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해밍턴, 파비앙, 샘 오취리의 ‘코리안 드림’
한국이라는 신대륙에 착륙한 그들은 특유의 탐험가 정신으로 열정적인 ‘코리안 드림’을 만들어가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입대하는 호주인 샘 해밍턴과 섬마을 ‘김 면장’으로 활약한 가나인 샘 오취리,
신토불이 자취 생활을 보여주는 프랑스인 파비앙의 리얼 코리안 입문기.
보그 한국이라는 나라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죠?
해밍턴 호주의 대학에서 한국어를 복수전공했어요. 그래서 한국어도 더 정확히 배울 겸 2002년 월드컵도 볼 겸, 한국에 왔는데, 2005년 <개콘>에 출연하게 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한국어를 했지만 유머를 구사하는 덴 정말 오래 걸렸어요. 호주의 스탠딩 개그는 대통령도 까고 섹스 코미디도 거침없이 해요. 그런데 한국은 심의 때문인지 슬랩스틱이 많아요. 몸으로 웃기는 게 처음엔 유치하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찰리 채플린이 연상되던걸요. <개콘> 사무실에 2년 동안 성실하게 출근하면서 선배들한테도 깍듯하게 했어요. 안 그러면 외국인 연기자밖에는 안 될 테니까. 전 처음부터 한국에서 ‘웃기는 친구’로 인정받고 싶었죠.
오취리 가나에 살 땐 한국을 전혀 몰랐어요. 북한만 신문에서 몇 번 봤죠. 정부 추천 장학금 받고 한국 대학(서강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오게 됐을 때 대사관에서 “삼성을 아느냐?”고 물었어요. 그때도 “삼성 미국 브랜드 아니에요?” 했거든요. 가나에서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옛날처럼 사는 덴가 보다 했죠. 처음 한국에 와서는 우리랑 비슷하게 청바지도 입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가나보다 더 패셔너블하더라고요.
파비앙 어릴 때부터 마르고 키가 작아서 엄마가 무술을 하라고 시켰어요. 파리 14구역에 있는 태권도장엘 다녔죠. 한국이라는 나라는 다섯 살 때부터 태권도로 깨쳤고, 그 뒤로 음식, 문화, 드라마, 역사를 공부했어요. 한국에는 2007년에 태권도가 너무 궁금해서 여행 왔다가 완전히 빠져들었죠.
보그 한국은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너무나 빠르고 경쟁적이며 열정적인 나라죠?
오취리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게 ‘빨리빨리’였어요. 가나에선 뭐든지 천천히였거든요.
파비앙 저는 한국과 정말 잘 맞아요. 전생에 한국인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요. 오히려 프랑스에 가면 답답할 정도예요.
보그 해밍턴은 한국인보다 한국 예능계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했지요? 군대까지 다녀온 기분이 어때요?
해밍턴 한 달에 한 번 ‘진짜 사나이’를 찍어요. 3주 동안 풀어져 있다가 다시 군대 갈 생각하면 도망가고 싶어요. 외국 여행 가고 싶다니까요. ‘진짜 사나이’는 <정글의 법칙>보다 독해요. 끝을 알 수 없는 독한 예능의 결정판이에요. 일주일 동안 빡세게 달리다 3주 동안 군기 다 빠지고, 다시 입대하기 죽을 맛이에요.
보그 한국에 와서 가장 신기하게 느껴졌던 문화는 뭐죠? 목욕탕이라든가, 폭탄주에 노래방이라든가.
오취리 한국에 와서 놀란 거 많아요. 인사할 때 허리를 굽히고 존칭을 쓰고 그런 것도 신기했어요. 목욕탕은 좀 충격적이었어요. 1시간 동안 고민하다 옷 벗고 들어갔는데, 어떤 분은 막 따라다니면서 몸‘ 좋다’고 만지시더라고요. 흐흐. 노래방에 술을 숨겨서 들어가는 것도 참 스릴 있고 좋아요.
해밍턴 목욕탕은 기본 중에 기본이죠.
파비앙 한국은 정말 노는 문화가 전 세계에서 최고예요. 프랑스는 아무리 늦어도 밤 12시를 넘기는 일이 거의 없는데, 한국에 와선 밤이 새도록 노는 게 충격적이었어요.
오취리 한국 문화 중에 특히 형 동생 같은 관계가 참 좋아요. 형은 동생에게 늘 밥을 사주는 존재잖아요. 해밍턴 형처럼. 으하하.
