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나이트의 미래를 향한 관심
패션이 지닌 혁신적 면모를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표현해온 사진가 닉 나이트(Nick Knight)는 더 이상 사진가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다. 그는 사진 기술과 개념의 영역을 확장한 ‘이미지 메이커’이자 아름다움의 가치를 새롭게 써나가는 ‘패션 민주주의자’다. 닉 나이트의 미래를 향한 관심은 단순히 사진에 그치지 않고 세상의 미적 기준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어진다. 한국 전시를 앞둔 그가 지난 40년간의 행보를 관통하는 혁명적 직관과 사유의 원형을 〈보그〉에 털어놓았다.
The Show Must Go On
문 앞에는 ‘더 쇼 스튜디오’라고 쓰여 있었다. 가운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천장까지 뻥 뚫린 공간이 펼쳐졌다. 자연광이 쏟아지는 공간에는 긴 테이블이 몇 개의 의자와 함께 놓여 있었다. 원래 교회였던 이 건물은 바로 어제부로 닉 나이트의 스튜디오로 불리게 됐다. 회색 수트를 입고, 흰색 행커치프를 네모반듯하게 꽂은 남자가 나타났다. 지난 40년 동안 사진가로 활동했고, 패션 사진사에 길이 남을 역대급 사진으로 늘 회자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미지 메이커’라 불리거나 언제든 새롭게 호명되길 욕망하는 남자, 이미지와 변화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독실한 패션 민주주의자, 닉 나이트다.
오는 10월 6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닉 나이트 사진전-거침없이 아름답게> 전시에서는 로큰롤 정신을 담은 ‘스킨헤드’ 사진부터 진화된 개념의 작업 공간인 ‘쇼 스튜디오(www.SHOWstudio.com)’까지, 음악, 아트, 패션 신에서 일구어온 닉 나이트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진보적인 이미지가 강한 한국에서 전시를 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그는 생애 첫 한국 방문에 대한 기대, 처음으로 여는 회고전에 대한 단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머무는 게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덧붙였다. 그리고 전시장을 함께 거닐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전시 구성은 물론 에피소드, 철학, 명분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인터뷰를 넘어선 대화의 기술은 닉 나이트가 지난 40년 동안 확장시킨 사진의 기술과 개념, 패션의 존재 이유만큼이나 매혹적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데 머물지 않는 닉 나이트의 실험은 아직 실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매체를 향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이미지’라는 언어와 인터넷이라는 글로벌 플랫폼 그리고 숱한 디지털 기술이 꾀할 신세계. 인터뷰 말미, 그는 쇼 스튜디오를 런던과 LA에 이어 서울에도 오픈하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이번 전시는 닉 나이트 버전의 혁신의 서문이며, 그러므로 이 인터뷰는 “바깥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것을 창조하라”고 독려하는,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다.
40년 동안의 작업 중 과연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그것이 당신이 이 전시를 기획한 이유이자 목적이 될 테니 말이다.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보다 미래를 내다보는 걸 더 선호한다. 그래서 회고전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전시가 첫 회고전이 됐다. 전시를 하기로 한 후 작업을 모아 전체로 보고 있자니 어떻게 이 이야기를 전달하고, 소통하고, 관객들과 만나야 할지 고민됐다. 그리고 가장 첫 번째 사진 작업 ‘스킨헤드(Skinhead)’로 이번 전시를 열기로 했다. 1979년 대학 시절의 가공되지 않은 사진이다. 그때 이후로 처음 사진을 들여다봤다.
어떤 형식으로 사진을 모은 건가? 설마 오리지널 버전을 볼 수 있나?
당시의 사진은 모두 네거티브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디지털 기술로 가능하다. 오리지널 프린트를 네거티브로 스캔해서 맞는 ‘느낌’을 고민하고 재현했다. 전시는 그렇게 ‘스킨헤드’에서 ‘포트레이트’ 섹션으로 이동한다. 1985년 <i-D> 매거진을 위해 100장의 포트레이트를, 2009년에는 서머셋 하우스 전시에서 20일 동안 200장의 포트레이트를 촬영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라이브 스튜디오를 연출했는데, 레이디 가가부터 나오미 캠벨까지 등장했다.
정말 획기적인 전시였다. 아쉽게도 라이브 스튜디오 섹션은 못 봤지만, 당시 전시가 불러일으킨 반향을 기억한다!
