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렌 엘슨과 팀 워커의 부탄 패션 기행
부탄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더 빛나는 독특한 실루엣과 풍부한 색감의 브로케이드, 자카드, 펠트, 실크 룩! 붉은 머리 슈퍼 모델 카렌 엘슨의 환상 패션 기행.
나는 높은 곳을 극도로 무서워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부탄(인도와 티베트 사이에 끼어 있는 환상적인 히말라야 봉우리들이 있는 곳)에 있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탄은 3,000m 높이의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사진작가 팀 워커와 <보그>와 함께 마법 같은 부탄 왕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건 말도 안된다. 그런 멋진 장소에서 이뤄지는 사진 촬영에 참여한다는 것은 황홀한 여행을 하는 동안 아주 아름다운 것에서부터 터무니없는 것들까지 두루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곳에서 눈 덮인 봉우리들 사이로 저 아래 심연을 바라보고 있다.
1일
테네시 주 내슈빌에서 풍성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주민이 80만 명도 안 되고 여행객은 거의 없는)까지 이틀 걸려 도착한 후 나는 흥분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장엄한 히말라야 산맥과 에베레스트 산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때 우리 옆으로 암회색 얼음 봉우리들이 어렴풋이 나타났다. 산과 계곡 사이를 누비며 이뤄진 착륙은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한 장면과 비슷했다. 비행기가 왼쪽으로 기울어졌다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졌다 하면서 파로(Paro)라는 작은 마을 근처에 있는 부탄 유일의 국제공항(활주로가 겨우 2,000m밖에 안 되는)에 착륙하기 위해 급강하할 때 승객들은 모두 숨을 멈췄다. 밖으로 나가자 산소가 희박했고, 날씨는 춥고 맑았다. 마치 시간을 잊은 땅 같았다. 우리는 부탄의 수도인 팀푸(Thimphu)로 차를 몰았다. 팀푸에는 왕이 살고 있는 디첸촐링(Dechencholing) 궁이 있다. 그 궁은 우리가 지나가면서 본 풍경을 모두 품고 있다. 그곳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로웠다. 우리는 팀푸에 있는 아만코라 리조트에 도착했고, 그곳에 짐을 풀었다. 내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기대 때문인지 높은 고도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2일
촬영 첫날 우리는 첫 햇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우리는 상가이강(Sangaygang) 언덕 옆에 있는 촬영 장소로 갔다. 너무나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산불이 나서 그 연기가 새벽안개와 합해졌고 그 사이로 아침 햇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수 천 개의 총천연색 기도 깃발들이 산들바람에 펄럭였고 절로 겸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첫 촬영을 위해 가레스 퓨의 실크 리본 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햇살과 깃발들 사이에서 춤을 추었다. 어떤 웅장한 세트도 필요 없었지만 나는 헤어 스타일리스트 더피와 메이크업 아티스트 샘 브라이언트가 연출한 초현실적인 캐릭터로 변신했다. 이교도 여사제 같기도 하고 위커맨(Wicker Man, 고대 켈트인들이 인신 공양을 할 때 사용하는 조각) 같기도 했다. 팀은 펜탁스 카메라로 스냅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근처에 있는 역사적인 불교 사원 겸 요새인 타시초 종(Tashichho Dzong, 본래 종은 사원 겸 요새라는 의미)에서 온 전통 축제 의상을 입은 젊은 승려들이 우리와 합류했다. 승려들은 각자 불교 신화에 나오는 인물을 재미있게 묘사한 정교한 나무탈을 썼다. 그것은 멋진 연극이었다. 특히 활기 넘치는 승려 한 명은 거대한 양모 남근이 달린 가면을 쓰고 바지를 불룩하게 채웠다(남근은 부탄에서 많이 사용되는 모티브로 어디서나 그것이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팀은 우리가 모두 함께 춤을 출 수 있는지 물었다. 승려들은 우리의 어설픈 동작을 놀렸다. 그리고 내가 한 승려의 아주 거친 동작에 집중력을 잃고 빙글빙글 돌다 드레스에 걸려 넘어졌을 때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해가 질 때 언덕에서 춤을 추고 있는 흥분한 빨간 머리 유령을 보고도 전혀 당황한 것 같지 않았다. 오늘은 기억에 남을 하루였다.
3일
우리는 팀푸에서 푸나카(Punakha)로 이어진, 히말라야를 내려다보고 있는 도로인 도출라 패스(Dochula Pass)에 도착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아침 7시에 나는 3,000m 높이의 세트에 서 있었다. 몸은 꽁꽁 얼었지만 경치는 황홀했다. 동네 사람이 솔잎을 태우는 바람에 그 연기가 사진 프레임 속으로 퍼졌다. 우리는 전통적인 돔 형태의 탑인 스투파에 둘러싸였다. 이 스투파는 2003년 인도 반군과의 전쟁 이후 세워진 것들이다. 첫 촬영이 끝난 후 우리는 패스에 있는 한 카페로 가서 불가에 앉아 언 몸을 녹였다.
