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5 in SEOUL – ⑤ Clare Waight Keller (클레어 웨이트 켈러)
패션계는 패션의 미래를 이끌 마켓으로 상하이와 도쿄가 아닌 서울을 지목했다. 그리고 2016년 상반기만 해도 많은 패션 전문가들이 서울을 방문했다. 서울에 들른 유명 디자이너 중 제일 영향력 있는 5인을 〈보그 코리아〉가 인터뷰했다. ▷ ⑤ Clare Waight Keller
우리는 클레어라는 이름의 여자들에 대해 특정한 인상을 갖고 있다. 대체로 몸매가 가녀리고, 머리카락은 어두운 금발 혹은 밝은 갈색이다. 창백한 얼굴엔 길고 부스스한 머리칼을 늘 드리우고, 눈빛은 부드럽지만 관조적이다. 그리고 화장을 하는 법이 거의 없다.
디자이너 자신의 스타일과 하우스의 방향이 오버랩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남자 디자이너가 자신의 시그니처를 여자들을 위한 버전으로 재해석하거나, 외출할 때 자신과 동행할 파트너를 상상하며 디자인한 여성복을 수없이 봐왔다. 모두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여자 디자이너들의 작업물에는 그것과 또 다른 친밀함이 있다. 그들은 자기자신을 옷을 사는 여자들과 동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그 방식은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어왔다. “내가 원하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건 확실해요. 완성된 컬렉션 곳곳에서 내가 입고 싶은 옷이 보이고, 그 옷들이 매우 도드라진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으니까요. 나 자신조차 확신이 없는 옷은, 그러니까 내가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은 다른 사람 역시 입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클레어 웨이트 켈러는 디자인할 때 자신을 이입하는 방식이 ‘여자들이 어떤 옷을 갖고 싶어 하는가’를 고려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라고 조용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실제로 끌로에는 70년대 아이코닉한 패션 하우스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칼 라거펠트 이후, 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여자 디자이너들에 의해 명맥을 이어왔다. 2006년부터 2년간 머물렀던 파울로 멜림 앤더슨을 제외하곤 스텔라 맥카트니, 피비 파일로, 한나 맥기븐, 지금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까지. 그들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투영한 끌로에 걸로 각자의 시대를 정의했다.
웨이트 켈러를 관찰하는 건 지금의 끌로에 걸에 대해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녀는 밝게 워싱된 70년대풍의 하이웨이스트 와이드 레그 데님 팬츠에 소매를 대충 말아 올린 샴브레이 셔츠 차림으로 논현동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한국은 난생처음이에요!”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함께 촬영할 ‘끌로에 걸’ 아이린과 길고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동행한 팀원과 함께 신중히 옷을 골랐다. 단독 포트레이트 촬영 때 입을 옷 한 벌, 아이린과 함께 촬영할 때 입을 또 다른 옷 한 벌. 촬영과 인터뷰가 끝나면 고대하던 서울 관광과 쇼핑을 즐길 시간이다(“예이!”). 촬영이 끝나고 다시 갈아입은 샴브레이 셔츠 소매 아래로 드러난 손목엔 가느다란 팔찌가 겹겹이 채워져 있다. 끝이 둥글게 말린 밝은 갈색 머리칼은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물결쳤는데, 그 사이로 말간 소녀 같은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영국식 악센트와 정확한 단어를 찾느라 말을 끄는 버릇을 제외하곤, 괴짜 같은 구석이 있는 런더너보다 나른한 파리지엔에 가까워 보였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매우 재미있어했다. “아마 5년째 파리에 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글쎄, 잘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면서 스타일도 바뀌니까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끊임없이 변한다는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한때는 6년 내내 드레스만 입은 적도 있고, 보이시한 스타일을 고수하기도 했죠. 꽤 많은 스타일의 변화를 겪었답니다.”
웨이트 켈러는 그녀와 같은 위치에 있는 몇몇 디자이너들처럼 까다롭거나 다루기 힘든 스타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내면은 여전히 영국적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답변이 어떻게 들릴지 신경 쓰기보다는 답안지를 작성하듯 정확한 답변을 하려고 애쓰는 편이다. 그녀는 처음 끌로에 하우스에 왔을 당시 파리 패션계의 인상에 대해 인터뷰에서 몇 차례 말한 적 있다. “당시엔 패션계의 모든 이목이 파리의 디자인 하우스를 향해 있었어요. 파리의 디자이너들이 자신을 다른 도시의 디자이너와 비교하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파리’의 디자이너들은 자신을 ‘파리’의 다른 디자이너하고만 비교하죠. 그들의 시각에서는 ‘파리‘ 그리고 나머지 전부를 아우르는 ’패션계’가 존재할 뿐인 거예요! 굉장히 흥미로웠죠. 자신이 패션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 건, 다른 도시에서는 낯선 접근이거든요.” 그녀는 영국인 특유의 신중하고 객관적인 어투로 말을 이었다. “한동안은 사람들과 같은 도시에서 일하고 있을 뿐,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다고 느꼈어요.”
