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개인 소장품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강남 한가운데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요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각종 흥미로운 물건은 정금형의 눈과 몸, 경험과 시간을 통해 세상과 새롭게 관계를 맺는다.
“이번 개인전에선 제가 공연에서 사용한 사물과 함께, 수집했지만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못한 사물을 제시함으로써, 관객 여러분이 제가 포집한 사물과 저의 내밀한 관계를 유추하고, 또 더 나아가 관객 여러분 스스로 사물과의 새로운 관계를 상상해보길 바랐어요.” 지난 8월 25일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제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로서 전시 <개인소장품>을 개막한 정금형의 말이다.
무대예술가 정금형은 진공청소기 따위의 사물과 제 몸을 마주 놓은 채, 애욕의 몸짓을 하나하나 연구·개발해왔다. 따라서 그의 모든 공연은 일종의 워크숍 성과 발표회처럼 보이기도 했다. 2005년 <피그말리온>으로 데뷔한 작가는 2008년작 <금으로 만든 인형>으로 이름을 얻었는데, 이 득의작의 핵심은 ‘간단한 장치를 활용해 내 몸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타자의 캐릭터를 도출-구현하고, 그 타자와 기승전결의 사랑을 나눈다’는 데 있었다. 몸의 일부에 가면을 덧대놓고 애무를 주고받는 장면에선 마임의 전통이, 진공청소기에 얼굴을 붙여놓고 성교를 나누는 장면에선 인형극의 전통이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이를 무용으로 해석하면, 또 전형적인 파드되(클래식 발레의 남녀 2인무)의 역전된 양태로 보였다. 작가는 이렇게 해석했다. “저는 제 작업이 일종의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하곤 해요.”
지난 2009년 굴삭기 운전면허를 취득한 정금형은 굴삭기와의 성교를 안무해내는 일에 도전한 결과를 추려 <유압진동기>란 괴작을 발표하기도 했다. <유압진동기>는 무용 시범을 포함한 강연 형식으로 발표됐기에, 조사·연구에 기반을 둔 작업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드러내는 후반기 작업(포스트프로덕션)의 실험이 되기도 했다(이 작업을 보면,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만들어나가는지, 또 제 작업을 성찰함으로써 이후의 작업에서 어떤 변화를 취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전에 어느 평론가의 강연을 들었는데, 직접 보는 예술 작품보다 강의로 보는 작업이 더 흥미진진하더라고요. 폴더 속에 정리된 미공개 자료가 너무 궁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도 제 작업을 프레젠테이션 강의로 야금야금 보여주게 됐어요.”
2011년작 <휘트니스 가이드>에서는 에어로빅이나 요가용 공간처럼 연출한 소극장 한가운데를 비워놓고, 주요 운동기구를 사방에 배치해놓은 채, 신체 단련 교습을 빙자해 기계와 성교의 게임을 펼쳐나갔으며, 2013년작 <심폐소생술연습>에서는 심폐소생술 실습용 더미(인형)가 성교 중 심정지를 맞은 상황을 연출해 비극(복상사 사망극)을 꾸며냈고, 2015년작 <재활훈련>에선 마비 환자가 된 더미가 어떻게 재활 훈련 기구를 통해 ‘재활’될 수 있는가를 탐구해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공연-제시했다.
이렇게 작업이 차곡차곡 쌓여나가자, 각 작업에서 구현된 타자로서의 ‘그’를 다시 연결해 메타-분석하는 관객도 등장했다. <재활훈련>을 <휘트니스 가이드>와 <심폐소생술연습>의 프리퀄로 해석하는 이도 나왔다. (즉, 재활 훈련을 통해 운동 능력을 되찾은 남자가 휘트니스 가이드에서 여러 명으로 현현하지만, 결국 성교 중 심정지로 사망한다는 이야기라나?) 다른 한편에선 남성의 캐릭터와 여성의 캐릭터가 맺는 관계를 뒤집고 또 뒤집는 실험으로 해석하는 이도 나왔다.
“제 몸은 주인공이 돼야 하는 사물을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이끄는 도구이자 동력이에요. 제 역할도 1차적으론 작동을 책임지는 오퍼레이터죠. 극장의 무대 기계장치나 다름없는 기계의 역할을 맡습니다만,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몸을 대전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그렇다면 정금형의 작업은 페미니즘에 부합할까? 작가가 기계로부터 도출해내는 캐릭터는 주로 남성이지만, 언제나 남성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퍼포머인 그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그 남자 주인공들은 결국 타자화된다. 반면 그 자신이 연기하는 여성 캐릭터는 타자화되어 있지만 작품을 기동시키는 환영성을 보면, 그 바탕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론 여성인 그가 거의 전권을 쥐고 있는 주체라는게 또 강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모에화를 통해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된 어떤 정보나 데이터와 그걸 그려내는 애니메이터가 함께 무대 위에 등장해야 하는, 일종의 고문처럼 독해되기도 한다. 이런 해석에 작가는 동문서답했다.
