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 밀러, 다시 빛나다
스캔들 속에서 잊힌 줄 알았던 ‘잇 걸’ 시에나 밀러가 지금 다시 빛을 낸다.
한 차례 성공도, 실패도, 아픔도 경험해본 그녀는 이제 좀더 신중하게 길을 걷는다.
“트위터링(Twittering) 한다고 하나요? 아니면 트위팅(Tweeting)? 이상한 거 같아요. 이 단어 아기 말처럼 들려요. 정말 우스꽝스러운 면이 있다니까요.” 뉴욕 센트럴 파크 남쪽에 위치한 레스토랑. 시에나 밀러는 소셜 미디어의 광기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요즘 웬만한 스타라면 다들 하고 있는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자기 홍보를 위한 140자의 지루한 석고보드를 굳이 즐기지 않는 거다. 올해로 33세인 그녀는 위트 있고, 자신만만하며, 자신의 생각을 망설임 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생각은 종종 우습거나 어처구니가 없다. 시에나의 친구이자 모델인 포피 델레빈은 “시에나는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시에나가 트위터를 한다면 그 내용은 분명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것이다. “지뢰밭이 될걸요? 누군가 저를 공격한다면 전 반드시 복수할 테니까요.” 시에나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시에나 밀러가 요즘 새로운 기술에 모두 반대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프라다 백 안에는 스마트폰이 들어 있고, 아주 잠깐 동안이긴 했지만 그녀 역시 인스타그램을 한 적이 있다. “그건 제 영혼의 최악에 해당하는 부분을 자극했어요. 중독성이 어마어마했죠.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이미 1,000여 명의 팔로워들이 깨어 있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제게 ‘당신을 사랑해요’ 같은 인사말을 남겨요. 형태도 없는 사랑에 한껏 부푸는 거죠. 근데 어느 순간 이걸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에나는 다소 신경질적으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시에나 밀러의 인스타그램 생활은 그녀의 짧은 결혼 생활보다도 빨리 끝났다(그녀는 첫 번째 남편 주드 로와 1년 여의 신혼 생활 끝에 헤어졌다). “SNS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움을 느끼게 해요. 소셜 미디어를 활발히 하는 친구들이 주위에 몇 있는데, 그들은 그것 때문에 매우 불안해해요. 노출에 대한 욕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있는 거죠.” 하긴 요즘 시에나 밀러의 생활은 굳이 SNS 속으로 들어가 인기를 끌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그녀는 나와 점심 식사를 마친 뒤 베넷 밀러 감독의 영화 <폭스캐처> 뉴욕 영화제 시사회에 참석해야 했고, 그다음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 관련 행사를 치러야 했다. <폭스캐처>는 레슬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고,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실존 인물인 미 해군 특수부대 요원 크리스 카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개봉 예정인 밀러의 영화 중에는 빈스 본과 함께 출연한 <언피니시드 비즈니스(Unfinished Business)>와 조니 뎁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는 <블랙 매스(Black Mass)>가 있고, 그사이 라이언 플렉, 애너 보든과 작업한 영화 <미시시피 그라인드(Mississippi Grind)>와 J.G. 발라드(J.G. Ballad)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하이-라이즈(High-Rise)>도 개봉할 예정이다. 그 후엔 로버트 패틴슨과 함께하는 아마존 미스터리물 <잃어버린 도시 Z(The Lost City of Z)>, <아르고>로 멋지게 감독 변신에 성공한 벤 애플렉의 차기작 <라이브 바이 나이트(Live by Night)>도 기다리고 있다. 숨이 찰 정도로 하나하나 알찬 작품들이다. 만약 내가 시에나 밀러였다면 이 풍성한 계획에 대해 끊임없이 트윗을 올렸을 거다. 나는 내 고양이가 겨울 부츠 속에만 들어가도 트윗을 올린다. 근데 밀러는 다르다. “이봐요, 저는 이런 작품 복에 대해 의연하려고 꽤 애쓰고 있어요. 하지만 속으론 몰래 춤을 추고 있답니다.” 시에나 밀러는 그렇게 속삭이듯 말했다.
