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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의 원더랜드

2016.03.17

이하나의 원더랜드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이하나의 매력은 도무지 대체 불가능하다.
5년 만에 다시 TV로 돌아온 그녀는 오피스 걸들의 달콤하고 엉뚱한 상상을
잠시나마 현실로 만들어 선물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하나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블랭킷 판초는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셔츠와 프린지 디테일 스커트는 겐조(Kenzo), 슬링백 웨지 슈즈는 피에르 아르디(Pierre Hardy).

“너 어느 별에서 왔니?”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난 이하나라는 배우는 그야말로 수수께끼투성이, 별에서 온 그대였다. 범상치 않은 보통 여자의 출현! 알 수 없는 정신세계를 지닌 천진하고 소심한 한 인간을 이토록 사랑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건 오직 이하나뿐이다.

5년 만에 드라마로 돌아온 그녀는 <고교처세왕>의 4차원 계약직 여사원 정수영을 통해 <연애시대> <메리대구 공방전>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독특한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잠자리 안경에 월남치마가 허락되고, 다 큰 처녀가 술에 취해 아스팔트 위를 뒹굴며 짝사랑하던 남자에게 진상을 부려도 용서가 되는 건 그 주체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게 된 본부장이 알고 보니 열 살 연하 고교생이었다는 황당한 설정도 하나의 존재로 인해 묘하게 설득력을 얻는다. 오피스 걸들의 달콤하고 엉뚱한 상상은 덕분에 현실이 된다.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이하나의 매력은 도무지 대체 불가능하다.

“와, 영화 <룸바> 같은 느낌이네요.” 김영나 작가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갤러리로 하나를 초대했을 때, 주위를 둘러본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룸바춤을 추던 불행한 부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나다운 표현이다. 모든 게 여전했다. 다만 좀 야위었을 뿐. “드라마 때문에 살을 많이 뺐어요. 볼품없는 몸매에 구부정한 정수영을 상상했거든요. 가만히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약자의 초라함이 느껴질 수 있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죠.”

비즈 장식 튜브 톱 점프수트는 겐조(Kenzo).

하나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보그>의 기획으로 검정치마의 조휴일과 함께 만나 음악에 관한 대화를 나눈 2011년 겨울이었다. 당시 하나는 곡을 만드는 중이라고 했다. 휴일은 하나를 위한 믹스 CD를 만들어 선물했다. “당연히 아직 갖고 있죠. ‘Helicopter’라는 곡이 정말 좋았어요. 그 친구의 새 앨범도 몹시 기대하고 있고요.” 하나의 음악 작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아니, 더 진지해졌다. “이기적인 선택이 아닐까 고민도 됐지만 일단은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가족들이 많이 응원해줬어요. 늘 제 음악의 첫 번째 청중이 돼줬죠. 물론 나중엔 좀 지겨워하긴 했지만(웃음).”

나는 생신을 맞은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동시에 특별한 MT도 준비 중이었다. 배우들이 계획한 <고교처세왕> 스태프들을 위한 MT다. “딱 하루만이라도 서로의 위치를 바꿔보기로 한 거죠. 사실 대충 할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화끈한 우리 조감독님이 “아닙니다. 누나, 우리에게 다음은 없어요”라며 불을 지피더군요. 이제라도 폭풍 준비를 해야 해요.” 오늘은 <고교처세왕>의 마지막 회가 방송되는 날이었다.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다시 시작된다.

구조적인 미니 드레스는 꼼데가르쏭(Comme des Garçons), 슬링백 웨지 슈즈는 멜리사(Melissa).

작년 이맘땐 뭐하고 지냈어요?

제 곡을 편곡해줄 친구들을 만나 꽤 치열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 친구들은 따로 작업실이 있었고, 전 아빠의 작업실에 신세를 지며 거의 온종일 녹음만 했어요. 그렇게 작업한 곡 파일을 친구들에게 이메일로 보낸 후, 11시 45분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생활이었어요. 지난해 여름까지 반년간 그렇게 생활했어요.

