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대세! ‘옹달샘’과 ‘아3인’
예능 대세의 TV 속, 유머는 넘쳐난다. 모두가 웃음을 짜내기 위해 고군분투다.
하지만 모든 유머가 다 웃기는 건 아니다. 억지로 짜낸 계산된 웃음은 찜찜함을 남긴다. 그래서 이 남자들을 만났다.
결성 16년째인 베테랑 코미디언 팀 ‘옹달샘’과 요즘 〈코미디 빅리그〉의 대표 선수 ‘아3인’.
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냥 즐겁다. 배꼽도 자주 잡게 된다.
새벽 6시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다소 덜 깬 잠이 여섯 남자의 다에 말끔히 달아났다.
마르지 않는 옹달샘
요즘 옹달샘은 개인 플레이다. 16년 경력의 팀워크를 볼 일이 좀처럼 없다. 유세윤은 <마녀사냥>, <비정상회담>과 같은 토크 프로그램, 코미디 생방송 쇼 등에 출연하고 있고, 장동민은 <에코빌리지 즐거운 家!>와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부터 <나홀로 연애중>, <속사정 쌀롱> 등 무려 일곱 개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 중이다. 유상무 역시 홀로 활약한다. 그는 시청자와 함께하는 화상 토크쇼 <나르는 쇼퍼맨>을 얼마 전 막 끝냈고, 지난해 창업한 빙수 가게의 사장으로도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나마 지금 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코미디 빅리그>에서 장동민과 유상무가 콤비로 연기하는 ‘구한말 코미디’ 정도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과거를 회상하며 웃음을 뽑아내는 형식인데, 충분히 웃기고 재미있지만 ‘옹달’, 그러니까 ‘샘’이 빠진 ‘옹’과 ‘달’의 조합이다. “사실 저희가 팀을 결성한 적은 없어요. 그냥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학교 때부터 같이 놀다가 함께 개그 하고 싶어 뭉쳤을 뿐이에요. 사람들은 아직 안 깨졌네, 어쩌네, 이야기하는데 깨질 게 없어요. 맺은 게 없으니까요.”(유상무) “결국은 스케줄 문제죠. 세윤이는 를 하고 있으니까 같이 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고. 상무랑 저도 실은 일주일에 딱 한 번 만나서 ‘구한말코미디’ 하고 있어요. 좀 부끄럽죠. 다른 후배들은 일주일 내내 회의를 하는데 말이죠.”(장동민) 확실히 셋의 합을 본 건 꽤 오래전이다. 몇 차례 <코미디 빅리그> 출연을 제외하면 2012년 전국을 돌며 무대에 올랐던 ‘옹달샘 쇼’가 이들의 마지막 합동 작품이다. 근데 별 모자람을 느끼진 않는다. 그만큼 이들은 이제 혼자로도 3인분 이상을 해낸다. 3중주의 웃음 무대가 그리운 건 사실인데 지금의 솔로로도 충분히 웃길 만큼 웃기고 있다.
옹달샘은 용한 팀이다. 예능이 대세여도 코미디가 아닌 버라이어티 쇼 편중의 국내 TV에서 코미디 팀으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라디오 DJ를 바탕으로 장수하고 있는 정찬우, 김태균의 컬투를 제외하면 옹달샘은 아마도 국내 유일의 남자 코미디언 팀일 것이다. 그리고 옹달샘 멤버들은 마치 바통을 주고받듯, 시차를 두고 정상의 자리를 돌아가며 차지했다. 수년 전엔 유세윤이 국민 코미디언으로 활약했고, 지금은 장동민이 욕설을 거의 애교처럼 활용하며 모든 방송국을 누비고 있다. 캐릭터 자체가 받쳐주는 역할이라 둘에 비해 크게 눈에 띄진 않지만 유상무 역시 안정적인 웃음으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고 있다. 이날 촬영을 함께한 ‘아3인’의 이상준은 옹달샘을 모델이자 라이벌, 그리고 넘어야 할 산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처음엔 다 세윤이 형만 얘기했어요. 근데 알면 알수록 세 명 다 괜찮은 사람들이에요. 세윤이 형은 재미있는 자기표현에 능하고, 동민이 형은 주위 사람을 잘 챙겨요. <더 지니어스> 보면 그런 부분들이 보이잖아요. 그리고 상무 형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웃음), 둘 사이의 이런저런 관계를 잘 조절하는 것 같더라고요. 각자 역할은 다르지만 다 하는 게 있어서 이렇게 오래가는구나 싶어요.” 옹달샘은 이제 하나의 잘 갖춰진 웃음 공장 같다. 어느 누가 유행어, 히트 캐릭터 하나를 터뜨려 유지하는 팀이 아닌, 돈독한 관계로 지속적이며 탄탄한 웃음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그런 곳 말이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까 16년. 거의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애들이에요. 같이 놀고 활동하기 위해 군대도 일부러 같은 시기에 갔다 왔으니까요.”(유상무) 그래서 이들의 웃음엔 무리가 없다. 그저 재미있게 살기 위한 웃음이 있을 뿐이다. 이래야 샘은 마르지 않는 법이다.