2주 후. 시에나 밀러를 다시 만나러 영국으로 날아갔다. 내가 탄 비행기는 저녁 8시 30분쯤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는데 출입국 심사대의 직원은 내게 런던에서 뭘 할 건지 물었다. “잡지 인터뷰 때문에 왔는데요”라고 내가 말했고, 다시 “누구를 인터뷰하는데요?”란 질문을 받았다. “시에나 밀러요.” 순간 그 직원은 놀랐다.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이런, 아마 당신은 꽤 긴장해야 할 거예요”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자. 시에나 밀러는 달라졌다. 발전했다. 이제 그녀는 편안한 순항 고도에 올라섰다. 데뷔 초기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보여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반항아의 모습은 이제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행한 무모한 행동도 이제는 하지 않는다. TV 프로듀서 제시카 아담스는 12년 전 엔니오 모리코네 콘서트장에서 시에나 밀러를 우연히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그녀는 꿀색 피부에 여신 같은 모습으로 로열 앨버트 홀 계단에 앉아 있었어요. 전 그녀를 보자마자 미워해야겠다고 결심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시에나 밀러는 재미있고 의리 있는 교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던 토리 쿡, 포피 델레빈, 그리고 델레빈의 남편이자 토리의 남동생인 제임스와 서로 조언을 주고받으며, 영화 프로듀서인 브래들리 아담스, 로버트 패틴슨, 채닝 테이텀, 에디 레드메인, 키이라 나이틀리와도 절친한 사이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밀러를 “어디서나 가장 화려한 나비”라고 묘사했다.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시에나 밀러와의 우정에 얽힌 에피소드를 하나 부탁하자 그녀는 놀랍게도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힘들어하는 제게 취해서 온갖 바보 짓을 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시에나가 말했어요. 전적으로 옳은 조언이었습니다.” 역시나 시에나 밀러는 트위터를 해야 한다. 하지만 종종 찾는 가라오케를 제외하면 실제 시에나가 그렇게 왁자지껄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다. 그녀의 생활은 의외로 차분하다. 밀러에겐 가정생활이 최우선이다. 그녀에겐 지금 두살 난 딸 말로가 있다. “엄마 역할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제가 그동안 딸과 무언가를 공유한다는 즐거움을 얼마나 놓쳐왔는지 깨달았어요.” 그녀에겐 말로의 아버지이자 배우자인 배우 톰 스터리지도 있다. 밀러는 2011년 그를 만나기 시작했다. “현실적이고 똑똑하고 친절한 사람이에요. 그가 옆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뭔가 요란한 드라마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는 내 아이의 아버지니까요.” 런던의 늦가을 오후였다. 밀러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소호의 타파스 레스토랑에 앉아 있었고, 밀러는 마크 제이콥스 스웨터, 11년 전 영화 <나를 책임져, 알피>를 촬영하며 입었던 60년대식 검정 코트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치즈, 샐러드, 돼지고기 요리가 차례로 서빙되는 동안 밀러는 이야기를 꺼냈다. “스터리지와의 삶은 아주 평범하고 고요해요.” 밀러 가족은 종종 런던의 집을 떠나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얘기가 너무 지루하다 생각해서였을까. 밀러는 갑자기 머리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사실 살아 있는 지옥이에요. 우리는 시골에 자주 가요. 저는 개도 한 마리 기르고 있어요. 거의 곰에 가까운 개죠. 산책을 할 때면 제 얼굴이 진흙투성이가 돼요. 아이는 제 몸에 먹은 걸 토하고요. 이런 게 인생이죠. 지극히 평범한 삶이에요.” 그녀는 히죽히죽 웃었다. 이런 평범한 삶이 밀러에게 소중한 건 다소 그러지 못하던 과거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드 로와 함께이던 시기 밀러는 파파라치들의 감시망 속에 살았다. “당시는 정말 무서웠어요. 우린 어렸고 길을 걸어갈 수도 없었죠.” 이런 패턴은 몇 년간 지속되었다. 혼란, 실연, 추한 기억은 마음속 깊이 남았다. 잔인한 주목을 받으며 밀러는 공개적인 볼거리로 포장된 자신의 삶을 마주해야 했다. “주드와 주드의 아들과 함께 테이트 미술관에 간 적이 있어요. 우리가 사귄다는 사실이 아직 알려지기 전이었죠. 근데 다음 날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그러더라고요. 큰일이 났다고요. 신문 <뉴스 오브 더 월드>를 보여줬는데 1면에 저와 주드가 진하게 키스를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어요. 압도당하는 느낌이었죠.” 밀러는 이 이야기를 하며 아직도 몸을 살짝 떨었다. 하지만 이제 분위기는 달라졌다. 밀러가 파파라치, 그리고 포악한 미디어와 싸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밀러를 대상으로 한 전화 해킹 스캔들로 물의를 일으킨 <뉴스 오브 더 월드>는 수년 전 문을 닫았다. 영국 법원이 언론의 관행과 윤리를 비판하며 밀러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때의 삶을 비디오게임 속에 갇힌 것에 비유했다. 어떤 일이든 자신보다 세상이 먼저 알고, 모든 행보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무서운 상황 말이다.