3년 전, <보그>와 만날 때도 곡을 쓰던 중이었죠.

이제 꽤 작업이 진행된 상태예요. 음악의 분위기는 아마 예상하시는 것과 많이 다르진 않을 거예요. 드라마도 끝났으니 최대한 빨리 편곡하는 친구에게 다시 연락하려고요. 중단된 게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완성해야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쉬면서 여행한 곳은 없어요? 예전에 하나 씨가 노르웨이 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고향에 놀러 갔다 우연히 얼렌드를 만난 얘길 들었어요.

이번엔 여행을 거의 하지 못했어요. 퇴근길 40분이 제겐 여행 가는 기차 안이었던 셈이에요. 집을 멀리 옮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제가 버스에서 음악 듣는 걸 정말 좋아해서죠.

tvN 드라마 <고교처세왕>은 어떻게 만나게 됐어요?

사실 처음엔 거절했어요. 마음을 정한 다른 작품이 있었거든요. 그 작가님의 오랜 팬이었는데 아쉽게도 잘 안 됐어요. 지나고 생각해보니 제가 콩깍지가 씌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며칠 낙심하고 있던 와중에 감사하게도 ‘고교팀’에서 다시 제안을 해주셨어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매력이 많은 작품이었죠. 늘 그렇듯 확실한 자격을 얻기까진 그 또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은 잘된 일이죠.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감독님이요. 짧은 미팅에서도 굉장히 시적인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자꾸 바보 같은 웃음만 흘리시는데 이상하게 기대감이 생겼어요. 전 가끔 사람을 볼 때 눈에 보이는 반대쪽 이면을 떠올리는 습관이 있는데, 3개월쯤 함께한 감독님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분이었어요. 제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죠.

상대역인 서인국 씨가 출연한 <슈퍼스타K>를 본 적 있나요?

우리 오빠가 가끔 긴 부연 설명 없이 “요새 누가 좀 짱이더라” 하는 말을 할 때가 있어요. 서인국 씨 얘길 처음 들었을 때 오빠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슈퍼스타k>에 등장한 서인국 씨를 오빠가 그렇게 표현했거든요.

실제로 호흡을 맞춰보니 서인국은 어떤 배우던가요?

우선 모든 스태프들, 배우들과의 친화력이 굉장히 좋고요. 촬영 때문에 며칠째 잠을 못잔 날에도 분명 자기 대본만 보기도 벅찰 텐데 주변 사람들을 가만가만 다 챙겨줘요. 특히 부러웠던 건 극 중에서 민석(서인국)의 할아버지로 출연한 권성덕(최만석) 선생님에게 인국이가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이었어요. 워낙 대선배님이라 전 늘 공손하게만 대하는 지루한 후배였는데, 인국이는 ‘할배’라고 극 중 이름을 불렀죠. 그런 능력이 제일 부러웠어요. 특유의 단순함과 편안함! 사랑을 두 배로 받고 자랐나, 궁금해서 한번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숨은 공로자는 어머니시더군요.

화제가 된 ‘깁키스’ 신을 촬영하는 동안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현실은 그리 로맨틱하지 않았어요. 무더운 날씨라는 악조건 속에 모기와 나방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죠. 도로를 사이에 둔 채 서로를 발견한 후, 뛰어가 소리 지르고 수신호를 보내는 장면이 모두 담겨야 했던 터라 촬영 장비들을 자주 이동시켜야 했어요. 새벽 2시가 넘어가면서부턴 눈을 뜨고 있기도 힘들었죠. 아침부터 제 일처럼 설레어 하던 스태프들도 다 잠들고, ‘아이고, 키스 한번 하기 진짜 힘드네’ 푸념했죠. 마침내 촬영이 끝났을 때 인국이에게 그랬죠. 향수랑 가그린 반 통 이상은 쓴 것 같다고.

