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마 룩의 귀환
패션의 넓은 대지 위에 활기찬 말발굽 소리가 요동친다.
상류층의 우아한 스포츠, 오랜 전통의 패션 하우스들의 DNA가 된 승마 룩의 귀환!
80년대 무대 위에서 과감한 덤블링과 마이크를 공중으로 던졌다 맞은편에서 다시 받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펼쳤던 댄스그룹 ‘소방차’를 기억하는지. 동글동글한 렌즈의 컬러 선글라스에 허벅지가 낙낙하고 발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승마 바지로 당시 서울 패션을 평정했었다. 30대 중반에 들어선 여자들에게 ‘승마’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이미지가 소방차라면, 패션 피플들에겐 좀 다르다.
마구상으로 시작한 티에르 에르메스부터 피렌체에서 승마 가죽 제품을 생산하던 구찌오 구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날개 달린 말(페가수스)을 로고로 한 에트로, 말발굽 모양에 브랜드 로고를 새긴 페라가모의 간치니 장식, 말과 함께 폴로 선수를 새긴 랄프 로렌, 말을 탄 영국 중세 기사를 형상화한 버버리 등 상류층의 세련된 취미인 승마 룩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뒤적이지 않아도 우리 기억에 남은 멋진 패션 승마 신이 있다. 바로 장폴 고티에의 첫 에르메스 쇼! 고티에는 2004년 에르메스를 위한 데뷔쇼(마구간을 배경으로 한 승마 컬렉션)와 2011년 고별쇼(거대한 마장마술 팀의 퍼포먼스)를 위해 클래식하고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승마 룩을 완성시켰다. 에르메스 하우스와 승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2010년부터 매년 봄 그랑팔레를 거대한 승마장으로 변신시킨 후 전 세계 프레스와 셀럽, VIP 고객들을 초대한 가운데 하우스의 DNA인 마장마술 대회를 선보이고 있다. 15세기경 세계 최초로 시작된 승마 경기의 진원지인 이탈리아의 구찌 하우스도 승마 DNA를 어필하는 흐름에 합류했다. 작년 7월, 파리 에펠탑 아래에 있는 샹 드 마르스 광장에서 구찌 프렌즈들이 총출동한 ‘에펠 점핑대회’를 개최해 승마에서 시작된 하우스의 정신을 강조했다.
이번 시즌 그 우아하고 귀족적인 승마 룩이 귀환했다. 70년대와 히피, 밀리터리와 데님이 빅 트렌드로 떠오른 가운데 펜디의 칼 라거펠트가 조퍼스 팬츠를 데님 사이에 슬쩍 끼워 넣은 것이 그 시작이다. “‘카발리 트라우저(Cavalry Trousers)’예요. 남성적인 승마 바지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좀더 도회적으로 해석했어요. 데님과 데님을 함께 레이어드하거나 크롭트 재킷과 매치하기에 이상적인 실루엣이죠.” 칼 라거펠트의 설명이다. 펜디 하우스에서는 이 데님 승마 바지를 이번 시즌 히든 아이템으로 손꼽는다. “엔트리 가격인 100만원대로, 매장에 걸리자마자 펜디 고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어요. 리조트 시즌에 선보인 아이스 데님의 인기가 데님 승마 바지로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구찌는 다른 방식을 선택했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마지막 구찌 컬렉션을 위해 하우스의 정신인 승마로부터 디테일을 몽땅 뽑아왔다. 그녀의 아이디어 노트에 승마 바지는 없었지만 대신 말의 재갈을 모티브로 한 앤티크 홀스빗 장식, 안장을 고정하는 캔버스 스트랩(GRG), 라이딩 부츠 등이 70년대 히피 룩과 절묘하게 섞였다. 이 밖에 서커스 <카발리아>가 연상되는 랄프 로렌의 클래식한 조퍼스 팬츠, 전통 조련사 복장을 응용한 돌체앤가바나, 농장 소녀들이 신었을 법한 클로그 부츠를 선보인 프라다 등도 있다.
지금 승마는 귀족 스포츠에서 대중 스포츠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기에 올봄의 승마 트렌드는 더 반갑다. 그렇다면 승마 룩을 멋지게 소화하기 위해 참고해야 할 것들은? 우선 패션 아이콘들의 스타일을 찾아보자. 현직 승마 선수로 활동 중인 모나코의 샬롯 카시라기 공주처럼 깔끔한 흰 셔츠와 매니시한 재킷에 라이딩 부츠만으로 도회적인 승마 룩을 완성하는 게 모범 답안. 이게 답답하다면, 패션 시상식에서 자신의 애마 돌리(Dolly)를 수상 소감 첫마디로 언급한 모델 에디 캠벨처럼, 헐렁한 실크 꽃무늬 블라우스에 흰색 승마 바지로 약간 히피풍의 트렌디한 승마 룩을 시도해볼 수 있다. 또 전직 승마 대회 챔피언 출신인 케이트 업튼이 등장한 샘 에델만 광고 캠페인처럼, 밀리터리 재킷과 쇼츠, 글래디에디터 부츠만으로도 육감적인 승마 룩이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약간 나이가 있다면, 영국 시골에서 말을 키우며 승마로 하루를 보내는 아만다 할레치처럼 부드러운 니트 터틀넥과 승마 팬츠, 낡은 라이딩 부츠로 편안한 컨트리 스타일 승마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올봄, 대중적으로 전파되고 있는 승마 클럽과 승마 전문 브랜드의 론칭 소식이 귀에 들려온다면? 우아한 클래식과 스포티한 편안함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승마 룩이 해답이다.
- 에디터
- 패션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ZOO YONG GYUN
- 모델
- 정호연
- 스탭
- 헤어 / 이에녹 메이크업 / 강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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