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하이 주얼리들
파리 중심부 방돔 광장엔 최고급 보석 부티크들이 포진해 있다.
서울은 어떤가? 소박한 아틀리에에서 자연과 한국적인 것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 중인 코리안 하이 주얼러들이 있다!
육중한 유리문을 말쑥한 가드가 열어주는 방돔 광장의 화려한 보석상. 그 기세등등한 역사와 진귀한 보석들이 빼곡히 장식된 진열장 앞에서 잠시 주눅 들 때가 있다. 쇼메 매장 2층에는 역대 프랑스 왕과 왕비의 왕관을 전시하는 그랑 살롱이 있고, 부쉐론은 같은 건물에 장인들의 작업 공간인 아틀리에를 운영한다. 최고급 보석상들은 희귀한 원석을 찾기 위해 다이아몬드 광산을 직접 찾아 나서고, 드비어스처럼 다이아몬드 광산 회사를 설립하는 경우도 있다.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며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원석과 손톱보다 큰 다이아몬드 캐럿을 독점하는 그들. 여기에 비해 주얼리 역사가 짧은 한국 주얼러들의 현주소는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적인 것에서 디자인을 출발한 ‘예진(Yezi:n)’의 대표이자 디자이너 여은경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에겐 조선시대쯤 됩니다. 박물관에 가보면 삼국시대에도 화려한 주얼리가 있었지만, 왕이나 귀족들의 것이었죠. 백의민족이었기에 서민들에게 비단이나 금붙이는 사치품이었고, 그나마 여염집 규수들은 왕가에서 쓰는 호박이나 옥을 이용한 노리개와 반지로 만족해야 했죠.” 그녀는 2003년 전통 주얼리를 응용하는 주얼리 브랜드, 예진을 오픈했다. “금속 공예를 전공한 후 어머니가 운영하던 주얼리 사업을 물려받았어요. 그 후 전통과 현대를 결합한 주얼리를 선보여왔죠.” 그녀가 디자인하는 하이 주얼리는 호박, 비취, 산호 등의 천연 스톤을 주요 소재로 사용한 것. 전통적인 오브제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그녀의 주얼리들은 한국을 넘어 해외 왕실에서도 사랑받고 있다. “말레이시아 왕실에서 주얼리를 주문한 뒤 동남아의 다른 왕가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어요. 특별 주문된 피스들은 한 달 정도면 완성됩니다.”
쇼메나 부쉐론처럼 한 건물에 자체 공방을 갖고 있는 청담동의 ‘바이가미(Bygami)’에서는 눈부신 아트 피스를 볼 수 있다. 문을 열면 다이아몬드가 빼곡히 세팅된 이어 커프와 네크리스가 눈에 띈다. “20년 경력의 귀금속 장인들이 건물 안에 마련된 자체 공방에서 작업하기에 최고 품질을 자신합니다. 특히 바이가미 디자인들은 대부분 국내 특허를 갖고 있죠.” G.I.A 감정사 자격증을 지닌 디자이너 겸 대표 김가민을 중심으로 디자인 연구소도 운영 중이다. “해외 특정 브랜드가 떠오르는 디자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디자인 연구소에서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연구하고 자체 공방에서 작업하기 때문이죠.”
비로소 해외 브랜드의 카탈로그를 참고해 비슷하게 만들던 금은방 문화에서 벗어나, 한국 디자이너만의 감성이 깃든 아트 피스 시대가 도래한 것! “하지만 국내 80%를 차지하는 예물 라인은 주얼리 디자이너들에게 큰 과제입니다. 다이아몬드, 진주, 루비 3종 세트는 한국만의 특수한 문화죠.” 하지만 요즘 세대들은 커플 링만 하거나 다이아몬드의 캐럿 수를 올리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한다. “가끔 티파니나 까르띠에 반지를 똑같이 세팅해달라고 요구하는 손님들도 있는데, 정중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코이누르(Kohinoor)’의 디자이너 겸 대표인 송진희는 남편과 함께 G.I.A 감정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2003년 청담동에 아틀리에를 열었다. “‘우리 집안 보석 가게’가 브랜드 철학입니다. 주얼리 선진국처럼 3대가 자유롭게 들르고, 무엇보다 오랫동안 착용하며 간직할 수 있는 주얼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최근엔 돌반지 시리즈를 선보이기 시작했어요.” 아기 엉덩이를 모티브로 한 돌반지 시리즈는 물론, 건축적이고 조형적인 블랑쉐 반지는 코이누르의 상징적 아이템.
패션지에 자주 등장하는 ‘미네타니(Minetani)’와 ‘레쿠(Les Koo)’는 2세대에 걸친 주얼리 하우스다. 레쿠는 40년간 보석상을 운영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2세대 주얼러 구영진이 이끌고 있다. “2005년 레쿠로 재론칭하면서 레이어드해서 낄 수 있는 미니멀한 디자인의 컬러 스톤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그때부터 다양한 스톤 반지를 한꺼번에 끼는 게 유행이었죠.”
1999년 ‘투싼(Tucsan)’을 론칭한 송은정도 2000년대 초를 한국 주얼러들의 전성기라고 회상한다. “대학에 주얼리 학과가 따로 없는 한국에서는 대부분 금속 공예를 전공하던 사람들이 주얼리 디자이너가 됐어요. 하지만 90년대 후반, 해외에서 전문적으로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한 디자이너들이 한국에 들어와 청담동을 중심으로 주얼리 숍들을 열었습니다. 금속 공예 전공자들이 투박하고 조형적인 형태에 집중했다면, 주얼리 전공자들은 세공과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투싼은 다양한 빛을 지닌 컬러 스톤과 다이아몬드, 플래티넘이 조합된 자연친화적 디자인이 특징이다. “개인적으로 일하는 주얼러들은 대규모로 원석을 구입할 수 없기에 직접 원석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덕분에 세상에 하나뿐인 원석으로 만든 나만의 주얼리가 탄생할 수 있다고 그녀는 전한다. “똑같이 찍어내는 커스텀 주얼리들과는 달리, 고귀한 가치를 평생 나 홀로 소유하는 개념이죠.”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KANG TAE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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