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 제국의 니콜라 제스키에르
럭셔리를 표현하는 데 요란한 장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여성스럽고 세련된 실용미, 미래적인 위트와 미학, 전통과 혁신 사이에서 균형 잡힌 패션 세계를 구축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여전히 동시대 트렌드에 영향과 영감을 주고 있다.
VOGUE KOREA(이하 VK) 지난 2016 F/W 쇼 이후 뭘 하며 지냈나?
NICOLAS GHESQUIÈRE(이하 NG) 다음 광고를 준비했다. 또 안나 윈투어, 칼 라거펠트, 미우치아 프라다와 함께 멧 볼을 준비하면서 지냈다(올해 멧 갈라에서 ‘Honorary Chair’로 참여했다). 그리고 리우에서 열릴 크루즈 컬렉션을 준비 중이다. 그 외 다른 프로젝트와 다음 컬렉션 준비로 쇼가 끝난 후에도 쉴 틈 없이 지냈다. 분주함을 좋아하기에 괜찮다. 특히 매년 3월은 기성복 쇼 이후 곧장 크루즈 쇼가 있어서 굉장히 바쁜 편이다.
VK 가을 컬렉션을 위해 준비한 검은 기하학적 건축물과 그 안에 펼쳐진 세상은 실로 놀라웠다. 이번 가을 쇼 스토리는 어떻게 시작됐나?
NG 이번 스토리를 루이 비통의 ‘새로운 여행’ 그리고 ‘모험’으로 요약하면, ‘고고학적 유적지 발견’이다. 하우스의 오랜 과거와 현재, 동시대적 비전을 합치는 것에서부터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이런 발상은 쇼장의 세트를 완성하는 데 큰 영감이 됐다. 루이 비통 쇼는 늘 이런 식의 모험과 여행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지난 시즌 주제가 ‘디지털 여행’이었다면 이번 쇼는 ‘과거와 현재의 탐험’에 관한 이야기다. 덕분에 우리 입장에서도 굉장히 흥미로운 시즌이 됐다. 강렬한 프로포션을 완성했고, 타임리스 스타일을 더했을 뿐 아니라 내가 해석한 루이 비통 쇼 중 가장 클래식한 컬렉션이 완성됐다.
VK 여행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듯하다. ‘공상 과학적’이었던 예전 작업과 달라 보이지만 공통점도 있다. ‘여행’이라는 주제는 루이 비통 하우스의 역사와도 관련 있나?
NG 그렇다. 하우스에 영감이 되는 것도 여행이니까. 대표적 예가 러기지와 트렁크. 더 나아가 이 두 가지 뒤에 감춰진 루이 비통의 ‘이야기’, 즉 루이 비통이 만들어낸 패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행과 여행 가방, 트렁크, 가방의 견고함 그리고 이를 둘러싼 패션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VK 하우스의 전통에 의존하기보다 현시대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컨셉을 제안한 디자이너들이 하우스를 부활시키는 데 성공했다. 당신도 같은 방식으로 루이 비통을 이끌고 있나? 루이 비통에서 당신의 비전은 뭔가?
NG 하우스가 만든 유산, 하우스의 스토리를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루이 비통이 내게 손을 내민 가장 큰 이유는 ‘혁신’이 아닐까? 내 역할은 새 아이디어를 찾고, 새로운 실루엣을 찾는 것이다. 루이 비통은 클래식한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1854년, 루이 비통은 기존에 없던 스타일을 발명한 혁신적 브랜드였다. 나는 그 전통과 사상을 그대로 옮겨오고 싶다. 동시에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을 보여주고 싶다. 이런 나의 비전이 하우스에 영감을 준다. 한마디로 아주 강렬하고 혁신적인 포인트를 만드는 것. 그 포인트가 ‘뉴 클래식’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패션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이다.
VK 당신 말처럼 루이 비통에는 혁신과 전통이라는 이중성이 공존하는 것 같다.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면서 아카이브를 재해석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듯하다. 이번 가을 쇼엔 아카이브를 어떻게 해석했나?