해밍턴 형들이 무조건 밥 사야 되는 거 ‘거지’ 같아요. 하하. 이쪽 일 하는 외국인들이 사실 많지 않아요. 그래서 서로 감싸고 돕고 밀어주고 끌어주고 그러고 싶어요. 영화, 드라마, 시트콤…, 방송 일이 다양하지만 아시안이 아닌 백인과 흑인이 설 곳은 의외로 많지 않아요. 처음 활동할 때 개그하는 외국인은 제가 처음이었어요. 오취리가 <섬마을 쌤>에 나와서 인기를 끄니까 언론에선 ‘제2의 해밍턴 가능할까?’ 이런 비교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전 그게 싫었어요. 우린 서로 고향도 다르고 피부색도 달라요. 매력도 다르죠. 저는 오취리가 개그에 도전하는 것도 정말 좋아요. 제가 1호 외국인 개그맨이지만, 2호 3호가 계속 나오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거든요. 너 아니면 나, 이렇게 서로 밟고 올라서는 게 아니니까. 혼자만 있다 보면 안전하겠지만 발전은 없죠.
파비앙 저는 연극하는 극단에 찾아가서 2년 동안 배우면서 진짜 한국인이 되어갔어요. 선후배 같은 상하 관계도 배우고, 감기 걸리면 소주에 고춧가루 풀어서 원샷하고 식당의 공깃밥은 흔들어 먹었죠. <나 혼자 산다>에 나오는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다 그때 생활에서 나온 거예요.
보그 파비앙은 원래 배우가 꿈이었나요?
파비앙 프랑스에서도 모델 일을 했고 연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한국에서 배우 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건 아니었는데, 2010년 드라마 <제중원>에 오디션을 보고 들어갔어요. 거기서 한국말도 아닌 조선말로 연기를 하고 보니 오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극단에 들어가서 2년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연기 공부를 했어요.
보그 오취리는 완도군청 홍보대사로도 활동 중인데, 가나 친구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설명하나요?
오취리 가나는 모든 걸 느리게 하고 친절하고 패션에 관심이 많고, 음식은 혼자 먹고 밤엔 항상 파티가 열리는 나라예요. 가나 친구들은 한국 드라마와 예능을 정말 좋아해서 <개콘> <안녕하세요>도 거의 실시간으로 봐요. 가나 친구들에게 전 이렇게 얘기하죠. “한국 드라마보다 실제 한국이 더 재미있어.” 의사소통만 되면 한국은 정말 판타스틱한 곳이에요.
보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국인이라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해밍턴 결혼식을 두 번 했어요. 호주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그런데 상상 못할 만큼 많은 액수의 축의금을 넣어준 한국 친구 류수영 때문에 정말 행복했어요. 역시 정이 많은 나라야.
파비앙 전 프랑스에 가면 제가 외국인처럼 느껴요. 식당에서 밥 늦게 주는 것도 불평하고, 지하철도 더럽다고 혼잣말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정도인가 하면 프랑스에 비자 문제로 잠시 들어갔다 왔는데, 그때 어디 갇혀있는 것처럼 불편하고 힘들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아! 한국 떠나면 안 되겠구나.
보그 ‘진짜 사나이’는 한국의 군대를 보여주고, <섬마을 쌤>은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 오지 섬마을 아이들의 해맑은 일상을, <나 혼자 산다>는 한국에서 혼자 사는 싱글 남자의 담담한 디테일을 보여주면서 감동과 재미를 주고 있어요. 여러분들의 진정성이 드러나서 더욱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죠.
오취리 <섬마을 쌤> 하면서 김 맛을 알게 됐어요. 완도 김은 밥 없이 김만 먹어도 좋아요. 김 면장이 된 기념으로 가나에도 김을 보냈어요. 하하.
파비앙 <나 혼자 산다>는 제 일상을 따라다니니까 일하는데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조기 축구회에서 축구하고, 목욕탕에서 때 밀고, 집에서 밥해 먹고, 한의원에서 침 맞고 부항 뜨고…. 시청자들이 제가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처럼 산다고 재미있어 하세요.
해밍턴 <라디오스타> PD가 새로운 인물을 원하는 <일밤> PD에게 저를 소개해줬어요. 군대에 들어갈 수 있겠냐고. 기회가 온 거죠. <개콘>도 KBS 간판 프로였는데, ‘진짜 사나이’도 MBC <일밤>의 명예를 건 프로였잖아요. 정말 감사해요. 겸손하게 살면서 노력해야 그런 기회가 온다고 생각해요.
