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스테롤에 관한 오해와 진실
콜레스테롤 수치는 낮을수록 좋다?
포화 지방이 높은 식품은 나쁘고, 불포화 지방이 높은 식품은 많이 먹을수록 좋다? 오해다.
콜레스테롤과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편협한 믿음은 마음의 위안이 될 뿐 건강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습니다. 고지혈증 수준입니다. 혈관 속 지방이 많으면 동맥 경화, 심장 질환(협심증, 심근경색)이나 중풍의 발생위험이 높아집니다. 약을 처방 받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건강검진 때마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편이란 얘기를 듣긴 했지만 약 처방을 받으라니! 믿을 수가 없어 한 달 후 다시 피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마찬가지. 술, 담배도 안 하고, 비만도 아니고, 고기도 안 좋아하고, 백미 대신 현미잡곡밥도 챙겨 먹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순환기내과 김민경 교수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유전적 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유전적 소인에 의해 다른 사람보다 간에서 콜레스테롤 합성이 늘어나 발생합니다. 보통 일차성 고지혈증, 또는 유전적인 요인으로 콜레스테롤 수치가 극도로 높아지는 가족성 고지혈증의 경우, 혈중 농도가 일정 기준을 넘는 경우 약물 복용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만 명 중 25명이 유전적으로 아주 높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가지고 있다. 나도 그중 한 명이라니! 억울했다. 그렇지만 그건 콜레스테롤과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오해일 뿐이었다.
콜레스테롤은 악마가 아니다
첫 번째 든 생각은 몸 속 콜레스테롤이 저주스러웠다. 다음으로는 먹는 즐거움을 빼앗겼으니 삶의 낙이 없다고 좌절했다. 그러나 린 클리닉 김세현 원장은 이는 콜레스테롤에 대한 오해라고 설명했다.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성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을수록 좋다는 생각도 잘못된 것입니다.” 콜레스테롤은 세포막의 필수 성분이다. 온도 변화로부터 세포를 안정화시키고, 뇌, 척수, 말초신경계 같은 신경계 막의 중요한 성분이다. 호르몬의 전구 물질이며, 칼슘의 체내 이용과 뼈 형성에 필요한 비타민 D의 전구체다. LDL을 나쁜 콜레스테롤, HDL을 좋은 콜레스테롤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둘 다 필요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위의 주장들이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수준에서 벗어나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과도해진 혈중 콜레스테롤은 혈관 안에 침착돼 동맥경화, 심장병, 심근경색 등의 심혈관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낮은 건 더 문제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콜레스테롤 조절을 위한 우리의 태도다. 나를 포함해 대부분이 콜레스테롤에 좋다는 음식, 나쁘다는 음식 때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좌지우지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프랑스 사람들의 식단은 지방 비율이 매우 높은데도 심장마비로 인한 사망률은 1만 명당 20명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다. 일본이 1만 명당 10명으로 심장마비 사망률이 제일 낮은데, 이들의 지방 소비량은 아주 적다. 결국 다른 인자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포화지방과 불포화지방의 함정
“건강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음식으로 섭취하는 콜레스테롤 양이 아니라 혈액에 포함된 콜레스테롤 양입니다. 새우, 문어 등 콜레스테롤이 높은 식품을 먹으면 혈중 콜레스테롤이 치솟아 건강에 해로울까요? 정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음식을 통한 콜레스테롤 섭취량이 늘어나면 간에서의 생성량이 줄어들고, 반대로 음식으로 섭취하는 양이 적어지면 간에서 생성되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늘어나기 때문이죠. 이런 작용이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뤄집니다. 전체 콜레스테롤 양 중 80%를 우리 몸이 생산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김세현 원장은 그렇기 때문에 어떤 식품은 절대 먹어선 안 되고 어떤 식품은 많이 먹을수록 건강해질 거란 이분법적인 생각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결정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유전적 요인이 가장 크고, 다음으로 고혈압, 스트레스, 흡연, 비만, 식습관, 생활 습관 등이 있다. 그렇지만 업무의 강도를 줄이는 건 힘들고 운동은 하기 싫으니 그나마 콜레스테롤 수치에 좋다는 먹거리(그것도 아주 편협한 시각에서)에서 위안을 얻고 싶을 뿐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주적으로 꼽히는 포화 지방을 살펴보자. 흔히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상화하기 위해 포화 지방은 나쁘니 먹지 말고 불포화 지방은 좋으니 많이 섭취하라고 한다. 버터, 달걀 같은 낙농 식품, 그리고 기름기 많은 고기는 금지, 생선과 과일 등을 많이 먹으라는 것이 일반적인 조언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100% 포화 지방으로만 구성된, 반대로 불포화 지방으로만 구성된 식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라드(돼지 지방 정제유)에 포화 지방보다 불포화 지방 함유량이 더 높고, 버터와 크림에 많은 양의 불포화 지방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놀랄 것이다. 닭고기 100g은 버터 30g보다 더 많은 콜레스테롤을 함유하고 있다(닭고기 100g은 금방 먹을 수 있지만 버터 30g을 먹는 일은 흔치 않다). 아보카도는 무려 20g의 지방을 가지고 있으며, 스낵 크기 정도의 땅콩 한 줌엔 15g의 지방이 들어 있다.