NG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부분은 새롭게 재해석할 아카이브를 먼저 고르는 일이다. 내가 본 모든 아카이브를 재해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그랑 팔레에서 진행된 전시회(<Volez, Voguez, Voyagez> 전시로, 루이 비통 트렁크가 교통수단이 바뀌는 것에 따라 형태나 디자인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아카이브 트렁크로 보여줬다)는 대단했다. 그곳을 방문한다면 루이 비통의 아카이브가 얼마나 광범위한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엄청난 아카이브에서 다시 재탄생시킬 아이템을 골라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VK 요즘 고객들에게 인기를 얻는 건 길거리의 에너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런 요소에도 흥미가 있는가?
NG 물론이다. 내가 도시에서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영감이 된다. 또 내 주위 사람들, 내 주변의 여자들, 예를 들어 배두나처럼 뮤즈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녀들과 많이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그렇기에 여자들이 나에겐 굉장히 중요하다.
VK 요즘 하이패션마저 ‘디지털’ ‘사이버 공간’이라는 신개념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이패션 하우스의 수장으로서 디지털에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 루이 비통 역시 비디오 게임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 라이트닝을 모델로 기용하지 않았나?
NG 먼저 디지털 라이프, 버추얼 리얼리티는 이미 우리 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시즌 우리는 파이널 판타지의 캐릭터 라이트닝을 ‘디지털 히어로’로 선정해 작업했다. 루이 비통 입장에서는 몹시 흥미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실존 인물이 아닌 가상의 여성 캐릭터를 모델로 기용했다는 것 자체가 혁신적인 일이니까. 그리고 작년부터 패션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도 많이 변했다. 특히 루이 비통의 팬들과 직접 소통한다는 건 흥미롭다. 회사에서 말해주지 않아도 그들이 뭘 좋아하는지, 또 새로운 작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쉽게 알 수 있으니까. 또 하나 흥미로운 건 가상(Virtuality)과 인공성(Artificiality) 그리고 현실(Reality)에 관해 연결 짓고 그것을 통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디지털과 가상 세계를 ‘컨트롤’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현실 세계는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 디지털이나 가상 세계를 하우스와 연결하려고 하는 이유다.
VG 흥미롭다.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NG 디지털 세계에는 비디오 게임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그런 것이 요즘 특정 세대의 여성들을 통해 현실 세계로 옮겨오고 있다. 또 그들은 스스로를 디지털 세계에 반영한다. 디지털 세계의 캐릭터를 현실로 옮겨 현실에 존재하는 진짜 뭔가로 만들고 있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작업 중 하나다.
디자이너인 내게는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이 같은 변화에 찬성한다 혹은 찬성하지 않는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 대다수 브랜드가 리테일러들처럼 변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컬렉션은 그와는 다른 타임라인에서 만들어진다. 또 하우스는 유통과 창조적 작업 사이의 메커니즘을 연결해 관리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내게 필요한 창작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노력한다. 균형을 맞추는 일이 쉽진 않지만.
VK 구찌와 버버리처럼 패션쇼를 여는 동시에 매장에서 아이템을 살 수 있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NG 누군가는 시작해야 하는 움직임이다. 사람들이 뭘 사고 어떤 것이 사진 찍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니까. 장인 정신은 지키면서도 제작과 판매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판매 전략이 될 것이다.
VK 루이 비통은 여행 가방으로 먼저 유명해진 가죽 하우스다. 하우스의 배경이 부담이 될 수 있겠다. 그동안 당신의 컬렉션은 액세서리보다 옷이 우선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당신이 선보이는 가방 컬렉션을 보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백과 전혀 새로운 디자인까지 선보인다(발렌시아가 하우스 시절 그의 비즈니스 업적 가운데는 가방이 절대적으로 포함된다). 그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백은 어떤 건가?
NG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모든 백을 다 사랑하지만 그중 하나를 꼽자면 ‘쁘띠뜨 말(Petite Malle)’이다. 당시 나는 ‘빅 말(Big Malle, 전통적 하드 케이스 트렁크)’ 같은 백을 좀더 화려하게 만들어 요즘 여성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싶었다. 낮은 물론 밤에도 자유롭게 들 수 있도록 작은 사이즈의 클러치백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내가 루이 비통에 합류한 뒤 내놓은 첫 아이디어였는데 첫 시즌 쇼에 오프닝 룩과 함께 선보였다. 그 때문인지 크게 히트 쳤다. 그래서 내겐 아주 자랑스러운 백 중 하나다.
VK 당신을 보면 늘 천재, 실험, 혁신 같은 수식어가 먼저 떠오른다. 당신의 실험주의를 이번 패션쇼에선 어떻게 보여줄 생각인가?
