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지 스타일의 대표 주자, 케이트 모스
케이트 모스는 열여섯 살에 이미 그런지 스타일의 대표 주자가 됐다.
그리고 4분의 1세기가 지난 지금, 그녀의 존재는 절대적인 시크함의 보증수표다.
표지에 스타일의 마스코트인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장식되어 있으면 어느 잡지건 간에 일단 판매량은 배로 뛸 것 같다. 열여섯 나이에 우아함과 정반대되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런지(Grunge)의 대표 주자였던 그녀는 4분의 1세기가 훌쩍 지난 후에는 완벽한 시크(Chic) 스타일의 보증수표가 됐고, 2014년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몸값 비싼 슈퍼모델 4인 중 1위를 차지했다. 현란한 트렌드의 변화와 정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뉴 페이스와 올드 페이스들의 끊임없는 퍼레이드 속에서도 변함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녀의 존재는 패션계의 개혁을 계속할 필요는 없다는 듯한 특별한 대비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녀를 보면 이렇게 오랫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고 몽환적이며 자신감이 넘치는 케이트 모스는 예리한 스타일 감각을 소유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독립적인 여성, 즉 진정한 현대 여성이라고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세기를 넘나들 수 있었다는 것을. 이런 자유분방함은 그녀의 눈빛과 행동,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타일에서도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케이트 모스는 패션계에 ‘신뢰’라는 본질적인 특성을 보여줬다. 기계적인 아름다움, 혹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무대를 연출하는 다른 수많은 동료들과 달리, 케이트 모스는 쇼 무대에서는 물론 매우 극단적인 세대에까지 진정성을 전달하고 있다. 패션계에서의 활동은 당연히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패셔니즘 광고계에서의 경력도 적지 않은 데다가, 심지어 레드 카펫에까지 자주 출몰하면서도 케이트 모스는 단 한 번도 주위의 시선을 끄는, 소녀 같은 그녀만의 느낌을 절대 잃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 한순간이라도 진짜 여신 같은 아우라를 내뿜지 않은 때도 없었다. 그녀가 진정으로 거부하는 것은 쓸모없이 아름다움을 정형화하는 것이다. 약간 몰린 듯한 그녀의 시선은 저항할 수 없는 고독과 이탈리아 여배우 모니카 비티의 고뇌에 찬 지식인 같은 느낌을 준다.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도발적으로 돌출된 입술은 반쯤 열려 앞니가 L 사이즈, 혹은 XL 사이즈 정도로 확대돼 보이는 효과를 낸다. 그리고 아름다운 케이트 모스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면 작지만 뾰족해서 약간 아기 뱀파이어 같은 송곳니와 함께 정말 고르지 못한 치열을 드러낸다. 다리가 휘어서 종아리 중간까지 오는 의상을 피하고 아주 고가의 의상도 길이를 줄여야만 한다고 케이트 모스 본인이 언론에 밝힌 적도 있다. 케이트 모스는(어린 나이에 이쪽 일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에게 인내는 의무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라 생각하는 그녀다) 영리하게도 이런 불완전한 자신의 외모를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지금도 나이도 자아도 없는 인형이 아닌, 그녀 자신이 상상하는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카메라 앞에 설 때는 모델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연성과 섬세함이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아주 섬세한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초연함을 잃지 않는다.
지난해 <플레이보이> 60주년 기념호 표지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독자들)을 바라보고, 잡지 중간에 삽입된 화보에서는 다양한 누드 포즈로 내면을 성찰하는 빈티지 토끼, 바로 그런 모습이 케이트 모스의 복잡 미묘한 모습이다. 이런 업종에서는 아직까지도 미모(Beauty)와 지성(Intelligence)이 상극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있는 것이 사실인데, 피터 린드버그의 사랑스러우면서도 솔직 담백한 사진 작품은 안전장치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이 종합돼 케이트 모스가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이고, 대중에게도 패션계 주요 인사로 인정받는 것 같다. 사실 케이트 모스는 모델보다는 배우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하다. 소리 없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연기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진정 배우다운 배우들은 가상의 이미지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데, 케이트 모스 역시 마찬가지다. 쓰레기 언론이 스캔들을 중심으로 그녀의 개인적, 사회적 행적부터 지난 이력까지 정말 체계적으로 재해석해 퇴폐적인 여성으로 만들어놨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그런 것에 빠져들지도, 끌려가지도 않는다.