완벽한 조합처럼 보여도 사실 셋은 좀 애매한 합이다. 친구를 사귀어도 셋은 싸움이 잦다. 단둘이 무언가를 하다 탈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나. 그래서 옹달샘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장동민, 유세윤이야 거의 데뷔와 동시에 스타의 자리를 누렸지만 유상무의 경우 그 기세가 좀 미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개성을 밖으로 드러내며 웃음을 챙기는 유세윤, 장동민과 달리 상황에 묻어 들어가 웃음의 바탕을 만들어내는 유상무의 역할이 본래 좀 눈에 띄기 어려운 캐릭터다. “데뷔한 지는 11년쯤 됐는데 처음엔 정말 속이 썩어 문드러졌어요.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주변에서 ‘넌 언제 뜰래?’ 계속 그러니까요.” 하지만 유상무의 활약이 미비했던 건 아니다. 그는 <개그콘서트> 초반, 프로그램의 대표 선수였고, 순위를 매기는 방송에서도 1위를 자주 차지했다. “사실 유세윤, 장동민이 워낙 세고 제가 그 둘과 같이 있어서 그렇지, 개그맨들 통으로 따지고 보면 전혀 꿀리지 않거든요.(웃음) 근데 버라이어티 나가면 항상 유세윤, 장동민, 유상무 순이었어요. 앉는 자리도, 대본상의 순서도. 이건 가나다 순도 아니고, 나이 순도 아니고, 그냥 인기 순이잖아요. 버라이어티는 기 싸움이 중요한데 좀 힘들었죠.” 그래도 유상무는 버텼다. 어쩌면 그의 능력 중엔 버티는 힘이 포함되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영화에서도 이젠 조연을 조금씩 주목하는 분위기잖아요. 코미디에서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해요. 인기 순, 비중의 크기 문제라기보다는 캐릭터, 역할의 차이인 거죠. 예전에 이런 얘기 한 적이 있어요. 만약 이게 담장을 넘는 일이라면 먼저 넘어간 사람이 받쳐준 사람 손 잡아주겠다고. 근데 막상 넘고 나니까 침 뱉고 가버리더라고요.(웃음) 이제는 다시 돌아와서 좀 닦아주고 봐주는 것 같아요. 위치의 문제인 거죠. 예전엔 서로 챙길 만큼의 여유가 없었고, 이제는 좀 생긴 거고요.” 이렇게 셋은 이제 웃음에 대한 열정 외에 여유, 그리고 세상을 보는 품도 키웠다.
