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타하리를 불러온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창작자들은 가슴에 수많은 방을 짓고 산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 마타하리를 접한 건 90년대 후반이다. 뇌쇄적인 춤과 신비로운 외모로 파리 물랭루주에서 가장 사랑받던 무희이자 제1차 세계대전 중 이중 스파이 혐의로 총살당한 비운의 여인. 프랭크 와일드혼이 그녀에게 가슴 한쪽을 내준 건 ‘여명의 눈동자’라는 뜻의 마타하리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는 얘길 들은 순간이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가진 캐릭터들을 좋아해요. <지킬 앤 하이드> <스칼렛 핌퍼넬> <드라큘라> <몬테크리스토> 같은 뮤지컬 사이에 설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해서 모두 뮤지컬이 되진 않아요. 캐릭터는 운명에 따라서 생명력을 가지기 마련이죠.” 시대를 앞서간 여인 마타하리의 운명은 2016년 한국으로 향했다. 4년 전 프랭크 와일드혼은 뮤지컬 제작사 EMK에 마타하리 소재를 제안했고 그녀의 이야기는 브로드웨이와 서울을 오고 가는 긴 준비 기간을 거쳐 마침내 무대에 오른다.
여자 캐릭터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뮤지컬의 탄생, 브로드웨이와의 합작, 250억원이라는 제작비, 수출을 목표로 제작된 창작 뮤지컬이라는 타이틀까지 <마타하리>는 무대가 공개되기 전부터 화제에 중심에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 속에는 프랭크 와일드혼이라는 든든한 이름도 자리한다. 그를 설명하기 위한 가장 편한 문구는 사실 ‘지금 이 순간’의 작곡가일 것이다. <지킬 앤 하이드>의 킬링 넘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뮤지컬의 상징 같은 곡. 이후에도 <드라큘라>의 ‘그댄 내 삶의 이유’ , <몬테크리스토>의 ‘언제나 그대 곁에’ , <황태자 루돌프>의 ‘평범한 남자’ 등 귀를 사로잡은 뮤지컬 넘버에서 그의 이름이 꾸준히 발견되자 사람들은 그에게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 작곡가’라는 또 다른 수식어를 붙여줬다. 폭발할 듯한 감정을 쏟아내는 무대를 좋아하는 한국 관객의 정서에 가장 잘 부합하는 작곡가라는 평가까지.
이는 결국 뮤지컬 음악은 캐릭터의 솔직한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고 믿는 그의 신념 아래 나온 결과다. 그렇기에 그의 작곡은 언제나 스토리에서 시작한다. <마타하리> 곡을 작업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도 다큐멘터리, 책 등 을 찾아보며 상상을 더하는 작업이었다.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매체에서 다뤘던 작품을 뮤지컬로 만들 때는 소리를 끄고 무성영화라고 믿으며 피아노 앞에서 작곡을 시작해요.” 프랭크 와일드혼에게는 매 작품마다 음악의 출발점이 되는 곡이 하나씩 있다. 작품의 영감이 되는 멜로디요, 뮤지컬 세계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곡이다. <마타하리>에서 그 역할을 한 곡은 ‘노래는 기억해’라는 작은 연주곡이다. “작곡할 때 장소를 음악화하는 작업이에요. ‘노래를 기억해’는 저에게 굉장히 프랑스적이고 슬프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멜랑콜리한 멜로디예요.” 프랭크는 마음속에 피어오른 작은 멜로디의 감성을 간직한 채 4년 동안 <마하타리>만을 위한 50여 곡의 노래를 작곡했다. 작곡가로서 <마타하리> 음악을 창작해내는 건 새로운 시도의 연속이었다. 그 시대 파리 물랭루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클럽이었다. 아메리칸 재즈, 조세핀 베이커, 아프리카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프랑스 인상주의와도 접목되어 있었다. 매일 화려하고 다채로운 무대가 올라갔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인도 음악, 드뷔시의 클래식 등과 과감한 장르적 접목을 시도했고 귀를 화려하게 수놓는 넘버가 여러 곡 탄생했다.