보그 외국인 노동자들 중엔 ‘코리안 드림’을 안고 와서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코리안 드림이란 뭘까요?
파비앙 저도 드라마 많이 출연했는데, 출연료 사기당한 적 있어요. 굉장히 우울한 일이에요. 예전에 샘 해밍턴 형이 인터뷰에서 “올해도 안 뜨면 호주에 가야겠다 결심한 적이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공감이 됐어요. 저도 코리안 드림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어요. 지금은 기다리길 얼마나 잘했나 싶어요.
오취리 흑인 친구들이 “샘이 하는 거 보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고 할 때 정말 기뻐요. 제가 흑인 친구들의 희망이죠.
보그 여러분들에게 한국인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해밍턴 저는 한국인이 된다는 건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듯, 한국에서 한국 문화를 따르면 잘되든 못 되든 경험이 되고 추억이 되죠. 번데기, 산 낙지도 맛있고 때밀이, 침 맞기도 시원해요. 시도해보지 않고 판단만 하는 건 바보죠.
파비앙 한국인이 된다는 건 자기 나라에 가도 어색한 기분이 드는 거죠. 작년에 프랑스에 갔을 땐 언어 빼고는 모든 것이 맞지 않아 ‘멘붕’이었어요. 심지어 음식도 너무 짜게 느껴져서 놀랐어요. 한국인에게 배울 점은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참을성. 태권도 하면서 견디고 또 견디는 인내심에 대해서 배웠어요. 그리고 열심히 하는 것. 한국인들은 정말 열심히 살아요.
보그 좋아하는 한국 예술가는 누구죠?
해밍턴 전 한국 아티스트로 최민식 형 진짜 좋아해요. 젊은 친구들의 스트리트 미술에도 관심이 많아요. 예전에 한국 문화는 전통적인 게 강했는데, 요즘은 패션, 음악, 영화, 미술 전부 세계화됐기 때문에, 그 자체로 스타일리시하다고 느껴져요. 과거엔 일본이 스타일의 중심이었는데, 이젠 단연 한국이죠.
오취리 전 샘 해밍턴이 훌륭한 한국 개그맨이라고 생각해요. 하하.
해밍턴 이 친구가 <섬마을 쌤>이 된 데는 이런 훌륭한 ‘감’이 한몫을 했어요.
오취리 전 형보고 따라 한 거예요.
해밍턴 우린 사실 한국 방송인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돼요. 속담, 사자성어, 역사, 정치 등등 모르는 게 너무 많으니까. 그렇다고 그런 무지를 컨셉으로 하면 또 사람들이 지루해하죠.
오취리 제가 볼 때 형은 전설이에요.
해밍턴 하하. 로버트 할리, 이다 도시가 외국인 방송인의 길을 열었죠. 제가 본격적으로 개그맨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면에선 제가 로빈슨 크루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파비앙 한국 예술가 중에서는 이병헌 선배님을 가장 존경해요. <아이리스> 같은 드라마에서도 훌륭했고,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모습에도 박수를 치고 싶어요. 저에겐 한국의 여의도가 할리우드와 다름없죠.
보그 앞으로도 한국에서 어떤 꿈을 이어가고 싶으세요?
해밍턴 한국에서 활동도 계속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꿈도 있어요. 언젠가 나이 들어 호주로 돌아가면 정치를 하고 싶어요. 한국 사람들은 호주를 잘 알지만, 호주 사람들은 한국을 잘 모르는데 거기서 좋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미국에 가서 개그맨으로 활동하는 것도 도전해보려고 해요. 망해도 상관없어요. 도전하는 게 중요하니까.
오취리 저는 아직 어려서 아직은 계속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섬마을 쌤> 하고 나니까 우도, 호도처럼 정말 예쁜 한국 섬들도 더 사랑하게 됐어요. 나중에 가나에 가면 한국에 대해서 많은 걸 알려주고 싶어요. 50년 전엔 가나가 더 잘살았지만, 지금은 한국이 더 잘살게된 이유를 알려줄 거예요.
해밍턴 전 이 일은 마라톤이라고 생각해요. 대세라는 말도 물론 있죠. 한 방에 올라가고 한 방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전 꾸준히 하고 싶어요.
파비앙 오취리나 해밍턴 형이나 항상 웃으며 정말 열심히 해요. 그분들과 함께 오래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김지수, 스타일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HYEA W. KANG
- 스탭
- 헤어 / 조영재, 헤어 / 김지현, 세트 스타일링 / 다락(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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