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평론 미식회
모두가 맛을 말하는데 그 안에는 남들보다 먼저 먹어봤다는 경험만 있을 뿐 정작 주인공이 빠져 있다. 우리 음식 평론에는 ‘맛’이 없다.
“외식업계에서 그의 악명은 상당하다.” 올 초, 지방 소재 일간지와 가졌던 인터뷰 기사의 첫 문장이다. 그렇다. 나의 악명은 상당하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대부분의 음식 평가에 동의하기 어렵다. 음식의 가치 판단뿐만 아니라, 기반 자체에 대한 불신을 떨칠 수 없다. 모호하고 개념이 명확히 잡혀 있지 않다. 기준과 시스템이 없다.
일단 언어 체계가 모호하다. 정확한 규정을 거치지 않고 쓴다. 대표적인 예가 ‘풍미’다. ‘맛’과 어떤 개념적 차이가 있는가. 또 ‘감칠맛’과는 어떻게 다른가. 알 수가 없다. 커피 세계에서는 ‘산미’와 ‘신맛’을 구분한다. 신맛이 한자로 산미 아닌가? 아니다. 다르다고 한다. 외래어를 번역에 대한 고민 없이 그대로 가져오거나 괴기한 조어를 만들어 쓴다. 빵의 크러스트(껍질), 크럼(속살)이 전자, 와인의 ‘바디감’ ‘탄닌감’ 등이 후자의 예다. 음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못 된다.
레퍼런스의 편향 및 부족이 모호함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음식 관련 서적의 대부분은 이른바 인문서다. 맛 이해의 상당 부분이 과학과 기술에 기댄다. 당연히 책도 많이 나오지만 번역 출간의 확률은 낮다. 과학 기반 요리책의 ‘끝판왕’인 <Modernist Cuisine>은 저작권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오래됐지만 출간 소식이 없다. 유사한 방법론으로 가정 위주 서양 요리를 재검증한 요리책 <Food Lab>도 마찬가지다. 이런 책의 레퍼런스인 <On Food and Cooking>은 좋지 않은 번역이나마 절판됐다.
언어가 모호하고 레퍼런스가 부족하니 맛에 대한 평가를 아예 하지 않는다. 핵심인 맛만 쏙 빼놓고 음식을 다룬다. 신문 기사는 사회 문화사 같은 인문학 타령으로 그친다. 관련 분야 학자가 쓴 빵의 문화사 책 소개 문구가 “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으로 시작한다. 학문의 대상으로서 음식과 실제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별개다. 역사를 읊지만,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음식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아니면 전혀 엉뚱한 기준으로 평가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가성비’, 즉 가격 대 성능비다. 뜯어보면 핵심은 맛이 아닌 양이다. 반찬 문화 또한 양으로 치환되는 다양성이다. 맛의 큰 그림에 대한 존재 없이 가짓수가 많다. 가정식도 엉뚱하다. 일본, 스페인, 영국 등등 다양하다. 파는 음식을 향한 불신이 집밥을 닮은 외식을 향한 기형적 선호도로 구현된다. 집밥과 외식은 편의와 즐거움을 위해 공존해야 할 확연히 다른 세계다. 조리의 환경도, 추구해야 할 맛도 전혀 다르다. 맛있는 중식의 기준으로 통하는 ‘불맛’은 화력 약한 집에서는 낼 수 없다. 가정식은 전혀 우월하지 않다.
간신히 맛으로 방향을 잡더라도 모호함과 부족함은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원두에 대한 지식 없이 찬물에 우려낸(Cold Brew) 커피를 평가한다. 잡담 수준일 수밖에 없는 인상 비평이 콘텐츠로 소비된다. 호텔 셰프를 불러 대량생산 잼을 브랜드별로 평가하는데 기준이 집에서 만든 것이거나 올리고당을 쓴 제품에 좋은 점수를 준다. 잼은 장기 보관 수단이다. 과일과 설탕을 1:1에 가깝게 섞어 끓인다. 요즘은 냉장 수단의 발달과 당에 대한 우려로 과일즙을 더해 만드는 추세다. 올리고당 같은 대체 당류는 단맛의 표정과 여운이 달라 잼과 어울리지 않는다. 또 압력 조절로 낮은 온도에 끓여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어 공장 환경이 우월하다. 하지만 모른다. 레퍼런스가 전혀 필요 없는, 사소한 측면도 놓친다. 대표적인 예가 햄버거다. 햄버거는 샌드위치다. 빵과 내용물을 같은 비율로 베어 물 수 있어야 만족스럽다. 패티는 구우면 수축하니 빵보다 좀 크게 빚어야 크기가 맞는다. 또 가운데를 눌러줘야 솟아오르지 않는다. 요즘은 빵마저 디테일이 떨어지는 버거가 등장한다. 위 뚜껑 아래 뚜껑의 비율이 2:8인 버거다. 물론 ‘수제’다. 기본 형식 준수에 태만한 음식은 맛있지 않고 맛있을 수도 없지만 좋은 평가를 얻으며 SNS를 누빈다.