그렇지만 파리가 문화, 역사, 아틀리에 등 모든 게 온전히 도시 자체에 특화된 독특한 곳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 것들이 파리를 다른 어떤 도시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곳으로 만든다. 그녀는 매 순간 패션의 중심에 있다는 감각을 느끼며 지난 5년 동안 여러 프로젝트를 착실히 처리해나갔고(새로운 판매 전략, 경험이 전무한 향수와 아이웨어 같은 라이선스 작업 등) 자부심으로 대변되는 보수적인 파리 하우스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찾았다. 그녀는 한결 가뿐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의 저는 회사가 어떻게 잘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결정을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고 초점을 맞추기도 훨씬 수월해졌죠.”
이 영국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녀가 얼마나 전략적인 온건파인지를 깨닫게된다. 이전 디자이너들은 끌로에 걸에게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끌로에를 눈여겨봐왔다면 컬렉션을 보기만 해도 어느 디자이너의 시기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오히려 끌로에와 약간의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 거리는 디자이너가 자신의 색을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리려다 하우스의 충실한 고객을 잃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한, 엄격한 자가 처방전 같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끌로에에 대해 매우 구체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로맨틱하면서도 동시대적인 태도라든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 지극히 끌로에다운 무심함 같은 거죠.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합쳐 끌로에를 완성합니다.”
그녀는 자신이 제시하는 끌로에가 70년대 끌로에 룩이 실제로 그랬던 것보다 훨씬 로맨틱하고 히피스럽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당시 라거펠트의 접근은 초현실주의적이었고, 그의 디자인에는 많은 예술 작품과 유머 코드에 대한 참고(웨이트 켈러는 1984년 S/S 컬렉션의 전구 드레스와 가위 드레스를 예로 들었다)가 있었다. 로맨티시즘이 있긴 했지만, 컨셉추얼한 디자인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팔을 움직이자 앤티크한 금속 팔찌들이 찰랑거리는 예쁜 소리를 냈다. “변치 않는 사실은 끌로에에는 늘 강한 관점과 태도가 있었다는 겁니다.”
노련하고도 현실적인 디자이너는 여자들이 끌로에에 대해 꿈꾸는 드라마틱함을 부풀린 뒤, 자신의 ‘보이시함’을 첨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생각하는 보이시함이란 스트리트 컬처와 쿨한 분위기예요. 지난 S/S 컬렉션의 옆선이 들어간 트랙 팬츠와 이번 F/W컬렉션의 가죽 모터크로스 팬츠 같은 거죠.” 그녀는 이런 아이템들이 흐르는 듯한 블라우스와 러플 장식, 조젯 크레이프 원단, 부드러운 파스텔 컬러 같은 끌로에 특유의 여성성에 에지 있는 태도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게 대비의 중요성이죠. 그렇지 않으면 구식으로 보일 거예요. 두 가지를 혼합하는 게 끌로에를 늘 신선하고 젊어 보이게 합니다. 그게 오늘날 거리에서 마주치는 여자들이 옷을 입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그녀의 이러한 공식 혹은 이론은 집업 트랙 톱이나 저지 탱크 톱에 롱스커트를 매치한 S/S 컬렉션 룩, 오토바이를 타고 홀로 여행을 하며 여행기를 쓴 안 프랑스 도트비유(Anne-France Dautheville)에게서 영감을 얻은 F/W 컬렉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S/S 컬렉션 쇼 직후 저널리스트와 패션 에디터들은 트랙 수트가 베스트셀러가 될 거라고 수군댔다. 웨이트 켈러는 언제나 전 시즌에 어떤 아이템이 가장 반응이 좋았는 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고 다음 시즌에는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도 미리 짐작하곤 한다.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엔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전 요즘 사람들이 그걸 원한다는 걸 알았죠. 그리고 실제로 엄청난 판매율을 기록했고요.”
1970~80년대 영국의 음악 신은 펑크와 뉴 로맨틱, 고스, 레이브 같은 모든 장르가 뒤섞인 채 공존했고 패션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뮤지션들이 대거 등장했다. 데이비드 보위, 록시 뮤직의 브라이언 페리, 블론디의 데비 해리 등. 이들은 영국 특유의 스타일에 대해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녀 역시 당시 영국에서 나고 자란 다른 이들처럼 영국 음악 문화를 ‘숨 쉬며 자랐다’. 그녀는 자신의 ‘보이시함’이 영국적인 배경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국가 기밀을 공유하듯 은밀하게 속삭였다. “영국인들은 음악을 사랑하고, 그 음악이 가져오는 태도의 느낌을 좋아합니다.” 그녀는 어릴 적 패션 매거진만큼 음악 잡지를 좋아했고 거기서 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런던의 왕립 예술대학에서 니트웨어를 전공하는 동안 여느 패션 학도들처럼 온갖 요란한 스타일을 시도했고, 주말이면 벼룩시장과 샘플 세일을 쫓아다녔다. 그녀는 존 갈리아노의 샘플 세일에 갔던 때를 떠올렸다. “그가 학교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자신의 레이블로 샘플 세일을 한다기에 우리는 그가 뭘 했는지 보러 간다는 사실에 잔뜩 들떠 있었죠!” 지금의 모습을 보면 천방지축 같은 당시를 상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올해 마흔다섯 살인 우아한 그녀의 옷장은 블라우스와 셔츠, 보이시한 컷의 팬츠, 데님, 니트, 기다란 스커트와 나풀거리는 옷으로 가득하다. 특히 끌로에 블라우스의 양은 엄청나다. 무려 스물다섯 벌이 넘는다! “정말 좋아해요. 아주 많은 실크 블라우스를 가지고 있죠. 코튼 소재도 있고요. 그렇지만 한 시즌에 열 벌씩 사재기를 하진 않아요. 10년 이상 매 시즌 혹은 1년에 한 벌씩 꾸준히 사 모은 거죠.” 그녀의 옷장에 대한 개념은 끌로에 걸을 위한 실리적인 워드로브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행을 반영한 직접적이고 패셔너블한 아이템은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클래식한 피스와 나란히 걸려 있다. 물론 끌로에 블라우스는 클래식으로 분류된다. “제가 보기에는 매우 합리적인 투자예요. 아름다운 옷은 오래 입을 수 있으니까요.”
