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의 행복한 일곱 청춘 1
<응답하라 1994>는 하나의 현상이다.이제 절반쯤 이야기를 풀어냈을 뿐임에도 돌풍 같은 신드롬을 일으켰다. 뜨거운 환영을 받고 있는 이 드라마의 일곱 청춘들을 <보그> 오케스트라 멤버로 초대했다.
어딜 가나 <응답하라 1994>다. 검색창에 ‘응’까지만 쳐도 <응답하라 1994>가 자동 완성된다. 나정, 쓰레기, 칠봉, 삼천포, 해태, 빙그레, 정대만이라는 이름이 친구처럼 친숙하다. <슈퍼스타K 2>의 21.1%라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없었다면, 케이블 채널 역대 최고 시청률은 <응답하라 1994>가 세울 게 틀림없다. <꽃보다 할배> 후속으로 방송 중인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뜨겁다. 11월 9일 방송된 8회는 7.1%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이날 순간 최고 시청률은 8.6%였다. 2012년 여름을활활 불태웠던 전작 <응답하라 1997>이 세운 시청률 7.6% 기록은 <보그> 12월호가 인쇄되고 있을 때쯤엔 이미 깨져 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4>는 1994년의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와 서대문구 창천동 ‘신촌하숙’의 리얼리티와 당시의 생활, 문화 유물들을 세심하게 재현해 이제 내일모레 마흔인 X세대들의 청춘을 복기시킨다. 찰떡 콤비가 된 <응답하라 1994>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는 나란히 94학번이다. <응답하라 1997>이 그들 입장에서 청춘의 과거를 만들어낸 작업이었다면, <응답하라 1994>는 그들 청춘의 현재 기록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현재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당시엔 지방에서 상경한 새내기들이 으레 둥지를 틀던 하숙집을 배경으로 하는 설정부터가 과거 지향적이다. 양말 공장에서 여태 사용하던 486 컴퓨터, 컬렉터에게서 구입한 하이텔 PC통신 단말기 같은 과거의 물건들이 그때 그대로 살아났다. 현대 백화점 신촌점이 그레이스백화점이었던 풍경, 서울역이 1925년 준공된 모습을 지키며 여전히 철도의 관문 역할을 했던 그리운 모습은 CG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응답하라 1994>부터 제작 환경이 개선돼 큰 도움을 얻고 있는 미술 팀에서 제작한 옛날 빼빼로와 육각형 모양 꼬깔콘 패키지, 더블엑스 화장품 같은 소품들은 모두 기억의 켜 사이에 잊힌 것들이다.
<응답하라 1994>가 단지 1994년의 모습을 재현한 데 그쳤다면, <응답하라 1997> 재탕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4>가 지금처럼 ‘신드롬’으로 불린 데엔 강력하게 진화된 신무기의 힘이 세다. <응답하라 1994>의 최대 미덕은 더 조밀해진 스토리라인, 그리하여 주요 인물 모두가 동등한 층위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제작진이 <응답하라 1997>을 만든 경험을 통해 이야기의 힘이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성나정(고아라), 쓰레기(정우), 칠봉이(유연석)가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성나정의 남편 이름으로 극 초반에 제시된 ‘김재준 찾기’라는 드라마 전체 이야기의 큰 흐름을 만든다. 그리고 다른 드라마였다면 장식적인 역할로 소외될 수 있었던 삼천포(김성균), 해태(손호준), 빙그레(B1A4의 바로), 정대만(타이니지의 도희) 네 인물은 서포터가 아닌 주연의 입장에서 매회 중요한 메인 줄거리를 채워간다. 덕분에 배우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신드롬의 평등한 주인공들이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재미를, 지방 출신들에게는 친근함을 안기는 사투리 연기는 마산, 삼천포, 여수, 순천, 괴산 등 전국 곳곳에서 상경한 캐릭터들의 출신지와 대부분 짝을 맞춰 캐스팅된 배우들의 힘에서 나왔다. 이 배우들은 성장드라마 <반올림> 시리즈를 통해 온 국민이 다 같이 키우던 소녀이거나, <건축학개론>에서 ‘국민 나쁜놈’으로 낙인 찍히기도 했고,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 <이웃사람> <화이> 같은 영화에서 못돼먹은 조폭이나 약골 살인자 같은 신 스틸러의 배역을 맡기도 했고, 사랑스러운 아이돌 그룹의 래퍼로 살아오기도 한 제각각의 스펙으로 이력서를 채운 이들이다. 저마다 연기의 공력은 다를지라도, 그들이 살려낸 캐릭터의 현실감은 모두 생생하다. 1994년에는 태중에 있었던 민도희에게도, 네 살이었던 고아라에게도, 중학생이었던 정우나 김성균에게도, 1994년이 이제는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다. 그것은 <응답하라 1994>가 하려는 이야기가 1994년에 국한된 ‘추억팔이’ 이상의, 결국은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손에 만져지는 삶 그 자체다.
<응답하라 1994>에 빠져 지내는 동안에 그 돌풍의 캐릭터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함께 시대를 옮겨간 듯한 경험이었다. 신촌하숙의 거주민들이 악단이 되어 <보그>를 위한 <응답하라 1994> 외전을 만들었다. 쓰레기가 에스파드류를 꺾어 신고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는 장면, 그리고 “맞나”가 입버릇이 돼버린 성나정, 천사같이 씨익 웃는 순둥이 칠봉이, 삼천포 ‘행님’에게 넙죽 인사하는 빙그레, 심드렁한 해태 곁에 앉아 있는 정대만이, 2013년 11월 8일의 스튜디오를 1994년의 팔도 청춘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공간으로 채워버렸다.
지금 대중은 그들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신드롬의 주역들은 그래서 <응답하라 1994>를 촬영하는 시간과 새벽녘 돌아와 간신히 선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오롯이 인기를 실감하는 데에 쓰고 있다. 누군가는 TV CF의 모델이 되어 파주 촬영장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줄을 잇는 인터뷰에 응하느라 안면 근육에 경련이 올 정도다. 매체를 통해 그들의 잊혔거나 조명받지 못했던 필모그래피는 물론, 개인사까지 재검증을 거치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Seven Syndromes 2’로 이어집니다.
- 포토그래퍼
- TAE WOO
- 스탭
- 글 / 이해림(프리랜스 기자), 스타일리스트 / 김하늘, 헤어 / 박선호, 메이크업 / 손대식, 세트 스타일링 / 다락(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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