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배우, 니콜라스 홀트
<어바웃 어 보이>에서 장밋빛 뺨이 사랑스러웠던 소년 니콜라스 홀트는 어느새 훌쩍 자라 어떤 배역이든 소화해내는 든든한 배우가 되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풋풋한 한 소년의 성장담이자 뛰어난 재능을 가진 한 배우의 연기 기록이다.
<어바웃 어 보이> 세트장에서 니콜라스 홀트(Nicholas Hoult)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열두 살이었음에도 휴 그랜트의 농담과 가시 돋친 말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악수를 하며 뚫어지게 쳐다보던 눈빛이 기억이 난다. 푸딩 사발 같은 머리 모양과 장밋빛 뺨이 사랑스러웠던 홀트는 공동 감독 크리스와 폴 웨이츠 형제를 비롯해 엄마 역할을 맡았던 토니 콜레트에 이르기까지 세트장의 모든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콜레트는 홀트를 “몸의 절반을 질질 끌면서 우스꽝스럽게 걷던 사랑스럽고 순수한 소년”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자 내 남자 친구인 에릭 펠너는 그를 칭찬해달라는 내 이메일에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답장을 보냈다. “어릴 때도 훌륭했어. 지금은 키도 크고 세련되고 훨씬 근사해졌지. 잘생기고 영리하고… 게다가 연기를 정말 잘해!”
홀트는 그저 부끄러움을 잘 타고 낄낄거리는 소년의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과거 내가 목격한 것처럼 그의 사춘기는 변화무쌍했다. <어바웃 어 보이>가 끝난 2009년으로 가보자. 나는 화이트홀에 위치한 트라팔가 스튜디오의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홀트는 무대 중심에 있었다. 테디 베어 같기만 하던 소년은 연극 <뉴 보이(New Boy)>에서 입에 욕을 달고 사는 관능적인 주연급 청년이 돼 있었다. 몇 겹의 껍질을 벗어낸 듯했다. 그러나 앞머리와 뾰로통한 표정은 여전했다. 할리우드 스타덤을 코앞에 둔 그는 사춘기의 정점을 지나고 있었다. E4 채널의 드라마 <스킨스(Skins)>의 엄청난 성공 후 홀트는 바로 톰 포드의 감독 데뷔작 <싱글 맨>에서 콜린 퍼스의 제자 역으로 출연했다.
이제 오스카 시상식으로 가보자. 때는 2013년이었다. 나는 홀트로부터 세 줄 뒤에 앉아 있었다. 그는 당시 여자 친구였던 제니퍼 로렌스를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공중에 키스를 날릴 때 디올 드레스를 입은 로렌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내가 런던에서 홀트의 연기를 처음 본 이래 그는 쉬지 않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일곱 편의 영화를 추가하고 있었다.여기에는 엄청난 블록버스터인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도 포함된다. 키 190cm인 홀트는 다른 남우주연상 후보들보다 한 뼘 이상 컸다. 그날 밤 그는 동반자에게 남긴 윙크만으로 우아함을 내뿜었다.
이제 현재로 돌아와보자. <보그> 촬영 후 나는 이스트엔드의 한 호텔 바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홀트가 이제 막 스물다섯 살이 된 주였다. 호텔 바는 칵테일과 고독한 분위기를 이상적으로 섞어놓은 곳이었다. 마치 <트윈 픽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보였다. 사람이 거의 없었음에도 그는 프라이버시를 위해 주변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는 별 특징 없는 여러 겹의 회색 옷과 촛불 속에 긴 팔다리를 감춘 채 눈에 띄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홀트에게 인터뷰란 불편한 것이다. “어색하고 부자연스럽게” 자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기에 인터뷰는 그에게 고문에 가깝다.
그는 업계에서 신중하기로 소문난 젠틀맨이기 때문에 작년에 로렌스에게 일어났던 악명 높은 사이버 해킹 사건의 상처가 아주 깊었던 것 같다. 홀트는 유명세와 그에 따르는 위험성에 대해 건강하고도 실용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건 선택이에요. 점점 어디는 가도 되고 어디는 가면 안 되는지 알게 됩니다. 제가 동네 펍에 가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요. 저는 잡지에 나오고 싶어 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니지만 제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사람들이 제 영화를 보길 바라는 건 당연하고요.” 그래서 그는 연기를 하고 싶은 욕망과 사생활을 보호할 필요성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마지못해 트위터를 하고 있지만 팔로워는 30만 명에 이른다. 너무 많은 것을 공개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알고 있기에 항상 자기 검열을 한다.