하우스를 대변하는 아이코닉한 아이템으로 끌로에 블라우스의 명성은 샤넬 백 못지않다. 그리고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그건 당연하기도 하지만, 의문스럽기도 하다. “원단 직조 때문이에요. 매우 질 좋은 이탈리아 실크를 사용하거든요. 그리고 그 원단을 가져다가 프랑스에서 만들죠. 알다시피 프랑스는 옷을 짓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곳 중 하나입니다. 물론 아틀리에의 숙련된 장인도 한몫하죠. 솜씨 좋은 수작업은 마무리 작업에서 빛을 발하니까요.” 디자이너는 우리가 저렴하게 만들어진 것과 비싸게 만들어진 것의 차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스티치, 하나의 이음새조차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만약 칼라나 셔츠의 앞섶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입는 즉시 그걸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질 좋은 옷을 입어본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진실이다. “블라우스는 10년 이상 입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잘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아이템이에요. 질이 양을 앞선다는 프랑스 패션 철학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1년 뒤면 입을 수 없게 될 다섯 벌보다 제대로 된 한 벌이 더 낫다는 겁니다.” 그녀는 좋은 옷은 오래 입을 뿐 아니라 딸에게도 물려줄 수 있다고 하지만, 막상 그녀의 아이들이 실제로 그녀의 옷을 입고 싶어 할지는 미지수다. 그녀는 건축가 남편 필립 켈러와의 사이에 쌍둥이 딸인 아멜리아와 샬럿, 그리고 막내 아들 해리슨 3남매를 두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누구도 그녀의 옷장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이들은 자기 스타일대로 입어요. 두 딸은 이제 막 10대가 된 터라 뭐든 자신의 것을 하려고 하죠. 사실 그다지 패션에 관심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아요. 아직은 어려서, 좀 수줍어하죠. 튀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이라는 듯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만 제 패션쇼에 오는 건 좋아한답니다. 확실해요.” 그녀는 끌로에의 제안을 받아들인 후 가족이 다 함께 파리로 이사하기까지의 과정, 아이들의 거부감(“‘가고 싶지 않아, 난 파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고’라며 심하게 반항했죠”), 파리 생활의 장단점(“처음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노!’예요.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긴 협상 과정이 필요하죠.” “멋진 도시예요.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기를 제외하곤 아주 평화롭고 살기 편한 곳이죠”), 아이들이 어떻게 파리를 좋아하게 됐는지(“두말할 필요 없이 음식이죠.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동경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에 대한 사적이고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수다 떨듯 늘어놨다.
그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과 가정생활 사이에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성공한 여자 디자이너들 중 한 명이다. 외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흥청망청 놀기 좋아하는 사람보다 일이 곧 삶인 사람들이 더 많은 패션계에서 정확하게 구획된 삶의 방식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집에 있을 때는 이메일을 확인하지 않아요. 사무실에서는 아이들한테 전화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물론 귀가 시간이 늦어질 수는 있지만, 일단 일에 집중해서 해야할 일을 다 하고 나면 편한 마음으로 집에 갈 수 있죠. 그게 중요해요. 집에 가서도 여전히 일 생각에 빠져 있다면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죠.”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다시 런던으로 이주할 거라는 사실에 대해 알게 됐다. “서로 다른 문화를 혼합하는 것에 대해 생각 중이에요. 5년 전 파리에 오기로 결정했을 때처럼,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싶어지는 거죠. 런던, 파리, 다시 런던에서 살면 두 문화를 잘 섞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다. “사실,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거든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기에 돌아가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거예요.” 그럼 다음 끌로에 컬렉션에서 두 문화가 혼합된 걸 발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지금 내년 프리 컬렉션을 작업 중인데, 런던과 파리 벼룩시장에서 발견한 멋진 획득물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답했다. 재차 2017년 S/S 컬렉션에 대해 질문하자 보채는 아이를 대하는 엄마처럼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 다음 쇼 말이군요. 아직 작업 전이에요. 이제 돌아가면 시작하려고요. 하지만 아직은 아니에요.”
- 에디터
- 송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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