장동민은 요즘 너무 바쁘다. 그는 옹달샘 중에서도 스케줄이 가장 많고, 소속사 코엔스타즈에서도 가장 우량주다. 두 달 전에 모 인터뷰에서 소망이 낮잠 2시간 자보는 거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 소박한 희망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요즘 하루 평균 15분씩 잔다. “그리고는 집에서 나와 방송국까지 가는 차 안에서 30분 정도요? 그래서 어떨 땐 그런 생각해요. 명절 전야처럼 차가 무지하게 막혔으면 좋겠다. 근데 또 매니저들이 안 막히는 길만 골라 빨리 잘만 가요.(웃음)” 장동민의 근래 스케줄을 수첩에 적어본다면 거의 빈틈이 없을 거다. 그는 매주 수요일 밤 <에코빌리지 즐거운 家!>에서 집을 짓고, 토요일 밤엔 <나홀로 연애중>에서 독신 남자들과 함께 여자 얘기로 수다를 떨며, 일요일 밤엔 <속사정 쌀롱>에 출연해 이런저런 주제를 두고 토론을 한다. 매일 오후 2시, 하루도 빠짐없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장동민 레이디 제인의 2시>도 있다. 이런 일정이라면 맘에 없던 욕도 나올 만하다. 근데 장동민은 순조롭게 받아들인다. “노동법에 따르면 제 고용주들 다 구속돼야 해요.(웃음) 그냥 제 삶의 일부라고 생각하니까 하는 거지, 일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없죠. 그저 지금은 이렇게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다는 게 되게 감사해요. 더 많은 프로그램을 하지 못하는 게 불러주시는 분들에게 죄송스럽고요.” 그래서 장동민은 요즘 어머니가 챙겨주는 ‘뭔지도 모를 보약들’을 먹으며 거의 매일을 현장에서 산다. 스케줄 내용도 현장에 도착해서야 파악하는 편이고, 꽤 많은 것을 제작진, 스태프를 믿고 맡긴다. 얼핏 욕심쟁이 욕쟁이의 고성이 쩌렁쩌렁 울리는 현장을 상상했는데 실제는 착실하고 성실한 코미디언의 온화한 일터인 거다.
근래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지만 사실 장동민의 욕설 캐릭터가 신상품인 건 아니다. 그는 본래 말을 좀 험하게 했다. 셋이 뭉쳐 코미디 연기를 무대에 올릴 때도 그의 역할은 변화구로 에두르는 게 아니라 막말을 스트레이트로 내뱉는 쪽이었다. 유세윤이 개구지고 유상무가 부드럽다면 장동민은 독하고 거친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의 욕설은 듣는 사람의 심기를 건드리는 쪽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막말은 상대를 주목하게 한다. “요즘은 배우나 아이돌이 욕을 해달라고 부탁해요. 예전엔 바보취급 당하면 싫어했는데 이제는 좀 까여야 인기가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거죠. 근데 부탁받으면 절대 하지 않아요.(웃음)” 장동민의 욕설은 눈치에서 나왔다. 어린 시절을 할머니 댁에서 보낸 그는 매일이 “눈칫밥을 먹는 나날이었다”고 했다. “사람들 비위 맞추는 게 일상이었어요. 비위 못 맞추면 내가 힘들어지니까요. 사람들은 욕이나 내뱉는 제가 비위 맞춘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제가 하는 건 다 비위 맞추는 거예요. 남 비위를 맞춰야 웃길 수 있어요. 제가 막무가내로 아무 말이나 던지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는 프로그램 초반 현장의 기류를 읽는다. ”오늘 관객들은 똥 방귀 같은 거엔 안 웃겠구나, 이 사람들은 공감대에 더 터지는구나, 오늘은 좀 독하구나, 욕을 많이 해야겠다”와 같은 식의 상황 판단을 먼저 한다. “욕이 웃길 수 있는 건 상황에 맞게 던졌을 때예요. 거물급 배우들이 와서 욕해달라고 하는데 그런 분들 리액션이 대부분 딱딱하거든요. 그럼 저도 비호감이 돼요. 그런 걸 하고 싶을 리가 없죠.” 그러니까 장동민의 욕설은 사실 혼자 돋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닌, 주위를 챙기며 생긴 표현 방법인 거다.
