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의 유쾌한 첫 경험
이 유쾌한 청년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10년 전, 변성기를 갓 넘긴 열일곱 살 소년의 진심으로 누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예능과 드라마를 오가며 친근한 이웃집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오늘의 연애>는 그의 생애 첫 영화다.
첫 경험은 늘 특별하게 마련이다. 첫눈이 내려 기온이 뚝 떨어진 12월의 첫 번째 토요일에 만난 이승기는 설레는 마음으로 생애 첫 영화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의 연애>가 제 대표작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 변성기를 갓 넘긴 열일곱 살 소년의 진심으로 누나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후, 지금껏 그는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교과서 위주의 정석대로 충실히 수업에 임하듯 그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왔다. 방송 촬영으로 전국 팔도를 누비는 동안에도 휴학 한 번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이 성실한 모범생은 최근 영화라는 큰 시험을 치렀다. 출제 문제 유형과 예상 범위를 알 수 없는 이 까다로운 시험은 수능처럼 한 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위험한 도전이다. 연기자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이 이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셈이다. 지난여름부터 4개월에 걸쳐 진행된 촬영을 무사히 마친 그는 바로 어제, 편집실의 모니터를 통해 가채점 결과를 확인했다. “참 다행이다 싶어요. 원래 1차 편집본은 보기 힘들다는데, 진짜 재미있었거든요! ‘이 영화 끝장입니다. 다 죽습니다.’ 이 정도로 엄청나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를 보고 나서 속았다는 기분은 안 들 거예요.” 그는 열심히 준비한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멜로의 제왕 박진표 감독과 이승기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오늘의 연애>는 연애에 서툰 초등학교 교사 준수의 속 타는 짝사랑을 다룬 로맨스 영화다. <죽어도 좋아>에서 사회적 무성(無性)의 존재였던 70대 노인들의 본능적 사랑을 현실적으로 담아낸 박진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선 요즘 청춘들의 연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감독님의 전작은 전부 다 봤어요. 그분의 사랑 이야기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너는 내 운명>, <내 사랑 내 곁에>, <그놈 목소리>… 전부 사람이 보이는 영화들이잖아요.” 처음부터 멋있는 옷을 입고 등장하기보단 ‘앞으로 제가 이런 연기를 하고 싶으니, 좀 봐주십시오’ 하는 느낌으로 겸손하게 시작하고 싶었다는 승기는 흥행을 담보하는 범죄오락이나 화려한 볼거리가 넘쳐나는 액션 어드벤처 대신 이 담백한 사랑 이야기를 자신의 첫 영화로 택했다. “요즘 사람들이 진부하다고 폄하하는 진정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지만, 감독님이라면 결코 가볍지 않은 울림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건 날아다니는 총알이나 흥건한 핏물이 아닌 뜨끈한 사람의 마음이다.
물론 청춘스타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인 만큼 박진표 감독의 전작과는 꽤 차이가 있다. 50대에 접어든 베테랑 감독은 지금 이 거리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루며 내재되어 있던 유머 본능을 한껏 끌어냈다. 24시간 휴대폰 불빛이 꺼지지 않는 세상처럼 분위기도 밝고 가볍다. “영화를 찍고 난 후, 감독님께서 그런 농담을 하셨어요. 이제부턴 트렌디한 감독이 될 거라고. 하하.” 진지한 관계를 꺼리는 요즘 사람들의 연애 방식을 종합하면 ‘썸’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승기는 ‘썸’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트렌드라고는 하지만 ‘썸 탄다’는 말엔 약간의 비아냥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상처받는 게 겁나서겠죠.” 승기가 연기한 준수라는 인물은 적당히 연애를 즐기는 요즘의 쿨 가이들과는 다르다. 무려 ‘18년’이라는 욕 나올 만큼 긴 세월 동안 한 여자만 바라본 해바라기 같은 남자다. 박 감독은 하늘공원의 노랑 해바라기 숲으로 승기를 데려가 동화처럼 예쁜 장면을 만들었다. 아무래도 그는 이 반듯한 젊은 배우에게 한눈에 반한 것 같다.