‘퍼포먼스 아트’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번 여름, 전시 당시의 클립을 인터넷에 공개했는데 170만 명이 영상을 관람했다. 보통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모델, 어시스턴트, 아트 디렉터 등 몇 명에게만 공개되는 과정을 전시로 재현한 거다. 그것이 내가 ‘쇼 스튜디오’를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스튜디오를 사람들에게 오픈해서 보여주고 (Show) 싶었다.
왜 스튜디오를 공개하고 싶었나?
나를 매일 아침 침대에서 나오게 하는 원동력이니까. 내가 진정 흥미롭다고 여기고 나를 흥분시키는 작업이다. 당시 잡지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속상하기도 했다. 광고를 하지 않는 알렉산더 맥퀸의 옷은 잡지에 실리지 않던 시절이었고, 흑인은 물론 동양계 모델 대신 대부분 백인 모델을 내세웠다. 난 쇼 스튜디오를 통해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때론 충돌을 통해 아름다움(Intrusive Beauty)이 표출되기도 한다.
서머셋 하우스에서의 라이브 스튜디오 플랫폼은 어땠나? 관중의 반응이 궁금하다.
레이디 가가 촬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많은 팬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렸다. 그녀가 스튜디오와 팬들 사이에 있던 이중 거울로 얼굴을 보며 립스틱을 바르자 현장은 환호성과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유명세를 향한 대중의 열망 그리고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외부는 보이지 않는 오묘한 ‘접촉’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스킨헤드’과 200장의 포트레이트에 이어 다음 공간에는 무엇이 연출되는가?
나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작업한 몇몇 디자이너들과의 작업을 보여준다. 모두 ‘진정한’ 관계들이다. ‘Designer Monographs’ 섹션을 통해 내가 사랑에 빠진 디자이너들의 아름다운 작업세계를 내 심장과 영혼을 담아 표현한 작업을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을 꼽는다면?
디자이너 요지 야마모토와는 1986년 처음 작업했는데 그는 내가 사랑하는 패션의 모든 면을 지지하고 있었다. 당시 패션은 ‘파워 드레싱’과 여인의 몸매를 강조한 옷이 주를 이뤘는데, 요지 야마모토와 레이 가와쿠보는 ‘여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옷을 만들었다. 깊게 파인 가슴선과 몸매를 보여주지 않아도 여인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준 두 사람의 작업은 무척 신선했다. 완벽하게 재단된 코트의 볼록하게 튀어나온 붉은색의 버슬 뒤태는 스스로 아름다운 이미지를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에 ‘적당한 프레임’만 입히면 됐다. 이후 마틴 싯봉과 질 샌더,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전시는 다음 공간으로 이동한다.
아직 열리지도 않은 서울 전시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다음 공간은 어떻게 펼쳐지나?
다양한 이슈를 테마별로 풀었다. 사진과 페인팅의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 같은 거 말이다. 매체가 서로 ‘크로스오버’하는 요즘이다. 난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영상에서 스틸 샷을 얻을 수도 있다. 이미지를 움직여 페인팅하듯 작업할 수도 있으니, 각 매체의 시작과 끝이 모호해진 셈이다. ‘이미지 메이킹’ 작업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전시의 영문 제목도 ‘이미지’로 정했다.
이미지를 만들고 작업하는 과정이 어떻게 진화했다고 보나?
당연히 디지털 사진의 등장과 연관이 깊다. 80년대부터 시작되어 90년대 중반에 디지털 이미지 메이킹이 확산되었다는 건 전통적인 사진 작업의 한계가 확장되었다는 의미였다. 마치 페인팅 작업을 하듯, 디지털 사진은 그 깊이감을 분할하는 작업을 통해 명도를 조절함으로써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게 가능하다. 또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전통적인 사진’이 갖고 있던 경계를 넘어서는 일이 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작업은 더 이상 ‘사진’이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인 것이다.
극과 극의 개념인, 디지털 사진 작업과 페인팅을 비유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최근 아름다운 장미를 사진으로 촬영한 후 습도가 아주 높은 스튜디오에서 아세테이트 필름 위에 인화한 다음 스팀을 이용해 페인트를 그 위에 얹어 움직이며 작업했다. ‘페인트’라는 매체를 인화지 위에 사용한 이 작업은 ‘페인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미지 메이커라고 스스로 생각한다는 건가?
