을 여는 대신 백화점 코너에 자신들의 옷이 걸리는 것에 만족했다.
새로운 ‘미국식 럭셔리’를 표방하는 더 로우를 통해 올슨 자매는 작년 6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아역 배우였던 자매가 겨우 6년 만에 함께 후보에 올랐던 마크 제이콥스와 프로엔자 스쿨러를 제치고 최고의 디자이너로 선정된 것이다(스물여섯 살로 역대 최연소 수상). <보그 코리아>는 이쯤에서 올슨 자매에게 인터뷰를 제안했다. 경력으로 따지면 신인 디자이너이지만 미국의 국민적인 스타였기에, 인터뷰와 촬영 스케줄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게다가 거대 기업의 소유주로서 더 로우 외에 다양한 사업(올슨 자매는 ‘엘리자베스앤제임스’ ‘텍스타일 엘리자베스앤제임스’ ‘올슨 보이’ 등의 패션 라인도 전개하고 있다)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고,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스타였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와 안전에 대한 수많은 이메일이 오가야 했다. 다행히 그들은 <보그 코리아>와의 첫 인터뷰에 관심을 보였고, 결국 백스테이지에서의 미니 인터뷰가 아닌, 포트레이트 사진까지 겸한 제대로 된 인터뷰에 응했다. 9월 11일 오후, 첼시의 빌딩 로비에서 뉴요커들이나 <보그> 촬영 팀이나 자매를 보고 깜짝 놀라는 건 당연했다.
영롱한 초록빛 눈동자를 반짝이며 인사를 건네는 애슐리와 메리 케이트를 봤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은 체구가 정말 아담하다는 것(그들은 150cm를 살짝 넘는다고 했다. 아역 스타 출신이 키가 안 큰다는 징크스가 그들에게도 적용된 셈). 그리고 두 번째는 목소리가 속삭이는 듯 조용하다는 것. 양쪽 귀를 활짝 열고 귀를 기울여야만 겨우 그들의 말을 ‘엿들을’ 수 있었다. 덩달아 조곤조곤 촬영 컨셉과 의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자 이들이 스물일곱의 보통 아가씨들이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을 대하면서 체득했을 법한 상냥함 뒤에는 분명한 취향과 결단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행어에 걸린 의상들을 만져보라며 자세한 설명을 더할 때는 스물일곱이 아니라 둘의 나이를 합친 쉰네 살처럼 노련했고, 촬영 도중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 피어나는 미소는 요정처럼 깜찍했다. 묘하게 닮은 두 자매를 구별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분 차로 언니가 된 애슐리는 비즈니스와 패션에 대한 명확한 방향성과 아이디어를 지닌 프로페셔널이었고, 메리 케이트는 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아주 빠르고 신속하게 촬영을 끝낸 이들은 <보그 코리아〉앞에서 자신들만의 패션과 멋, 스타일과 럭셔리에 대한 생각과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Vogue Korea(이하 VK) 이틀 전 내년 봄 컬렉션을 선보이고 쉬지도 못했을 텐데, 인터뷰에 촬영까지 응해줘서 고맙다.
Ashley Olsen(이하 AO) 그게 끝이 아니다. 내일은 또 ‘엘리자베스앤제임스’ 프레젠테이션이 있다. 얼른 가서 마무리해야 한다.
VK 패션쇼 대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건가?
Mary Kate Olsen(이하 MKO) 그렇다. 우린 직접 바이어들을 만나서 옷을 판다. 머리를 매만지거나 화장할 틈도 없다. 우린 꽤 훌륭한 세일즈맨이다.
VK 이틀 전 선보인 더 로우 컬렉션은 특별히 세일즈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조용한 취향을 가진 여성이라면 누구나 원할 만한 컬렉션이었다. 뻔한 질문이지만, 이번 컬렉션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나?