마타하리의 인생만큼 작곡에 영감을 준 건 마타하리 역할을 맡은 배우 옥주현의 목소리다. 2년 전 프랭크 와일드혼의 곡만으로 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을 정도로 둘 사이는 매우 특별한 관계다. ‘예전의 그 소녀’와 ‘단 한 번’이라는 곡은 프랭크가 옥주현을 위해 작곡한 곡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주디 갈랜드, 제 전부인 린다 에더, 휘트니 휴스턴, 나탈리 콜… 저는 옥주현이 그 계열이라고 생각해요. 사랑과 음악은 국경이 없어요. 최고의 배우는 언어에 상관없이 제가 작곡할 때 불어넣은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할 수 있어요. 옥주현이 그 감정을 꺼낼 수 있다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작곡했어요.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소울’이에요.” 전 세계 뮤지컬 무대에서 그의 음악이 울려 퍼지지만 사실 그는 작곡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미식축구 선수를 꿈꿨던 그는 열두 살 때부터 늘 캡을 쓰고 다닌다. 공식 석상의 턱시도 차림에서도). “어릴 때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자랐어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부터 차이콥스키, 이글스… 비틀스는 신 같은 존재고요. 제 인생의 팝 음악은 흑인음악이에요. 레이 찰스,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어요.” 실제로 그는 뮤지컬 음악을 하기 전 휘트니 휴스턴 ‘Where Do Broken Hearts Go?’를 비롯한 숱한 팝 히트곡을 썼다.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재즈 클럽에서 연주를 즐긴다. 서사 가득한 그의 음악의 뿌리에는 클래식과 팝, 자유분방함과 보편적인 정서가 있다.
대중의 코드를 솔직하게 따라가는 그의 작품은 브로드웨이보다는 유럽이나 아시아에서만 인정받는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브로드웨이와 제 관계는 복잡해요. 사실 저는 팝 음악, 그것도 흑인음악을 만들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지킬 앤 하이드> <스칼렛 핌퍼넬> <시빌 워>가 동시에 성공했어요. 백악관에서도 공연했고요. 브로드웨이에서 동시에 세 편의 공연이 올라간 건 미국인으로서 최초였어요. 하지만 비평가들은 싫어했어요. 저를 멈출 수 없었거든요. 하지만 계속 공연해왔고 브로드웨이에서 저처럼 열 편의 공연을 해낸 사람은 얼마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브로드웨이 비평에 가두기에 그가 세상에 내놓는 음악의 힘은 실로 강하다.
얼굴에 가득 새겨진 웃음의 길, 말할 때마다 뿜어져 나오는 활력의 기운. 프랭크 와일드혼은 작곡가를 넘어 기획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지만 매일 아침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얼마나 행운인 지에 대해 생각한다. “과거 해변에서 인명 구조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요. 부담스럽거나 우울할 땐 눈을 감고 계속 인명 구조원을 했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생각해봐요. 저는 늘 시라노 같은 삶을 살았어요. 이상하고 괴상해도 로맨틱한 긍정주의자처럼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제 음악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요. 지금 제 인생은 놀랍다고 생각해요. 굴곡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에요.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해요.”
지금도 그의 머릿속은 또 어떤 인물에게 마음의 방을 내줄지 분주하기만 하다.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작품은 실로 여럿이다. “몇 가지 힌트를 드릴까요? 유대인으로서 창작하고 있는 스토리가 있고요. 빅토르 위고의 로맨틱한 스토리, 카사노바, 무하마드 알리…. 내일 전화가 울리면 또 다른 작품이 시작되겠죠. 아, 정말 재미있지 않아요?”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KIM OI MIL
- 스타일리스트
- 엄지훈
- 메이크업
- 김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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