“이승기라는 배우의 처음(첫 영화)을 같이하고 싶었어요. 방송에서 보여준 승기는 허당 기질이 있는 모범생 이미지였는데, 직접 만나보니 건전하면서도 마초 같은 면모가 있더군요. 겉으로 보기엔 부드럽지만 굉장히 남자다운 매력이 있어요. 영화 속 준수처럼 말이죠.” 휴 그랜트 식의 로맨스가 있는 것처럼 대부분 로맨스 영화는 배우가 가진 기존 이미지와 맞아떨어졌을 때 그 캐릭터가 생명력을 얻는다. 박 감독은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실제 승기의 말투와 작은 습관들을 영화 속 캐릭터에 투영했다. “예를 들면 ‘똥 싸고 있네’ 그런 거요. ‘~하고 있네’ 그런 게 다 웃길 때 튀어나오는 제 말투거든요. 준수가 여자들에게 매력 있는 유머러스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시나리오를 읽어보면 은근한 유쾌함이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승기의 취향도 반영됐다. 영화 속 준수의 통인동 집엔 피규어가 진열되어 있다. 그가 프라 모델을 조립하는 장면도 나온다. 준수가 선생으로 근무하는 초등학교 역시 실제 그의 모교다. “할머니가 근처에 사셔서 지나가다 본 적은 있지만, 교실까지 들어와본 건 졸업 후 처음이었어요. 신기했죠. 모든 게 그대로였거든요. 기물들이 좀더 좋아지긴 했지만, 칠판도 그때와 똑같았고요.” 그 조그만 교실과 장난감처럼 작은 책상에 앉아 받아쓰기를 하던 초등학생 꼬마 승기는 지금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을까?
요즘 초등학생들은 90년대의 아이들보다 맹랑한 구석이 있다. 영화의 예고편은 준수가 가르치는 어린 학생의 해맑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샘! <건축학개론> 보셨어요? 그럼 샘 여친도 그 ‘썅년’이에요?” 총각 선생의 여린 가슴에 돌멩이가 날아와 박힌다. 더욱 아픈 건 그 ‘썅년’이 아직 여자 친구조차 아니라는 것. “저도 그 영화 봤어요. 그런데 준수는 <건축학개론>의 승민만큼 순진하진 않아요. 원래 시나리오에선 숙맥이었지만, 아무래도 저라는 인물이 반영되다 보니 좀 달라졌어요. 단지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둔한 스타일인 거죠. 사실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잖아요. 꽤 아는 척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고요.” 미모의 기상 캐스터인 현우는 이 보험 같은 남자 친구 준수에게 초록색도 빨간색도 아닌 애매한 주황색 신호만 보낸다. 직진밖에 모르는 이 우직한 남자는 헷갈릴 수밖에 없다. 가끔은 그녀 곁을 맴도는 다른 남자들에게 분노의 클랙슨을 빵빵 울려대지만, 결국 자기 마음만 시끄러울 뿐이다.