물론 인기를 얻은 이후 시에나 밀러가 나쁜 경험만 한 건 아니다. 그녀는 “멋진 일도 많았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중 몇 가지는 아주 재미있어 보였다. “분명 끔찍한 일이 있었죠. 하지만 좋은 일도 있었어요. 그런게 인생이죠.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어요. 저 나름의 성장도 했고요.” 사람들 입방아에 지치기 쉬운 할리우드에서 밀러는 자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극복하며 스스로의 인상을 만들어냈다. “제가 약간 거친 사람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던 건 부인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던 건 아니에요. 전 지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현장에선 매우 프로답게 행동했죠. 하지만 한동안 대중이 생각하는 제 모습을 극복하기가 힘들었어요. 왜냐면 그건 아주 강한 선입견이었으니까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밀러는 기회를 잡아야 했다. 그녀는 지난 10년간 다수의 영화와 연극에 출연했다. <레이어 케이크>, <팩토리 걸>, <사랑의 순간> 같은 영화에 출연했고, 2009년엔 패트릭 마버의 <애프터 미스 줄리(After Miss Julie)>로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했다. 2년 후엔 테렌스 래티건의 <플레어 패스(Flare Path)> 무대에 올라 제임스 퓨어포이의 상대역을 연기했다. 2012년엔 HBO 영화 <더 걸(The Girl)>에서 히치콕의 뮤즈였던 티피 헤드런을 연기해 골든 글로브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밀러는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좋은 영화, 좋은 역할, 그리고 좋은 감독을. 그녀의 선입견을 불식시킬 기회를 말이다.
시에나 밀러가 한 번의 아픔을 딛고 다시 도약하는 데는 남편 스터리지의 역할이 컸다. 그는 배우 가문에서 자랐고 2013년 <고아(Orphans)>로 토니상 후보에도 올랐다. 스터리지는 밀러에게 “당신은 많은 걸 배워야 해. 정말 원하는 일이 있다면 오디션 테이프를 만들어야 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실제로 <폭스 캐처>의 오디션 당시 직접 밀러의 연기 영상을 찍어줬다. “그가 제 일을 돕는 만큼 저도 그를 도와요. 우린 창의적인 발산이 필요한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죠. 지금은 둘 다 더 멋진 곳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스터리지가 찍은 밀러의 테이프를 보고 <폭스캐처>의 감독 베넷 밀러는 놀랐다. “처음 시에나를 추천받았을 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너무 아름답고 너무 영국적이니까요. 근데 오디션 테이프를 보고 확신했죠. 그녀가 시에나 밀러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그녀와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에나는 <폭스캐처>에서 레슬링 선수 데이비드 슐츠(마크 러팔로)의 아내 낸시 슐츠 역을 맡았다. 비록 비중은 크지 않지만 밀러는 이 작업을 통해 영화 작업의 진지함에 매료됐다. “베넷 밀러는 제가 이전까지 접근하지 못하던 감독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에요. 감독들은 작품을 시작하며 서로 의견을 나눠요. 전화를 걸어 어떤 배우가 좋은지 묻죠. 그런 점에서 베넷 밀러는 제게 엄청나게 도움이 된 사람입니다.”