장동민은 하루 평균 15분밖에 자지 못하는 스케줄을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질문에 “감사한 사람들, 가족들 생각하면서 힘을 낸다”고 했다. 너무 착한 답이라 당황했다. 이날 현장에서도 괜한 욕설을 듣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했는데 그는 그저 온화하기만 했다. 촬영장의 기를 잡기 위해 괜히 소리 지르지 않았고, 이불 속에서 방금 기어 나온 것 같은 얼굴을 하고도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답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책임감은 좀 강했어요. 제가 무너지면 주위가 힘들어진다 생각했죠. 그게 제 원동력이 됐고요. 만약 지금 누가 힘들어야 한다면 제가 힘든 게 낫고, 누가 혼나야 하면 제가 혼나는 게 낫고, 누가 아파야 한다면 내가 아픈 게 나아요.” 다들 웃음 조커로 기용됐다 생각한 <더 지니어스>에서도 장동민은 예상외의 너른 품을 보여줬다. 그는 스스로 판을 짜고 운영할 줄 알았고, 낙오되는 다른 참가자들의 운신도 계산하고 있었다. “나중에 타운하우스를 만들 거예요. 장동민 타운하우스. 그리고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한 울타리 안에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꿈이에요. 인생 별거 없잖아요.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면서 소소하게 웃는 게 최고인 것 같고.” 그는 무대를 호령하는 욕쟁이가 아니다. 장동민은 오히려 주인공과 조연, 강한 캐릭터와 약한 캐릭터 모두를 둘러볼 줄 알고 챙기기 위해 욕을 한다. 예상외로 긍정적이고, 생각 이상으로 건실하다.
장동민의 최근 활동상은 분명 폭주 기관차 같다. 크고 작은 스케줄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 기관차가 폭발할 것 같진 않다. 그의 바쁨 속엔 조바심보다 여유가 느껴진다. 장동민은 무엇보다 자신의 역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고 괜한 욕심으로 무리수를 두지 않는다. 그는 지금까지 수차례 있었던 메인 MC 제의를 모두 거절했다. “지금 제 포지션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저의 지금 스타일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분명 계시다고 생각하고요. 아직은 그걸 더 보여드리고 싶어요. 메인 MC를 하면 대본을 숙지하고 진행해야 하잖아요. 근데 전 녹화할 때 대본을 거의 안 봐요. 그럼 제가 웃길 수 있는 게 제한되는 것 같거든요. 저한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는데 그건 저도 상상하지 않고 있을 때 나오거든요.” 한때 장동민은 꽤 깐깐한 남자였다. 프로그램에 출연할 땐 녹화 직전 대본을 미리 가져와 검토했고, 싫은 건 꺼리고 거절했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나오나, 싫어하는 게 뭐 없나 미리 봤어요. 방송도 재미없이 느껴지면 ‘뭐 이딴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웃음)’ 그랬고요. 근데 그런 게 의미 없다는 걸 알게 되더라고요. 예전에 너무 까탈 부려 주위가 힘들었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전 빨리 유상무가 메인 MC 하고 전 그 옆에 앉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연예인이라면 으레 가지기 십상인 욕설 다음의 캐릭터, 유행어 같은 걸 고민하며 속을 썩이지도 않는다. “그냥 저는 식재료인 것 같아요. 가령 청양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정말 화끈하게 맵지만 맑은국에 살짝 넣으면 임팩트 정도만 주잖아요. 제가 어떤 멤버와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느냐에 따라 여러 맛, 느낌이 나는 거지, 욕설은 이제 많이 했으니 ‘이제부터 겸손의 아이콘이 되겠습니다’ 같은 건 아니라고 봐요. 이런 질문하는 사람들 되게 별로인 거 같아요. 연예인한테는 계속 다음엔 뭘 보여줄 거냐고 하는데 뭘 어떻게 다른 걸보여줘요? 그 질문 자체가 생각이 없어요.” 이날 장동민이 남긴 가장 독한 말이었다. 선후배를 잘 챙기고, 방송 현장의 분위기를 만들며 애쓰는 그지만 코미디언 장동민으로서의 아이덴티티만큼은 확고했다. 장동민은 앞으로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험하고 거칠게 객석을 웃길 거다.