그렇다. 내가 사진가로 시작한 당시에는 카메라의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을 여과해 필름 위에 그 흔적을 확산해 기록하는 작업이었고 수많은 사진가들이 계속해서 해온 일이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다르다! 어느 순간 모든 게 변했다. 사진은 한때 ‘갤러리’ 아니면 ‘매거진’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정의 내려졌다. 하지만 인터넷의 출현 이후 사진은 그 세계에서 존재하고 우린 대부분의 이미지를 휴대폰을 통해 보게 된다. 이건 거대한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실제 휴대폰으로 작업하기도 하나?
물론이다. 한번은 쇼 스튜디오에 공개된 촬영 세션에 왜 휴대폰으로 촬영하느냐고 강력하게 항의하는 댓글이 올라와 놀란 적이 있다. 클라이언트가 아니라 관중의 항의라 그 이유가 궁금했다.
과거 사진이라는 매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1850년대 화가들은 사진의 등장에 항의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했다. 다만 지금은 변화가 더 빠르다. 전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런던에 사는 내가 서울에 사는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세상 아닌가.
이 변화를 어떻게 포용했나?
우리는 패션 필름, 라이브 중계 등을 통해 변화를 선동하고 있다. 리 맥퀸(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이들이 알렉산더 맥퀸을 부르는 호칭)의 2010년의 F/W 컬렉션 쇼, ‘플라토의 아틀란티스(Plato’s Atlantis)’를 라이브로 중계하기 위해 캣워크 위 양옆에 레일을 설치한 후 거대한 카메라가 모델과 함께 런웨이를 따라가다 방향을 돌려 프런트 로에 앉은 안나 윈투어, 그레이스 코딩턴을 생중계했다. 레이디 가가가 자신의 싱글 ‘배드 로맨스’를 지금 쇼장에서 발표한다는 트윗을 남기는 바람에 600만 명이 접속을 시도해 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 지금은 70%에 가까운 쇼를 생중계하지만 당시로선 획기적인 일이었다. 맥퀸을 모르는 가가의 팬들이 그의 쇼를 보면서 패션에 대한 놀라운 ‘욕구’를 창조한 것이다. 쇼는 디자이너와 관람자들의 첫 접촉이 일어나는 현장이고, 이 순간이 열리면서 옷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것 아닌가.
당신이 기억하는 패션과의 첫 접촉은 언제인가?
외교관인 아버지 때문에 우리 가족은 파리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60년대 당시 생로랑 리브 고쉬(이브 생 로랑의 숍)에서 쇼핑하는 ‘신여성’이었다. 어머니는 하루에 네 번 옷을 갈아입고 아침, 오전의 중반, 디너(영국식 점심), 하이 티(애프터눈 티) 그리고 만찬(상류층의 ‘저녁 식사’ 문화) 즐기는 걸 당연시하던 세대다. 반면 아버지는 평생 수트만 고집한 분이셨다. 그가 ‘선택(Electing)’한 패션 스타일은 그에 대해 많은 걸 표현하고 있다. 난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돌아가시는 마지막 순간 어머니는 맥퀸의 옷을 입겠다고 선택하셨고, 어머니를 <보그> 모델로 세운 적도 있다.
지금처럼 말끔한 수트 차림이 일종의 ‘유니폼’인가?
물론이다. 데님은 일할 때만 입는다. 난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걸 즐긴다. ‘오늘은 존 갈리아노 촬영인데, 그는 이 옷을 입겠지, 모델은 또 어떻고’ 등의 생각이 꼬리를 잇는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거다. ‘아니다, 집을 나서고, 내가 해야 할 일인 이미지를 찍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모두가 아는 하나의 룩을 만들면 그걸로 끝!’ 내 클라이언트 중 하나가 새빌 로우의 ‘킬고어(Kilgour)’라서 크게 도움이 된다.(웃음)
다시 전시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의 눈을 열어주고 싶다고 표현했는데, 오늘날 급격히 변화하는 패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당신 의견은 어떤가?
패션 잡지를 통해 세상을 알아갔고 지금은 잡지 칼럼을 쓰는 입장에서 ‘긴 형태의 콘텐츠’에 익숙해 해시태그 언어를 익히는 데 1년 반이 걸린 것 같다. ‘도구’로서 언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유효한 얘기다. 쇼 스튜디오는 ‘긴 형태의 콘텐츠’를 지향하는 웹사이트다. 우리는 에세이, 스토리, 깊이 있는 인터뷰 등을 ‘발행’한다. 우리는 센트럴 세인트 마틴 스쿨은 물론 런던 내 다양한 대학의 ‘주요 정보원’ 역할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의 에세이를 읽고, 패션쇼 기간에 일어나는 1시간 길이의 ‘패널 토크’를 1만 명이 시청한다. 짧고 간략한 정보가 필요하듯, 한없이 빠져들어 새로운 것, 다른 비전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 존재해야 한다.