이서진도 그의 연적 중 한 명이다. 비록 <삼시세끼>에서의 ‘서지니’는 맷돌로 간 핸드 드립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의 끼니를 걱정하는 처량한 신세이지만, 강원도 정선 옥순봉 산골을 벗어나기만 하면 그는 소작농의 굴레를 벗고 매력적인 도시 남자로 변신한다. 이번 영화에서 이서진은 현우(문채원)와 금기의 사랑을 나누는 회사 선배로 특별 출연했다. “저와의 의리도 있었지만 박진표 감독님이 강력하게 서진이 형을 원했죠. 국내에서 중년의 어떤 섹시함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이서진밖에 없다! 듣고 보니 진짜 그렇더라고요.” 만약 두 남자가 현실에서 한 여자를 두고 경쟁한다면 그 승자는 누가 될까? “저와 서진이 형이요? 어우, 형은 진짜 매력 있죠. 제가 갖지 못한 부분을 갖고 있어요. 앞뒤가 똑같은 사람이고, 그런 남자다운 면모를 저도 많이 좋아하죠. 다만 같은 20대가 아니니까. 흐흐. 결국 취향의 차이겠죠?” 멋쟁이 형님의 화끈한 출연에 대한 보답으로 이승기는 염소 잭슨과 강아지 밍키와 닭들이 뛰노는 옥순봉 산골을 찾았다. 그리고 수수밭 지옥을 경험했다. “타이밍이 안 좋았어요. 하필 수수를 다 베어야 할 때 가서… 제가 왜 그때 갔을까요?” 그는 얕은 한숨을 쉬었다. 이틀 전 폭설이 내린 탓에 바깥은 영하 10도였다. 체감온도는 그보다 더 낮았다. “죽는 줄 알았어요. 지금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요.” 물론 후회한다는 건 아니다. “그래도 전 원래 일을 하던 사람이니까 해야죠. 제가 또 원조 노예 그룹 출신이잖아요. 하하.”
노예 생활은 어쩌면 그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연애>에선 문채원이 그의 새로운 주인이다. 말이 좋아 짝사랑이지 ‘노예 18년’이 따로 없다. 준수는 현우의 술주정을 받아주고 온갖 명령을 따르느라 사는 게 힘들다. 술 취한 현우를 업는 장면도 있다. “뭐, 그건 괜찮았어요. 제가 운동을 많이 해서요. 하하.” 문채원과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춘 바 있다. 하지만 상황은 그때와 180도 달라졌다. 당시 드라마에선 문채원이 이승기를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다. “맞아요. 이번에 제가 제대로 당했죠.” 동갑내기 친구의 입장에서 본 채원은 영화 속 현우와 거의 비슷한 성격이다. “이렇게 말하면 자기가 그렇게 왈가닥이냐고 화를 내려나? 그런데 채원이 안에도 그런 상반된 매력이 있어요. 실제로도 애교가 많은 친구죠.” 언뜻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와 그녀가 연상되기도 한다. 승기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그 영화를 떠올렸다고 했다. “하지만 다 찍고 편집된 영상을 보니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그걸 보고 정말 ‘브라보!’를 외쳤어요. 우리 영화만의 색깔이 분명히 있어요.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로맨스 영화가 될 겁니다.”
세트가 없는 올 로케이션 촬영이었음에도 이승기의 팬들은 수시로 현장을 찾아와 물심양면으로 그를 지원했다. “대체 어떻게들 알고 찾아오는 거죠?” “글쎄요, 제가 볼 때 정보력은 팬들이 1등인 것 같아요.” 이승기의 이름으로 다양한 기부 활동까지 벌여온 이 열성적인 팬들은 야식차를 비롯해 감동의 선물 퍼레이드를 벌였다.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인 것처럼 이벤트가 열렸다. “스태프들을 위한 도시락과 컵, USB 같은 것을 준비해 일일이 영화 제목을 새겨 선물해줬어요. 추석 땐 전체 스태프들의 이름이 적힌 와인을 한 병씩 보내오기도 했고요. 감동을 받고 또 받다 지칠 만큼 정말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어요.” 팬들의 이야기가 나오자 승기는 한껏 들떴다. 현장에 있던 박진표 감독은 아무리 첫 영화라지만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20년씩 영화 작업을 해온 스태프들도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스태프들은 “아이돌 배우와 작업을 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엄청난 팬들의 정성에 감탄했다. 영화판엔 이승기랑 꼭 한 번 작업해야 한다고 소문이 났다. 이건 신세계였다. 이승기는 든든한 힘이 되어주는 팬들의 사랑에 내심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식도락가인 그는 걸어 다니는 맛집 백과사전, 일명 ‘요리게이션’이다. 그가 소개한 맛집은 하나같이 틀림이 없다. “맛있다고 소문난 집은 다 가보는 것 같아요.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제가 다 인도했어요. 물론 섭외도 제가 했죠. 제주도에서 한 이틀 촬영할 땐 <1박2일> 때 함께 했던 사장님네 고깃집도 갔어요.” 고기가 떨어지면 일찍 문을 닫는다던 이 소문난 맛집 사장은 승기의 전화 한 통화에 셔터를 내리고 아예 가게를 통째로 내줬다. <1박2일>이 그에게 남긴 건 맛집 리스트뿐만이 아니다. 나 PD로부터 음식 솜씨 없다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던 그는 작정하고 요리를 배웠다. <삼시세끼>에서 잠시 선보인 버섯무밥이며 대구매운탕, 양미리구이, 굴전 같은 건 맛보기에 불과하다. 이서진은 승기의 요리 실력을 의심하는 나 PD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쟤는 지금 일본에 스시 유학만 갔다 오면 끝이야.” 드라마 촬영을 다닐 땐 아예 차 안에 코펠과 버너를 싣고 다닐 정도다. “직접 해 먹는 게 나으니까요. 파스타도 하고 갈비찜도 하고 여러가지 다 할 줄 알아요.”