장동민이 각 방송사를 돌며 투어를 하는 동안 유세윤은 해외를 돌고 있었다. 그는 최근 <마녀사냥> 촬영차 홍콩에 다녀왔고, <비정상회담>의 스핀오프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첫 여행 장소로 장위안의 고향 중국에 다녀왔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차례로 줄리안의 벨기에, 타일러의 미국, 알베르토의 이탈리아, 기욤의 캐나다를 방문할 예정이다. 근데 사실 이런 류의 프로그램은 유세윤이 자신 있어 하는 분야는 아니다. “여행하면서 야외에서 미션 하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목숨 걸고 하는 리액션을 해야 하는데 제가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 다만 <마녀사냥>이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PD가 다 친해서, 제가 싫어하는 걸 잘 알아서,(웃음) 불편함 없이 하고 왔죠.” 그래서 이 두 프로그램을 보면 게임, 미션 같은 게 일절 없다. <마녀사냥> 멤버들끼리 홍콩 소호 거리에 앉아 서로 연애의 습성을 점쳐보는 ‘그린 라이트’가 유일한 룰을 가진 코너다. 유세윤은 홍콩과 중국에서 그저 여행을 한다. 홍콩에선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매만지고, 중국에선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호텔을 찾아간다. 누구 하나 웃기려고 애를 쓰지도, 돋보이려 무리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엔 유세윤의 곡이 흐른다. 그가 올 초부터 발표하고 있는 ‘월세 유세윤’의 2월호, ‘니네 집에서’란 노래다. “중국에서 자전거를 탔는데 그때 느낌이 몹시 좋아서 만든 곡이에요.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서 다들 자는데 저는 가사를 썼어요. 그리고 나중에 곡 완성되면 자전거 타는 장면에 깔아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제작진이 마음에 든다고 프로그램 메인 곡으로 썼어요.” 유세윤은 이 곡에서 “니네 집에 갈래, 니 집에서 잘래/ 엄마도 없고 아빠도 안 계시면 좋겠어”, “이 비누였구나, 이 샴푸였구나/ 그토록 설레었던 그 향기”라며 능글맞게 웃기다가 “니네 집이 좋아, 니 집에서 살래/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었으면 좋겠어”라며 훈훈하게 노래한다. 이제 코미디언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그는 웃음에서도, 생활에서도 여유를 드러낼 줄 안다.
유세윤이 뮤지와 함께 UV를 꾸렸을 때, 긴 레게 머리를 붙이고 ‘이태원 프리덤’을 불렀을 때, 사람들은 즐거워 환호했다. KBS <웃음 충전소>의 ‘막무가내 중창단’ 코너를 하며 서울 곳곳을 활보했을 때 역시 놀라며 재미있어했다. 유세윤은 인형 탈을 쓴 채 놀이공원을 들쑤시듯 돌아다녔고,건달 행세를 하며 여대 앞 거리를 그야말로 막무가내로 휘저었다. 분명 유세윤이 코미디언으로서 활짝 피던 시기다. 하지만 이후 그는 조금 지쳤다. 사람 유세윤을 마치 웃음 자판기 대하는 듯한 분위기에 스트레스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모 인터뷰에서 자신은 “방송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말했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하기 싫다”고도 했다. “정말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작가들이 ‘세윤 씨 오버 좀 해주세요, 분위기 좀 만들어주세요’라는 거였어요. 저는 제가 코미디 연기자라 생각하거든요. 근데 코미디 연기의 무대가 아닌, 대부분의 버라이어티쇼에선 시청자를 진짜 속여야 해요. 사람들은 ‘이 사람 연기 잘한다’가 아니라 ‘걔 진짜 웃긴다’라고 해요. 저는 그냥 코미디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보는 사람들은 그걸 그냥 저라고 생각해버리는 거죠. 그게 좀 힘들었어요.” 그래서 유세윤은 이후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 방송에서 다소 멀어져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하기 싫은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있었죠. 그러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들을 하게 되고. 뒤늦게 중2병을 앓았죠.” 그래서 요즘 유세윤을 보면 안심이 된다. <마녀사냥>에서 멤버들과 함께 길을 걷고,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내 친구의 집을 찾아가’는 여정이 편안하고 훈훈해 보인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하면 뭘 어떻게 하든 만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꾸 도망갔어요. 계속 틈새시장으로.(웃음) 그래도 지금은 그 도망의 방법을 찾은 것 같고요.” 인기의 거센 태풍을 지나 평온을 찾은 그는 이제 가장 자연스러운 템포로 코미디를 연기한다. 무리도, 억지도 없는, 가장 그다운 연기다. 보는 이도, 하는이도 그저 유쾌하게 웃을 수 있는 무대를 이제 그는 스스로 만들어낼 줄 안다.
