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패션 액세서리, 안경
예전엔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건만 이제는 시력이 좋아도 코 위에 슬쩍 얹고 싶은 욕망의 대상. 안경이야말로 그 시즌 잇 백이나 슈즈, 블링블링 주얼리보다 훨씬 강력한 패션 액세서리다.
영화 <킹스맨>이 남긴 것은? 수트의 완성은 ‘핏’이 아니라 안경이라는 것.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디자인한 네 번의 구찌 쇼를 본 뒤 우리 여자들이 궁리하고 있는 것은? 구식 안경으로 로맨틱한 괴짜가 되는 법! 물론 다락방 냄새 폴폴 풍기는 미켈레의 벨라 구찌들이 가장 강렬하긴 했지만 다른 캣워크도 안경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50년대풍 캐츠아이 안경을 쓰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등장한 막스마라의 현대판 마릴린 먼로, 두꺼운 뿔테 안경에 가려 눈이 안 보일 지경이었던 안나 수이의 히피 걸, 투명한 안경을 쓴 폴앤조의 톰보이 걸 등등.
패션계로 돌아온 안경은 70년대 무드와 연결된다. “70년대에서 영감을 얻은 레트로와 놈코어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룩소티카 코리아 마케팅 팀은 기존의 복고풍 프레임에서 조금 다양한 형태로 제안됐다고 설명한다. 조금 헐겁고 포근하게 얼굴을 덮는 오버사이즈의 사각 프레임, 시시 스페이섹의 것처럼 크고 동그란 안경, 동시대적으로 변형된 히피풍의 나비 안경, 뾰족한 캐츠아이, 여러 가지 색상 조합의 레오퍼드무늬 등 독특한 복고풍 프레임은 시력 교정의 의무보다 패션 액세서리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다. 국내 아이웨어 브랜드 ‘프로젝트 프로덕트’의 신나라 디자인 팀장이 애용하는 안경은 가는 금속 소재 사각 프레임과 끝을 치켜올린 뿔테 안경. 뿔테는 연예인들이 그렇듯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을 때 민얼굴을 가리는 용도다. “적당히 가려주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정돈된 인상을 줍니다. 제 뿔테 안경은 캐츠아이 스타일인데, 프레임 자체가 크진 않지만 눈 윗부분만 가려도 충분히 깔끔해 보이죠.” 그녀는 최근엔 뿔테보다 금속 프레임을 애용한다고 말한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금속 프레임을 쓰면 스마트해 보이거든요.”
좋은 구두는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고 좋은 옷은 우리의 태도를 바꾼다. 그렇지만 안경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정의하는 동시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가’를 드러낸다. 예전엔 모두가 잘생긴 슈퍼맨을 동경했다면 요즘엔 큼지막한 안경으로 고지식함을 덧씌운 클라크 켄트가 되길 원한다. 아세테이트 프레임은 그 다양한 형태와 색상만큼 특별한 인상을 만든다. 검정 사각 프레임은 단호하고 심각해 보이며, 얼룩덜룩한 톨토이즈셸은 문학소녀나 똘똘한 사립학교 학생처럼 보이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어울리는 하금테(위는 아세테이트 프레임, 아래는 금속 프레임)는 엄격하고 사색적이며, 빨강, 분홍, 파랑 같은 원색 프레임은 유머러스하고 쾌활한 느낌을 준다. 평범치 않은 디자인의 프레임이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코닉한 안경(완벽한 원형의 톨토이즈셸 프레임)처럼 종종 그 사람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안경 레이블 ‘GLCO’를 운영하고 있는 가렛 리(‘올리버 피플스’의 공동 설립자 래리 리의 아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영향력을 실제보다 더 크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투명한 플라스틱 프레임부터 시작해보세요. 갈색이나 분홍색의 투명 테는 대담해질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충분히 색다르면서 아주 멋져 보일 거예요.”
미국 작가 도로시 파커가 말한 “남자들은 안경 쓴 여자에게는 수작을 걸지 않는다”가 아직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면 할리우드 시상식을 떠올려보자.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풀 메이크업을 한 얼굴 위에 둔탁한 안경을 얹은 스칼렛 요한슨과 루피타 뇽은 아주 매력적인 모습이었다. 말간 얼굴에 안경을 쓰고 길거리를 활보하는 수키 워터하우스와 제시카 하트는 여학생처럼 발랄하고 상큼해 보였다. 또 제나 라이언스의 모스콧 안경(J. Crew 컬렉션에도 등장한)은 데이비드 호크니처럼 그녀의 상징이 됐다. ‘솔트 아이웨어’의 디자인&생산 부사장 데이비드 로즈는 안경을 바꾸는 건 빠르고 쉽게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머리를 자르는 것과 비슷하죠. 긴 머리카락을 머리에 딱 달라붙을 정도로 아주 짧게 자르는 것처럼요. 전체적인 룩을 완전히 바꿔놓죠.”
당신의 시력이 눈뜬 장님이나 다름없는 -6.0 디옵터 이상인지, 100m 전방도 훤히 내다보이는 2.0인지는 더 이상 중요치 않다. 지금도 인스타그램에는 도수를 넣지 않은 멋내기용 안경을 쓴 셀피가 올라오고, 패피들은 구찌의 ‘긱 시크(Geek Chic)’를 재현해줄 안경을 찾아 안경점을 헤매고 있으니까.
- 에디터
- 김미진
- 포토그래퍼
- GETTY IMAGES/ MULTIBITS, REX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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