이번 영화에선 <1박2일> 시즌 3의 멤버 정준영도 볼 수 있다. 이서진과 마찬가지로 문채원과 썸을 타는 연하남 역할이다. 정준영의 경우, 연기는 아예 처음이다. 그 외에도 많은 신인들이 출연했다. 박진표 감독은 승기에게 연기 외에 또 하나의 임무를 맡겼다. 연기 선배로서 이들을 이끌어주는 역할이다. “전 정말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제가 연기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남에게 가르쳐주겠어요? 부담스럽죠. 그런데 감독님께서 좀더 자신 있게 개입해줬으면 좋겠다고 부탁하셨어요.”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난 후, 박진표 감독은 이런 승기를 ‘아흔아홉 개의 꼬리가 달린 구미호’ 같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노력형 천재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황정민, 설경구, 김명민과 같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온 그는 이번 영화의 히든카드로 이승기를 꼽았다. “촬영장에 오면 열정적으로 대사를 외운다거나 뭔가를 연습하는 게 아니라 한없이 편안하게 있어요. 바꿔 말하면 모든 준비가 이미 끝났다는 거죠. 준수 그 자체가 되어 계속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는 겁니다. 감독 입장에선 감사한 일이죠. 순발력이 뛰어난 배우이기도 하고요. 그런 연기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아마도 10년 가까이 숱한 드라마로 쌓아온 내공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이승기가 데뷔한 지도 벌써 10년이 지났다. 시트콤으로 연기를 시작해 드라마는 <소문난 칠공주>의 철없는 마마보이 황태자가 처음이었다. 스무 살 때였다. “그땐 너무 얼어 있었죠. 잘하고 싶었지만 연습한 대로 딱딱 대사만 치기도 바빴어요.” 연기에 대한 마음만 앞설 뿐, 대체 연기력이 늘긴 할지, 그래서 언젠가 주인공을 맡게 될 날이 올지 모든 게 미지수였다. “지금은 조금 여유가 생기긴 했죠. 하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또 다른 것 같아요.” 늘 그래왔듯 그는 이번에도 적극적으로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했다. <꽃보다 누나> 이후, 이승기만 보면 등을 토닥거려주는 윤여정은 그가 가장 의지하는 연기 선생님이다. 가장 아끼는 후배로 주저 없이 승기를 꼽는 이순재 역시 마찬가지다. <더킹 투하츠>를 하며 친해진 이성민도 그가 열심히 따르는 선배 연기자다. 이들은 하나같이 승기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연기에 관해서라면 엄격하기로 소문난 이 까마득한 선배 배우들의 마음을 산 비결이 대체 뭘까? “글쎄요. 그걸 알면 아마 평생 써먹을 수 있겠죠? 하하. 다만 그런 건 있어요. 전 정말 선배님들을 대할 때 진심을 다해요. 진짜 존경하니까요. 저도 사람인지라 좋아하지 않는 선배한텐 그렇게까진 못해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인기나 인품, 실력을 떠나 후배라면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선배들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거예요.”