푸나카에서 우리는 낭떠러지 옆에 멈춰 섰다. 나는 위험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낭떠러지 가장자리 가까이에 섰다. 마치 동화의 나라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저 아래 계곡에서는 안개가 목화 기둥처럼 소용돌이치며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세계와 완전히, 그리고 행복하게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그날 오후에 우리는 또 다른 고급스러운 아만코라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기온이 점점 올라갔고 우리에겐 오후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우리는 동네 사원으로 하이킹을 갔다. 도중에 피마(Peema)라는 여성과 친구가 되었다. 수가 놓인 밝은 핑크색 드레스에 가죽 샌들을 신은 그녀는 남편과 싸운 후 절에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어느 문화에서든 여성들은 남편들과 싸운다고 답했다.
다시 고산병과 시차가 나를 엄습했다. 트레킹은 겨우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들판이 서서히 구불구불한 언덕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10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일단 정상에 도착하자 놀라운 골짜기 풍경과 멋진 사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바람이 불면서 종이 울렸고 스님들은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대부분의 날들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멍하니 무언가를 응시하며 몇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부탄 음식은 아주 맵다. 그리고 이곳에서 고추는 영국인의 차처럼 매일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다. 여행 중에 우리 모두 입안이 불타는 순간을 경험했다. 그러나 어떤 것도 샘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날 밤 저녁 식사 때 그녀는 부탄 요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향이 강한 소스 한 스푼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만화 루니 툰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폭발했다. 불꽃이 코와 입에서 솟구쳐 나오기라도 하듯 팔짝팔짝 뛰었다. 우리가 좀더 안전한 메뉴를 고집할 만한 증거가 생긴 셈이다.
4일
오늘 우리는 푸나카 계곡에 있는 근처 강으로 모험을 떠났다. 그곳의 물은 히말라야 빙하에서 곧바로 흘러내려온 것이다. 우리는 당나귀들을 보살피고 있는 목동과 그의 어머니와 친구가 됐다. 그녀의 얼굴은 나이에 비해 아름답고 고왔으며, 손목은 놀라울 정도로 가늘었다. 머리에는 밀짚과 조각으로 이뤄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녀의 긴 검은 머리는 뒤로 흘러내렸다. 겉모습은 연약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산에서 사는 게 쉬울 리 없다.
나는 강가에 높이 자란 풀들 사이에 앉았다. 팀의 사진 속에서 내 모습은 계곡에서 유령들을 불러내는 것처럼 보였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종(Dzong) 요새를 방문했다. 많은 요새의 역사가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그 요새들은 단순한 흰 벽과 원형 황금 첨탑이 장식된 적갈색 목재 지붕으로 이뤄져 있다.
우리는 종으로 가기 위해 나무다리를 건넜다. 사원 입구는 황금색 기둥이 지키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네모난 뜰 안에 보리수가 서 있었다. 사원을 장식한 색상은 화려했다. 선홍색, 노랑, 청록색 등등. 그리고 불교 미술이 벽을 덮고 있었다. 반면에 스님들은 심플한 와인색을 입고 탁발한 머리엔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그들이 가을 축제를 위해 예행연습을 하는 걸 보게 되다니 정말 운이 좋았다. 불경을 읊조리며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매혹적이었다. 빨간 해골 모자와 물결치는 빨강과 흰색 케이프를 입고 그들 사이에 서 있는 나를 보고 당황한 듯 보이는 건 스님들이 아니라 소수의 관광객들뿐이었다.
5일
오늘 우리는 새벽 촬영을 하느라 서두르는 대신 호텔에서 평범한 아침 식사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팀의 테이블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었다. 샘이 예술가처럼 넓은 붓질로 내 얼굴에 메이크업을 하는 동안 더피는 우리에게 머리카락으로 만든 섬세하고 얇은 빨간색 마스크를 보여주었다. 팀과 더피는 들판에 불을 피웠고 우리는 그 둘레에서 춤을 추었다. 나는 펄럭이는 발렌티노 드레스와 앞이 트인 슈즈에 불이 붙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웠다. 우리의 프로듀서는 스님 예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모델보다 무성 영화의 배우가 된 기분이었다.
