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에서 여인으로, 김연아 1
소년은 남자가 되고, 소녀는 여인이 된다.
은반 위의 요정에서 목련꽃처럼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으로 갓 피어난, 우리의 김연아.
여왕이 떠난 겨울왕국은 한동안 꽤 쓸쓸할 것이다. 김연아는 이제 막 자신의 무거운 왕관을 내려놓았다. 지난밤 그녀는 선수로서의 공식적인 은퇴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마음이 편해요. 공연이 끝나고 선수들과 함께 식사를 했고, 오랜만에 잠을 푹 잤죠.” 차갑고 미끄러운 얼음 벌판 대신 푹신한 땅 위에 발을 딛고 선 연아는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서울 방이동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사흘간 이어진 아이스쇼는 영원히 계속되길 바랐던 아름다운 피겨 동화의 마지막 장이었다. 굳이 동화라고 표현하는 건 피겨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한 소녀가 지난 18년간 이뤄낸 모든 일들이 도무지 현실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은반 위에서 자유롭게 비상하는 연아의 경기를 숨죽인 채 지켜보면서 우리는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지 모르는 기적’이라는 달콤한 꿈을 꿨다.
이야기의 시작은 군포의 어느 단란한 가족이 과천 실내 스케이트장으로 나들이를 간 96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신어본 피겨 스케이트화는 일곱 살 연아에게 “나를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는 마법의 신발”이었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이 모여 걸음마하듯 간단한 활주와 스텝, 스트로킹을 익혀가던 방학맞이 피겨 강습에서 연아의 남다른 재능을 눈여겨본 류종현 코치는 연아의 엄마에게 딸을 선수로 키워볼 것을 제안했다. 지난 소치 올림픽에서 키스앤크라이 존에 앉아 연아와 함께 전광판을 지켜보고, 연아와 뜨거운 포옹을 나눈 바로 그 류종현 코치였다. ‘아디오스 노니노’의 마지막 더블 악셀과 스핀을 완수하고 빙판을 벗어날 때까지 의연했던 연아는 “다 끝났어, 연아야”라는 그의 한마디에 잠시 눈물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아이스쇼를 보고 한껏 들떠 거실을 빙판 삼아 스케이팅을 하던 꼬마가 처음으로 트리플 토룹을 성공하던 순간부터 숱한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기억이 떠올랐을 테니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제가 잘했을 때죠. 그러니까 밴쿠버 올림픽과 소치 올림픽, 그리고 2013 세계선수권대회. 제가 쇼트와 프리 프로그램을 모두 클린한 건 이 세 번의 경기뿐이었어요.” 그렇다면 스케이트를 타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경기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을 때. 그리고 토요일 훈련이 끝났을 때!” 일요일은 은반 위의 요정들도 쉬는 날이었다. 고질적인 발목 통증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싶은 때도 있었다. 허리에 압박붕대를 두른 채 경기에 나가 트리플 점프를 하고 고관절 부상으로 대회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던 적도 있었다. 수없이 넘어지고 깨지고 울었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점수가 공개되고 난 후, 판정 논란이 일었지만 연아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보였다. 경기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연아는 “아무런 미련이 없다. 끝이 났으니까 끝이라고 생각한다”고 담담하게 답했다. 대한체육회와 빙상경기연맹은 심사위원의 공정성 의혹과 관련해 국제빙상연맹(ISU)에 제소했지만 아직 결론은 나지 않은 상태다.
골치 아픈 문제들과는 별개로 올림픽이 끝난 연아에겐 즐거운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친한 지인들이 연아의 선수 생활을 기념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미리 준비한 은퇴 축하 케이크 꼭대기엔 삼선 슬리퍼에 파란색 운동복 차림으로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질질 흘리고 있는 김연아가 있었다. “누가 봐도 딱 ‘백수’의 모습인 제가 벤치에 늘어져 있었어요. 옆에는 검은색 비닐봉지와 과자 부스러기가 놓여 있었고요. 그동안 장난 삼아 ‘올림픽이 끝나면 난 백수다’ ‘일반인이 된다’는 말을 종종 했거든요. 우스꽝스러웠지만 더없이 고맙고 특별한 선물이었어요.” 거기엔 연아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재미있는 팻말들도 꽂혀 있었다. ‘백수라도 놀아줄게!’ ‘축! 일반인 김연아’ ‘환영 자연인!’ ‘나도 예전에는 여왕이었다구!’ 스스로 여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연아는 더 이상 피겨 선수가 아닌 자신을 그저 “스물다섯 살의 백수. 그냥 인간”이라 표현했다. 세상에 이렇게 유명한 백수가 또 있을까? 연아는 지금 막 <보그>의 표지 촬영을 끝냈다!