닭과 달걀의 문제지만 나쁜 평가의 원인은 결국 나쁜 음식이다. 서양 음식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만들고 먹으며, 한식은 자기 객관화에 바탕한 점검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기준이 뒤죽박죽이거나 없을 수밖에 없다. 선두에 인지 부조화가 있다. 즐거운 경험에는 불편함의 자리가 없다. 생리적으로나 감각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다면 좋은 음식 경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믿는다. 콩가루가 비강을 통해 역류, 기침을 피할 수 없는 빙수가 대표적인 예다. 치명적인 UX(사용자 경험)의 결함이지만 한때 인기를 누렸다. 온도 조절에 실패해 펄펄 끓는 뚝배기도 같은 맥락이다. 혀나 입천장을 데기 쉽고 맛도 느끼기 어렵지만 시원해서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지 부조화는 질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쫄깃함이 미덕으로 대접받고 힘들게 씹는 음식이 인기다. 떡을 제외한다면 쫄깃함은 실패한 조리의 결과다. 날것의 상태를 벗어나는데 그칠 뿐 제대로 분해시키지 못했거나(돼지 목살), 아니면 너무 익혔다(생선이나 닭고기). 반면 잘 익혀야 할 음식은 덜 익힌다. 빵에서 두드러진다. 찌지 않고 구웠는데 하얗다면 빵은 100% 덜 익었다. 단팥빵 같은 소위 단 과자류를 필두로 부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빵에서 가장 심하다. 소화가 안 된다.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 노릇함이 돌아야 잘 익은 빵인데 “탄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맛에서는 매운맛이 인지 부조화의 리더다. ‘맛있는 매움’이 과연 존재할까. 매운맛은 통증이다. 자극에 맛봉오리가 무뎌지고 다섯 가지 기본 맛에 둔해진다. 매운맛이 원인인 대표적 불균형이 짠맛이다. 매운 음식은 대개 싱겁거나 단맛으로 대응한다. 한편 양념장 위주의 문화도 섬세한 음식 맛에 악영향을 미친다. 양념장만 믿고 재료에 직접 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료에 소금-짠맛 위주의 음식, 단맛이라면 설탕-이 닿아 수분이 빠지면서 맛이 변하는 과정은 요리의 핵심이지만 양념장 문화에선 설 자리가 없다.
지방도 잘 안 쓰니 음식 맛의 균형이 더욱 떨어진다. 담백함이 대우받기 때문이다. 소시지와 삼겹살마저 담백함이 미덕이다. 실제로 담백하지도 않지만 그렇더라도 문제다. 지방은 맛의 매개체다. 지방이 없으면 맛도 없다. 우유로 비교해보면 확 드러난다. 지방이 빠지면 고소함과 풍성함도 떨어진다. 한식은 지방을 맛의 바탕으로 쓰지 않는다. 튀김보다 전이 발달했고 악센트만 주는 참기름이 핵심 지방이다. 강한 양념 위주의 한식이라면 지방이 바탕을 깔아줘야 더 인상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잘못된 평가가 있다. ‘아재 입맛’이 대표하는 여혐(Misogyny)의 미식 세계다. ‘파스타는 여자 음식, 순대는 남자 음식’ 등의 이분법이다. 돼지 뼈 국물의 돈코츠 라멘을 놓고 “진해서 여자들이 먹겠나”라고 평가한다. 남녀 입맛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니 일단 터무니없을 뿐만 아니라, ‘부엌의 타자’인 남자의 시각이 성 편향적으로 반영되었다. 논리랄 게 없지만 따지지 않더라도 가치 없는 평가다. 잘못된 평가 가운데서도 최악이다.
- 글
- 이용재 (음식 평론가)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LEE HYUN SEOK
- 손 모델
- 박혜빈
- 푸드 스타일리스트
- 김보선
- 만년필
- 몽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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