‘깡냉이 커플’이라는 애칭까지 얻었어요. 이번 작품 이후 사랑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저 역시 ‘깡냉이 커플’을 아끼지만 뜯어말리고 싶고 혼내주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네요. 더 긍정적으로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젠 음악적 결과물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예전처럼 그런 불타는 듯한 사랑에 관심을 갖진 않아요. 어쨌든 강냉이는 정말 많이 먹었네요.

술도 많이 먹었죠. 본인의 주량은 어느 정도예요?

일주일에 한 번, 꼭 소주 석 잔을 먹자고 우리 스태프들과 약속했어요. 모두가 촬영에 지쳐갈 무렵이었죠. 비바람이 불던 아침, 첫 촬영을 끝내고 잠시 쉬면서 24시 국밥집을 찾아 함께 소주잔을 기울인 적이 있어요. 불로주라도 되는 양 홀짝홀짝 아껴 먹었죠. 그리고는 촬영장 건물 옥상에 올라가 종이 한 장을 깔고 앉아 같이 핸드폰 스피커로 노래 한 곡을 들었는데,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여유가 오랜만이었거든요.

하트 장식의 빨강 쇼트 재킷은 비비안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 플레어 스커트는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 스트랩 슈즈는 크리스챤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열 살 연하 고교생과 사랑에 빠지는 일, 2년 동안 한 사람만을 짝사랑하는 일. 하나 씨에겐 어느 쪽이 더 어려운 일일까요?

이건 정말 잘 모르겠어요.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다를 것 같기도 한데… 아, 역시 잘 모르겠네요. 지금의 전 허공 위 구름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고 열심히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서요.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은?

제가 먼저 19금 농담을 꺼내는 경우는 없지만, 그런 화제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일원이 될 때(웃음). 금세 알아듣는 건 더 이상 놀랍지도 않고요. 심지어 웃기지도 않아 심드렁할 땐 좀 힘이 빠져요. 다시 수줍어질 날을 꿈꿉니다.

예전엔 종종 했지만 요즘은 더 이상 하지 않는 일은 뭐죠?

아예 안하는 건 아니고 줄어든 부분인데,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요.

정말 갖고 싶었는데, 갖고 나니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 같은 게 있다면?

진주 귀고리 한 쌍. 참 많이 하고 다닐 줄 알았는데…

드라마 속 정수영은 철봉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실제로 놀이터에서 하나 씨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기구는?

그네요! 그네 타면서 사진을 찍으면 재미있는 컷이 많이 나오죠. 흐흐.

요즘 하나 씨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은?

음식이 제때 잘 들어가지가 않고 장운동이 활발하지 못하다는 점.

2년여의 공백 기간 동안 하나 씨가 잃어버린 건 뭘까요?

잃어버린 건 지고지순 절 응원해주던 몇몇 얼굴들이오. 하지만 전 여전히 누군가의 가까운 일상이 되긴 힘든 사람이에요. 아마 일상이 되면 금세 실망하실 거예요. 하지만 잊고 있던 어느 날, 진하게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줄 자신은 여전히 있어요.

그 시간 동안 새롭게 발견한 것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죠. 그게 아직은 제게만 보인다고 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준 팬들에게 미안해요. 제 나름의 이유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순 없겠지만, 그래도 긴 기다림의 시간은 끝이 나야겠죠. 공연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도 끝났으니 이제 당분간 뭘 할 계획이죠?

살을 조금 찌우고 자세를 바로 펴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부모님에게 좋은 딸, 오빠에겐 좋은 동생이 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에디터
    피처 에디터 / 이미혜
    포토그래퍼
    AN JI SUP
    스탭
    스타일리스트 / 강미란(인트렌드), 메이크업 / 김수빈(우현증 메르시 원장), 헤어 / 정지우(차홍 아르더)
    장소
    두산갤러리–김영나 개인전 <선택표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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