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우 올림픽의 청춘 주연들 – ② 장혜진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축제는 끝났다. 그곳에서 메달과 관계없이 우리에게 강렬한 뭔가를 남긴 리우 올림픽의 청춘 주연들. 매트 위에 선 자체로 아름답지만, 오늘 서울에서 또 다른 나로 새로운 인사를 건넨다. 누구에게 올림픽은 폭주하듯이 달려가는 목표였고, 누구에게는 산뜻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올림픽을 빼고도 할 이야기는 많다. 〈보그〉 뷰파인더 안에서 그들은 또 다른 영웅이다. ▷ ② 장혜진
장혜진이 쏘아 올린 작은 화살
장혜진의 머리카락은 눌려 있다. 그녀의 머리를 스타일링하던 스태프는 “오랜 기간 모자를 써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양궁을 시작했으니 20여 년간 거의 매일 모자를 쓰고 야외에서 활을 쐈다. “대학 시절 머리를 부풀리려고 파마를 세게 했어요. 지금도 절 만나면 ‘뽀글이’라고 부르는 선배가 있을 정도죠.”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실업팀에 간 뒤에야 국가 대표가 됐다. 그 전까지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상관없었어요. 국가 대표는 못 돼도 전국 대회 메달은 종종 땄거든요. 작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도 의미가 다르지 않아요. 무엇보다 양궁 자체가 좋았어요.” 양궁의 어떤 점이 좋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한참을 망설였다. 뭐라고 말해야 내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는 느낌. “활에 빠진다고 해야 할까요. 그 몰두하는 시간… 그땐 오직 나와 과녁만 있죠.” 대신 그녀는 양궁이 있어서 생생한 학창 시절을 이야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밤늦게까지 선생님과 연습을 했어요. 아빠가 자동차 라이트를 켜면 눈이 부셔도 활을 쐈죠. 다 끝나면 선생님 집에 가서 밥도 먹고 공기놀이도 했어요.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중학교 때는 자신보다 활을 잘 쏘는 선배들을 부러워했고, 고등학교 때는 기숙사 생활과 엄격해진 훈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잠시 방황했다. “호된 훈련이 여고생에게는 좀 힘들었나 봐요. 부모님과 선생님 덕분에 다잡을 수 있었죠. 되돌아보면 정말 순간순간이 다 기억나요.” 그녀의 추억은 모두 양궁과 함께였다. 막힘없이 말할 만큼 또렷했다. 그리고 친구, 선생님, 함께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따뜻한 기억이다.
장혜진이 소속된 LH 양궁팀의 감독은 “경쟁에서 이기려면 좀 이기적이어도 되는데, 너무 따뜻한 선수”라고 그녀를 설명한다. 역시 장혜진은 자라면서 “네가 살아남으려면 독해져야 한다. 너는 주위를 너무 배려한다”는 말을 늘 들어왔다. 그래서 동고동락한 언니, 동생들과 국가 대표를 놓고 경쟁할 때 양궁은 극한 직업이 된다. “중요한 선발전인데도 활을 쏠 때 마음이 약해질 때가 있어요.” 리우 올림픽에서 강풍이 불자 “내만 바람 부나”라면서 어느 선수보다 빠르게 시위를 당겼고, 3점을 쐈을 때도 흔들림 없던 선수지만,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여려진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국가 대표 세 명을 뽑는 자리에서 아쉽게 4위로 탈락했을 때도 그녀는 SNS에 선발된 선수를 축하하는 글을 남겼다. “오히려 그때 4등을 해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수로서 저를 다시 한 번 점검했거든요.” 이번 리우 올림픽 선발전도 극한 경쟁이었다. 내내 앞서다가 막판에 6위로 밀려났고, 그녀의 말처럼 “하늘이 도와” 최종 세 명 안에 들 수 있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때도 이 피 말리는 선발전을 치러야 할 거다. “아, 또 한 번 그 과정을 이겨내야겠죠. 하지만 너무 먼 얘기라서 잊고 싶어요. 제가 원래 큰 꿈을 잘 안 꿔요. 지금 이 자리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2020년이 되어 있겠죠. 인생도 마찬가지예요.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죠.” 장혜진은 현모양처가 꿈이고, 양궁 선수로 은퇴하면 취미로 배드민턴을 치고 싶다. “배드민턴은 양궁과 팔 움직임이 반대라서 그만뒀거든요. 취미로 다시 시작해보고 싶어요.” 지도자가 되거나 양궁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거창한 말은 하지 않는다.
- 글
- 김나랑 (프리랜스 에디터)
- 스타일 에디터
- 송보라
- 포토그래퍼
- KIM YOUNG JUN
- 헤어
- 김선희
- 메이크업
- 이나겸
- 네일
- 박은경(유니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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