몇 년 전, 연아를 모델로 한 립스틱 광고에서는 스카우팅 포 걸즈의 ‘She’s so lovely’가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보그>에 나오는 소녀들 같군. 그녀의 도도한 모습이 너무 좋아.” 그 노래 가사는 곧 현실이 되었다. “예쁘게 나와야 할 텐데,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돼요.” 사실 우리는 지난 4월 초에 이미 모든 촬영을 끝냈다. 연아와 꽤 긴 시간을 함께해온 제이에스티나의 광고 촬영이 있던 날이었다. 당시 연아는 아이스쇼 준비로 아침부터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하던 터라, 제한된 시간 안에 서로 다른 두 화보를 동시에 소화해야만 했다. <블랙 스완>에서 영감을 받은 검은색 깃털로 머리를 장식하고 다소 불량한 그런지 펑크의 여왕으로 변신한 연아의 모습은 파격적이고 귀여웠다. 우리가 볼 땐 확실히 그랬다. 연아가 언제 사랑스럽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연아는 전 세계가 인정한 완벽주의자였다. 라이브 패션쇼처럼 정신 없었던 그날의 촬영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연아는 에이전시를 통해서 조심스럽게 재촬영을 제안해왔다. 여러 날을 혼자 고민한 모양이었다. “가능하다면 다시 찍고 싶어요. 이번엔 충분히 시간을 갖고 제대로요. 아이스쇼가 끝난 후라면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을 거예요.”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촬영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있던 터였다. 기왕이면 이번 작업이 선수 생활을 은퇴하는 연아에게 뜻깊은 선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한 달 만에 연아를 다시 만났다. 그사이 세상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엄청나게 슬프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온 국민의 아픔과 절망은 어느덧 분노로 바뀌어가는 중이었다. 연아는 유니세프를 통해 1억원의 기부금을 전달하고 은퇴 기념 메달의 수익금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너무나 큰 사고였고,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았어요.” 연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머나먼 아이티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일본 대지진, 필리핀 태풍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랬다. 기부는 연아가 늘 해오던 일이다. 꽤 오래전부터 소년소녀 가장과 난치병 어린이들, 어려운 환경에서 피겨의 꿈을 키워가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아이스쇼 무대에 앞서 연아는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객석을 가득 채운 1만여 명의 관중들이 함께 애도했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을 위해 피겨 선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스케이트를 타는 일이었다.
<겨울왕국>의 OST로 시작된 아이스쇼에서 연아는 얼음 보석 같은 크리스털이 장식된 하늘거리는 연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입장했다. 바람에 나부끼듯 부드럽게 은반 위를 유영하는 연아는 흩날리는 눈꽃 같았다. “사실 저는 이 영화를 안 봤어요. 워낙 얘기를 많이 들었고, 특히 태릉에 있을 때 어린 후배 선수들이 ‘Let it go’를 너무 좋아해서 지겹도록 부르고, 틀고 또 틀었거든요.” 모 광고에서 ‘Let it go’를 열창하는 연아의 모습은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피겨계의 엘사는 영화를 본 적도 없다니! 이번 공연에서는 올 시즌 쇼트 프로그램인 ‘어릿광대를 보내주오’와 함께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꼭 한 번 사용해보고 싶었다던 음악 ‘투란도트’도 새로 선보였다. 챔버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함께 등장한 연아는 어느새 핏빛 장미로 변해 있었다. 록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박수와 함성, 선수들과 팬들의 감동은 아이스링크를 녹이고도 남을 만큼 뜨거웠다.
연아의 울음이 터진 건 피날레를 앞두고 대기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후배 김해진 선수가 울고 있었다. “남이 울면 따라 울게 되잖아요. 전 계속 참았어요. 다행히 얼음 위에선 울지 않았는데, 피날레가 끝나고 래커룸에 들어갔더니 해진이가 또 울고 있더라고요. 그땐 저도 막 같이 울어서 난리가 났죠. “니가 은퇴하는 거냐?” 장난도 치고, “나를 너무 사랑하는 거 아니니? 혹시 나에게 언니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는 거 아냐?” 놀리면서 달랬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링크에서 훈련해온 김해진 선수는 올댓스포츠에서 연아와 함께하며 더욱 정이 들었다. 지난 소치 올림픽도 함께했다. 연아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이 어린 선수는 스무 살이면 환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피겨계에서 18년 동안 선수로 활동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피겨 전용 아이스링크도 없는 국내 현실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던 에이전시 관계자들만 애가 탔다. 연아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카메라 앞에 섰다. 이번엔 안무가 데이비드 윌슨이 연아를 울렸다. “22년간 안무가로 살아오며 김연아를 지도한 건 제 인생의 가장 완벽한 순간이었습니다. 연아의 은퇴 무대를 보는 심정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했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키운 이유에 대해 곁에 두기보다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김연아를 대하는 제 마음도 그와 같습니다.” 아름다운 술회였다.
데이비드는 연아가 시니어 레벨로 올라갈 때부터 지난 8년간 함께해왔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엔터테이너다. 연아에게 본드걸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한 ‘007’, 지금까지도 쇼트의 대명사로 불리는 ‘죽음의 무도’를 비롯해 그의 프로그램은 한 편의 뮤지컬처럼 언제나 드라마틱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쑥스러워하던 연아의 표현력이 한 단계 성숙해진 것도 자유분방하고 유쾌한 데이비드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캐나다 토론토의 크리켓 클럽에서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둘은 이토록 오랜 시간 함께하게 될 줄은 몰랐다. 피겨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독창적이면서도 예술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던 천재 안무가와 한계를 넘어서 이를 완성시킨 미라클 연아의 호흡은 환상적이었다. “데이비드가 워낙 특이한 걸 좋아하고 남들이 하지 않은 걸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충돌도 가끔 있었죠. 하지만 데이비드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4년여 동안 토론토에서 지낼 때는 거의 매일 봤고요. 저와는 두 번 돌아 띠동갑인데도 나이와 국적을 초월한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많은 코치들이 있었지만 무뚝뚝한 얼음 공주를 쉴 새 없이 웃게 만드는건 데이비드가 유일했다. 인간적인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단짝이었다.
소녀에서 여인으로, 김연아 2 www.vogue.com/YunaKim2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이지아, 피처 에디터 / 이미혜
- 포토그래퍼
- LEE GUN HO
- 스탭
- 헤어 / 한지선, 메이크업 / 홍성희, 세트 스타일링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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