반면 콜레스테롤 함량이 높은 대표주자로 꼽히는 달걀에는 프라이를 했을 때 8g, 삶았을 땐 6g의 지방이 들어 있다. “건강한 콜레스테롤 수치에 도움이 된다는 식물성 오일이라도 포화 지방 성분이 포함돼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고열량 식품이 됩니다. 식물성 오일 성분 중 콜레스테롤 대사에 도움을 준다는 오메가-3 지방산의 함량은 10% 이하! 10%의 오메가-3를 섭취하기 위해 90% 불리한 지방산을 섭취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견과류가 좋다고 하루에 호두를 1kg씩 먹거나, 오메가-3가 풍부한 등 푸른 생선이 좋다고 하루에 고등어를 10마리씩 먹는다면 몸에 이로울 리 없겠죠.”
서울대학교의과대학 국민건강지식센터는 과일 섭취도 지나치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기름진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사람 중 비만하지 않아도 콜레스테롤이 높은 여성 대부분이 식사 후 과일을 많이 먹은 경우라는 것. 탄수화물이나 과일에 포함된 과당도 결과적으로 우리 몸 속에 쌓이게 되면 지방으로 저장되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인데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거나 비만이 생기는 건 같은 이유다. 김민경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열량 과다’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세현 원장도 과잉 섭취의 문제를 지적하며 저지방, 저단백, 고당질식으로 요약되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고려한다면 탄수화물 과잉 섭취가 콜레스테롤 수치를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게 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 섭취를 줄이려는 노력만큼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개념을 바꿔라
만일 당신이 비만이라면 가능한 지방 섭취를 삼가고 식품의 포화 대 불포화 비율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만 <화학의 변명>의 저자 존 엠슬리는 해바라기씨 오일로 요리한 저지방 음식을 즐긴다고 당신의 건강이 더 나빠질 일은 없지만, 이런 간단한 변화만으로 심장 질환을 가진 사람들이 더 이상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든지, 100년을 살 수 있게 된다든지 하는 기대 또한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만약 더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건강에 좋지 않은 동물성 포화 지방을 건강에 좋은 식물성 불포화 지방으로 바꾸는 것 이상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나는 상담을 통해 식사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만만했던 나의 식습관 점수는? 기대와 아주 달랐다. “주변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고 했죠? 본인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자 집단의 생활 패턴은 전혀 일반적인 것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은 마카롱과 롤케이크를 그렇게 자주 먹지 않아요. 아침도 안 먹고, 야근과 앉아있는 시간도 무척 많네요.” 엄청난 양의 디저트와 튀김류를 즐기면서 가끔 건강에 좋은 식품들을 챙겨 먹은 것만 기억하곤 건강한 식습관이라 믿고 있었을 뿐이었다.
아침을 꼭 먹는 것, 탄수화물과 지방 섭취를 줄이고 단백질 섭취를 늘이는 것(특히 탄수화물을 60% 이하로), 빵과 과자류, 튀김류는 가능한 삼가는 것, 주스보다(생과일이나 채소 주스라도) 물과 차를 마시는 것, 그리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만이 콜레스테롤 고민을 없애는 길이다. “세상에 좋은 식품, 나쁜 식품은 없습니다. 먹어선 안 되는 음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이런 압박감이 오히려 후폭풍을 몰고 와 결과적으론 실패의 원인이 되니까요. 다만 이것만은 주의하세요. 인스턴트, 짜고 달고 기름진 음식은 줄이고, 무엇보다 단백질 위주의 식단(특히 저녁은 더더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사라질 거예요.”
처음엔 달콤한 마카롱, 사르르 녹는 크레페, 우유 향 가득한 생크림 롤케이크가 매일같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입이 심심하면 차를 마시고, 아침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고기생선달걀 등 단백질의 섭취를 늘렸다. 그러자 배고픔이 사라졌다(단백질은 포만감을 오래 지속시킨다). 그렇게 2주 정도 지나자 식후 디저트가 필수 항목에서 사라졌다. 억지로 끊은 것이 아니라 별로 생각나지 않게 됐다. 양념이 강하고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해 그것도 조금씩 멀리하게 됐다. 운동도 일주일에 2~3회 꾸준히 했고, 물을 많이 마셨으며, 가능한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녔다. 그 결과는? 배고픔과 먹고 싶은 음식을 제지 당했다는 박탈감 없이 두 달 만에 몸무게가 3.5kg이나 빠졌다. 그렇게 굶어도 빠지지 않았던 체중이 말이다. 무엇보다 반가운 일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 건강 검진을 실시한 이래 최저치였다.
김민경 교수는 “생활 습관 개선만으로 콜레스테롤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라며 고지혈증 가족력, 혈액 검사 결과, 나이, 식습관, 운동량, 음주량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약물 치료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의사와의 상담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생활 습관 개선의 중요성은 콜레스테롤뿐 아니라 혈압, 당뇨 등 기타 질환에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약을 끊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약물의 투여량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한 생활 습관을 통해 기타 위험인자 조절이 가능하고 예후를 개선시키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감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처럼 살면 앞으로 큰 병에 걸릴 수 있다는, 몸에 신경을 쓰라는 신호다. 감기는 흔한 질병이지만 모든 질병의 시발점이 되듯, 비정상적인 콜레스테롤 수치도 마찬가지다. 지혜롭게 처신해 건강한 삶을 영위할 것인지, 배짱을 부리며 신호를 무시해 더 큰 고생을 사서 할 것인지는 당신의 선택이다.
- 에디터
- 뷰티 에디터 / 이화진
- 포토그래퍼
- HWANG 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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