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나의 책방
대형 서점에도 없는 여행 에세이와 세계적 작가의 오리지널 그림책을 만날 수 있는 골목 서점부터 마음껏 주저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소규모 라이브러리까지! 이들 작은 책방의 문을 열면 기분 좋은 독서의 세계가 펼쳐진다.
명동성당의 매력적인 지하 멀티플레이스 ‘1898광장’ 한쪽에 문을 연 작은 공간 ‘래코드 스페이스(Re;code Space)’는 명동을 휘젓는 중국인 관광객과 성당을 찾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만 내주기엔 아까운 컨셉의 라이브러리다.
모던한 책장 가득 환경과 공익, 에코 트래블 등 업사이클링과 관련된 서적이 촘촘히 도열해 있고, 탐날 정도로 흥미로운 책을 현장에서 마음껏 펼쳐 읽어도 좋다. 친환경 건축과 환경디자인, 인간과 치유, 슬로 라이프 등 분류부터 어찌나 마음을 끌던지!
사실 이곳은 버려지는 옷을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 ‘래;코드’가 가치 전파를 목적으로 운영하는 비영리 공간인데, 재활용 제품을 시크하게 변신시킨 서재 인테리어 디자인마저 흡족하다.
서적 분류는 물론 전시물까지 꼼꼼한 설명을 보태주는 최유리 매니저에 따르면, 주말을 제외하곤 아직까지 붐비진 않는단다. 쉽게 접할 수 없던 친환경 여행서와 해외 매거진은 물론, 퀄리티 높은 영상 작품을 시청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까지 무료 제공하고 있는 이곳보다 탁월한 나눔의 책방이 또 있을까?
명동성당 1898광장 안에는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본격 책방이 있다.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도서가 운영하는 ‘북파크’다. 언뜻 보면 그저 잘 정돈된 ‘평범무쌍한’ 서점 같지만, 이곳에선 매장 안에 보유한 책을 일주일 동안 단돈 2,000원에 대여해준다.
최신간이 총망라되어 있으며 모두가 완전한 새 책이다. 궁금하던 베스트셀러부터 최신 실용서까지 충분히 빌려 읽고 깨끗하게 되돌려주면 그만이다. 일정 금액의 보증금은 책 반납 시 되돌려주며, 이렇게 서점으로 되돌아온 책은 얼마간 기간이 지나면 도서·산간 지역의 공공 도서관에 보내진다니 서점의 착한 기능까지 누려볼 수 있다.
독서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빤한 현실 속에서 몇몇 대형 서점 체인 외에 동네 서점이 자취를 감춘 듯하지만, 곳곳에서 자기만의 컨셉을 갖춰 문을 열어두고 있는 책방이 눈에 띈다는 사실은 정말 반가운 일이다.
출판사가 직접 운영하는 북카페부터 독립출판물을 취급하는 서점까지 제법 자리를 다잡고 있는 홍대 인근에서 최근 가장 눈길을 끄는 소규모 서점이라면 단연 연남동의 ‘피노키오 책방’이다.
동네가 비싸진 탓에 지난해 자리를 살짝 옮겨 다시 오픈한 이곳에선 세계적 명성을 가진 해외 아티스트의 그래픽 노블부터 독특한 국내 그림책까지 느긋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이희송 대표는 동네 책방이니만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볼 수 있는 책을 구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서가의 라인업만 살펴봐도 범상한 그림책을 넘어 시각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따뜻함을 다시 한 번 느끼고픈 이들에게도 ‘강추’할 만한 책방이다. 그림이 주는 마음의 안정은 덤!
지난해 가을 성북동 골목에 활짝 문을 연 작은 책 가게 ‘오디너리북샵(Ordinary Bookshop)’에서는 교보문고에서도 찾지 못할 아기자기한 독립출판물이 독서광을 맞이한다.
평범한 개인 여행자가 직접 만들어낸 여행 에세이부터 얇고 귀여운 사진집, 형태 자체가 특이한 일러스트 북까지 이곳의 책들은 두툼하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소소한 감성과 정서를 자극한다. 자꾸만 책장을 넘겨보고 싶게 만드는 힘은 무얼까.
책과 인디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던 김정은 대표는 독립 출판물에서 그 정점을 찾았다고 한다. “독립출판물이 뭔지 궁금하긴 한데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이 많아요. 그런 분들께 문턱을 낮춘 서점이 되고 싶어요. 더불어 작은 서점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언제나 환영이지요.” 젊은 오너의 취향에 따라 북 디자인이 봐줄 만한 책만 골라놓았다는 오디너리북샵에서는 책 만들기 강좌도 절찬리에 운영 중이다.
한창 트렌디하게 변모해가고 있는 성수동 인근에 지난 3월 간판을 드러낸 ‘이노베이터스 라이브러리(Innovators’ Library)’는 독창적인 신상 책방이다. 견고해 보이는 네이비 색 컬러 간판과 흰 책장이 가득 놓인 작은 공간이 궁금해 통유리창을 들여다봤더니 누구든 자유롭게 책을 열람하고 대여할 수 있으며, 독서 모임이나 작가와의 만남 같은 프로그램도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다.
독자는 무료 회원제이며, 기부에 의해 운영되는데, 벌써 76명 후원자로부터 꽤 많은 후원금을 조성했다니, 머지않아 100개의 책장이 가득 찰 날이 오지 않을까.
문패에서 눈치챘겠지만 이곳에선 혁신가를 위한 책을 집중 공략할 수 있다. 창업과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소셜 임팩트, 비영리 사회 활동, 국제 개발처럼 사회 혁신과 관련된 서적이 이토록 다채롭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관련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확실히 유효하겠지만 색다른 아이디어에 목마른 독자라면 누구라도 기꺼이 문을 두드려도 좋을, <보그>가 놓여 있지 않더라도 충분히 사랑스러운 책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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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이미혜, 글 / 정명효(자유기고가)
- 포토그래퍼
- JEON BYUNG 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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