유세윤의 디지털 싱글 프로젝트 ‘월세 유세윤’은 윤종신이 5년째 하고 있는 ‘월간 윤종신’의 패러디다. ‘월세 유세윤’의 설명 글엔 ”윤종신 잡으러 간다”는 문장도 쓰여 있다. “표현하고 싶은 음악이 많은데 제가 노래를 부르면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노래 잘하는 가수들과 같이 작업하자 생각했죠.” ‘월세 유세윤’은 매달 한 곡씩 발표되고, 유세윤은 그걸 모아 연말에 12곡의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다. 그는 UV 이름으로 낸 싱글 <쿨하지 못해 미안해> 이후 즐길 거리가 생겨 좋다고 했다. “방송은 출연료가 먼저 책정되어 있잖아요. 그러니 그에 대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에 일이란 느낌이 큰 것 같아요. 근데 음악은 그냥 제가 한 만큼, 결과에 따른 수입이나 보상이 돌아오니까요. 부담이 덜한 거죠.” 유세윤이 2012년 만들었던 싱글 <예술이야> 뮤직비디오에는 어릴 때 혼자 춤추고 노래하며 찍은 영상이 삽입되어 있다. 꽤나 허세가 들어간 중2병의 모습이지만 그걸 그대로 대중 앞에 공개한 유세윤의 맘을 헤아려보면 찡한 구석이 있다. “취미라 생각해서 그런지 곡은 쉽게 빨리 써요. 쉽게 잘 쓰는 건 아닌데 금방 만족해요. UV로 발표할 노래도 한 50곡 만들어놨거든요. 그냥 사운드 만지지도 말고 50개 통째로 공개해버릴까 싶기도 해요.”
최근 유세윤은 광고 기획사도 차렸다. ‘모든 걸 100만원에 만들어드립니다’란 의미의 ‘광고백’이란 회사다. “만든 지 한 3주 됐나요? 균일가를 모토로 하고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초적자예요. 내년부터는 ‘광고천’으로 바꾸려고요.” 유세윤은 최근 완성했다는 광고를 한 편 보여줬는데 보자마자 빵 터졌다. 전라의 인형들이 신음 소리를 뱉으며 사랑하는 낯 뜨거운 장면이 10여 초 이어졌다. 그리고 들리는 대사는 ‘마음 놓고 사랑할 수 없나요?’ 공인중개사 광고였다. 소음에 강한, 자유로운 러브 하우스를 찾아주겠다는 부동산. 역시나 유세윤이었다. 한때 웃음을 감췄고, 부러 다소 어두운 곳을 찾아 숨었던 그는 여전히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로 다양한 놀이들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유턴>이란 제목의 웹툰도 연재하고 있다. “칼 업데이트라고 하죠? 마감은 잘 지키고 있어요. ‘월세 유세윤’도 그렇고 쫓기기는 하는데 기분 좋은 쫓김이에요.” <유턴>은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기묘하게 변해가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린다. 그는 2화 막바지에 삐삐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아날로그라는 것은 시대와 상관없이 누군가의 추억인 것 같다. 그립다. 항상 그립다. 벌써 어제가 그립다”라고 썼다. 유세윤의 가장 화려하던 시절은 지났는지 모른다. 그가 온갖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휩쓸며 웃음 폭탄을 던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의 유세윤은 분명 더 흥미진진할 거다. 그는 지난해부터 서핑을 즐기고 있고, 올해는 스케이트보드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준비 중이다. 그리고 2월 중순부터는 그가 요즘 가장 신나게 잘 뛰어노는 의 새 시즌도 시작했다. 유세윤의 에너지는 식지 않았다.그는 좀처럼 마르지 않는 샘, 뼈까지 개그 본능 충만한 코미디언이다.