NG 텍스처! 물론 실루엣도 강조했지만. 내가 생각하는 루이 비통은 늘 스포티한 면을 갖고 있다. 여행이라는 이동성과 역동성이 주는 스포티함. 이것을 고급스럽게 표현한다는 게 꽤 도전적인 과제였다. 요즘 많은 브랜드가 스트리트 감성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실험적인 럭셔리 스포츠 룩을 보여주고 싶었다.
VK 개인적으로 당신의 첫 루이 비통 컬렉션에서는 체크 블레이저와 가죽 레깅스가 인상 깊었다. 루이 비통를 입는 여자들이 그저 패션 판타지를 좇는 게 아니라 실용적인 동시대 감각도 갖췄다는 걸 보여주는 아이템이니 말이다. 가을 컬렉션 역시 구조적인 테일러링 시리즈가 맘에 들었다. 디자인할 때 당신의 관점을 보여주기 위해 어디에 초점을 맞추나?
NG 실루엣. 당대 여성들에게 뭐가 필요한지, 요즘 남자들이 꿈꾸는 실루엣, 그들이 꿈꾸는 여성들이 입을 듯한 옷을 찾는다. 내가 패션계에서 일하고 싶어 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한데, 남자들이 원하는 여성상을 표현하고 싶다. 이번 쇼에 소개된 팬츠는 영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보이시 스타일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내겐 동시에 여성스럽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글로시한 레깅스는 아주 섹시하고 남성 재킷을 닮은 재킷은 매우 페미닌하다.
VK 배두나와의 인연도 궁금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NG 개인적으로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 그중 영화 <괴물>은 여섯 번이나 볼 만큼 좋아한다. 왠지 모르게 <괴물>에 많이 집착했는데 한국에 가보지 않은 내게 영화 세트라든가 서울, 한강 이미지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중 영화 속 배두나의 스포티한 룩은 아주 강렬했다. 그 후 배두나가 출연한 다른 영화도 챙겨 봤다. 루이 비통에 합류한 직후, 회사에선 한국에서 초대하고 싶은 인물이 있는지 내게 물었고 나는 그들에게 배두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2년 전 모나코에서 열린 크루즈 쇼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VK 팬심이 더해져 더 반가웠을 것 같다.
NG 당시 짧은 보브 컷 헤어에 내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었다. 루이 비통을 입은 배두나의 모습은 딱내가 원하던 여성상 그대로였다. 배두나는 과하지 않으면서도 아주 세련됐고 보이시한 동시에 페미닌했으며 부끄러움을 타는 것 같았지만 자신감 넘쳤다. 섬세하지만 강인한 성격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더 자주 보게 됐는데 우리는 내 친구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등 정말 절친한 사이다. 대단한 재능을 지닌 그녀는 한국에 딱 걸맞은 이미지를 지녔다. 난 그녀의 예술적 감각 또한 높이 산다. 그녀를 통해 본 한국 문화는 특별했고 그렇기에 배두나가 루이 비통의 글로벌 모델로서도 아주 적합하다고 본다. 그녀는 내 친구이기도 한 샤를로트 갱스부르를 연상시킨다. 쿨하면서도 독립적이고 모던한 이미지! 이 정도면 내가 왜 두나를 좋아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나?
VK 루이 비통에서 일하며 당신을 가장 신나게 하는 건 뭔가?
NG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건 한계가 없다는 사실이다. 20년 전 팜스프링스에서 본 ‘드림 하우스’에서 쇼를 열게 해주는 브랜드는 루이 비통밖에 없을 테니까. 디자이너인 나는 기능과 실용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현실에 어울리는 옷과 가방을 디자인해야 하지만 루이 비통엔 한계가 없다.
VK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이 정의하는 럭셔리란?
NG 몇 가지 요소가 있는데 충분한 시간과 기술(Craft), 혁신적 디자인. 이 모든 것을 합한다면 럭셔리를 능가하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뛰어난 지성을 바탕으로 그걸 구체화하고 현실화할 때다. 럭셔리함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그것이다.
- 에디터
- 손은영
- 포토그래퍼
- PATRICK DEMARCHELIER, COURTESY OF LOUIS VUITTON
- 헤어
- 다미앵 부아시노(Damien Boissinot@Jed Root)
- 메이크업
- 교코 기시타(Kyoko Kish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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