사진을 처음 시작한 동기는 뭐였나?
대학 시절 ‘스킨헤드’ 작업을 위해 작은 카메라를 사용했다. 고정 초점에 플래시가 마운팅된 카메라를 클릭하면 사진이 촬영됐다. 인화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모바일 폰으로 사진을 촬영하는 요즘과 비슷하다. 어떤 이미지나 사진을 촬영하는 이유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말하는 하나의 방식이랄까. 지난 수십 년간 사진을 찍는 고급 기술과 스냅샷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했고, 모두가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스냅샷은 별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사진은 ‘괴상한 야수(Peculiar Beast)’와도 같다.
독특한 비유다!
전시를 하는 이유도, 쇼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유도 사진의 영역을 확장하고 싶어서다. 사진은 많은 오해를 받고 있고, 대부분은 사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며, 그건 이미지 메이킹이나 패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리터칭’을 통해 현실이 변형된다고 하는데, 사진 자체가 나의 비전을 표출함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키는 작업이다. 이미지 창조자로서의 기본이 ‘당신이 볼 수 없는 걸 보여주는 행위’라면 그 방식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의 욕망은 ‘최고의 사진’을 찍는 것이다. ‘더 나은(Better)’ 사진을 찍고자 하는 욕구가 늘 내 안에 있다.
더 좋은(Better) 사진이란 어떤 건가?
내가 가수라면 보이스 코칭 레슨을 받을 것이고, 연기자라면 내가 받은 작품의 주제에 대해 더 깊이 고찰하겠지만, 이미지 메이커로서 기술적으로 더 나아진다는 걸 실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건 자각이고 직감의 영역인데, 이걸 어떻게 완벽하게 할까. 이미지를 포착하는 순간 내 앞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직감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수많은 리서치를 통해 준비할지라도 막상 그 순간은 ‘보는 게’ 아니라 ‘느끼는 거’다. 이미지를 촬영하는 대부분의 순간은 셔터가 닫히거나 플래시가 터지는 바로 그때인데 그 시점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언제나 먼저 생각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사진은 내가 체험하는 순간이 아니라 항상 미래에 대한 것이다.
사진가가 뷰파인더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사진 찍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하나?
이 일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나도 볼 수 없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다. 사진을 촬영하는 순간은 그 환경을 둘러싼 에너지와 당신의 감정 그리고 욕구에 대한 것이고 이미지로 창조되는 과정은 모든 게 미스터리다. 물론 나는 ‘소리의 언어’를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모든 게 ‘조화’롭다고 여겨져야 한다. 내가 하는 일을 소리의 언어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지 시각의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난 ‘맞게 소리 난다(Sound Right)’라고 하지 ‘맞게 보인다(Look Right)’라고 하지 않는다. 이미지를 보면서 불협화음이 아닌 하나의 ‘멜로디’를 찾는 건지도 모른다.
어느 아트 디렉터는 “우리는 수많은 것으로 넘쳐나는 바닷속에서 돌출되어야 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디자이너는 “나는 넘쳐나는 패션 세상 속 내 옷을 입을 한 사람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당신은 패션의 바닷속에서 무얼 하고 있나?
다른 사람들의 꿈을 보여주고 있다. 맥퀸은 자신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의 작업을 ‘비주얼’로 보여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사랑했고, 난 그것을 표현하는 걸 사랑했다. 요지 야마모토도 마찬가지다. 내가 촬영한 ‘레드 버슬’은 그의 작업 세계를 표출한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보여주는 일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비전을 통해서 말이다.
점점 더 ‘넥스트 스텝’이 궁금해진다. 당신의 다음 비전을 공유할 수 있나?
우리의 욕망이 앞날을 열어줄 것이다.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 가상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다. 눈앞의 평면 이미지가 아닌 나를 둘러싼 벽을 통해서도 보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이 가능한 이미지다. 그리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이미지다. 수동적으로 관람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관람하는 이미지다. 인터넷에 접속해보면 얼마나 쉽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볼 수 있는가. 대부분의 의견은 ‘글’로 남겨지지만, 이 이미지는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에 반응하며 변화할 수 있다.