AO 영감을 주는 건 언제나 우리 고객들이다. 고객들이 새로운 시즌에 무엇을 원할지, 우리가 고객들에게 어떤 것들을 제공할 수 있는지 늘 고민한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창작 활동의 중심에 있다.
VK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디자인도 돋보였다.
MKO 운 좋게도 우리는 일 때문에 여행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행에서 얻은 아이디어들이 자연스럽게 컬렉션에 녹아 나오기도 한다.
VK 더 로우는 완벽한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 탄생했다. 지금도 그 컨셉에는 변함이 없는가?
AO그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더 로우는 특별한 옷장을 완성하기 위한 절제된 베이식 아이템들을 기본으로 한다. 항상 더 로우의 기본을 생각하며 디자인을 한다.
VK 더 로우를 통해 좀더 본격적인 패션 비즈니스에 뛰어든 셈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AO패션은 항상 우리 삶의 일부였다. 우리만의 비전을 따라 우리만의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VK 당신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패션을 접하며 살았고, 10대 시절에도 패션 라인이 있었다.
MKO 우리는 아주 어린 나이에 패션에 눈을 떴다. 그건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개성 때문이기도 하다. 체형이 작은 편이었기에 언제나 옷을 우리 몸에 맞도록 바꾸고 새로 재단해야 했다. 예를 들어 샤넬이나 라크로와 같은 디자이너의 옷들을 우리 몸에 맞게 완전히 뜯어서 고친 적도 많았다. 그걸 통해 피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피트가 나올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VK 본격적으로 올슨 자매의 패션이 유명해진 건 당신들 특유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서 점점 패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겠다.
MKO 물론 옷차림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결코 대중의 시선을 신경 쓰진 않았다. 우리도 다른 여성들과 비슷하다. 다른 여성들처럼 일하고, 여행도 하고, 아름다운 옷들을 사랑한다.
VK 아름다운 소재를 특별히 사랑하는 듯하다. 오늘 촬영을 위해 가지고 온 프리폴 컬렉션 옷들은 보기에도 아름다웠지만, 촉감은 더욱 매력적이었다.
MKO 우리는 모든 종류의 소재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 시즌 컬렉션의 소재를 결정하는 건 어떤 옷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너무 섬세하고 부드러워서 캐시미어처럼 느껴지는 코튼으로 작업할 수도 있고, 훌륭한 타페타 소재를 가지고 코튼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완벽한 소재란 없다.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소재에 어떤 작업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VK 컬렉션을 준비할 때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은 소재인가?
AO 그렇다. 소재를 선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컬렉션에 꼭 맞는 소재를 결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다음 형태와 실루엣을 생각하고, 팀원들과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건 특별한 테크닉이다. 우리가 원하는 효과와 결과를 얻기 위해선 더 로우만의 색다른 기술이 필요하다.
VK 모든 것을 뉴욕에서 완성하는 게 인상적이다. 가죽 제품을 제외하고 모든 것은 뉴욕의 장인들과 작업하는 걸로 알고 있다. 뉴욕은 합리적인 가격대의 ‘컨템퍼러리 브랜드’의 격전지 아닌가. 반면에 더 로우는 더 높은 가격대에 완성도 높은 의상을 선보인다.
AO 의외로 미국 패션사에는 수많은 역사가 담겨 있고, 그 속에는 뛰어난 장인 정신이 숨어 있다. 더 로우가 바로 그런 전통을 살리면서 미국에서 모든 것을 제작하는 브랜드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VK 많은 이들이 더 로우와 함께 떠올리는 건 ‘절제된 럭셔리’라는 표현이다. 럭셔리에 대해 정의해달라.
AO 우리가 생각하는 럭셔리의 정의는 삶을 더욱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 로우가 그런 럭셔리를 제공하고 싶다. 여성들의 삶을 더욱 편하게 만들어주는, 시대를 초월하는 옷들 말이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옷장을 여성들에게 만들어주고 싶다.