비약하는 아3인
아3인은 세 명이다. 한 살 터울의 이상준, 김기욱, 예재형이 2012년 꾸렸다. <코미디 빅리그>에서 ‘JSA’란 코너로 첫 무대에 함께 섰고, 지금은 ‘사망토론’이란 코너를 하고 있다. 정체불명의 팀명은 ‘아줌마 여기 떡볶이 3인분하고 인지도 좀 주세요’의 줄임말. 결성 초기 셋은 분명 인지도가 필요한 처지였지만 지금은 꽤 유명인이 되었다. 아3인은 2014년에만 ‘사망토론’으로 우승을 두 번 차지했다. 인기가 좋으니 장기 공연이다. 본래 코미디 프로그램 코너의 수명은 길어야 6개월인데 ‘사망토론’은 2년째 계속되고 있다. “코너 시작하고 두 달 정도 됐을 땐 이게 더 할 이야기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무궁무진하더라고요.”(김기욱) ‘사망 토론’은 사실 말도 안 되는 논쟁 쇼다. 구차하고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얘기들로 열변을 토한다. 가령 ‘크리스마스에 여자 친구에게 아이패드 선물을 준비했는데 벙어리장갑 선물을 먼저 받았을 때 아이패드를 줘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나 ‘친구 부모님 장례식 때 실수로 100만원이나 냈는데 다시 돌려받아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 같은 주제 말이다. “저희가 하는 얘기가 하찮아 보여도 사실 다 경험하는 것들이에요. 그래서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이상준) 시청자로부터, 그리고 주위로부터 에피소드 제보도 끊이지 않는 ‘사망토론’은 그래서 당분간 계속될 예정이다. 하찮고 구질구질한 우리의 속내야말로 확실한 웃음 소재다.
남자 셋이, 그것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풀어나가는 코너에서 궁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 남자 모두 다 강한 캐릭터거나 반대로 두루뭉술하면 이야기 자체가 산으로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3인은 역할 구분이 뚜렷하다. 김기욱이 주로 바르고 좋은 이야기, 여자를 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나오는 이상준이 좀 더 솔직하고 거친 이야기, 남자들의 속내를 반영한 악역을 담당한다. 그리고 한 살 차이지만 가장 맏형인 예재형이 둘의 중재를 맡는다. “사람들이 저는 착하게, 상준이는 못되게 보는데요. 실제로 좀 그래요. 저는 심성이 워낙 착한 편이고, 상준이는 사람 비하하는 거 잘하고. 좋은 얘기 자체를 안 해요. 그리고 재형이 형은 원래 아이디어도 진짜 많고 욕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방송에선 욕할 수 없으니까 자제시키기 위해(웃음) 사회자 역할인 거고.”(김기욱) 가장 맏형답게 말을 아끼던 예재형이 이 얘기에 한마디 꺼냈다. “왜 다들 가식 떨고 그러냐? 솔직하게 얘기해서 기욱이는 결혼했으니까 결혼한 쓰레기, 상준이는 결혼 안 했으니까 결혼 안 한 쓰레기.”(웃음) 마침 새빨간 입술 분장을 마친 장동민이 화장실에서 나왔는데 예재형이 한마디 더 한다. “누구 겁탈하고 나오세요?” 주로 진행 멘트를 하느라 가려져 있었지만 예재형의 독설은 장동민 못지않다. 그는 세고도 험한 말을 조곤조곤 매우 침착하고 신중하게 한다. 그리고 이런 셋의 합이 얼추 옹달샘과 짝을 이룬다. 거칠고 센 예재형은 장동민, 혼자서도 유머 난장극을 펼쳐낼 수 있을 것 같은 입담의 이상준은 유세윤, 그리고 부드럽고 잔잔하게 둘을 조율해내는 김기욱은 유상무. 갑자기 김기욱이 사회자를 자처하며 질문을 던졌다. “옹달샘에서 라이벌은 누구인가요?” 예재형은 독하게 답한다. “라이벌은 없습니다. 1대 3으로 싸워도 이길 수 있습니다.” 역시 이 세 남자 보통은 아니다.