6일
팀은 다음 촬영 장소로 가는 여정이 힘들 것이며 자신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고 경고했다. 우리는 거대한 산 측면에 매달려 있는 유명한 17세기 사원인 탁상 사원(Tiger’s Nest Monastery)으로 향했다. 내가 이번 여정이 얼마나 힘들지 물었을 때 그의 어시스턴트인 엠마의 표정이 모든 걸 말해줬다. 이번 트레킹은 내슈빌에서의 하이킹을 산책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45분 후에 햇볕이 내리쬐기 시작했고, 파타고니아 재킷과 세 겹으로 겹쳐 입은 옷 때문에 땀이 나고 숨이 찼다. 발걸음을 떼는 것도 괴로웠다. 나는 팀이 초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말 그대로 산악 트레일을 뛰어 올라갔고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요가를 몇 년이나 했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곳에선 마라토너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 순간 반짝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처럼 우리의 프로듀서인 제프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는 튼튼한 산악 말을 타고 도착했고, 그 뒤로 장비와 옷을 실은 조랑말들이 나타났다. 그는 내게 조랑말에 올라타도 좋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우리 팀을 배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가장 가파른 곳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팀은 가장 먼저 정상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신이 만들었다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마치 탁상 사원을 산비탈에 조각한 것처럼 보였다. 팀과 스태프들이 다음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케이트 펠란과 나는 사원 안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우리의 가이드 린친이 벽에 그려진 신들이 각각 무엇을 대변하는지 설명해줬다. 우리는 영화 <검은 수선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의 공기는 향 냄새로 가득했고, 머리 위에선 종이 울렸다. 우리는 까치발을 하고 사원 바닥에 앉아 경전을 읊조리고 있는 여승들 옆을 지나갔다. 나는 사원과 저 아래 절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팀에게는 가장 적절한 순간을 캐치하는 직관력이 있다. 해가 지고 있었고 나는 금빛을 두르고 있었다. 내려가는 길을 더없이 아름다웠다. 다리는 무거웠지만 달콤한 행복감이 느껴졌다. 밑으로 내려왔을 때 우리는 침묵 속에 멈춰 서서 뒤돌아봤다. 해가 거의 졌고, 밝은 푸른 하늘은 짙은 보라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행성과 별이 점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7일
마지막 날은 너무 빨리 왔다. 부탄은 우리 모두를 매혹시켰다. 그날 우리의 첫 촬영은 공항 옆 들판에서 진행됐다. 케이트, 샘, 더피가 차례로 내 머리와 옷에 짚을 쑤셔 넣자 나는 허수아비가 됐다. 근처에서 이 동네에 사는 가족이 진짜 허수아비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의 마지막 촬영은 강테 팰리스(Gangtey Palace) 호텔에서 이뤄졌다. 깨진 창 틈으로 바람이 윙윙 불었고 벽은 불교의 상징물로 장식돼 있었다. 나는 이 마지막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려고 애썼다. 산의 풍경, 계곡, 바람에 날리는 기도 깃발, 웅장한 궁전과 사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탄 사람들의 정신. 촬영이 끝나자 우리의 사랑스러운 가이드인 린첸과 린친은 우리에게 진토닉을 만들어주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친구가 됐다. 마지막 날 나는 쇼핑을 갔다가 남근으로 가득한 매장에 들어섰다. 몸을 돌릴 때마다 남근과 마주쳤다. 한 여성이 나를 따라 매장을 돌면서 남근 모양 목걸이를 사고 싶은지 물었다. 문화적으로 부탄에서 남근은 보호와 힘의 상징이다. 그래서 그것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긴 여정이 시작됐다. 우리는 에베레스트 산 위를 날아 카트만두로 갔다가 다시 델리를 거쳐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서 <보그> 팀은 내렸고, 나는 혼자 미국으로의 비행을 계속했다. 공항에 멈출 때마다 공항 안전 요원, 면세점, 서로를 밀치며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풍선에 바람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장엄한 풍경이 회색 도시들로 바뀌자 부탄의 고요함이 그리웠다. 부탄은 다른 곳과 다른 방식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그 나라의 정신과 국민들은 다른 곳과 달랐다. 그들의 유명한 국가 행복 지수(부탄은 국가 행복 지수가 1위인 나라다)처럼 나는 이 나라에 대해 생각하며 행복감을 느꼈다. 아마 영원히 그럴 것이다. 내가 머리 위에 양모 남근을 달고 있는 남자와 다시 춤을 출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니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
- 에디터
- 케이트 펠란(Kate Phelan), 글 / 카렌 엘슨(Karen Elson)
- 포토그래퍼
- TIM WALKER
- 모델
- 카렌 엘슨(Karen Elson@The Lions)
- 스탭
- 헤어 / 더피(Duffy), 메이크업 / 사만다 브라이언트(Samantha Bry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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