VK 그렇다면 지금 여성들이 옷장에 걸어둬야 할 옷들을 꼽는다면?
MKO 블레이저, 버튼다운 셔츠, 니렝스 스커트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VK 안나 윈투어가 셀린의 피비 파일로, 스텔라 맥카트니와 함께 현대 패션을 정의하는 여성 디자이너들로 당신들을 꼽았다. 여성 디자이너로서 장점이 있을 것 같다.
AO 우리가 여성이기에 고객인 여성들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자신의 몸에서 어떤 점을 좋아하고, 어떤 점을 좋아하지 않는지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다. 팔을 드러낼 것인지, 스커트 길이는 어느 정도가 좋은지, 뒷모습은 어떻게 보여야 할지. 여성들이 옷을 살 때 고려하는 사항은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객들의 생각과 코멘트를 귀 기울여 듣는다. 패션쇼보다 트렁크 쇼에서 직접 고객들을 만나고, 우리 옷을 입어본 고객들이 어떤 피드백을 주는지 자세히 경청하는 건 빼놓을 수 없는 과정이다.
VK 패션의 가장 큰 역할은 무엇인가? 여성들을 구속하는가, 자유롭게 만드는가?
MKO 패션은 가장 아름다운 차원에서 여성들의 삶을 좀더 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VK 그렇다고 모든 고객이 더 로우만으로 옷장을 가득 채울 수는 없을 텐데.
AO 더 로우는 그 어떤 브랜드와도 잘 어울린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다.
VK 당신들의 옷장은 빈티지 옷으로 가득한 걸로 알려져 있다. 그 중 가장 아끼는 아이템들을 꼽는다면?
MKO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아끼는 아이템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꼽을 수 없다.
VK <위대한 개츠비> 오디션을 준비하던 캐리 멀리건이 30년대 드레스를 빌려가서 그 배역에 캐스팅된 건 유명하다. 어떤 디자이너의 빈티지를 특히 좋아하나?
MKO 포투니나 아주 오래된 샤넬을 좋아한다. 요지 야마모토나 라크로와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그 디자이너들의 옷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여성들의 옷차림이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 우리 옷을 입는 고객들, 우리 친구들 옷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VK 컬렉션을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빠듯할 것 같다. 패션말고 다른 것에 시간을 투자하거나 마음을 뺏긴 적이 있나?
MKO 앤티크 가구와 앤티크 주얼리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도 패션이니 패션을 벗어난 다른 것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VK 지난해에는 ‘CFDA 어워즈’에서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을 수상했다. 이제 브랜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는데, 가까운 미래엔 무엇을 하고 싶나?
AO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만의 환경에서 고객들을 맞이할 수 있는 ‘더 로우’만의 ‘집(home)’을 마련하고 싶다.
VK 집이라는 것은 더 로우만의 제국을 건설하고 싶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더 로우의 침구나 접시 같은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인가?
AO 질문에 즉흥적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우리만의 페이스로 일할 뿐이다. 더 로우의 이름으로 미래에 또 어떤 것이 탄생하게 될지 솔직히 우리도 잘 모르겠다.
VK 쌍둥이에다가 평생을 함께 일해왔다. 둘이서 함께 일하는 건 어떤가?
MKO 우리에게 서로가 있다는 것, 언제나 아이디어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행운이다. 어떤 필터도 필요 없이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한다. 물론 많은 면에서 다른 점도 있지만,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AO 둘이 함께가 아니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파트너를 가진 건 행운이다.
VK 둘 사이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AO 귀중한.
MKO 그리고 깨질 수 없는.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손기호
- 모델
- 지현정
- 스탭
- 헤어 / Mark Townsend@Starworks Artists Agency, 메이크업 / Itsuki@The Wall Group, 세트 / Abby Walton@The Wall Group, 스타일리스트 / 윤애리(Aeri Yun), 헤어 / Charlie Taylor@Bridge Artists, 메이크업 / Carolina Dali@See 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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