요즘 그의 고민은 사람들이 자신에게서 보고 싶어 하는 모습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자기만의 매력을 찾아내는 것이다. “어떤 배우도 모든 장르를 다 소화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게리 올드만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선 그의 매력이 잘 보이지 않잖아요. 반대로 <레옹>에선 존재감 하나만으로 그냥 빛이 나고요.” 그런 점에 있어 <오늘의 연애>는 꽤 영리한 선택이다. 예능을 통해 만들어진 친근한 이미지와 타고난 건강함, 발라드 가수다운 따뜻한 목소리, MC로도 손색없는 입담과 승기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는 로맨틱 코미디에 더없이 어울린다. 호감가는 외모이지만 조각 같은 미남은 아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만약 그가 액션영화를 찍는다면 우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같은 이웃집 액션 히어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저도 그런 연기를 하고 싶어요. 시리어스한 연기를 할 때조차 그만의 유쾌함이 있잖아요. 자신의 매력을 정확히 아는 것 같아요.” <아이언맨> 시리즈로 화려한 인생 2막을 연 이 중년의 할리우드 배우 역시 싱어송라이터, 코미디언, 극작가로 활동해왔을 만큼 재주가 많다. 어떤 역할을 할 때건 늘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톰 크루즈도 그가 좋아하는 배우다. 알파치노, 숀 펜은? “영화로 볼 땐 진짜 멋있죠. 혼자 따라도 해보고. 하지만 제가 그런 연기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진 않아요.” 얼마 전 집에 홈시어터를 설치한 후로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고 있다는 그는 최근 <인사이드 르윈>과 <인사이드 맨>을 재미있게 보았다고 했다. 미묘한 감정의 흑과 백이 공존하는 영화들이다. 전자가 무겁고 우울한 현실 속의 한없이 가벼운 일상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유머라는 여유를 부린다.
이제 겨우 영화에 첫발을 디딘 그는 아직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지 못했다. 그는 아직 모든 게 설렌다. “개봉하면 티켓 사서 극장에 갈 거예요. 끊을 수 있는 만큼 끊어야죠. 흐흐. 300만만 넘어도 파티 해야죠, 파티!” 그가 제일 기대하는 장면은 자이로드롭 신이다. 원래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어쨌든 그걸 극복하고 연기까지 했으니 그 장면이 스크린에서 어떻게 나올지 제일 궁금해요.” 나중에 세어본 바에 따르면 그는 총 37번이나 이 짜릿한 놀이기구를 탔다. “타다 보면 적응이 될 것 같죠? 전혀요. 진짜 무서웠어요.” 승기처럼 고소공포증이 있는 준수에게 자이로드롭은 아무리 경험해도 매번 낯설고 두려운 사랑의 감정과 비슷하다. 그래도 결국은 용기를 내는 수밖에 없다. 죽을 것 같아도 죽지는 않는다. ‘연애공포증’에 걸린 세상의 수많은 준수에게 그가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한마디다. 마음 가는대로 하라는 것. “일단 던져보는 거죠. 후회 없이. 그래도 안 되면 그때 포기하면 되니까. 남자는 무조건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얼굴이 못생겨도, 키가 작아도, 자신감 넘치고 능력 있는 남자는 왠지 멋지잖아요.” 그런 내면의 멋은 마흔이 넘으면 저절로 흘러나온다. 이승기는 그래서 20년 후 자신의 모습이 궁금하다고 했다. 물론 그때도 지금처럼 꾸준히 연기하고 노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유는 딱 하나다. “그게 저에겐 가장 즐거운 거니까요.”
- 에디터
- 스타일 에디터 / 손은영, 피처 에디터 / 이미혜
- 포토그래퍼
- Ahn Joo Young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홍원호 헤어&메이크업 / 임해경 세트 스타일링 / 최서윤(Da;r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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