지난해 LA로 돌아가보자. 시에나 밀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오디션을 보기 위해 워너 브라더스 스튜디오로 향했다. 밀러는 주인공 크리스 카일의 아내인 타야 역의 후보였다. 타야는 수년간의 격렬한 전투 뒤 지친 크리스 카일을 도와 가족을 지탱하는 역할이었다. “스튜디오에 차를 세웠는데 카 라디오에서 친숙한 곡이 울려 퍼졌어요. 바로 고릴라즈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란 곡이었죠. ‘징조가 좋은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오디션이라는 게 그리 즐거운 분위기는 아니다. 캐스팅을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으며 대기실에 앉아 있다. “굴욕감이 느껴져요.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죠.” 게다가 이스트우드는 개인적인 연으로 캐스팅을 하지 않기 위해 배우와 대면하지 않고 오디션 테이프만으로 간택을 한다. 그런데 그런 클린트 이스트우드 눈에 밀러가 들어왔다. “저 배우가 내 첫 번째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테이프 속 그녀는 아주 훌륭했죠.” 오스카상 수상자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말이다. 그리고 주인공 카일 역의 브래들리 쿠퍼 역시 밀러의 캐스팅을 반겼다. “말도 안 돼!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전 늘 그녀의 엄청난 팬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 그녀를 전혀 몰랐지만 영화를 하면서 밀러는 완벽한 타야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료 배우의 칭찬만 한 기쁨도 없을 것이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하면서 시에나 밀러는 극 중 역할의 실제 모델인 타야 카일과 친한 사이가 되어야 했다. 대규모 전쟁 장면이 메인인 이 영화에서 타야와 카일의 관계는 감정적인 닻 역할을 한다. “저는 타야가 아이가 있고, 가슴 아픈 일을 경험한 사람이길 원했어요. 그래야 타당성이 부여될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시에나는 그런 감정을 100%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영화에 자신의 삶을 빌려준 타야 카일의 말이다. 시에나 밀러는 “타야는 크리스와의 추억을 제대로 재현해주길 바랐어요. 그녀에게 중요한 건 둘이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이었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시에나 밀러는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찍으며 멋진 추억을 만들었다. 브래들리 쿠퍼와 우정도 쌓았고, 둘은 이후 보다 가벼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지난여름 다시 뭉치기도 했다. 존 웰스가 연출을 맡은 작품인데 미슐랭 별 세 개를 따기 위해 분투하는 스타급 요리사들에 대한 이야기다. 밀러는 이 영화를 위해 영국인 셰프, 마커스 웨어링 밑에서 훈련을 했다. “칼 쓰는 기술, 살코기를 뼈에서 발라내는 기술을 배웠어요. 이제 넙치도 손질할 수 있죠. 넙치는 눈이 코뿔소 눈같이 생겨서 손질이 아주 힘들답니다.” 쿠퍼와의 합은 더 좋아졌다. 브래들리 쿠퍼는 “밀러는 아주 강해요. 꼭 작은 나폴레옹 같죠. 런던에서 촬영한 덕에 그녀의 가족도 알게 됐는데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는 정말 멋진 삶을 살고 있어요” 하고 강조했다.
얼마 전 밀러의 친구 몇몇이 최근 그녀의 잇단 성공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아픈 시절을 견디고 다시 일어선 밀러를 응원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여자들끼리의 밤을 위해 밀러를 데리고 나왔어요. 그리고 이야기했죠. ‘이제 네 차례야. 너의 전성기가 온 거야’라고요.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멋진 일입니다.” 톱모델 포피 델레빈의 말이다. 확실히 최근 시에나 밀러의 필모그래피는 주목할 만하다. 믿을 만한 감독들의 탄탄한 작품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하지만 대부분 작은 배역인 것도 사실이다. “이 업계에선 전혀 계획을 세울 수 없어요.” 밀러는 의외로 담담히 얘기했다. 이미 한 차례 업계의 파도를 경험한 그녀는 섣불리 상황을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다만 밀러는 이제 감사한다. 이곳까지 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신이 이것을 얼마나 원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다른 꿈도 품어본다. “제가 상상할 수 있는 몇 가지 다른 버전의 삶이 있어요. 하나는 가족과 함께 제가 사랑하는 도시 뉴욕으로 이주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영화 스튜디오와의 거리를 생각해 날씨가 매력적인 LA로 이사하는 거예요.” 밖엔 비가 내렸고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아직 오후 4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런던의 날씨는 심술궂었다. 런던은 밀러의 집이 있는 곳이고, 그녀의 삶이 있는 도시다. “저는 이곳의 음산함과 음식을 좋아해요. 저만의 봄을 만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비참하고 우울한 겨울을 견디고 첫 크로커스꽃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겨울이 끝났을 때의 느낌이 정말 좋아요. 거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보람 있는 무언가가 있으니까요.” 시에나 밀러는 웃었다. 그녀의 겨울은 확실히 저만치 멀어져간 느낌이었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토니 굿맨(Tonne Goodman), 글 / 제이슨 게이(Jason Gay)
- 포토그래퍼
- MARIO TESTINO
- 모델
- 시에나 밀러(Sienna Miller)
- 스탭
- 헤어 / 크리스티안(Christiaan) 메이크업 / 샬롯 틸버리(Charlotte Tilb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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