아3인이란 이름은 아직 좀 생소하지만 이 세 남자가 생소한 코미디언은 아니다. 김기욱은 2000년대 초 <웃찾사>로 이미 큰 인기를 누렸고, 이상준은 서울예전 시절 학교를 들썩이게 하는 코미디언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해요. 기욱이는 우리나라에서 이미 정점을 한 번 찍은 친구예요. 지금은 뭐 바닥을 쳤죠.(웃음) 상준이는 서울예전 1등이었어요. 찜질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던 애니까요.”(예재형) 거칠지만 구성진 입담의 이상준은 그게 곧 삶인 남자다. 그는 학창 시절 찜질방에서 잔 뒤 찜질복 그대로 학교에 나갔다. “일부러 웃기려고 한 게 아니에요. 그냥 자연스럽게, 편하니까. 그래서 얼굴이 좀 알려진 요즘은 그런 걸 하지 못해서 좀 불편해요.”(이상준) “이 친구랑 팀을 짠 게 이런 애랑 함께라면 그냥 옆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뭐라도 되겠다.(웃음) 그러다 난 기회 봐서 등에 칼만 꽂으면 되겠다 싶었죠.”(예재형) ‘사망토론’ 리허설 현장이 대충 그려졌다. 대본은 이야기의 줄기만 그릴 뿐 웃음을 뽑아내는 건 이들의 합이다. “처음엔 대본에 충실한 편이었는데 하면서 감독님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도록 놓아두셨어요.”(이상준) 이렇게 농을 치다가도 셋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자못 진지해졌다. “저는 본래 개그맨이 꿈이었고.”(이상준) “저는 아니었어요.”(김기욱) “저는 슈퍼스타가 꿈이었고요, 홍서범 선배님과 같은.”(예재형) 이런, 정극에서 다시 코미디다. “저는 가난한 연극배우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김기욱) “그럼 저는 음유시인이 꿈이었어요.”(이상준) 역시나 끝이 없다.
애드리브로 꾸며낸 이날의 꿈이야 어찌 됐든 세 남자의 목표는 명확하다. 그들은 옹달샘과 같은, 혹은 옹달샘을 이기는 팀을 꿈꾼다. “일을 많이 하고 싶어요. 누구 하나라도 먼저 잘되면 아3인의 인지도가 더 높아질 거고.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저희의 웃음을 알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예재형) 그래서 이들은 일단 다방면으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이상준과 예재형은 얼마 전 드라마 <스웨덴 세탁소>에 출연했고, 김기욱은 촬영 당일 새벽까지 카메오로 출연한 드라마 <하이드 지킬, 나>의 현장에 있다 왔다. 이 단 한 번의 촬영을 하며 그는 주연배우 현빈의 키도 외워버렸다. “제 키가 184cm. 현빈 씨와 같은 키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아3인의 뜻은 조금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줌마 떡볶이 3인분하고 인지도 좀 주세요’가 아닌, ‘아줌마 떡볶이 3인분하고 인기 좀 많이 주세요’정도로 말이다. 예재형은 김기욱이 레이싱 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중고차 딜러 프로그램 <오토쇼 투샷> 얘기를 하며 “김기욱을 까고 대신 들어가겠다”고 얘기했고, 이에 김기욱은 “더크게 노려. 사회자 이미지 강하니까 손석희 사장님, 이영돈 PD를 까라”고 했다. 반은 농담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반은 진심일 것이다. <코미디 빅리그> 정상에 우뚝 선 이 세 남자는 지금 가장 웃기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니 말이다. 옹달샘의 물줄기를 따라 또 한 팀의 코미디 트리오가 부상 중이다.
- 에디터
- 피처 에디터 / 정재혁(JUNG, JAE HYUK), 스타일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AN JI SUB
- 스탭
- 헤어 / 안미연, 메이크업 / 김미정, 세트 스타일리스트 / 박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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