“다른 한편으론, 나 자신이 클래식 발레에서 여성 무용수의 보좌 역할을 맡는 남자 무용수와 유사하다고 느끼기도 해요. 내가 잘 보좌해야 남자 주인공이 100%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전에 어디서 보니까, 여자 오타쿠 여러분이 ‘전지적 화분 시점’이라는 흥미로운 단어를 쓰더라고요. 저는 제가 전능한 극장의 기계장치적 시점을 취한다고 망상하기 때문에, 유사한 측면이 없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공연을 전개할 때 내 눈에 어찌 보이는가가 아니라, 관객이나 녹화된 상황에서 모니터로 볼 때 혹은 기계의 시점에서 수행하는 나를 볼 때, 내가 그려나가는 동적 관계가 어찌 보이는가를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정금형의 작업을 일종의 2차 창작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주로 남자를 전제로 한 레디메이드 사용자 인터페이스 환경에서, 작가는 여성 사용자로서 수동적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취해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그 관계가 상정해놓은 사용자 경험의 서사를 뒤틀어 새로운 파라-리얼리티(Para-reality)를 직조해내는 셈이기 때문에. 공연을 반복할 때마다 작가는 기성 사회가 제공한 여성이라는 범주와 여성 예술가에게 허락되던 어떤 역할에서 조금씩 탈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것일까? “사물과 인간이 관계를 맺는 일련의 과정이나 그걸 독해하는 사회의 방식에 성차가 있다고는 느껴요. 그게 제 작업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디폴트값이 제 작업에 한계가 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제게 제약은 대체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의 발판이 되니까요.”
정금형이 안무한 작업을 남성 퍼포머가 공연한다면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안무가 본인이 아니라 다른 여성 퍼포머가 공연하면 어디까지 같고 또 어디까지 다를까? “최근에 저 말고 다른 퍼포머/동력원 여러분을 등장시키는 작업을 시도해보고 있어요. 상당한 규모의 뉴 프로덕션을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선 것은 아니지만요.”
작가의 이러저러한 말을 듣고 다시 <개인소장품>을 둘러보니, 그가 레디메이드 제품을 수집해 재해석하는 과정이, 레디메이드 사물의 인터페이스 기능을 비정상적으로 전유하는 일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데 <개인소장품>에 출품된 오브제는 실제로 공연에 사용된, 즉 어떤 캐릭터가 된 이력이 있는 것이 있고, 또 실제로 공연에 사용되지 않은(혹은 사용하지 못한), 즉 어떤 캐릭터가 되지 못한 것이 있다.
“처음엔 그 두 부류의 물건을 따로 나누어 전시하려고 했어요. 그랬다가 한데 뒤섞는 게 더 재밌을 것 같아서 마음을 바꿨죠.” 물건을 분류한 방식은 뭘까? “유형별로 나눠 동선을 크게 둘로 갈랐어요. 동선을 따라 각 사물군이 끝말잇기처럼 연결됩니다. 전시를 준비할 때 갤러리에서 총목록을 만들어주셨는데요, 전시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일부 항목은 제외됐어요. 그렇다고 꼭 그 동선에 따라서 관람하셔야 하는 건 아니에요.” 그리고 이런 설명을 덧붙인다. “갤러리의 모니터에선 제 공연 영상과 함께 몇몇 제품의 정상적 사용 방법을 담은 튜터리얼 영상이 반복 상영됩니다. 하나의 인터페이스를 놓고 펼쳐지는 두 세계를 평행 우주처럼 보셔도 좋고, 본인만의 사용법을 상상해보시거나 실제로 본인이 소장한 물건과의 새로운 조우를 시도해보시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소장품>에서 주인공은 작가가 수집한 사물이지만 정말로 강조되는 것은 작가의 판별하는 눈과, 수행하는 몸과,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방법이다. 만약 이 세팅을 바탕으로 작가가 새로운 공연용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결과가 도출될까? 그가 자신의 전시를 도슨트하는 방식으로 퍼포먼스를 벌인다면?
예술가 정금형은 공부한 이력도 다채롭다. 호서대학교 연극영화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으며, 한국영화 아카데미에선 애니메이션 연출을 공부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학습 배경을 놓고 추론해보자면, 그에게 아직 발현되지 않은 재능은 제 작업을 영상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본격화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극장용 퍼포먼스와 화이트 큐브용 퍼포먼스로 극장계와 미술계 양쪽에서 널리 인정받은 뒤, 이제 수집한 오브제의 전시를 통해 ‘미술관적 효과’를 부리며 자신의 현존과 성취를 강조해냈으니, 다음 단계에선 뭔가 색다른 질적 전환이라도 이뤄질 판이다.
한데 그의 팬층은 그의 작업만큼이나 다층적이다. 무용계의 팬도 있지만, 미술계의 팬도 적지 않고, 또 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아저씨 팬이 적지 않다는 사실. 왜일까? 작가의 생각을 물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저도 아저씨 팬 여러분, 좋아합니다.
- 글
- 임근준 aka 이정우(미술·디자인 평론가)
- 에디터
- 윤혜정
- 포토그래퍼
- KIM YOUNG HOON, YOUNGGYO CHOI, UNSIK LEE, KAROLINA MIERNIK(AR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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