1990년 <더 페이스>라는 청소년 문화 유행 경향을 다루는 잡지에서 표지를 장식하면서 역사적인 데뷔를 할 때부터 그녀는 이미 약속된 스타였다. 당시 반패션 미학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던 영국 사진가 코린 데이(나중에는 패션을 적극 활용했지만)는 이제 갓 사춘기에 접어든 16세 케이트 모스의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케이트 모스의 어색한 웃음과 몸짓을 그대로 담았다)을 8페이지 지면에 담았다. 케이트 모스는 이 화보에서 화장기 없는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빈약한 상반신 누드를 찍거나 아주 캐주얼한 차림으로 발랄한 기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북반구 해변에서 햇볕을 받으며 포즈를 취했다. 열여섯 살 케이트 모스의 그 독특하고 개성 있는 모습이 순식간에 수많은 팬을 끌어모으는 밑거름이 되기는 했지만, 처음으로 신랄하고 악의로 가득 찬 비평을 들어야 했던 화보이기도 했다. 이후 그녀에게는 ‘고아’라는 뜻의 ‘Waif’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 별명은 패션계에서 그녀처럼 아주 가느다란 몸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가 됐다. 그때부터 그녀가 대담한 포즈를 취할 때마다 언론에서는 곧바로 격렬하게 종을 울렸다.
말이 정말 많던 화보 중에서는 캘빈 클라인과 작업한 다양한 홍보물을 비롯해, 꾸준한 에로틱 스토리 컨셉의 화보, 그리고 1993년 다시 한 번 코린 데이와 작업한 영국판 <보그>가 유명하다. 코린 데이와의 재회 화보에서도 케이트 모스의 몸은 여전히 슬림하지만, 이번에는 란제리 상의만 걸치고 나른한 포즈를 취하고 있어 당시 항간에선 ‘헤로인 시크(Heroin Chic)’라 부르기도 했다. 케이트 모스는 어느 인터뷰에서 ‘속죄하는 아름다운 양’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녀는 어느 인형극에서 늦은 밤부터 새벽이 될 때까지 샴페인과 사람들이 흔히 의심하는 물질까지 흡입하는 ‘타락한’ 파티 걸의 전형이 됐다. 본인 스스로도 파티를 좋아한다는 점을 감추거나 속인 적이 없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파파라치들이 찍은 앨범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것들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녀에게는 반순응주의적 태도, 안정된 자율성, 변하지 않는 매력, 영원한 성공에 대한 생각이 가치가 있다. 최근 케이트 모스는 163cm의 키로 다시 스타일의 세계를 지배하러 돌아왔고, 앞으로 오랫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패션계에는 신세대들이 진을 치고 있으니 그녀가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녀의 동생 로티(동생도 16세에 시작했다)가 최근 레드 발렌티노(Red Valentino)의 광고 모델로 발탁됐고, 열두 살짜리 케이트의 딸은(당연히 사랑스럽겠지! 더 말할 필요가 있나?) 벌써 열 번도 넘게 ‘프라다 디아볼로 베스테(Il diavolo veste Prada)’를 방문했다. 이들 앞에는 케이트 모스의 흔적이 담긴 카펫이 넓게 펼쳐진 셈이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클레어 리처드슨(Clare Richardson), 글 / 자비에 아로유엘로(Javier Arroyuelo)
- 포토그래퍼
- Peter Lindbergh
- 모델
- 케이트 모스(Kate Moss@IMG)
- 스탭
- 헤어 / 오딜 질베르(Odile Gilbert@L’Atelier) 메이크업 / 스테판 마레(Stephane Marais@Studio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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