놀라울 정도로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다!
2009년 전시에서 나오미 캠벨 조각상 세 개를 폴리스티렌으로 만들어 설치한 후 사람들에게 쇼 스튜디오 웹사이트에 접속해 자유자재로 쓰게 하고 갤러리에서 실시간으로 투사하며 소통하게 했다. 러시아에서 어떤 자가 빨강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면 미국에서 또 다른 자가 글을 써 내려가는 게 가능한 설치였다. 사람들은 시각적으로 서로 소통하는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의 작업을 수동적으로 관람했다면 앞으로는 능동적으로 상호작용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믿는 이상향과 작업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더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일까?
이번 전시에도,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내가 믿는 것을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 내 안의 불만과 분노 그리고 고민을 표현하려고 했다. 난 모든 여자들이 하나의 ‘몸매’ ‘인종’ ‘컬러’여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아직도 흑인 모델을 광고 캠페인의 주인공이나 캣워크에 세우기를 거부하는 브랜드나 회사를 보면 화가 난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으로 나의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팔이나 다리 하나가 없이 태어난 이들도 누구 못지 않게 ‘유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긍정적인’ 혹은 ‘열망의’ 이미지가 예술의 형태로 표현된 예는 극히 드물다. 난 사람들의 매력적인 모습을 이미지로 표현한다. 세상 속 수많은 ‘부당함’에 대한 나만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당신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누구든 부모에게 큰 사랑을 받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불행히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에게는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시절이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진리이다. 그런데 왜 그 모든 걸 내던지고 ‘이들만 아름답다’라고 말해야 하나. 만약 눈을 가리고 길거리에 나서서 만나게 될 첫 번째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찾으라면 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생명이 있고 그것은 아름다우며 그걸 보여주면 되는 것이니까. 머리칼의 곡선이나 눈썹의 모양이나 피붓결이나 손가락 길이 등 무엇이 되었든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
전시는 그렇게 ‘정치적’인 성향을 보여주며 끝나는 건가?
하하. 아직 아니다. 3D 스캐닝을 통해 작업한 케이트 모스의 조각이 그다음에 나온다. 3D 스캐닝을 통해 ‘오브제’를 사진 작업하듯 표현할 수 있다는 기술은 놀랍다. 독일의 님펜부르크라는 도자기 업체와 함께 조각상을 만들었다. 패션은 어느 순간 사람들의 욕망이자 선망의 대상이 되었는데, 거대한 성당 천장에 그려진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꿈을 키우던 프렌체의 한 소작농 여인과 그리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다. 이미지는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놀라울 만큼 대단한 열망을 품게 한다. 케이트 모스는 많은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관습을 거스름으로써 존중 받는 사람이다. 아마 가장 많은 사진을 촬영한 여인일 것이고, 집에서 빌보드를 통해서 오랜 시간 봐온 이미지의 주역이다. 게다가 프레스의 엄청난 공격과 파파라치의 괴롭힘을 딛고 일어섰다. 그녀의 조각을 통해 많은 ‘대화’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전시를 어떻게 끝맺을지 매우 궁금하다.
그것이 당신의 메시지일 수도 있을 테니까. 움직이는 영상으로 안내한다. 패션 필름은 쇼 스튜디오를 시작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옷은 움직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옷을 만드는 이들은 그 움직임의 소리와 형태 등을 생각하며 작업한다면, 움직이는 영상을 통해 더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지난 100년간 사진을 통해 패션을 보여줬다. 위대한 사람들이 그 놀라운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이젠 필름을 통해 더 아름다운 작업을 보여줄 수 있다고 인정할 때가 온 것이다.
패션이야말로 당신의 작업과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중요한 테마인가?
내 작업은 항상 패션에 대한 논의였고, 패션은 내 견해를 밝히기 위한 도구였다. 패션은 가장 ‘민주적인 예술의 형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입을 옷을 선택하고 구입한다. 독재국가에서는 사람들이 입는 옷을 가장 먼저 규제하고 헤어스타일을 제한한다. 그것이 억압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패션은 나에게 항상 무척 중요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DAELIM MUSEUM, NK IMAGE, ALL IMAGES COURTESY OF NICK KNIGHT
- 현지 인터뷰 진행
- 여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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