톰 포드가 말했듯 니콜라스 홀트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먼저 “진지하고 프로다운” 배우 홀트다. 그가 <스킨스>에서 연기했던 ‘거친 영국 젊은이’와 대조적이다. “홀트는 카메라가 꺼지면 더 재미있어요. 스타로서 품위를 영리하게 지키면서도 사생활에서 어느 정도 익명성을 유지합니다.” 나는 감독 샘 테일러 우드의 부엌 테이블에서 보냈던 밤을 기억한다. 당시 홀트, 아론 존슨(아티스트이자 감독인 테일러 우드의 현재 남편), 그리고 제이미 도넌 사이에 오고 간 설전은 시끌벅적한 웃음을 만들어냈다. 홀트는 그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두목이었다. 믿음을 주고받은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몹시 편안해 보였다. “세트장에서 농담을 하면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웃어요.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이런 농담을 하면 정색을 하거나 재미없다고 비난부터 해요”라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아론 존슨은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를 볼 때마다 어떻게 저렇게 비현실적으로 잘생길 수 있는지 참을 수가 없어요. 게다가 그는 두카티 모터바이크를 탄다고요!” 홀트는 엄청난 스피드광이다.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스턴트맨들과 경주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톰 후퍼가 감독한 새로운 재규어 광고에 출연함으로써 벤 킹슬리와 마크 스트롱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영화는 애매모호함,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극단적인 감정을 연기할 줄 아는 배우를 사랑한다. 홀트는 위협적인 존재에서 구원자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상반된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재능을 지녔다. 콜린 퍼스는 그를 두고 “<싱글 맨>을 생각할 때마다 저를 뒤돌아보는 홀트의 얼굴이 떠올라요. 상처받은 영혼을 구원하려는 천사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2014년 좀비 로맨틱 코미디인 <웜 바디스(Warm Bodies)>에서 홀트는 세상을 위협하는 동시에 세상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는 R을 연기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색다른 독립 예술영화와 메가와트급 프랜차이즈 영화 사이를 이리저리 오간다. <싱글 맨>으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으며 성년이 된 후(그리고 누구나 탐내는 톰 포드의 안경 광고를 따낸 후) 그가 맡은 역할은 엄청나게 다양하다. 매튜 본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에서 푸른 비스트였고, 기사 로맨스인 <잭 더 자이언트 킬러(Jack the Giant Slayer)>에서는 거인들에 맞서는 주인공 잭이었으며,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선 문신을 하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대머리 눅스를 연기했다. 올해 방송될 존 니벤의 브릿팝 드라마 <킬 유어 프렌즈(Kill Your Friends)>,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함께 출연한 미래 러브 스토리 영화<이퀄스(Equals)>까지 홀트는 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줄 예정이다.
홀트는 세 살 때 형의 연극을 보러 갔다가 캐스팅됐다. 에이전트는 연극을 보고 있는 세 살짜리 꼬마의 놀라운 집중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일곱 살 때 <친밀한 관계(Intimate Relations)>로 처음 영화를 찍었다. 세 남매도 모두 전문적으로 연기를 해왔다. 그러나 비행기 조종사인 아버지와 피아노 선생님인 어머니는 극성스러운 부모들과는 달랐다. 열한 살이 되었을 때 버크셔 초등학교에서 실비아 영 영화 학교로 전학을 가긴 했지만 홀트는 평범한 자신의 뿌리를 유지했다. 크리스 웨이츠(<어바웃 어 보이>의 공동 감독이자 <싱글 맨>의 프로듀서)는 어린 홀트에게 우는 연기를 요구해야 했을 때 야외에서 뛰놀며 보낸 해맑기만 한 그의 어린 시절을 장난스럽게 저주했다. “홀트를 울게 하려고 꽤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어요. ‘뭔가 정말 슬픈 일이 네게 일어났다고 상상해봐’라고 말했죠. 하지만 이런 노력이 애처로울 정도로 그는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어요.”
홀트는 지난 2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비며 영화를 찍었지만 여전히 뼛속까지 런던 사람이다. 그는 최근 서리 주(Surrey)에 있는 본가로부터 독립해 런던으로 이사했다. 무술을 비롯해 DIY, 빵 굽기, 하루 종일 책 읽기 등 취미를 본격적으로 즐길 때가 온 것이다(<보그> 촬영장에서 나는 한쪽 귀퉁이가 접힌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을 보았다. 홀트는 1955년에 영화화된 <에덴의 동쪽>의 주인공 제임스 딘의 매력과 그의 날카로운 광대뼈를 갖고 있다). 홀트는 최근 영화 촬영장에서 기타를 선물받았는데, 거실에 기타를 장식용으로 세워두는 남자가 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하고는 유튜브의 개인 지도 클립들을 보고 몇 시간 동안 벼락치기로 기타를 배웠다. “이제 네 곡 정도 칠 수 있어요.” 그는 하얀 치아와 검은 눈썹이 대조를 이루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시작이죠.” 이것은 자신의 연기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마스터하는 완벽주의자 홀트의 모습이다. 이제껏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어디에 가야 하고, 무엇을 입어야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모두 지시받는” 배우라는 거품 속에서 보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저만의 시간을 더 이상 낭비하지 않을 거예요.” 퍼스가 본 대로 그는 어두운 면이 없는 몇 안 되는 배우다. 그는 성가신 일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한다.
인터뷰가 끝난 뒤, 홀트가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나는 그를 지하철역에 내려줬다. 그리고 그가 차들 사이를 지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후드를 깊이 뒤집어쓰는 것을 지켜봤다. 강변에서 열리는 파티에 갈지 동네 테스코에 갈지 갈등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유튜브에서 본 기타 코드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에디터
- 로라 베일리(Laura Bailey)
- 포토그래퍼
- SCOTT TRI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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